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셸비 반 펠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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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식물에게 말을 건다. 오랜만에 본 화분 속 식물에게 말이다. “안녕, 잘 지냈어?” 그럼 잎사귀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만 같다. 사실 혼자만의 생각이다. 그러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물을 주고 잎사귀를 매만지는 하나의 의식 같은 것이다. 셸비 반 펠트의 장편소설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을 읽으면서 그 식물들이 생각났다. 식물이 등장하는 소설이냐고? 전혀 아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수족관이 등장한다. 다양한 바다 생물, 그중에서도 똑똑한 문어가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문어, 당신이 떠올리는 축구와 문어, 그 문어 말이다.


문어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과 세상, 그리고 상실과 상처에 대한 이야기. 뭔가 재미와 감동이 기대된다면 맞다. 이 소설은 그런 소설이다. 처음부터 대놓고 이렇게 말하면 스포일러겠지만 뭐 당신이 읽지 않는 한 이 감동을 느낄 수 없으니 괜찮다. 그냥 이 소설에 대해서는 이렇게 시작하고 싶다. 소웰베이 아쿠아리움의 수조에 갇힌 문어 ‘마셀러스’, 그와 우정을 나누는 아쿠아리움의 70세 청소부 할머니 ‘토바’. 인간과 문어의 우정은 가능한 것일까. 가능하다고 본다. 식물과의 우정도. 참고로 나와 식물 사이의 우정은 조금 더 깊어져야 한다.


토바는 마셀러스가 수조를 탈출하는 걸 알면서 관장에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다시 수조로 들어가게 도와준다. 마셀러스가 수족 밖으로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심심하고 답답하고, 호기심이 많아서다. 8개의 팔로 흥미로운 것들을 몰래 가져오는 재미도 빠질 수 없다. 마셀러스는 수조 안에서 아쿠아리움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을 관찰하지만 그가 관심을 갖는 이는 오직 토바뿐이다.


바다가 깊숙이 간직한 비밀이란 이런 것들이다. 내가 다시는 탐험할 수 없는 것들. 그때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스니커즈 밑창과 끈, 단추, 복제 열쇠를 모두 챙길 것이다. 전부 다 그녀에게 전해줄 것이다. 그녀의 상실에 위로를 전한다. 이 열쇠를 돌려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다. (155쪽)


토바는 혼자다. 어린 시절 스웨덴에서 미국으로 이주 후 아버지가 지은 집에서 살고 있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남편은 암에 걸려 죽었고 그보다 먼저 아들 에릭이 세상을 떠났다. 30년 전, 십 대의 아들 에릭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토바에게는 그랬다. 현재 토바의 삶에는 아무런 희망도 즐거움도 없다. 그저 살아갈 뿐이다. 동네 친구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마음, 호의와 배려가 조금은 불편하다. 마트를 운영하며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선도 마찬가지다. 아쿠아리움에서 청소를 하는 일, 어린 아들이 올라탔던 동상을 닦는 일, 바다 생물에게 인사를 건네는 반복된 일상을 살아낼 뿐이다.


그러니 하나뿐인 오빠의 죽음에도 충격을 받지 않는다. 오래전 교류가 끊겼고 물건을 챙기러 요양원에 방문할 뿐이다. 그런데 입소 신청서를 쓰고 집을 팔기로 결정한다. 아버지, 남편, 아들의 흔적이 가득한 집을 말이다. 청소를 하다가 팔을 다친 후 집 정리를 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결정한 일이다. 토마에게 더 이상 소웰베이엔 남은 게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토바의 인생에 캐머런이 등장하곤 달라졌다. 캘리포니아에서 생부를 찾아 소웰베이로 온 캐머런. 약물중독의 엄마 대신 이모가 캐머런을 키웠다. 엄마의 돌봄을 기대하기는커녕 연락도 되지 않았다. 서른이 되었지만 일자리도 살 곳도 없다. 여자 친구의 집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대책이라곤 이모에게 받은 엄마의 물건에서 발견한 패물과 졸업 반지와 사진으로 생부를 찾는 것이다. 그 모든 단서가 소웰베이로 오게 만들었다. 캐머런이 생부라 여기는 남자는 부동산 재벌이었다. 만나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믿었지만 소웰베이에서 그를 기다리는 건 외부인에 대한 모든 걸 공유하는 이들이었다.


