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그냥 이런 말을 쓰고 싶었다) 몇 권의 책을 주문했다. 민병헌의 사진집, 한강과 김선우와 필립 로스의 소설과 익숙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시인의 시집들을 보고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내가 좋아하거나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들이다. 좋아한다는 말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모르는 이들에게 그런 질문을 하고 싶다.
십대의 나는 너를 좋아해,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라고 말할 수 있었다. 적극적이고 도전적이었다고 해도 좋다. 동성의 친구나 이성에게도 그러했다. 그러다 점점 두려워졌다. 좋아하는 이웃님의 말처럼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 좋아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그의 모든 것을 믿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모든 것이라니. 이 얼마나 우주적인 발언인가.
실은 이 글은, 하루키에 대해 좋아한다고 쓰려다 시작되었다. 그의 소설을 읽고, 그의 책을 사들이고 있지만 이 애정은 진짜 애정일까. 어쩌면 누군가를 흉내내기에 불과한 건 아닐까. 아마도 그런지도 모른다. 조만간 곁에 두게 될 하루키의 소설을 보며 생각한다. 한 글자의 제목 때문에 끌리기도 했지만 하루키의 책이라 거절하지 못하는 점도 있다는 말이다. 『잠』이라는 제목이 이렇게 근사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하루키에 대해 주입되었다는 증거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한 글자의 제목은 바로 『섬』이다. 정현종의, 장 그르니에, 섬. 다른 한 글자 제목을 추가한다면 윤보인의 『뱀』이다. 그리고 단 한 글자로, 모든 걸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마도 너라는 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