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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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추리소설이 제격이다. 하지만 낯선 지명과 많은 인물의 등장 앞에 살짝 주춤할 때가 있다. 바로 역사 추리소설이 그러하다. 배경지식이 없다면 자꾸 앞으로 돌아가 하나씩 이름을 외우거나 메모를 해야 할 판이다. 그래서 친절한 저자(출판사)는 독자를 배려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관계나 지도를 첨부한다. 덕분에 완간 30주년 기념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는 초보 독자인 나는 어렵지 않게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다. BBC 드라마 <캐드펠>의 원작이라고 하니 소설과 드라마를 함께 즐겨도 좋겠다.


이제 12세기 영국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의 캐드펠 수사를 만나보자. 그렇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젊은 시절 배를 타고 세계를 누볐고 십자군 전쟁에도 참가했으나 현재는 수도원에서 조용하게 정원을 가꾸고 약물 식물을 재배하는 생활에 만족한다. 그에게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수도원의 명성을 위해 웨일스 귀더린이라는 시골 마을에 잠든 성녀 ‘이니프리드’의 유골을 가져오는 일이다. 캐드펠이 웨일스어에 능통해 통역을 위해 선발된 것이다. 그리하여 로버트 부수도원장과 콜룸바누스 수와 존 수사와 함께 귀더린으로 향한다.


캐드펠 수사 일행을 맞이한 건 극심한 반대였다. 당연하지 않은가. 귀더린의 성녀를 왜 슈루즈베리로 옮겨야 한단 말인가. 귀더린 주민들은 영주 리샤르트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다. 성녀의 유골을 두고 리샤르트와 로버트 부수도원장의 갈등은 커지고 캐드펠은 통역을 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다. 사실 이때까지는 추리소설이라더니 뭐야 싶었다. 누군가 성녀의 유골을 훔치는 것일까 예상했다. 이런 내 마음을 엘리스 피터스가 알아차린 것일까.


살인이 일어났다. 리샤르트가 죽임을 당했다. 로버트 부수도원장과 약속을 위해 집을 나선 그가 살해당했다. 놀랍게도 외동딸 쇼네드의 연인인 이방인 엥겔라드의 화살이 꽂혀있었다. 이방인인 엥겔라드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이는 없었고 화살이라는 명확한 증거물은 그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쯤에서 추리에 약한 나도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누군가 누명을 씌운 것. 나는 쇼네드를 짝사랑한 페레디르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엥겔라드는 도망쳤고 귀더린 주민은 혼란에 빠졌다.


쇼네드는 성녀의 유골을 옮기는 걸 반대한 아버지를 죽일 사람으로 로버드 부수도원장을 확신했고 캐드펠에게 도움을 청한다. 우리의 주인공 캐드펠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캐드펠은 리샤르트의 시체를 꼼꼼하게 살폈다. 화살이 살해도구가 아니었다. 위장이었다. 초동수사가 제일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할까. 쇼네드는 캐드펠을 믿었다. 캐드벨 수사만이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고 연인 엥겔라드의 누명을 벗겨줄 수 있다고.


“죽은 자는 자신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 온몸으로 증언하기 마련이네. 자네 부친은 이미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앞으로도 더 많은 것, 아마도 모든 것을 알려주실 거야.” (197쪽)


엘리스 피터스는 리샤르트를 죽인 범인을 찾는 과정에 독자가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용의자 리스트에 오린 인물의 살해 동기와 알리바이를 하나씩 지워가는 것. 마침내 뜻밖의 용의자만 남았다. 이번에도 나는 틀렸다. 페레디르가 주범은 아니어도 적어도 공범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는 그냥 사랑에 빠진 질투심 가득한 젊은이였다.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이 맞았다.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찾는 과정도 재밌고 내가 몰랐던 12세기 영국의 생활상도 볼 수 있어 좋았다. 시대를 떠나 인간의 탐욕적인 명예욕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놀랍지도 않다. 성녀의 유골이 어디에 있든 신앙심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닐까. 공적을 쌓으려는 몸부림이 안타깝고 그것으로 인해 가려지고 묻혔을 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적인 심판이란 깊이 있는 탐색을 하기보다 표면에 떠오른 사실들을 수확하고 그에 따라 합당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식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여기저기서 종종 돌출되는 의구심들은 신속한 질서 회복과 평안 유지를 위해 국가가 치러야 하는 대가인 셈이다. (209쪽)