간신히 얻은 아쿠아리움의 일자리는 힘들고 사정을 알고 도움을 준다는 마트 사장 이선은 간섭이 심하고 선배 청소부 할머니는 잔소리가 많다. 패들 숍을 운영하는 에이버리의 친절은 이상하다. 그 모든 게 자신을 향한 애정이라는 걸 캐머런은 알지 못한다. 이모 외에는 어떤 이에게도 그런 마음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아쿠아리움의 문어 때문에 토바 할머니와 자주 만나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문어를 대하는 토바 할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태도.


대체로 나는 구멍을 좋아한다. 내 수조 위에 있는 구멍이 내게 자유를 준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에 생긴 구멍은 싫다. 심장이 세 개인 나와 달리 그녀의 심장은 하나뿐이다. 토바의 심장. 그 구멍이 메워지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 (368쪽)


마셀러스는 캐머런과 토바의 관계를 제일 먼저 알아차린다. 그 둘 사이를 자신이 연결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쯤 되면 모두가 짐작했을 것이다. 소설이 아니더라도 우리네 인생은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일들이 많다. 그 비밀을 하나씩 알게 되는 순간 삶은 충만해지는 게 아닐까. 너무 늦게 알아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비밀에 다가가는 일에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실패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 절망과 좌절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은 그런 용기를 북돋아 주는 따뜻한 소설이다. 명민한 화자는 따뜻함에 신선함과 재미를 더한다. 상실과 상처로 얼룩진 우리네 삶이 어떻게 치유되는지, 그 치유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준다. 우리의 대단한 화자 마셀러스는 이미 알고 있는 그것 말이다.


비밀은 어디에나 있다. 어떤 인간들은 비밀 가득 차 있다. 그런데도 어떻게 폭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최악의 의사소통 능력, 그것이 인간이란 종의 특징인 듯하다. 다른 종이라고 훨씬 나은 건 아니지만, 청어조차 자신이 속한 무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알며 그에 따라 헤엄쳐 나간다. 그런데 왜 인간은 무엇을 원하는지 서로에게 속 시원히 말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수백만 개의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 걸까? (80쪽)


문어를 생각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최초의 소설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어디서든 문어를 보게 된다면 나도 모르게 인사를 전하게 될 것 같다. 그러니 한동안은 문어숙회의 맛은 잊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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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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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거창한 질문인가. 생각해 보면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향하는 쪽의 끝에는 행복과 구원이 있다. 오롯이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이에게 세상과 다른 사람의 삶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가족, 이웃, 사회와 적당히 어울리며 살아야 한다. 사는 건 이렇게 어렵다. 나쓰메 소세키의 『문』에 등장하는 소스케와 오요네 부부가 바라는 삶도 그게 다르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지만 일요일에 늦잠을 자고 목욕탕에 다녀오고 동네를 산책하는 일만으로 충분했다. 바느질하는 아내와 한가롭게 누워 잡지를 읽는 남편의 모습. 비 오는 출근길엔 남편 소스케의 구멍 난 구두를 보며 하나 장만해야 한다고 거드는 아내. 모든 게 평화로워 보인다.


소스케의 일상은 단조롭다. 출근과 퇴근 후 오요네와 저녁 식사와 짧은 대화. 부족한 게 없는 듯 보이지만 허전함이 느껴진다. 주인집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소리에 허전함의 원인이 바로 아이였다는 걸 알았다. 소설 초반에 아이에 대한 계획이나 언급이 없어 혼자 이상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복선처럼 깔리는 작은 집과의 문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소스케의 태도는 『산시로』와 『태풍』 속 등장인물과 비슷하다. 어떤 다급함이나 간절함은 찾기가 어렵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다르게 흘러가는 게 삶이라는 걸 아는 것처럼.


고요한 풍경 같았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부부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소스케의 남동생 고로쿠의 거처였다. 고로쿠는 아버지의 죽음 후 숙부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집과 유산을 숙부가 관리했고 소스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숙부가 죽었고 숙모는 더 이상 고로쿠의 학비를 지원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고로쿠는 형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주기를 바랐지만 소스케는 차일피일 작은집 방문을 미루고 있었다. 고로쿠가 자신처럼 대학을 그만두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딱히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오요네도 다르지 않았다. 소스케를 채근하는 대신 남편의 의견에 동조할 뿐이다.


