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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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다. 그저 작은 실수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을 잃게 하고 남은 생을 슬픔에 빠져 살게 하는 것. 의도하지 않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 순간으로 삶은 멈춘다. 나갈 수 없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살아간다. 실종된 어린 소녀 ‘시시 래들리’를 찾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나의 작은 무법자』에서 만난 이들이 그러하다.


실종된 소녀는 죽음으로 돌아온다. 누가 이런 잔혹한 짓을 했을까. 소녀를 죽인 범인을 찾는 과정을 기대했지만 그건 아니다. 범인은 공개되고 그는 감옥에 있고 소설은 30년 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은 소녀의 조카로 스스로를 무법자라 말하는 소녀 ‘더치스’와 소녀가 돌보는 남동생 ‘로빈’, 남매를 지키는 경찰서장 ‘워크’의 일상이다. 위크는 더치스의 엄마 ‘스타’와 범인 ‘빈센트 킹’의 친구로 30년 전 사건의 목격자다. 형제 같았던 친구를 신고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 그 일로 평생 그 사건에 갇혀 산다. 그리고 형량을 마친 빈센트 킹이 마을로 돌아온다.


술과 약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엄마 스타와 어린 동생 로빈을 지키는 무법자 더치스는 이제 빈센트도 주시해야 한다. 엄마 곁을 맴도는 수많은 남자들과는 다르다. 이모를 죽이고 래들리 집안을 망가트린 장본인이니까. 그래서 더치스는 자신을 돌볼 수 없다. 로빈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애쓰고 흔들리는 엄마를 붙잡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워크는 그런 더치스가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 열세 살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삶이라는 걸 알기에. 더치스의 주변을 살피고 도움을 준다. 그 사건으로 인해 워크의 삶도 멈춰지만 중요하지 않다. 친구인 스타와 그녀의 아이들과 빈센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 중요할 뿐이다.


돌아온 빈센트는 마을을 떠날 생각이 없다. 부동산 업자가 집을 팔라고 거액을 제시했지만 낡은 집을 수리할 뿐이다. 빈센트가 시시를 죽인 건 사고였다. 어쩔 수 없는 실수로 시시 가족은 물로 모두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가해자가 맞지만 한 편으로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하다.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러나 불행은 멈추지 않았다. 더치스의 엄마가 총에 맞았고 현장에 있던 빈센트는 범인이 되었다. 더치스와 로빈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정말 빈센트는 범인일까. 과거 연인이었던 스타를 죽였을까. 소문처럼 그녀가 여러 남자를 만나는 걸 질투하고 복수해서 그랬을까. 무법자 더치스는 로빈을 지켜낼 수 있을까. 소설은 점점 더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삶으로 우리를 이끈다. 빈센트는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문다. ‘마사’가 자신을 변호해 주기를 바란다. 마사는 스타의 절친이고 워크의 여자친구였다. 워크와 헤어진 후 마을을 떠나 변호사가 되었다. 빈센트는 왜 마사를 지목한 것일까. 이 일을 계기로 다시 만난 워크와 마사는 빈센트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증거를 살피고 사건 당일을 재구성한다.





어린 남매는 외할아버지 ‘핼’의 농장에서 생활한다. 더치스는 기억 속에서 사라진 외할아버지에게 방어적이고 공격적이다. 당연하다. 이모 시시를 잃었지만 엄마인 스타를 방치했으니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손주인 남매까지 모른척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핼은 엄마를 잃은 남매를 자신의 방식대로 돌본다. 농장 일을 알려주고 교회에 데리고 가고 더치스에게 운전을 가르친다. 더치스와 로빈은 그 시간에 스며들고 농장의 삶에서 웃음을 찾고 행복을 느낀다. 마침내 찾아온 남매의 평온은 곧 사라진다. 핼이 다크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 다크는 스타의 주변을 맴돌던 남자로 그가 운영하는 클럽에 더치스가 불을 내고 가져간 보안 테이프를 찾으러 먼 농장까지 온 것이다.