BBC 드라마의 원작이라는 걸 알아서 그랬을까. 책을 일으면서 내내 캐드펠을 연기할 배우를 생각하고 있었다. 최근 즐겁게 시청하고 있는 드라마 때문인지 자꾸 신하균이 떠올랐다. 수사로 분한 깐깐한 표정의 모습 말이다. 캐드펠 수사의 다음 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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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8-16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시리즈가 핫한가 봐요!! 리뷰가 많이 올라오네요. 급 읽고 싶어졌는데 급 구매할까 말까 윽 고민됩니다..

자목련 2024-08-27 10:19   좋아요 0 | URL
댓글이 늦었어요. 이 시리즈 재밌어요. 급 구매는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을~~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0
이장욱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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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겹이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읽으면서 겹이 벗겨지는 순간과 마주하면 짜릿함을 느낀다. 작가가 만든 겹을 독자가 걷아내는 일, 벗겨내는 일을 재독이나 삼독에서 가능할 것이다. 물론 내 입장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겹을 내버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랜만에 읽은 이장욱의 소설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은 내게 그런 소설이었다. 그러니까 겹이 있다는 걸 느꼈지만 나는 그 겹을 걷어내지 않았다. 아니 걷어낼 수 없었다.

대체로 인간은 복잡하지만 삶은 의외로 단순하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와 연결되고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시스템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온다.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자의로 누군가는 타의로. 이장욱의 소설 속 인물도 그렇다. 소설을 이끄는 화자 ‘연’과 ‘천’은 연인의 죽음과 부재로 남겨진 사람이다.

연은 남편 ‘모수’와 함께 ‘해변 여관’을 운영한다. 말이 운영이지 조만간 철거가 예정된 곳이다. 바다가 있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없는 곳의 허름한 여관을 찾는 이가 없다. 모수가 병으로 죽고 연은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낸다. 모수와 보낸 시간을 떠올리며 혼잣말을 하고 모수의 짐을 정리한다. 연극배우인 천은 연인인 ‘한나’가 떠나자 방황하다 해변 여관에 투숙한다. 연과 천은 종종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지만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다.

‘연’과 ‘천’이 번갈아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니까 모수와 연, 한나와 천의 만남과 헤어짐이다. 모수는 도청 공무원이었고 기록하는 자였고 방송국에 제보했고 파면당했다. 연은 이혼 후 모수를 만났고 인연을 맺었다. 천은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한나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지만 한나가 죽음을 앞둔 자신의 옛 연인에게 돌아가면서 헤어졌다. 해안선이 침식되는 섬, 그곳의 해변 여관처럼 연과 천은 폐허의 삶을 살아간다. 연은 사라질 여관을 떠나지 않고 천은 그곳에 머문다.


모수는 일기를 쓰는 사람이고 말이 없었고 정확하게 설명을 하지 않았다. 사실만 기록하는 사람이었다. 그에 반해 연은 생각이 말로 흘러나오는 사람이었고 모수의 말과 생각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모수가 떠나고 그가 남긴 노트는 정리하지 못한다. 모수의 유령이 볼 수도 있으니까. 그것이 연이 모수를 기억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돌아오지 않을 한나를 그리워하는 천도 다르지 않았다. 국지전이 일어나고 지구는 뜨거워지고 무서운 태풍이 오는 세상이지만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국가는 개인의 상실이나 상처 따위는 관심이 없고 바다는 밀려왔다 쓸려가고 세상은 점점 더 나쁘게 돌아가니까. 모수가 일기를 쓰는 일은 그런 세상을 견디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똑같은 하루는 없잖아요. 매일이 다르잖아요. 일기를 쓰면 그런 게 느껴지는데.” (87쪽)