고로쿠는 오요네가 화장대를 놓고 쓰는 방으로 옮겼고 당분간 숙모가 학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자신의 공간이 사라졌지만 오요네는 불만을 말할 수 없다. 고로쿠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결석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귀가하는 일이 잦다. 그런 고로쿠에게 형과 형수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 모습은 뭐랄까 선을 긋는 것처럼 보인다. 지루하다 정도는 아니지만 평탄하게 흐르는 일상에 작은 변화가 찾아온다. 주인집에 든 도둑이 소스케의 집 뒤꼍에 서류함을 버리고 간 것이다. 물건을 돌려주는 일을 계기로 주인인 사카이와 교류가 잦아진다.


사카이의 풍족한 삶,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모습과 소스케와 오요네의 단출함을 비교하면서 그들 부부의 과거를 들려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부유한 대학생이었던 소스케, 친구의 누이로 만난 오요네. 둘은 점차 친밀해지고 친구가 병을 얻어 요양을 떠난 곳까지 소스케는 찾아간다. 그 이후 소스케는 친구를 배신하고 학교에서 퇴출당하고 부모를 버렸다. 짐작했겠지만 오요네는 누이가 아닌 아내였다. 그들은 그렇게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유산과 아기의 죽음. 오요네는 그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 믿었다.


그들의 생활은 폭이 좁아질수록 더 깊어져갔다. 그들은 육 년 동안 세상과 산만한 교섭을 하지 않은 대신 육 년의 세월에 걸쳐서 서로의 가슴을 파냈다. 그들의 생명은 어느새 서로의 밑바닥에까지 파고들었다. 두 사람은 세상에서 본다면 여전히 두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볼 적에는 도의상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였다. (172쪽)


육 년이라는 시간을 둘만을 바라보며 하나로 살아온 그들에게 고로쿠의 미래와 사카이와의 교류는 뿌리를 흔들 정도의 어려움은 아니었다. 사카이의 입에서 몽골에서 온 동생과 동생의 친구 이름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친구는 바로 오요네의 전 남편이자 소스케의 친구였다. 그들을 소개해 준다는 사카이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없었던 소스케는 전전긍긍한다. 관청 일도 집중할 수 없고 오요네에게 말할 수도 없다. 소스케는 병가를 내고 산사로 도망친다. 소스케의 행동은 비겁하다. 소세키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어쩌면 삶의 위기는 가능하다면 모면하는 게 좋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산사에서 지내는 동안 소스케가 얻은 건 무엇이고 깨달은 건 무엇일까.


제목인 『문』이 의미하는 건 내면의 ‘문’이었다. 저마다 하나씩 간직한 자신만의 문. 그 문을 열 용기와 힘은 결국 스스로에게서 나온다. 누군가 문을 열고 지나갈 것이고 누군가 문을 외면할 수도 있다. 소스케처럼 처량하게 그 옆을 지킬 수도 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문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나는 문을 열어달라고 왔다. 그렇지만 문지기는 문 안쪽에 있어서 아무리 두드려도 끝내는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다. 단지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힘으로 열고 들어오너라”라는 목소리만 들려왔을 뿐이었다. (264쪽)


그는 그 문을 통과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문을 통과하지 않고 끝날 사람도 아니었다. 결국 그는 그 문 아래에 꼼짝달짝 못하고 서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265쪽)


『산시로』와 『태풍』보다는 좋았던 소설이다. 담담하고 슴슴한 매력을 지닌 소설이다. 가을의 풍경으로 시작하는 『문』은 가을에 읽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가을을 지나 겨울에 접어들어 새해를 맞이하고 봄을 기다리는 일의 반복이 인생이라는 걸 알려준다고 할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정말로 기뻐요. 이제 봄이 되어서” 오요네의 말에 “응, 그렇지만 또 겨울이 올 거야”라고 대답하는 소스케의 말은 묘한 여운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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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4-28 0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을에 읽으면 좋을 소설!
기록해 둡니다^^

자목련 2023-04-28 09:05   좋아요 2 | URL
네,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읽어도 좋을 것같아요!
 