유일한 보호자였던 핼의 죽음으로 남매는 위탁가정에서 입양을 기다린다.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부부를 만났지만 더치스의 나쁜 행동으로 무산되고 둘은 보육원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엄마를 죽인 빈센트가 석방되는 방송을 보기 되고 더치스는 로빈을 두고 떠난다. 자신이 없으면 로빈은 원하는 곳으로 입양될 수 있으므로. 빈센트를 만나기 위해 그를 죽이기 위해. 긴 여정의 끝에서 만난 빈센트는 스스로 생을 마친다. 그리고 밝혀진 진실은 모두를 울게 만든다.


더치스가 핼의 이웃인 돌리와 나누는 대화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하는 사람, 나와 같은 사람을 찾아 헤매는 게 생인지도 모른다. 어린 더치스의 바람처럼 처음으로 돌아가 숨 쉬기부터 할 수 있다면 괜찮을까. 아닐 것이다. 어떤 기억은 평생 우리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니까. 숨 쉬기 이후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니까.


“우리는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될지 고를 수 없는 건지도 몰라. 어쩌면 그건 미리 정해진 건지도 몰라. 어떤 사람은 우리처럼 무법자야. 어쩌면 그런 사람들은 서로를 찾아내는 건지도 몰라.” (488쪽)


“끝맺음이요. 난 다 잊어버리고 처음으로 돌아가 숨 쉬기부터 다시 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가 않아요.” (488쪽)


『나의 작은 무법자』는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일들로 채워진 생의 비밀을 발견하는 아름답고 놀라운 미스터리 소설이다. 돌이길 수 없는 일을 겪은 사람들이 어떻게 나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 온통 절망뿐인 삶이 단 한 사람의 사랑과 볼살 핌으로 괜찮아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다시 숨을 쉬고 그 이후를 채울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빈센트를 놓지 않고 그와 그가 사랑한 스타와 그녀의 아이들을 돌보는 워크, 서툴지만 더치스와 로빈에게 애정을 쏟는 핼, 평생 스타를 사랑한 빈센트를 통해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확인한다. 고통의 삶을 견딜 수 있는 건, 불행의 연속인 삶에서 나가갈 수 있게 하는 건 사랑이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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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9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7-19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빵과 시 일상시화 7
안미옥 지음 / 아침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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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산다. 시를 읽는다. 그냥 읽는다. 끌리는 대로 읽다 꽂히는 시가 있으면 메모한다.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 한 시. 그런 모호함이 좋다. 소설에도 모호함이 있지만. 왠지 모호와 난해는 시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시인 안미옥의 에세이 『빵과 시』는 시를 쓰는 마음, 시를 준비하는 마음을 빵과 연결시켜서 보여준다. 시를 좋아하는 이라면, 아니 빵을 좋아하는 이라면 반가고 기꺼울 책이다. 일상이 시가 되는 순간, 아침달 시리즈 ‘일상시화’의 마지막이라니 아쉽다.


시인은 시를 언제 쓸까, 떠오르는 시상을 어떻게 붙잡을까. 시어에 숨겨진 시인의 의도는 무엇일까. 시인의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따라오는 생각이다. 시를 써야지 준비하면 바로 시를 쓸 것 같은 생각은 독자의 오만이다. 단 번에 시가 되고 단 번에 소설이 될 수 없으니까. 그러니 아무 말이나 쓴다는 시인의 글은 괜히 반갑다. 아무것도 아닌 나도 뭔가 쓰려고 하면 시간이 필요하니까. 시간을 정해두고 그 안에 쓰려고 노력하니까. 쓴다는 건 쉬우면서도 어렵다는 건 모두에게 같다는 게.


시를 쓰기 전에 한글 창을 켜고 시간을 정해둔 뒤 아무 말이나 쓴다. 일종의 모드 전환을 위해 쓸 준비를 하는 것이다. 시의 주제와 상관없이 워밍업의 시간은 늘 필요하다. (33쪽)


『빵과 시』이라는 제목답게 시인은 빵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빵, 자주 가는 카페, 친구들과의 만남, 동네책방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빵을 좋아하는 이라면 빵 이름이 나올 때마다 그 모양과 맛을 떠올릴 것이다. 잘 모르는 빵이 등장하면 나는 검색을 했다. 아, 이런 빵이구나. 시인이 좋아하는 카페가 나오면 나는 또 검색을 했다. 내가 모르는 공간, 한 번도 간 적 없고 앞으로 방문할 일이 없을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시인을 상상했다. 「이혜와 서울」란 이름의 카페는 오래도록 잊지 않을 것 같다. 알지 못하는 곳을 향한 어떤 그리움까지 생겼으니까.


