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좋아하지 않는다. 요염하고 고운 색동을 떠올리는 단풍에 저절로 눈이 돌아가고, 고개를 뒤로 한 채 바다를 닮은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형형색색의 국화들과 마주하지만 나는 가을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감과 고구마의 계절이지만 가을은 나를 유혹하지 못한다. 어떤 일들은 모두 가을에 잉태되었다. 그 중 몇 몇은 불꽃처럼 타오르기도 했다. 안다, 가을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어느 글에서도 나와 가을이 애증의 관계라는 걸 쓴 적이 있다. 하여간 가을은 내게 참 잔인하다.

 

 이런 마음을 시원하게 토해내면 말끔하게 받아주는 지인이 있다. 내게 그녀의 이름은 정신적 지주다. 10월의 두 번째 금요일부터 그녀를 귀찮게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속상한 마음을 털어내다가 문득 그녀는 누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 놓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많이 미안해졌다. 너덜너덜 구멍 난 내 감정을 꿰매주는 그녀가 내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어, 그리고 너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잖아. 그렇게 돌고 돌아 살아가는 순환의 법칙이 아니겠어.

 

 나는 냉큼 순환의 법칙이란 말이 매우 좋다고, 이 말을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제대로 순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막히거나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리 생도 그럴 것이다. 어느 한 시절, 한 기억에 막혀버리면 순환하지 못해 생은 아프기만 할 것이다. 이 가을이 내게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가을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해마다 내게 오는 가을은 가을이라는 이름을 지녔지만 다른 가을이 될 테니까.

 

 그러니까 가을과 상관없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마치 나를 위한 책인 것처럼 반가운 한강의 소설집 『노랑무늬영원, 좋다는 글만 보이는 신용목의 시집『아무 날의 도시』, 이상하게 끌리는 시인 김선우의 소설 『물의 연인들』 에 빠져들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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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0-24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에게는 가을이 그렇군요. 누구는 봄이 누구는 여름이 그럴 수 있겠지요. 잊어야 할 건 더 안 잊혀지는거 같아요. 순환이라는 말 좋아요. 한강과 김선우의 소설 담아갑니다. 소설에 마음 기울여 읽어야 할 일이 있기도해서지만 제마음이 가는대로 두기 위해서이기도 하구요. 멋진하루!보내세요^^

자목련 2012-10-24 15:23   좋아요 0 | URL
아마도 잊으려고 애쓰며 상기시켜서 그런 것 같아요. 그냥 내버려두면 저절로 잊혀질지도 모르는데..
당분간 순환이라는 말이, 제게 최고의 말이 될 것 같아요!!

한강과 김선우의 소설, 이 가을을 달래기 위해서 좋을 것 같아요. 빛나는 오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