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마지막 날 퇴원을 했다. 24일이라는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병원 생활을 뒤로 하고 병원을 나섰다. 해넘이와 해돋이를 보러 가는 흥분을 숨기지 않고 달리는 수많은 자동차들과 함께 고속도로를 지나 큰언니네 집으로 도착했다. 큰언니 아파트에 있기로 했다. 열을 안고 퇴원한 나는 고열에 시달리기도 했고 항생제 사용으로 인해 발진과 가려움과 함께 지냈다. 익숙한 반응이었지만 친숙해지기는 어려운 시간이었다. 퇴원 일주일 후에는 가까운 병원에서 몇 가지 피검사를 했고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다시 일주일이 지났고 외래로 병원을 찾았다. 역시 피검사와 엑스레이를 찍고 1시간 30분 가까이 기다렸다 의사를 만났다. 염증 수치를 비롯한 모든 수치가 괜찮았고 수술 부위도 깨끗하다며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간단한 내 질의에 답변을 해주었고 2달 후 CT를 찍자고 말했다. 모든 게 감사했다.  생사를 결정하는 수술을 한 건 아니다. 그러나 8시간 이상의 큰 수술이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의사에게 계획한 대로 수술을 했다는 말을 듣고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입에 달고 산다.

 

 이 공간에서는 조카가 나를 돌봐주고 있다. 바쁜 아이라서 하루 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니지만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며 내가 필요한 것들을 살핀다. 2주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다. 지나치게 게으름을 부렸다. 그로 인해 살이 많이 졌고 도토리 같았던 머리카락은 아주 지저분해졌다.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고 낮잠을 자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새로운 증상은 다리가 붓는다는 것이다. 의사에게 언급했지만 친절한 답은 없었다. 무리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스스로 약속한 리뷰를 지키지 못했고 당분간도 그러할 것이다. 집으로 도착한 택배에 어떤 책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주문한 책인데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이곳으로 두 권의 시집을 주문했다. 읽을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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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6-01-15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몹시 힘든 과정을 겪으셨군요. 어서 빨리 쾌차하시길 빕니다.

자목련 2016-01-23 11:27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oren 님. 갑자기 추워진 날들 건강하게 보내세요^^

사과나비🍎 2016-01-15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수술하셨었군요... 회복 잘하시길 바랄게요~ 드시는 거 잘 챙겨드시구요~ 푹~ 쉬시길 바랄게요~

자목련 2016-01-23 11:28   좋아요 1 | URL
네, 사과나비 님의 댓글이 회복을 보태주네요. 잘 먹고 잘 자는 게 필요해요!!

서니데이 2016-01-15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시간이면 큰 수술이었겠네요. 앞으로는 좋아지는 일만 계속되셨으면 좋겠어요.
자목련님, 행복한 금요일 되세요.^^

자목련 2016-01-23 11:28   좋아요 1 | URL
좋아지는 일, 이 말이 정말 좋습니다. 서니데이 님도 건강하고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프레이야 2016-01-15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그동안 너무 뜸해서 걱정했어요. 수술을 8시간이나 걸려 하셨다니요.ㅠ
잘 되었다니 마음 놓이지만 다리 붓는 증상은 속히 알아보시기 바래요.
잘 나으셔야 합니다. 마음 편히 쉬세요.

자목련 2016-01-23 11:31   좋아요 2 | URL
짧은 잠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구요.
모든 건 지나간다고 믿지만 여전히 그 과정이라서 때때로 지치기도 합니다, ㅎ
프레이야 님의 안부 고맙고 감사합니다!

hnine 2016-01-15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술을 무사히 마치셨다니 다행이고 회복 과정도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자목련 2016-01-23 11:32   좋아요 1 | URL
잘 이겨낼 수 있다고 믿고 지내고 있어요. hnine 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1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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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리에 대해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것을 그려낸 소설. 전쟁을 배경으로 한 보통의 그것과 다른 감동을 전해주는 유려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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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위를 심하게 타지는 않지만 감기에 걸리는 걸 극도로 싫어하기에 체크무늬 남방 위에 그레이 색 니트 원피스 위에 남색 꽈배기 무늬가 들어간 카디건 위에 모자 달린 빨강 패딩조끼를 입고 미용실에 다녀왔다. 아침에는 그저 빗소리가 유쾌한 정도였는데 밖에 나가보니 바람소리를 더해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원장님의 가위 소리를 들었다. 정말 귀를 기울이니 예전에 몰랐던 가위질이 경쾌한 리듬을 탄다는 걸 알았다. 신기했고 신선했다. 멍하니 거울을 통해 잘려 내동댕이쳐진 머리카락을 보는 게 전부였는데 가위질의 리듬을 듣다니. 제법 길었던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고 나니 다시 도토리가 되었다. 짧은 단발로 해달라고 하면서 아주 짧아도 괜찮다고 했더니 결과는 도토리였다. 나쁘지 않다. 무거웠던 기운 대신 왈츠라도 출 수 있는 경쾌한 머리카락 사이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흰 머리카락만 보이는 것만 빼면 말이다. 오랜만에 머리카락 손질이라 그 사이 수고비가 올랐다는 것도 몰랐다.