빵은 어디에나 있다. 빵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또 가장 멀리 있는 형태로. 손 닿을 곳에. 마음 닿는 곳에. 시가 그러한 것처럼. (62쪽)


가만가만 시를 생각하고 시를 쓰는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아이의 정직한 마음은 웃음과 감탄을 불러온다. 빵과 시에 대한 글을 쓴다는 엄마에게 관심을 보이고 천변의 돌 다리를 건너며 멋지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이 행동으로 나온다는 아이.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시인의 바람은 생각하면 생각이 밖으로 나오고 문장이 다음 문장을 쓸 수 있게 만든다고 이어진다. 시인처럼 좋은 시와 문장을 쓰는 삶은 아니지만 생각이 행동으로 나온다는 걸 잊고 있었구나 돌아보게 된다.


시는 흐르고 있는 것일까. 멈춰 있는 것일까. 흩어지는 것일까. 가라앉아 있는 것일까. 사라진 것일까. 새겨진 것일까. 어떤 시는 투명한 상자 안에 서 영원히 흐르고 있는 모래바다 같다. 가라앉으면서 흐르는. (83쪽)


시인에게 모든 건 시로 연결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글을 읽기 전까지는 시인이 원하는 시와 독자가 어떻게 읽어주기를 바라는지 몰랐다. 모든 시에는 괴로움이 있고 괴로움은 질문을 발생시키고 삶과 고통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그런 마음은 당근을 먹으면서 당근 케이크를 생각하고 자꾸 씹히는 당근 조각 같은 시로 이어진다. 세상의 모든 시가 품은 괴로움은 시인이 시를 쓰며 넣어둔 씨앗은 아닐까.


시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만큼 사람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동물 앞에서도, 생활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끄러운 일 앞에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생활 없이, 이웃 없이, 사랑 없이, 반성 없이는 시도 없고 시인도 없다. (139~140쪽)


빵이 좋아서, 시가 좋아서 만난 책. 시가 더욱 궁금해졌다. 바게트빵을 상어라 생각하는 아이를 키우고 유서를 편지처럼 보낸 엄마에게 말하지 못하고 쓰는 사람이 된 시인. 그 마음이 시가 되어 나와 닿았을 순간. 시를 읽는 건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일이고 고통을 읽는 일이고 헤아리는 일이다. 다 알지 못하고 알 수 없어 오독하며 시를 읽는다.


사람이 자라면 눈물도 더 크게 자란대 다들 이걸 어떻게 감추고 살까 매일 한 뼘씩 커지는 눈을 어디에 묻어두고 있는 걸까 잘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거울 속에 감춰둔 것 같다 그래서 거울을 볼 때마다 울 것 같은 기분이 되나봐

너는 빵 속에 숨겨두었지? 그래서 울고 싶을 때마다 빵을 먹잖아 부드러운 빵이 더 좋을 것 같은데 너는 매번 딱딱한 빵을 먹는다 잘 씹히지도 않는 빵을 오래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고

(시 「적란운 위에 쓴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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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샀다. 출간을 기대했고 기다렸던 책을 샀다. 계획 구매는 잘 한일이다. 사려고 했던 책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구매했으니까. 그렇게 산 책은 황정은의 『작은 일기』와 김이설, 이주혜, 정선임의 『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 두 권이다. 나머지 안희연의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과 에이모 토울스의 『테이블 포 두』 두 권은 충동적으로.

황정은의 신간이 나오는 건 몰랐다. 알림 설정이 알려주었다. 그에 비해 다람 출판사의 ‘얽힘’은 기다렸던 신간이다. 김이설, 이주혜의 단편을 읽고 싶기도 했고 작가들이 서로에게 던진 질문과 답변을 담은 「얽힘 코멘터리」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안희연의 시집은 여름이면 장바구니에 넣었다 사라지는 책이었다. 여름이면 생각하는 시집, 여름에 구매가 늘지 않을까 싶다. 에이모 토울스의 소설은 『모스크바의 신사』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샀다.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다. 충동은 이래서 별로다. 언제 읽을지 모를, 반드시 읽게 될지 알 수 없는 목록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무튼 도착한 책을 보는 일은 좋다.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를 하는데도 충동적인 구매를 한다. 오프라인 서점을 방문하지 않는 게 다행인 걸까. 아무튼 오늘도 시를 한 편 읽어보자.