누구도 울지 않는 밤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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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바닥이라고 이제 일어서면 된다고 나를 안심시키며 살았다. 한 번에 온전하게 설 수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천천히 일어서다 넘어져도 괜찮다고. 툭툭 손을 털고 기지개를 켜면 될 거라고 나를 위로했다. 그런 날들이었다. 울지 않으려고 절망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 시간이 나를 성장시켰고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제 도무지 모르겠다. 바닥이라 여겼던 시간은 바닥이 아니었고 곡선의 마음은 어디론가 튕겨나가기 일쑤다. 삶이 쉽지 않다는 건 오래전에 알았지만 사는 게 버거워 모든 걸 놓아버리고 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둘러보면 나의 삶은 오히려 평온한다는 게 어디론가 숨고 싶게 만든다.


김이설의 단편집 『누구도 울지 않는 밤』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나는 아직은 괜찮다고 그러니 푸념이나 절망은 잠시 넣어두라고 말이다. 물론 고통과 절망은 개인적이어서 평균을 찾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김이설의 소설 속 인물은 저마다 시련을 안고 살아아간다. 누구나 그런 것처럼이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고통과 시련의 시작이 가족이라면 말이다.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원가족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사느라 바빠 자녀를 돌보기 어려운 경우, 주변의 도움을 받는다. 가까운 형제나 돌봄이 필요한 자녀 중 첫째. 이모나, 언니 누나가 그 대상이 된다. 「모면」의 ‘소영’도 엄마보다는 이모와 친했다. 이모가 된 지금 형부의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육아에 지친 언니를 도와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봄의 주체가 돼버렸다. 부모인 언니와 형부 대신 퇴근 후 조카를 돌보며 이모와 엄마의 관계를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몹쓸 짓을 당한 이모, 그 모습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투영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비밀을 공유한 사이라는 이유를 대며 모면하는 건 아닌지.


가족은 쉽게 끊어낼 수 없기에 더욱 힘들다. 그런 이유로 가족이 되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영원한 결속을 바라며 이별을 원하지 않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막상 가족의 형태를 갖추고 살아가지만 그것이 완전한 해답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내일의 징후」 속 동성 연인 ‘소혜’와 ‘성은’은 마주한 현실과 「가족의 일생」에서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은주’와 가족이 된 ‘정균’이 짊어진 가장의 무게는 너무 힘들었다. 이유 없이 가출을 하는 은주를 기다리는 정균 곁에는 딸 예령만이 남았다. 회피한 대화의 부족일까, 아니면 무엇이 가족을 해체하게 만들었을까.


처음엔 그랬다. 같이 살게 되면 같은 걸 꿈꿀 줄 알았다. 같이 있으면 같은 열망을 품을 줄 알았다. 같이 사는 것이 완결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내일의 징후」, 53쪽)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그게 가능한 사람인 얼마나 될까. 어린 시절 가정을 버리고 떠나 늙고 약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환기의 계절」 속 엄마를 자매는 납득할 수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 엄마를 보면서 큰 딸인 ‘나’는 자신의 상황을 돌아본다. 외도를 당당하게 밝히고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 자신과 같은 처지로 딸을 키우고 싶지 않기에 부정하고 외면한다. 아버지의 정체성과 오랜 시간 친구로 지냈다는 엄마의 사정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족은 무엇일까.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형태만이 가족일까.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자신의 성장의 결핍이 큰 잘못도 아닌데 말이다. ‘나’에게 닥친 시련은 쉽게 치유되지 않겠지만 ‘나’는 조금 더 유연해질 것이다. 계절은 순환하고 삶은 멈추지 않으므로.


이제는 예전의 일상을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다음 계절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환기의 계절」, 154쪽)


