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마르탱네 사람들입니다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윤미연 옮김 / 망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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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가 찾아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면 수락할 이가 얼마나 될까? 수상한 사람이라고 신고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상대가 작가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아무런 부담 없이 나의 고민이나 걱정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게 인간이다. 익명성 때문에 뭐든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시판이 인기 있는 것처럼.


프랑스 소설 『안녕하세요, 마르탱네 사람들입니다』는 그런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소설의 시작은 조금 엉뚱하다. 영감과 열정을 잃어버린 작가가 ‘나’는 거리로 나가 맨 처음 마주치는 사람을 주제로 책을 쓰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만난 사람은 평범한 할머니였다. 놀랍게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할머니 마들렌은 나의 제안을 수락한다. 42년 전부터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지만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세상이란 이런 곳이다. 근처에 살더라도 얼굴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우연성이야말로 특별하다. 마들렌이 남편의 이야기를 시작할 즈음 둘째 딸 ‘발레리’가 등장한다. 발레리는 마들렌에게 치매 증상이 있다고 알려주며 나와의 인터뷰가 무리가 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소설은 이제 마들렌과 ‘나’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가족 전체로 확대된다. 발레리가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된다. 발레리, 그녀의 남편 ‘파트릭’, 십 대의 딸 ‘룰라’와 아들 ‘제레미’까지. 사실 소설에 등장하는 이 가족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이들이다. 너무 흔한 ‘마르탱’이라니 성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느 집이나 그들만의 사정이 있고 비밀이 있듯 발레리의 가족도 그러했다. 가족의 이야기를 써줄 전기작가의 등장으로 호들갑을 떨지만 나에게 들려주는 건 그동안 가족에게 말하지 못한 것들이다.


신기한 건 그들과 ‘나’의 만남이 별거 없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빠져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르탱네 가족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차마 가족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사정이 무엇인지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공감하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거다. 그건 ‘나’ 도 마찬가지로 발레리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점점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동거했던 여자친구와의 만남과 이별. 계획에 없던 말들을 하게 된다. 오롯이 소설을 전제로 만났지만 조금씩 그들의 가족에게 물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권태와 피로에 진력이 난 한 가정에 스며들어 갔다. 이 가족은 정해진 루틴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함께 살면서도 서로 얼굴을 부딪히는 이리 없이 그저 스치듯 지나가는 탑승자들. 아파트의 이런 비극이 흔한 것이라 해도, 흔하다고 해서 고통스럽지 않다는 건 아닐 것이다. 그 삶은 권태와 피로를 느끼는 기계장치에 불과할까? (52쪽)


아무런 설명 없이 떠나간 첫사랑을 만나고 싶은 할머니 마들렌, 남편 파트릭과 시들해진 관계를 고민하고 이별을 결심한 발레리, 직장 상사와의 갈등과 가족 간의 소통 부재로 힘든 파트릭, 모든 관심이 SNS와 축구인 제레미, 가족이 과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 룰라. 어쩌다 보니 ‘나’는 마르탱네 사람들의 사람들의 모든 걸 알게 되었다. 룰라가 사귀는 남학생을 만나게 되고, 발레리의 생각도 모르고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파트릭, ‘나’는 둘 사이에서 무슨 역할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한다.


나는 마르탱 가족에게 가능한 한 감정 이입되지 않으려 노력하며서 그들을 관찰해야 했다. 약간 냉담하게, 임상적으로, 일종의 서사적 거기를 유지하면서.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글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인물을 유기적으로 느끼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으니까. (145쪽)


‘나’의 노력으로 뉴욕에 살고 있는 첫사랑과 연락이 닿아 그를 만나러 여행을 떠나기로 했고 소설 때문에 늦은 시간 발레리와의 만남은 파트릭을 자극했고, 그 일로 둘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알게 되었다. 파트릭에게 발레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말이다. 갑질하는 사장에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복수하며 사직한 파트릭을 발레리는 응원했고 가족은 더욱 단단해진다. 결말에 이를수록 더욱 흥미진진하다. 마치 우리네 생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며 삶이란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듯하다.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소설이다. 거기다 누구나 한 번씩 빠지는 매너리즘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 쓰기의 매너리즘에 빠진 작가, 부부 사이의 권태기, 직장 생활의 위기, 성장하는 자녀와 느끼는 세대 차이나 소통의 부재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하고 느끼는 감정들이다.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때문에 우리 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이니 이 소설은 알려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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