부러웠어, 너의 껍질

깨뜨려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진심이 있다는 거

나는 너무 무른 사람이라서

툭하면 주저앉기부터 하는데

너는 언제나 단호하고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

한 손에 담길 만큼 작지만

우주를 쥔 건 같은 기분이 들었어

너의 시간은 어떤 속도로 흐르는 것일까

문도 창도 없는 방 안에서

어떤 위로도 구하지 않고

하나의 자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가졌다는 건

너는 무수한 말들이 적힌 백지를 내게 건넨다

더는 분실물 센터 주변을 서성이지 않기

‘밤이 밤이듯이’ 같은 문장을 사랑하기

미래는 새하얀 강아지처럼 꼬리 치며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새는 비를 걱정하며 내다놓은 양동이 속에

설거지통에 산처럼 쌓인 그릇들 속에 있다는 걸

자꾸 잊어, 너도 누군가의 푸른 열매였다는 거

세상 그 어떤 눈도 그냥 캄캄해지는 법은 없다는 거

문도 창도 없는 방 안에서

나날이 쪼그라드는 고독들을 (「호두에게」, 전문)

시집을 훑어보다 나를 이끈 시는 표제작이 아니었다. 어떤 시간, 어떤 날들, 호두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이를 생각한다. 처음부터 단단한 호두였을 리 없는데. 잊는다. 끝내 호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도 있을 텐데. 호두를 볼 때마다, 호두나무를 지나칠 때마다 이 시가 생각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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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비 2025-07-09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황정은의 신간은 곧바로 구매할 수밖에 없었습니당….작가님은 소설도 얼른 출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자목련 2025-07-10 10:58   좋아요 1 | URL
실은 소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blanca 2025-07-09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고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 설레요.

자목련 2025-07-10 11:00   좋아요 1 | URL
김연수의『너무나 많은 여름이』처럼 깜짝 출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blanca 2025-07-10 11:01   좋아요 0 | URL
헉, 저도 딱 그 생각 했어요. 김연수 작가님 분발해 주세요!

관찰자 2025-07-09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황정은 신간 소식 너무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5-07-10 11:00   좋아요 0 | URL
우리 함께 읽어요!

다락방 2025-07-0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댓글 황정은 신간소식으로 대동단결이네요. 저도 황정은 신간 소식을 이렇게 자목련 님 페이퍼로 알게 됩니다. 후훗.

자목련 2025-07-10 11:00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어쩌다 보니 황정은^^

서니데이 2025-07-09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알림이 되어있으면 빨리 알 수 있어 좋은것 같아요. 자목련님 시원하고 좋은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5-07-10 11:01   좋아요 0 | URL
알림이 많아서 걱정이지요 ㅎ
시원한 하루 이어가세요^^
 
느리게 가는 마음
윤성희 지음 / 창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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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인다고 볼 수 없는 움직임으로 살고 있다. 속내는 멈춤 그 자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럴 수 없기에 천천히 느린 속도로 산다. 빠르게 가라고 재촉하는 이가 없는데 왜 마음은 불편한 것일까. 이런 마음은 괜찮다고 나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소설을 읽었다. 윤성희의 단편집 『느리게 가는 마음』를 읽으면서 마음속 더위를 날려주는 바람을 만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익히 알았던 윤성희의 소설이 주는 기쁨을 만끽했다. 삶의 슬픔과 불운에 대해 수군대고 혀를 차는 게 아니라 그럴 수 있다며 달래는 유머.


우리의 삶 전체를 행운으로 채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디에도 그런 삶의 주인공은 없다. 누구나 누군가를 잃고 상실과 동행하며 죽음을 두려워한다. 다만 견디는 것이다. 켜켜이 쌓여있던 슬픔을 지켜보고 알아주는 소중한 이와 함께. 『느리게 가는 마음』 속 8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 곁을 지키는 이들처럼. 혼자가 아니기에 소설의 주요 키워드인 생일을 축하하는 이들이 있기에 살아간다.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런 인물의 구성이 윤성희 소설의 장점이다. 처음부터 특별하고 끈끈한 관계가 아닌 시간이 지나 단골이 되고 우연한 만남의 연속으로 친밀해진 사이라고 할까.