매일 같은 날씨는 없으니까. 똑같은 하루처럼 보이지만 똑같은 하루를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살아간다는 건 분명 매일은 다른 삶이니까. 한나는 천이 그런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천이 배역의 삶이 아닌 천 스스로의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했다. 그런 의미에서 천이 한나를 따라 사막으로 취재 여행에서 한나가 한 말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 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곳에서.” (126쪽) 은 소설을 관통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

연의 중얼거림을 따라서 천이 중얼거렸다. 언젠가 자신이 해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그 말을 한 것이 한나였다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연의 중얼거림이 듣기에 좋았고 듣기에 좋은 것은 따라 하기에 좋을 따름이었다. 천이 제 말을 따라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연이 그를 바라보았다. 천도 연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다가 다시 수평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평선 너머의 망망대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연은 몽상가도 아니고 생물학자도 아니고 옛사랑을 추억하는 사람도 아니고 단지 살아가는 사람이었는데, 그것은 천도 마찬가지였다. (154쪽)

해변 여관 옥상에서 연이 담배를 피우며 중얼거리는 말도 그것이다. 쏟아질 듯한 이 여름의 열기를 살아내는 나에게도 필요하다. 단지 살아가는 사람, 어떤 세상이 와도 단지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이 남겨진 자로 살아가는 모두를 위로한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여전히 슬픔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에게, 남겨진 자의 곁에 머물려 떠도는 모수의 유령 같은 이들에게도.


나는 이장욱의 아름다운 겹을 벗겨내지도 걷어내지도 못했다. 봄에 읽고 여름에 다시 읽었지만 이해할 수 없어서 좋았다. 알 수 없는 세계라서, 그 세계에 감탄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오히려 그 뜨겁고 황홀한 겹에 갇히는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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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08-06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해할 수 없어서 좋았다‘ 는 자목련님의 구절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좋은 리뷰 올려 주셔서 감사 합니다.

자목련 2024-08-08 07:13   좋아요 0 | URL
마힐 님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4-08-09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제목이 주는 느낌이 좋네요.
제목만 읽어도 어쩐지 재미있을 것 같은 책입니다.
나중에 책소개를 조금 더 읽어보고 싶어요.
자목련님, 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요.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24-08-10 10:59   좋아요 1 | URL
네, 제목이 좋지요!
입추 지나고 아주 쬐끔 달라진 것 같지만 여전히 더워요.
서니데이 님도 시원하게 보내세요~~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 『여인의 초상』을 알지만 읽지는 못했다. 언젠가 읽어야지 하는 마음은 쌓여있다. 이제 진짜 그 소설을 읽을 적절한 타이밍이 온 것일까. 아르테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32번째로 헨리 제임스를 만났다. 소설가 김사과가 전하는 그의 삶과 문학, 김사과가 읽은 그의 소설로 천천히 헨리 제임스를 마주한 시간이었다.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만큼 좋은 책도 없다는 걸 확인했다고 할까. 나는 헨리 제임스에 대해 혀 몰랐지만 이제 책을 읽고 헨리 제임스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고 동시에 아주 많이 궁금해졌으니까. 그건 김사과의 글과 설명이 충분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김사과가 이끄는 대로 헨리 제임스의 삶을 따라가는 길, 김사과가 마주한 뉴욕, 파리, 런던, 라이의 풍경에 취하는 것과 그곳에서 만난 이들과의 대화나 사소하지만 아주 중요한(파리행 유로스타의 식당칸 샌드위치의 맛이 최고라는 것) 에피소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여행지에서 원래 한국 사람인데 세 살 때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을 룩셈부르크에서 만나 고등학교 때 읽은 『나사의 회전』에 대해 말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놀랍고 신기하지 않은가. 아무튼 기존에 만난 클래식 클라우스 시리즈에서와는 다른 분위기라고 할까.