 

 그토록 기다렸던 비를 마주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이 모든 반응은 미용실에서 들은 것들이다. ‘왜 이리 많은 비가 내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비가 와야 한다, 비 오기 전 김장을 해서 다행이다, 마트에 가야 하는데 비가 와서 귀찮다.’  비 오는 걸 좋아하는 나는 감기에 걸려도 좋은 날들이라면 비 속에 서 있고 싶었다. 안다, 이제 그런 용기를 낼 수 없는 나이라는 걸. 어쨌거나 비 오는 수요일의 오전은 경쾌한 가위질의 리듬으로 남는다.

 

 비, 수요일, 왈츠와 어울리는 책은 어떤 책일까. 내 멋대로 고르자면 오늘의 책으로 꼭 읽고 싶은 김엄지의 『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 김소형의 『ㅅㅜㅍ』, 제목 때문에 끌리는 『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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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12-02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을 등쪽으로 뻗어 잡으면 잡힐만큼 머리카락이 자라서 미용실 한번 다녀와야하는데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자목련님 글 읽으니 냉큼 다녀오고 싶어지네요 ㅎ 저도 이 참에 짧게 잘라볼까도 생각해보게 되구요 ㅋ 미용실가면 가위소리에 귀기울여봐야겠어요^~^

자목련 2015-12-03 19:08   좋아요 0 | URL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가볍게 퍼머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해피북 님이 들으실 가위소리는 어떨까요? 신나는 리듬이면 좋겠어요, ㅎ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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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우리와 닮은 스토너. 담담하면서도 치열했을 그의 인생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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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비가 그친 토요일 오후 집 안은 어둑하다. 거실 한쪽에는 고모가 보내준 홍삼 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방금 한 봉지를 컵에 따라 마셨다. 정성을 다해서 마셔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고모의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매일 서너 알씩 단감을 먹고 있다. 굵고 튼튼하게 생긴 단감을 먹으면서 M을 생각한다. 이걸 내게 먹이고 싶었을 M을 생각한다. 마음을 받는다는 건 언제나 감사하고 고맙다. 그 마음에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는 채 말이다. 그저 그 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 그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점심엔 싹이 난 부분을 깊게 깎아 낸 작은 감자를 간장, 설탕, 기름, 마늘을 넣고 조렸다. 달달한 간장과 설탕 냄새가 아직도 가득하다. 이번에 요리책을 참고하지 않고 내 맘대로 양을 조절했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맛있는 감자조림을 할 줄 모른다. 그게 뭐든 잘 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 오후다.

 필립 로스의 『전락』을 읽고 있다. 어떤 일에 자신감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경험한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그것이 늙음 때문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상하게 필립 로스의 소설은 무척 빨리 읽게 되는 소설과 지루할 정도로 천천히 읽히는 소설이 있다. 예상했듯 『전락』은 후자의 경우다. 『에브리 맨』도 무척 그리 읽혔는데 강렬하게 남았다. 이 소설도 그런 책이 될까. 어쨌든 다 읽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읽고 있는 책과는 별개로 이런 문장을 생각한다. 다시 펼쳐 읽고 옮긴 건『7번 국도 Revisited 』의 한 부분이다. 읽으면서 지금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당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건 나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요즘 고민이 많다. 모두 하나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나는 왜 존재하는가란 질문으로 이어진다. 선택을 했고 결정을 내렸지만 11월이라는 계절 탓인지 불안하고 불안하다.

 

 ‘길들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길들은 만나고 헤어지고 가까워지고 멀어진다. 그게 길들이 확장하는 방식이다. 길들은 도서관에 꽂힌 책들과 같다. 서로 참조하고 서로 연결되면서 이 세계의 지평을 한없이 넓힌다. 길들 위에서 나는 무엇이든 배우고자 했다. 길들이 책들과 같다면, 그 길을 따라가면 언제나 미지의 세계를 만나리라. 처음에는 다른 세계를 향한 열망이 훨씬 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길들 자체에 매혹됐다. 그저 읽고 또 읽는 일만이 중요할 뿐인 독서가처럼, 거기서 무엇도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걷고 또 걷는 일만이 내겐 중요했다. 그리하여 여기는 어디일까? 나는 왜 여기 있을까? 나는 누구인가?’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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