이처럼 가족은 다양한 이유로 해체될 수 있다. 해체가 잘못도 부족도 아니다. 그 자리를 채울 누군가가 있기 마련이다. 삶이란 참 신기하다. 앞서 언급한 「모면」에서 엄마의 자리를 채워준 이모나, 「가족의 일생」과 「환기의 계절」에서는 자녀가 있다. 온전하게 영원할 수 없지만 내 곁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일이 삶이기도 하다. 자녀에게만 기대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원가족과 분리를 원하는 자녀를 바라보는 안타까움은 살아온 시간이 가져다준 경험 때문이다. 「긴 하루」에서 ‘유순’은 딸 ‘혜서’가 연극을 하는 남자를 사귀는 일이 그러했다. 집을 나간 혜서가 맞닥뜨릴 고단한 삶이 훤히 보인다. 자꾸만 어긋나는 딸과의 관계는 독립했던 딸이 자신의 모든 걸 정리하고 부모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계절이 바뀌는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버섯농장을 하는 엄마 곁으로 돌아온 ‘유경’은 적응이 어렵다. 경찰이 된 동창생 ‘민수’가 도와주고 있지만 버섯을 키우는 일도 헤어진 연인에 대한 마음도 힘들다. 농장을 넘기라는 민수의 부모와 그러면서도 민수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민수의 어머니.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지만 ‘유경’은 포기하지 않는다.


여기는 끝이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것이었다. 아직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계절이 바뀌는 곳」, 219쪽)


『누구도 울지 않는 밤』 속 인물을 통해 김이설이 전하고 싶은 바람이 그렇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 절망의 순간도 지나갈 거라는 믿음을 심어준다고 할까. 「「반 뗀 라 지?」속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를 기다리며 고모의 학대와 친족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임신까지 한 열여덟 ‘두연’이 다른 삶을 찾아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마지막 장면이 그렇듯, 「치유정원에서」에서 ‘나’는 아무런 설명 없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동생과 그로 인해 정신을 놓아버린 엄마와 위로가 되었고 사랑했던 연인마저 떠나고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지만 삶이 끝났지 않았다는 걸 안다.


나쁜 일을 잊을 수 있다면, 어둔 기억을 지워버릴 수 있다면, 차라리 그럴 수만 있다면, 하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언제든 나쁜 기억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어두운 상처를 피하지 않는 일이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끝에 대해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엄마가 온전치 않다고, 석우는 떠났다고, 나는 아직 연약하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치유정원에서」, 177쪽)


모든 걸 삭제하고 리셋할 수 없는 게 삶이다. 빠른 속도로 회복되거나 치유되지 않더라도 천천히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는 동안 천천히 나아지려 노력하며 살아갈 뿐이다. 김이설은 가족 안에서의 여성의 위치, 돌봄, 희생, 폭력에 대해 말하지만 날카롭고 불편한 묘사를 통해 혹독하게 각인시키는 것이 아닌 고달픈 삶을 어루만지는 연대의 손길과 마음을 들려준다. 실패, 좌절, 시련, 고통은 여전하더라도 말이다. 아직은 괜찮다는 다짐과 그게 무엇이든 할 수 있이 있다는 걸 받아들여도 된다고. 그러면 조금 괜찮아지고 나아진다고.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이 찾아 올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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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재미가 먼저다 - 나무 말고 숲을 보게 하는 과학 상식
장인수 지음 / 포르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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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떠올리면 지구과학, 물리, 화학으로 머리가 아팠던 수업 시간과 동시에 알코올램프 수업을 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따라온다. 무조건 암기를 했던 시절, 시험만 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러니 과학을 좋아하거나 어떤 원리를 이해하고 과학에 접근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 과학이 우리 일상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 과학으로 우리가 어떤 이로움을 얻고 있는지 『과학, 재미가 먼저다』를 통해 배우고 알게 되었다.


저자 장인수는 12년 동안 EBS에서 강의를 해온 물리 선생님으로 학생들에게 잘 알려진 강사다. 그러니 이 책은 과학이 어렵다는 편견을 지닌 학생들에게 유용한 책이다. 학습용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이라는 과목을 좀 더 쉽고 좀 더 재미있게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까. 그런 점에서 ‘나무 말고 숲을 보게 하는 과학 상식’이라는 부제처럼 일반 상식을 채우기에도 적절하다. 나 같은 독자에게는 배움이라는 측면보다는 그렇구나 정도로 이해하는 부분이 많았다. 사실 배워야 하는 공부라고 생각하면 뭐든 다 어렵지 않은가.


책은 인체의 과학, 일상 속의 과학, 길 위의 과학, 우주의 과학, 네 가지 주제로 과학을 알려준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설명하고 그것의 원리를 알려주고 현재 어떻게 발전하여 우리 생활에 적용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설명에 있어 그림이나 표를 통해 빠른 이해를 돕는다. 빛의 반사와 굴절을 통해 무지개가 생기는 원리를 배우고 하늘이 왜 파란색인지(사실,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을 알려준다.