책으로 돌아와 헨리 제임스의 생을 보면 헨리 제임스는 정착이 아닌 이주의 삶을 선택했고 그것은 하나의 세계나 관습에 묶이지 않은 자유로움의 추구라 느껴졌다. 물론 부모나 조부의 영향에서 시작되었겠지만 마지막 결정적 선택은 헨리 제임스의 몫이었을 테니까. 그래도 그게 가능했던 건 재력이다. 부모가 경제적으로 부유했기에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지 않았고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곳, 파리와 영국을 오가며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헨리 제임스가 부유한 환경이 아니었다면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거니와 다른 소설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파리에서 그는 뜨내기 외국인이자 신참 소설가였다. 그러나 그에게 파리는 러시아의 대문호 투르게네프를 알게 된 곳이고 플로베르의 문학 모임 세나클에 초대받는다. 플로베르의 자택에서 많은 소설가를 만났다. 헨리 제임스는 세나클 모임에 바로 스며들거나 그들의 사고에 흔쾌히 동조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헨리 제임스는 그들의 오만하고 편협한 세계관이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특유의 독한 매력을 거부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만난 플로베르는 다정하면서도 신비스러운, 기이한 카리스마를 지닌 거장이었다. 헨리 제임스는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가 독보적이며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로베르의 천재성에는 어딘가 굉장히 야박한 데가 있다고 그는 지적하기도 했다. (67쪽)


파리의 신참 소설가는 런던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런던을 탐하고 칭송한다고 할까. 잘은 모르지만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는 에세이를 통해 런던은 흉측하고, 악랄하며, 잔혹하고, 무엇보다 압도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런던에서 외로운 이방인 생활을 끝내고 집을 구했고 런던 사교계의 이목을 끌었다. 나는 이쯤에서 헨리 제임스의 앞에 등장한 연인을 기대했다. 운명 같은 만남, 소설가의 사랑, 나만의 기대였던 것 같다. 그러나 김사과의 이런 문장을 보면 헨리 제임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화려한 디너파티를 좋아했지만 그것이 글쓰기를 망칠까 두려워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사교계 인사들을 사랑했지만 그들이 자신의 영혼을 지배하게 될까 극도로 조심했다. 그는 자신의 사적인 삶이 결코 소란스러운 광장 한복판에 전시되지 않기를 바랐다. (113쪽)


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읽지 못한 나에게 클래식 클라우드 『헨리 제임스』는 『나사의 회전』, 『여인의 초상』이 아닌 대화의, 대화에 의한, 대화를 위한 소설인 『대사들』, 김사과의 말대로라면 촘촘하게 짜인 우아함인 『황금의 잔』에 대한 궁금증을 안겨주었다. 나는 언제 그 소설을 읽게 될지 모른다. 바로 당장 그 소설을 찾을 수도 있고 언제나 그렇듯 나중으로 미룰지도 모른다. 그러나 헨리 제임스에 대한 관심은 일정하게 유지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장은 내가 읽게 될 헨리 제임스의 소설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헨리 제임스에 따르면 소설이란, 작가가 그럴듯한 모습으로 “삶이라는 환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환영은 독자들에게, 현실이 주는 환영(인상)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소설 또한 하나의 경험, 결코 한계도 없고 끝도 없는, 즉 작가가 만들어 낸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184쪽)


클래식 클라우드 『헨리 제임스』를 따라 뉴욕, 파리, 영국을 안에서 여행하는 일은 즐겁다. 직접 책을 들고 헨리 제임스의 자취를 찾아가는 밖으로의 여행은 얼마나 매력적일까. 뉴욕, 파리, 영국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이 책을 곁에 두어도 좋을 것이다. 풍성한 여행을 위한 멋진 동행자가 되리라 확신한다. 헨리 제임스를 만나기 전에 그의 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으로 괜찮을 것 같다. 그 이해가 아주 작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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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8-03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리뷰 읽고 책을 조금 더 찾아보았는데, 아르테에서 나온 작가별 시리즈로 나온 책이 꽤 많네요.
세계문학전집에 들어간 작가들은 이름을 알거나 유명한 작품을 알지만 읽어보지 않은 책들도 많을 거예요. 작가의 소개가 될 수 있는 책도 좋은 것 같습니다.
자목련님, 주말 날씨가 많이 덥다고 합니다.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24-08-04 08:02   좋아요 2 | URL
네, 관심있는 작가를 더 심도있게 만날 수 있는 시리즈인 것 같아요. 참여한 작가 목록도 다양하고요.
서니데이 님도 시원하고 즐거운 주말 이어가세요^^
 