사실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8편의 이야기는 슬프고 우울하다. 가장 가까운 이의 부재를 견디며 살아간다. 죽은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아빠에게 엄마가 남긴 마지막 김치라는 걸 모르고 매일 먹는 김치볶음밥을 그만 먹고 싶다고 말하는 아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딸의 생일에 가장 좋은 그릇을 꺼내 생일상을 차리고 콜라를 따라주는 엄마, 혼술 유튜버의 영상에서 죽은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그 식당을 찾아가는 아들.


때문에 『느리게 가는 마음』에서 기억을 떠올리고 축하를 건넬 수 있는 생일이라는 장치는 유용하다. 잘 모르는 사이여도 반갑게 축하를 해주고 거짓으로 생일이라고 말해도 식당에서는 미역국을 내준다. 외할머니의 생일이라 가족이 모두 모일 수 있고 지난 시간을 이야기한다.






이쯤에서 표제작 「느리게 가는 마음」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암 투병 중인 엄마 대신 나를 살피고 챙기는 이모와 함께 느리게 가는 우체통을 찾아간다. 이모가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보낸 엽서를 찾기 위해서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결혼해서 엽서를 받으면 안 될 상황이다. 이모의 엽서를 찾다가 다른 이의 엽서를 읽게 되는데 자신에게 보낸 내용이 많았다. 1년이 지나 자신에게 도착할 마음.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모한테 엽서에 적힌 사연들을 몰래 읽어봤다고 고백했다.

“뭐 근사한 내용 있었어?”

“거의 비슷비슷하던데. 별거 없더라.”

“그치. 별거 아니지. 그런데 또 별거지.” (「느리게 가는 마음」, 98쪽)


별거 아닌데, 별거인 것. 남편이 죽고 음식 하기가 귀찮았는데 자신들이 맛있는 거 먹으려고 식당을 시작했다는 할머니들의 말도 비슷하게 다가온다. 시골길에서 느리게 가는 만물트럭에서 생일 케이크를 발견하는 우연. 남녀노소 나이와 상관없이 축하할 수 있는 날, 생일. 아픔과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우선은 축하로 시작할 수 있는 생일이 있다는 게 참 좋다.


친구 윤석에게 생일이 아닌데 생일 축하 전화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해피 버스데이」의 ‘나’도 그랬을 것이다. 구내식당의 미역국과 잡채를 먹으며 생일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덕분에 직장 상가의 단골집에서 저녁을 먹게 되는데 그곳에서 가스폭발 사고를 당한다. 크게 다치지 않는 나는 항상 동생에 비해 운이 나쁘다고 여겼던 자신의 삶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깨닫게 된다. 더 이상 생일 축하 인사를 받을 수 없는 동생을 떠올리며 동생의 흔적을 찾는다. 그러니 엉뚱하게 생일이 아닌 날에 생일 축하를 하고 그런 축하 인사를 받고 싶다. 생일이 아니어도 생일처럼 보내는 하루, 그런 하루가 있어 다른 힘겨운 하루가 살만해질지도 모르니까.


“생일 축하해.” 나는 윤석에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 생일은 아직 멀었어.” 윤석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 생일처럼 지내라고 말했다. 점심에 미역국도 사 먹고 저녁에는 케이크에 촛불도 밝히라고. (「해피 버스데이」, 192~193쪽)


생일에 아빠가 미역국을 끓여주지 않아 가출하는 소설 속 십 대 청소년이 아니라서 그런가. 나이가 들면서 생일을 챙기는 일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미역국을 챙겨 먹지도 않고 케이크를 사지도 않는다. 돌이켜보면 어려서는 가족이나 친구가 생일을 챙겨주기를 바랐다. 생일을 챙기는 일, 나의 존재를 기억하는 일이다. 문득 언젠가 나의 부재에도 나의 생일을 챙기는 이가 있을까 궁금해진다.