귀가 아파서 고생한 기억 때문인지 소리에 대한 부분은 집중해서 읽었다. 소리를 듣는 귀의 구조를 보면서 귀지가 고막 쪽으로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그래서 자꾸 귀지를 파면 혼을 냈구나 싶었다. 현대 사회에서 소음은 피할 수 없지만 듣기 좋은 잡음인 백색소음이 인기를 끄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TV소리를 크게 듣게 되는 현상이 노화로 인한 달팽이관의 청세포가 기능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라니 서글퍼지기도 했다. 10대 청소년이 들을 수 있는 음역대와 40대 어른들이 들을 수 있는 음역대가 다르다는 설명은 세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영국의 쇼핑몰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불량 청소년을 내보내기 위해 40~50대를 위한 소리를 발생시켰다는 사례는 인상적이다. 혼을 내거나 꾸짖는 대신 연령대에 따라 가청 진동수가 다르다는 원리를 적용해 멋지게 해결했으니까.


일상 속의 과학은 훨씬 재미있고 흥미롭다. 에어컨이나 히터의 위치가 밀도와 연관되었다는 사실, 삼투압 현상을 이용해 김장을 담든 선조의 지혜와 물속에 오랜 시간 손을 담그면 쭈글쭈글해지는 것으로 설명하고 그럼 바닷물에 사는 동물은 삼투 현상으로 배추처럼 절여질까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호기심을 유발하고 재미를 불러오는 것, 그게 과학을 배우는 즐거움이라는걸.


게, 홍합, 해파리, 상어, 가오리 같은 동물들은 바닷물의 농도와 자기 몸의 농도를 같게 만든다. 몸과 바닷물의 농도가 같으면 물이 이동하지 않기 때문에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민물에 사는 물고기는 삼투 현상으로 물이 계속 몸으로 들어온다. 따라서 물을 거의 마시지 않고 많은 양의 오줌으로 물을 배출하면서 몸의 농도를 조절한다. 연어는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가서 생활하다가 산란기가 되면 다시 강으로 돌아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강에서 생활할 때와 바다에서 생활할 때 삼투 현상에 대비하도록 본능적으로 진화해 왔다. 삼투 현상을 대비하는 물고기에게서 대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99쪽)


무선 이어폰을 블루투스에 연결해 음악을 듣는 일상은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기파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저자는 하나의 원리를 먼저 설명하는 대신 일상 속 과학으로 접근해 관심을 유도한다. 이런 강의 형식이 인기의 요인이 아닐까 싶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당연하지만 자연과 함께 발을 맞추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중요하다. 환경친화적이라고 말하는 자원이 과연 그럴까. 이제는 우리가 고민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풍력 발전소의 설치, 그에 따른 소음으로 고통받는 주민, 태양광 발전 패널을 설치했지만 나중에 폐기되는 패널은 중금속 덩어리로 남는 일은 대책이 필요하다. 버려지는 것 없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 매일 마시는 커피를 활용한 사례는 많은 이들이 기억하면 좋겠다.


커피 한 잔을 내린 뒤 남은 원두 찌꺼기는 그대로 매장할 경우, 찌꺼기가 썩으며 온실가스의 일종인 메탄가스를 발생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지렁이를 비롯한 토양 생물들이 카페인에 중독되어 고통받는다. 이 원두 찌꺼기의 성분인 목질 섬유소를 버섯에 배양할 때 이용하면, 버섯이 그 섬유소를 먹고 자랄 뿐 아니라 커피 속 카페인에 자극을 받아 더 빨리 성장한다. 이렇게 자연 물질들의 특성을 알고 잘 활용한다면, 굳이 새로운 친환경 자원을 개발하지 않아도 환경친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165쪽)


과학이 무진장 어려운 것이었다면 이 책을 읽고 나면 한 결 쉽게 다가올 것이다. 무진장 쉬운 과학 이야기라고 감탄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어렵구나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이 무조건 복잡하고 재미없는 과목이 아니라는 사실은 확인하게 될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추천하는 책, 청소년과 어른이 함께 배우고 공부하면 더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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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르탱네 사람들입니다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윤미연 옮김 / 망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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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가 찾아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면 수락할 이가 얼마나 될까? 수상한 사람이라고 신고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상대가 작가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아무런 부담 없이 나의 고민이나 걱정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게 인간이다. 익명성 때문에 뭐든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시판이 인기 있는 것처럼.