너의 목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지도록 십대를 위한 자존감 수업 8
심규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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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건 어렵다.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서, 어떤 걸 좋아하는지 잘 몰라서다. 그런 상태에서 네가 좋아하는 게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주춤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요즘은 꿈이 뭐냐는 질문은 삼가야 한다. 꿈은 수시로 변하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 생각하고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14년 차 성우 심규혁이 들려주는 『너의 목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지도록』는 십 대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저자의 직업이 성우라는 걸 생각하면 성우를 꿈꾸는 이들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저자의 경험을 솔직하게 꺼내 목소리를 들려주듯 십 대가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라는 응원이 담겼다.


그럼에도 나는 한 번쯤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건강한 자존감은 현재 ‘나’의 모습뿐 아니라 나의 ‘가능성’까지 사랑하는 힘이거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과 성장해 나갈 미래의 나를 더해야, 그게 ‘진정한 나’라는 이야기지. (20쪽)


저자는 자신이 어떻게 성우의 길로 들어섰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들려준다. 처음부터 성우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고 부모님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신 것도 아니다. 대학교에 들어가 방송반 활동을 하면서 성우에 대한 진로를 확정했지만 공채 합격은 쉬지 않았다. 그럼에도 저자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다. 성우 학원에 다니며 공채 시험을 준비했고 홈쇼핑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드디어 2010년 대원방송 2기 공채에 합격한다. 그러나 공채에 합격했다고 해서 모두에게 인정받는 성우가 되는 건 아니다. 목소리에 대한 고민, 수많은 캐릭터 연기에 대한 갈증과 좌절이 시작되었다. 합격과 동시에 다음 단계로 나가야 하는 것,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


나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과 주어진 캐릭터를 나만의 캐릭터로 연기를 하는 일에서 진짜 목소리를 갖는 의미에 대해 알려준다. 주변의 쓴소리도 받아들이고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은 다 알지만 실천은 어렵다.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배역 오디션을 보고 선배에게 들은 피드백을 녹음해서 듣고 고쳐야 할 점을 고치는 노력, 이건 정말 쉬운 게 아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PD에게 시옷 발음이 이상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발음과 다른 성우가 녹음할 때 입을 관찰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성경을 꺼내서 창세기부터 시옷이 등장하는 모든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고 입 모양과 위치를 신경 써서 발음하고 녹음을 반복하는 대단한 노력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그냥 흘렸을 PD의 말을 그는 노력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저자가 굳이 실패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십 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솔직한 마음을 전한다. 나만의 목소리를 갖는 일, 그것은 자존감을 튼튼하게 키우는 일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만화를 즐겨 보지 않고 게임을 하지 않아서 심규혁이라는 성우를 잘 모른다. 그가 맡은 캐릭터도 모른다. 그러나 글에서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 십 대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 말이다.


자존감은 무언가를 이루어 낸다고 해서 키워지지 않는다고 해. 문제의 해결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을 때 자존감이 올라가. 연기 생활을 하다 보니 만화 속 주인공이라고 해서 늘 멋지고 똑똑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 승부에서 이겼는지, 적과 맞선 모습이 멋졌는지와 상관없이, 벌벌 떨면서도 피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을 때 우리의 자존감은 튼튼해질 거야. (109쪽)


성우라는 직업이 궁금한 이들에게 현장에서 얻은 방법을 소개하는데 성우가 아니더라도 모두에게 도움을 준다. 좋은 목소리의 출발점은 숨이라는 것. 온몸으로 숨을 가득 들이마시는 능력부터 키우고 숨을 통해 몸이 늘어나는 느낌이 들도록 숨을 마시는 일. 따라 해 봐도 좋겠다. 다른 하나는 글 읽기 방법이라고 소개한다. 말하듯 읽기, 가상의 상대에게 말을 건넨다는 느낌으로 읽는 일. 이 부분은 크게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십 대가 책을 더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더해본다.


