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심하게 타지는 않지만 감기에 걸리는 걸 극도로 싫어하기에 체크무늬 남방 위에 그레이 색 니트 원피스 위에 남색 꽈배기 무늬가 들어간 카디건 위에 모자 달린 빨강 패딩조끼를 입고 미용실에 다녀왔다. 아침에는 그저 빗소리가 유쾌한 정도였는데 밖에 나가보니 바람소리를 더해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원장님의 가위 소리를 들었다. 정말 귀를 기울이니 예전에 몰랐던 가위질이 경쾌한 리듬을 탄다는 걸 알았다. 신기했고 신선했다. 멍하니 거울을 통해 잘려 내동댕이쳐진 머리카락을 보는 게 전부였는데 가위질의 리듬을 듣다니. 제법 길었던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고 나니 다시 도토리가 되었다. 짧은 단발로 해달라고 하면서 아주 짧아도 괜찮다고 했더니 결과는 도토리였다. 나쁘지 않다. 무거웠던 기운 대신 왈츠라도 출 수 있는 경쾌한 머리카락 사이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흰 머리카락만 보이는 것만 빼면 말이다. 오랜만에 머리카락 손질이라 그 사이 수고비가 올랐다는 것도 몰랐다.
그토록 기다렸던 비를 마주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이 모든 반응은 미용실에서 들은 것들이다. ‘왜 이리 많은 비가 내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비가 와야 한다, 비 오기 전 김장을 해서 다행이다, 마트에 가야 하는데 비가 와서 귀찮다.’ 비 오는 걸 좋아하는 나는 감기에 걸려도 좋은 날들이라면 비 속에 서 있고 싶었다. 안다, 이제 그런 용기를 낼 수 없는 나이라는 걸. 어쨌거나 비 오는 수요일의 오전은 경쾌한 가위질의 리듬으로 남는다.
비, 수요일, 왈츠와 어울리는 책은 어떤 책일까. 내 멋대로 고르자면 오늘의 책으로 꼭 읽고 싶은 김엄지의 『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 김소형의 『ㅅㅜㅍ』, 제목 때문에 끌리는 『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