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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여름엔 추리소설이 제격이다. 하지만 낯선 지명과 많은 인물의 등장 앞에 살짝 주춤할 때가 있다. 바로 역사 추리소설이 그러하다. 배경지식이 없다면 자꾸 앞으로 돌아가 하나씩 이름을 외우거나 메모를 해야 할 판이다. 그래서 친절한 저자(출판사)는 독자를 배려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관계나 지도를 첨부한다. 덕분에 완간 30주년 기념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는 초보 독자인 나는 어렵지 않게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다. BBC 드라마 <캐드펠>의 원작이라고 하니 소설과 드라마를 함께 즐겨도 좋겠다.
이제 12세기 영국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의 캐드펠 수사를 만나보자. 그렇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젊은 시절 배를 타고 세계를 누볐고 십자군 전쟁에도 참가했으나 현재는 수도원에서 조용하게 정원을 가꾸고 약물 식물을 재배하는 생활에 만족한다. 그에게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수도원의 명성을 위해 웨일스 귀더린이라는 시골 마을에 잠든 성녀 ‘이니프리드’의 유골을 가져오는 일이다. 캐드펠이 웨일스어에 능통해 통역을 위해 선발된 것이다. 그리하여 로버트 부수도원장과 콜룸바누스 수와 존 수사와 함께 귀더린으로 향한다.
캐드펠 수사 일행을 맞이한 건 극심한 반대였다. 당연하지 않은가. 귀더린의 성녀를 왜 슈루즈베리로 옮겨야 한단 말인가. 귀더린 주민들은 영주 리샤르트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다. 성녀의 유골을 두고 리샤르트와 로버트 부수도원장의 갈등은 커지고 캐드펠은 통역을 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다. 사실 이때까지는 추리소설이라더니 뭐야 싶었다. 누군가 성녀의 유골을 훔치는 것일까 예상했다. 이런 내 마음을 엘리스 피터스가 알아차린 것일까.
살인이 일어났다. 리샤르트가 죽임을 당했다. 로버트 부수도원장과 약속을 위해 집을 나선 그가 살해당했다. 놀랍게도 외동딸 쇼네드의 연인인 이방인 엥겔라드의 화살이 꽂혀있었다. 이방인인 엥겔라드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이는 없었고 화살이라는 명확한 증거물은 그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쯤에서 추리에 약한 나도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누군가 누명을 씌운 것. 나는 쇼네드를 짝사랑한 페레디르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엥겔라드는 도망쳤고 귀더린 주민은 혼란에 빠졌다.
쇼네드는 성녀의 유골을 옮기는 걸 반대한 아버지를 죽일 사람으로 로버드 부수도원장을 확신했고 캐드펠에게 도움을 청한다. 우리의 주인공 캐드펠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캐드펠은 리샤르트의 시체를 꼼꼼하게 살폈다. 화살이 살해도구가 아니었다. 위장이었다. 초동수사가 제일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할까. 쇼네드는 캐드펠을 믿었다. 캐드벨 수사만이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고 연인 엥겔라드의 누명을 벗겨줄 수 있다고.
“죽은 자는 자신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 온몸으로 증언하기 마련이네. 자네 부친은 이미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앞으로도 더 많은 것, 아마도 모든 것을 알려주실 거야.” (197쪽)
엘리스 피터스는 리샤르트를 죽인 범인을 찾는 과정에 독자가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용의자 리스트에 오린 인물의 살해 동기와 알리바이를 하나씩 지워가는 것. 마침내 뜻밖의 용의자만 남았다. 이번에도 나는 틀렸다. 페레디르가 주범은 아니어도 적어도 공범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는 그냥 사랑에 빠진 질투심 가득한 젊은이였다.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이 맞았다.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찾는 과정도 재밌고 내가 몰랐던 12세기 영국의 생활상도 볼 수 있어 좋았다. 시대를 떠나 인간의 탐욕적인 명예욕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놀랍지도 않다. 성녀의 유골이 어디에 있든 신앙심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닐까. 공적을 쌓으려는 몸부림이 안타깝고 그것으로 인해 가려지고 묻혔을 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적인 심판이란 깊이 있는 탐색을 하기보다 표면에 떠오른 사실들을 수확하고 그에 따라 합당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식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여기저기서 종종 돌출되는 의구심들은 신속한 질서 회복과 평안 유지를 위해 국가가 치러야 하는 대가인 셈이다. (209쪽)
BBC 드라마의 원작이라는 걸 알아서 그랬을까. 책을 일으면서 내내 캐드펠을 연기할 배우를 생각하고 있었다. 최근 즐겁게 시청하고 있는 드라마 때문인지 자꾸 신하균이 떠올랐다. 수사로 분한 깐깐한 표정의 모습 말이다. 캐드펠 수사의 다음 활약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