삶은 준비도 없이, 연습도 없이, 예고도 없이 불시에 닥쳐와 나를 엉망으로 만드는 일의 연속이야. 그런 일들이 우리의 약한 부분을 들추어 내지. 자존감은 우리가 어떤 일을 잘 해냈을 때 자라나는 게 아니래. 우리가 우리의 취약한 부분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때, 완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정할 때 튼튼하게 자라기 시작한대. (157쪽)


어른들이 쉽게 말하는 좋은 직업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이야말로 십 대에게 가장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자존감의 시작은 아닐까. 처음부터 완벽하게 할 수 없겠지만 차근차근 연습하고 나를 들여다본다면 멋진 자존감과 함께 성장하리라 믿는다. 저자와 함께 모든 십 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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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7-31 0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우라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 많겠지요 한국 성우 이름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네요 예전에는 만화영화 보기도 해서 조금 알았는데, 지금은 안 봐서... 아니 아주 안 보는 건 아니군요 일본 성우는 조금 알기도 하네요 지금은 일본 성우도 이름 아는 사람도 얼마 안 됩니다 많이 들어야 누군지 기억하기도 하는군요

심규혁 성우 모릅니다 어느 방송국인든 성우는 몇 사람 안 뽑는 듯해요 그런 만큼 쉽지 않겠습니다 케이블 방송이 생겼다고는 해도 그런 곳도 별로 안 뽑겠지요 만화영화는 가끔 한국말 더빙을 해도 이제 영화는 거의 안 하는 듯하네요 아주 안 하는 건 아니겠지만... 영화 많이 안 보지만 어렸을 때 영화 볼 때 한국말로 듣는 게 더 좋았던 것 같아요

https://youtu.be/ygWNaXmqzSs
책 조금 읽어주더군요 오디오북 녹음도 했나 봅니다 성우가 책을 쓰면 자신이 그걸 낭독하면 되니 좋을 듯합니다 그렇게 하는 일이 많을지 모르겠지만...


희선

자목련 2024-08-02 09:58   좋아요 1 | URL
희선 님은 일본 문학을 많이 읽으시니 일본 성우를 아시는군요. 성우 공채 합격은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이 책을 통해 성우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어요. 올려주신 링크 감사합니다. 8월 건강하게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4-08-01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화요일 동네 독서모임에서
체계적 글쓰기 훈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읽고 나서 자신의 감정이나 사유들을
표현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글쓰기라고 생각합니다.

멤버 중에 고3 청년이 한 분 계신데...
그분에에게 물어 보니 아직도 그런
교육은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기성 세대의 (텍스트 베이스) 시스
템으로 현재의 세대를 평가하는
구조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영원히 자기가 하고 싶을 하면서
사는 세상은 도래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초큼 들
었습니다.

자목련 2024-08-02 10:04   좋아요 1 | URL
참여 연령대가 다양하군요.
제 기억에 글쓰기는 초등학교(국민학교) 시절 글짓기가 전부였던 것 같아요.
읽고 쓰는 일이 정말 중요한데...
 
너의 여름에 내가 닿을게 창비교육 성장소설 12
안세화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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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여름에 내가 닿을게』 란 제목이 나를 붙잡는다. 이 여름에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제목처럼 누군가의 여름에 닿을 수 있다면 누구와 보낸 여름을 떠올릴까. 바닷가를 찾은 연인과의 여름, 시원한 맥주를 마시던 친구와의 여름도 닿고 싶지만 엄마를 떠나보냈던 그 여름에 닿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럼 소설의 ‘나’가 닿고 싶은 ‘너’는 누구일까.