프랑스 소설 『안녕하세요, 마르탱네 사람들입니다』는 그런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소설의 시작은 조금 엉뚱하다. 영감과 열정을 잃어버린 작가가 ‘나’는 거리로 나가 맨 처음 마주치는 사람을 주제로 책을 쓰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만난 사람은 평범한 할머니였다. 놀랍게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할머니 마들렌은 나의 제안을 수락한다. 42년 전부터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지만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세상이란 이런 곳이다. 근처에 살더라도 얼굴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우연성이야말로 특별하다. 마들렌이 남편의 이야기를 시작할 즈음 둘째 딸 ‘발레리’가 등장한다. 발레리는 마들렌에게 치매 증상이 있다고 알려주며 나와의 인터뷰가 무리가 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소설은 이제 마들렌과 ‘나’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가족 전체로 확대된다. 발레리가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된다. 발레리, 그녀의 남편 ‘파트릭’, 십 대의 딸 ‘룰라’와 아들 ‘제레미’까지. 사실 소설에 등장하는 이 가족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이들이다. 너무 흔한 ‘마르탱’이라니 성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느 집이나 그들만의 사정이 있고 비밀이 있듯 발레리의 가족도 그러했다. 가족의 이야기를 써줄 전기작가의 등장으로 호들갑을 떨지만 나에게 들려주는 건 그동안 가족에게 말하지 못한 것들이다.


신기한 건 그들과 ‘나’의 만남이 별거 없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빠져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르탱네 가족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차마 가족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사정이 무엇인지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공감하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거다. 그건 ‘나’ 도 마찬가지로 발레리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점점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동거했던 여자친구와의 만남과 이별. 계획에 없던 말들을 하게 된다. 오롯이 소설을 전제로 만났지만 조금씩 그들의 가족에게 물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권태와 피로에 진력이 난 한 가정에 스며들어 갔다. 이 가족은 정해진 루틴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함께 살면서도 서로 얼굴을 부딪히는 이리 없이 그저 스치듯 지나가는 탑승자들. 아파트의 이런 비극이 흔한 것이라 해도, 흔하다고 해서 고통스럽지 않다는 건 아닐 것이다. 그 삶은 권태와 피로를 느끼는 기계장치에 불과할까? (52쪽)


아무런 설명 없이 떠나간 첫사랑을 만나고 싶은 할머니 마들렌, 남편 파트릭과 시들해진 관계를 고민하고 이별을 결심한 발레리, 직장 상사와의 갈등과 가족 간의 소통 부재로 힘든 파트릭, 모든 관심이 SNS와 축구인 제레미, 가족이 과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 룰라. 어쩌다 보니 ‘나’는 마르탱네 사람들의 사람들의 모든 걸 알게 되었다. 룰라가 사귀는 남학생을 만나게 되고, 발레리의 생각도 모르고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파트릭, ‘나’는 둘 사이에서 무슨 역할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한다.


나는 마르탱 가족에게 가능한 한 감정 이입되지 않으려 노력하며서 그들을 관찰해야 했다. 약간 냉담하게, 임상적으로, 일종의 서사적 거기를 유지하면서.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글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인물을 유기적으로 느끼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으니까. (145쪽)


‘나’의 노력으로 뉴욕에 살고 있는 첫사랑과 연락이 닿아 그를 만나러 여행을 떠나기로 했고 소설 때문에 늦은 시간 발레리와의 만남은 파트릭을 자극했고, 그 일로 둘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알게 되었다. 파트릭에게 발레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말이다. 갑질하는 사장에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복수하며 사직한 파트릭을 발레리는 응원했고 가족은 더욱 단단해진다. 결말에 이를수록 더욱 흥미진진하다. 마치 우리네 생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며 삶이란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듯하다.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소설이다. 거기다 누구나 한 번씩 빠지는 매너리즘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 쓰기의 매너리즘에 빠진 작가, 부부 사이의 권태기, 직장 생활의 위기, 성장하는 자녀와 느끼는 세대 차이나 소통의 부재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하고 느끼는 감정들이다.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때문에 우리 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이니 이 소설은 알려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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