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 『여인의 초상』을 알지만 읽지는 못했다. 언젠가 읽어야지 하는 마음은 쌓여있다. 이제 진짜 그 소설을 읽을 적절한 타이밍이 온 것일까. 아르테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32번째로 헨리 제임스를 만났다. 소설가 김사과가 전하는 그의 삶과 문학, 김사과가 읽은 그의 소설로 천천히 헨리 제임스를 마주한 시간이었다.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만큼 좋은 책도 없다는 걸 확인했다고 할까. 나는 헨리 제임스에 대해 혀 몰랐지만 이제 책을 읽고 헨리 제임스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고 동시에 아주 많이 궁금해졌으니까. 그건 김사과의 글과 설명이 충분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김사과가 이끄는 대로 헨리 제임스의 삶을 따라가는 길, 김사과가 마주한 뉴욕, 파리, 런던, 라이의 풍경에 취하는 것과 그곳에서 만난 이들과의 대화나 사소하지만 아주 중요한(파리행 유로스타의 식당칸 샌드위치의 맛이 최고라는 것) 에피소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여행지에서 원래 한국 사람인데 세 살 때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을 룩셈부르크에서 만나 고등학교 때 읽은 『나사의 회전』에 대해 말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놀랍고 신기하지 않은가. 아무튼 기존에 만난 클래식 클라우스 시리즈에서와는 다른 분위기라고 할까.


책으로 돌아와 헨리 제임스의 생을 보면 헨리 제임스는 정착이 아닌 이주의 삶을 선택했고 그것은 하나의 세계나 관습에 묶이지 않은 자유로움의 추구라 느껴졌다. 물론 부모나 조부의 영향에서 시작되었겠지만 마지막 결정적 선택은 헨리 제임스의 몫이었을 테니까. 그래도 그게 가능했던 건 재력이다. 부모가 경제적으로 부유했기에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지 않았고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곳, 파리와 영국을 오가며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헨리 제임스가 부유한 환경이 아니었다면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거니와 다른 소설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파리에서 그는 뜨내기 외국인이자 신참 소설가였다. 그러나 그에게 파리는 러시아의 대문호 투르게네프를 알게 된 곳이고 플로베르의 문학 모임 세나클에 초대받는다. 플로베르의 자택에서 많은 소설가를 만났다. 헨리 제임스는 세나클 모임에 바로 스며들거나 그들의 사고에 흔쾌히 동조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헨리 제임스는 그들의 오만하고 편협한 세계관이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특유의 독한 매력을 거부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만난 플로베르는 다정하면서도 신비스러운, 기이한 카리스마를 지닌 거장이었다. 헨리 제임스는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가 독보적이며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로베르의 천재성에는 어딘가 굉장히 야박한 데가 있다고 그는 지적하기도 했다. (67쪽)


파리의 신참 소설가는 런던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런던을 탐하고 칭송한다고 할까. 잘은 모르지만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는 에세이를 통해 런던은 흉측하고, 악랄하며, 잔혹하고, 무엇보다 압도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런던에서 외로운 이방인 생활을 끝내고 집을 구했고 런던 사교계의 이목을 끌었다. 나는 이쯤에서 헨리 제임스의 앞에 등장한 연인을 기대했다. 운명 같은 만남, 소설가의 사랑, 나만의 기대였던 것 같다. 그러나 김사과의 이런 문장을 보면 헨리 제임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화려한 디너파티를 좋아했지만 그것이 글쓰기를 망칠까 두려워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사교계 인사들을 사랑했지만 그들이 자신의 영혼을 지배하게 될까 극도로 조심했다. 그는 자신의 사적인 삶이 결코 소란스러운 광장 한복판에 전시되지 않기를 바랐다. (113쪽)


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읽지 못한 나에게 클래식 클라우드 『헨리 제임스』는 『나사의 회전』, 『여인의 초상』이 아닌 대화의, 대화에 의한, 대화를 위한 소설인 『대사들』, 김사과의 말대로라면 촘촘하게 짜인 우아함인 『황금의 잔』에 대한 궁금증을 안겨주었다. 나는 언제 그 소설을 읽게 될지 모른다. 바로 당장 그 소설을 찾을 수도 있고 언제나 그렇듯 나중으로 미룰지도 모른다. 그러나 헨리 제임스에 대한 관심은 일정하게 유지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장은 내가 읽게 될 헨리 제임스의 소설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헨리 제임스에 따르면 소설이란, 작가가 그럴듯한 모습으로 “삶이라는 환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환영은 독자들에게, 현실이 주는 환영(인상)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소설 또한 하나의 경험, 결코 한계도 없고 끝도 없는, 즉 작가가 만들어 낸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184쪽)


클래식 클라우드 『헨리 제임스』를 따라 뉴욕, 파리, 영국을 안에서 여행하는 일은 즐겁다. 직접 책을 들고 헨리 제임스의 자취를 찾아가는 밖으로의 여행은 얼마나 매력적일까. 뉴욕, 파리, 영국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이 책을 곁에 두어도 좋을 것이다. 풍성한 여행을 위한 멋진 동행자가 되리라 확신한다. 헨리 제임스를 만나기 전에 그의 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으로 괜찮을 것 같다. 그 이해가 아주 작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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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8-03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리뷰 읽고 책을 조금 더 찾아보았는데, 아르테에서 나온 작가별 시리즈로 나온 책이 꽤 많네요.
세계문학전집에 들어간 작가들은 이름을 알거나 유명한 작품을 알지만 읽어보지 않은 책들도 많을 거예요. 작가의 소개가 될 수 있는 책도 좋은 것 같습니다.
자목련님, 주말 날씨가 많이 덥다고 합니다.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24-08-04 08:02   좋아요 2 | URL
네, 관심있는 작가를 더 심도있게 만날 수 있는 시리즈인 것 같아요. 참여한 작가 목록도 다양하고요.
서니데이 님도 시원하고 즐거운 주말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