매일을 생일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생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도 좋겠다. 생일이라는 이유로 실수나 잘못을 용서받고. 누군가 세상을 떠나는 날, 누군가는 태어나는 것처럼 죽음과 상실의 자리에 기쁨과 축하로 채워질 것이다. 다시 또 삶은 그런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오늘 생일을 맞는 누군가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생일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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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을 주문했고 풍성한 수국이 도착했다. 여름은 수국이 제철이니까. 정말 풍성한 수국이다. 네 송이가 제법 무겁다.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수국 뒤에 숨어도 좋겠다. 습하고 습한 여름, 청량한 기운을 선사하다. 그래서 여름이면 수국이 떠오르는지도 모른다.





책도 한 권 샀다. 심보선의 시집 『네가 봄에 써야지 속으로 생각했던』이다. 기다리는 책은 황정은의 에세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 책장의 마지막 책들은 시집일지도 모르겠다. 시집은 쉽게 정리하지 못하니까.





여름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마냥 좋아하기는 어렵다. 더위에 취약하고 땀이 너무 많다. 맛있는 자두를 고르고 있다. 온라인으로 고르고 있으니 맛있는 자두를 먹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아파트 앞 마트엔 과일이 없다. 있어도 싱싱하지 않고 선뜻 구매할 수가 없다. 주저하다가 사장님께 마트가 문을 닫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오며 가며 상가 공실을 많이 보는데 폐업으로 가는 과정을 직접 마주하니 씁쓸하다. 심보선의 이런 시가 모두를 달래줄 수 없겠지만 그래도. 다정함이 필요한 이들에게 다정함이 전해지길.


기억의 소실을 응시한다

그 안에 새와 새 아닌 것들이

다 함께 웅크려 있다

날개가 있다고 다 새는 아니고

그 중 다정한 것만

꿈 안에 깃들 수는 없다

내가 너를

신화 속 존재처럼

소중히 여긴다 한들

용서하고 용서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단어를 고르고 또 고른다

나는 용서하고 용서받을 기회를 놓친다

꿈이라면

꿈이 아니어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나는 너를 오로지 체온으로만 기억한다

따사로움이여

따사로움이여

그토록 아름다운 꿈을 꿨는데

너에게 보여줄 수 없다니

(「다정하고 따사로운」, 전문)





가만히 있으면 더위를 견딜 수 있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움직여야 하고 움직이면 땀이 난다. 땀을 날려줄 바람을 기다린다. 에어컨이나 선풍기의 바람이 아닌 자연 바람. 기다림이 길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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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7-02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더운데 자두의 맛은 오묘하네요.

자목련 2025-07-03 10:11   좋아요 0 | URL
어제 도착한 자두는 꽤 달아요. 우선은 단맛에 취하고 있어요!

거리의화가 2025-07-02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습한 여름이에요. 풍성한 수국을 보니 화사하니 꿉꿉함이 잠시 사라지는 듯합니다.
주중에는 낮에 밥을 먹고 산책을 하는데 어제, 그제 걸어보니 이건 도저히 안되겠더라구요. 오늘은 건너뛰었습니다^^;
땀 많은 계절인데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요.

자목련 2025-07-03 10:12   좋아요 0 | URL
당분간 점심 먹고 산책은 쉬어할 것 같아요. 너무 더워요.
화가 님의 여름이 건강하고 다정한 날들이길~~

페넬로페 2025-07-02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과일을 너무 좋아해
수국과 자두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자두를 선택할 것 같아요.
아름다운 수국수국함은 자목련님의 글에서 충분히 느끼고
얼른 달콤한 자두를 먹고 싶네요.
습한 여름이 시작되었어요 ㅠㅠ

자목련 2025-07-03 10:14   좋아요 1 | URL
아침에 달콤한 자두를 몇 알 먹었어요. 잘 고른 것 같아요 ㅎ
습하지만 뽀송뽀송한 날들이면 좋겠어요^^

푸르리 2025-07-02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국의 아름다운 모습 잘 감상했어요^^ 마음이 삭막해져 수국이 피었는지도 몰랐네요. 예쁜 수국과 시 감상 잘 하고 갑니다.

자목련 2025-07-03 10:15   좋아요 1 | URL
수국을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머무는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