애틋한 그리움을 던진 제목의 소설은 열여덟 여름의 ‘나’가 골목을 달리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달리는 동안 누굴 마주치게 될지 다 안다는 ‘나’는 그들을 피해 오직 달린다. 그를 만나기 위해 그가 있는 곳으로 해변으로 향한다. 그가 ‘너’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나는 너를 만나게 될까. 궁금증만 남긴 채 작가는 다른 인물을 등장시킨다.


이어서 스토킹을 의심하는 이야기를 꺼낸다. 놀랍게도 고등학생을 스토킹하는 장면이다. 열여덟 살 ‘은호’는 누군가 자신의 엿보고 있는 기분이다. 학교, 학원, 독서실이 전부인 고교생을 누가 스토킹할까. 은호만이 아니다. 미대를 지망하는 ‘도희’는 친구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된다. 도희 근처를 맴도는 자동차 한 대. 각자 스토커를 추적하던 은호와 도희는 우연히 스토커가 같은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된다. 도대체 누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을 스토킹하는 걸까. 스토커의 존재를 찾기 위해 은호와 도희는 둘의 교집합을 찾는다. 학교, 학원, 동네, 친구 그 어떤 것도 겹치는 게 없다.


그러다 12년 전 여섯 살에 소소리 마을의 바닷가에 놀러 간 사실을 찾게 된다. 그 이후로 둘은 한 번도 바닷가에 간 적이 없고 부모님이 함구하고 있다는 것까지. 은호와 도희는 12년 소소리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찾아본다. 12년 전 소소리 바닷가에 빠진 여섯 살 아이들을 구하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고교생 A 군의 이야기였다. 여섯 살 아이들은 바로 은호와 도희였다. 둘은 부모님께 알리지 않고 소소리 마을로 향한다.


은호와 도희가 소소리를 향한 이야기와 함께 나의 꿈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러니까 소설 첫 도입의 그 장면. 해변에서 아이들을 구하려는 ‘수빈’을 잡으려 하지만 정작 손을 내밀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라도 수빈을 말리고 싶은 나의 마음과 다르게 현실의 나는 소소리 마을을 떠났고 12년 동안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은 상태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누구라도 나처럼 행동할 것이다. 긴긴밤, 돌이길 수 없는 한순간을 떠올리며 숱하게 잠 못 이루고, 가슴을 치고, 통곡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 순간 기회가 주어졌을 때 무조건 잡아볼 것이다. 그 방법이 평생 알고 있던 상식과 어긋난다고 해도, 아무리 터무니없다고 해도, 일단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을 엿보았다면 최선을 다해볼 수밖에 없다. (130~131쪽)


이처럼 소설은 화자인 ‘나은’과 스토커 추적이라는 두 개의 이야기로 몰입도를 높인다. 은호와 도희가 소소리 마을에 도착하자 둘의 소식이 빠르게 퍼진다.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은 은호와 도희가 12년 그 아이들이라는 걸 알았다. 은호와 도희는 마을 사람들을 통해 수빈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지금 자신의 나이와 똑같았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수빈의 친구들을 차례대로 만나면서 ‘나은’과도 마주하게 된다. 두 이야기가 합쳐지면서 서로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확인한다.


수빈을 말렸지 못했다는 마음 때문에 사고 이후 도망치듯 소소리를 떠난 나은은 최근 반복적인 꿈 때문에 12년 전 여섯 살 아이들을 찾게 된 것이다. 꿈에서 수빈을 막으면 미래가 달라질 거라 생각하지만 그 상황에서 누군가의 희생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모든 걸 알게 된 은호와 도희는 현재의 오늘이 얼마나 값진 시간인지 알게 된다.


기대했던 풋풋하고 순수한 로맨스는 아니지만 그 이상의 감동과 울림을 안겨주는 소설이다. 모든 게 대입 입시로 통하는 고교생의 일상. 막연한 미래를 위해 사소하고 평범한 수많은 오늘의 소중함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묻는다. 똑같은 하루라 여기며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인생에서 가장 귀하고 반짝이는 순간은 바로 오늘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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