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꽃다발 두 개가 들어왔다. 물론 꽃다발의 수신인은 내가 아니다. 두 개의 꽃다발은 예뻤지만 번거로운 일이 되고 말았다. 두 개의 꽃다발엔 소국, 장미, 백합, 안개, 이름을 알지 못하는 두 가지의 꽃이 있었다. 몇 겹의 포장지를 다 벗기고 종류별로 꽃을 나눴다. 장미는 장미끼리, 국화는 국화끼리, 백합은 백합끼리 모았다. 마땅한 꽃병 역할을 대신할 게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꽃이 올 때마다 화병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지만 그때 뿐이다. 무엇이든 꽃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병이나 유리컵, 유리 그릇이 그렇다. 그래도 반드시 마음에 쏙 드는 꽃병을 갖고야 말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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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의 싱크대에는 장미가, 식탁에는 백합이, 김치 냉장고 위에는 안개와 이름을 알지 못하는 꽃들이 놓여 있다. 다른 향기를 지닌 꽃들이다. 단 번에 알아 맞출 수 있는 백합, 의외로 강하지 않은 장미, 가까이 다가가야 향을 맡을 수 있는 국화. 저마다의 향기가 집안을 채운다. 그러고 보니 가을은 정말 풍요로운 계절이 아닐까 싶다. 어제 오늘 먹은 포도와 배의 계절이고, 곧 햅쌀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태풍만 조용히 지나간다면 말이다. 풍요로운 계절이라 그런지 신간도 다채롭다.
백가흠의 장편소설 『나프탈렌』이 나왔다는 소식이 제일 반가웠다. 단편만 만났기에 장편이 궁금한 건 당연하다. 게다가 첫 장편이지 않은가. 이병헌 주연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도 책으로 나왔다. 영화만큼 책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을 것 같다. 산문집도 많이 나온다. 나희덕 시인의 산문집『저 불빛들을 기억해』과 문정희 시인의 『문학의 도끼로 내삶을 깨워라』 도 내용이 궁금하다. 예쁜 표지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눈에 들어온다. 향기에 취한 하루가 저물어 간다. 강한 바람과 비를 가진 태풍이 온다니, 다시 창문에는 테이프를 붙여야 할까.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