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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평점 :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소식은 언제나 반갑다. 꾸준하게 소설을 발표하는 김혜진 작가의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은 기존에 만난 소설과는 달랐다. 다름을 어떻게 표현해야 가장 적절할까. 깊고 진한 여운보다는 재밌고 편안했다는 게 맞겠다. 그러니 다른 소설이 아닌 이 소설로 김혜진 작가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을 수도 있겠다. 특히 출판이라는 특정 분야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말이다. 한편으로는 지금껏 만나 온 김혜진의 결을 생각한다면 아쉬운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나 같은 독자가 그렇다.
소설 이야기를 해 보자면, 『오직 그녀의 것』은 편집자의 세계를 다룬다. 그러니까 제목 속 그녀의 것은 ‘책’이 되겠다.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쯤 꿈꿔왔을 직장이 출판사일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석주’는 어땠을까?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석주는 어떻게 편집자가 되었을까. 대학에서 잠깐 문학 수업을 들었고 책을 좋아하는 게 전부였다. 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에게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고민해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첫 직장이 그러하듯 석주도 우연하게 출판사 ‘교한서가’에 취직했다.
그렇게 책을 만드는 곳에서 석주가 처음 한 일은 교열이었고 나중에 편집의 세계로 진입한다. 그와 동시에 소설은 책을 만드는 전반적인 과정이 등장한다. 한 권의 책이 어떻게 기획되고 작가의 원고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투입되는지 알려준다. 소설의 배경인 1990년대 초는 현재와 다른 모습이다. 석주가 원고를 손으로 필사하는 장면, 저작권에 대한 모호한 태도, 도서정가제 실행 전의 모습은 그 시대 출판 시장에서 발로 뛰는 이들의 열정을 상상하게 만든다.
석주는 ‘교한서가’의 상황이 나빠지면서 그만두고 신생 출판사인 ‘산티아고북스’로 출근한다. 그곳에서 석주는 편집자란 일을 사랑하며 성장한다. 자신과는 다른 성향의 동료와 부딪히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한다. 편집자 소모임에 참여하며 몰랐던 분야에 대해 배우고 그 안에서 잡지 편집자 원호를 만난다. 그렇게 모두가 예상하는 전개가 이어진다. 석주와 원호의 연애는 자연스럽게 결혼을 향한다. 동종 업계에서 일을 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하고 배려하는 완벽한 상대라고 여겼다.
그러나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석주가 담당한 저자가 거대한 사건에 휩싸이면서 어려움에 처한다. 물론 둘 사이가 견고했더라면 그들의 사랑이 해피엔딩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웬만한 독자라면 이 소설에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할 것이다. 석주가 선택하고 석주에게 남은 건 사랑이 아니라 일이었다는 것을.

성실한 사수를 만나 묵묵하게 일을 배우고 책을 만든 시간이 흘러 58세의 석주는 주간이 되었다. 편집부의 대리에서 주간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좋아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직장 생활이 그러하겠지만 석주의 일상도 다르지 않았다. 반복되는 일상, 생계를 위한 노동이지만 그 안에서 삶의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을 놓지 않았다.
석주의 하루는 이른 아침 원룸을 나서면서,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시작되었고 저녁 무렵 같은 풍경을 되짚어 오면서 끝이 났다. 멀리 보면 단조로워서 똑같은 하루를 이어붙인 것 같은 나날, 그러나 그녀에겐 매일매일이 새로웠다. 조마조마하고 필사적인 마음 사이로, 이상한 기대감과 설렘 사이로 속절없이 흩어지는 시간은 너무 빨라서 모두 기억할 수도, 붙잡을 수도 없었으나 석주를 그 일상의 진짜 주인으로 만들었다. (115쪽)
소설을 읽으며 석주가 경험했던 시간이 내게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계간지 1년 구독 영업 전화를 받던 순간, 작가와의 만남이나 북토크에 참여를 바라던 마음. 물류창고의 화재,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부도 사태는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대형서점이나 내가 좋아했던 출판사가 떠올랐다. 현재 출판시장은 상상할 수 없었던 시대. 저마다의 특성을 살린 1인 출판사와 독립서점을 생각하면 아득하게 느껴진다.
시시하고 평범한 그 이야기는 다름 아닌 자신의 삶이었다. 석주가 미약하게나마 감동을 느낀 건 쓰지 않은 것과 쓸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대단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그 여정은 오직 석주에게만 속한 것이었고 그녀만의 것이었다. (263~264쪽)
어쩌면 석주는 가장 완벽한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때로 실패하고 계획한 대로 이뤄지지 않아 수정과 수정을 반복하며 마침내 완성된 책을 마주하는 기쁨을 누렸을 테니까. 우리의 평범한 삶이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