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8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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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가까운 가족, 친구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면서 독립적인 존재다. 사회적 관습과 문화에 길들여지는 동시에 반항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끊임없이 변화를 꿈꾸고 창조하는 존재, 그리하여 내면은 항상 들끓는다. 나쓰메 소세키는 그 내면을 주목한다. 『그 후』를 읽으면서 확실해졌다. 『산시로』, 『그 후』, 『문』을 차례로 읽으면 좋을 것 같지만 딱히 그 순서를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 읽어보니 그렇다.


『그 후』란 제목이 『산시로』 그 후의 이야기를 뜻하는 의미도 있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그 후』가 의미하는 바는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 맞이하는 특정한 시기를 지나 그 후가 아닌가 싶다. 이제 『그 후』의 주인공을 만나보자. 주인공 ‘다이스케’는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해 본가의 도움을 받아 하녀와 서생을 두고 생활한다. 몇 번의 휴학을 반복하며 대학과 대학원을 다닌 후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요즘 청년들의 시선에는 아마도 팔자 좋은 사람으로 비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이스케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일을 하려고 하지 않고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다. 서생의 눈에는 공부를 많이 하는 주인으로 보인다. 본가에서도 다이스케에게 일을 하라고 압력을 가하지 않는다. 선을 보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기를 바랄 뿐이다. 아버지와 형이 하는 사업에 도움이 되는 그런 가문의 사람과 만나기를 주선한다.


다이스케는 결혼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가문을 위한 조건을 내건 만남이 싫다. 유유자적 산책을 하고 그림을 보고 책을 읽고 생각이 닿는 대로 상념에 빠지는 게 좋다. 그런 다이스케 앞에 대학 시절 친구가 등장한다.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로, 다른 친구 스가누마가 죽고 그의 여동생과 결혼해 다른 지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3년 만에 도쿄로 돌아온 것이다. 히라오카와와 그의 아내 미치요의 결혼을 성사시킨 게 바로 다이스케였다. 도쿄에서 만난 부부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미치요는 아이를 잃고 건강도 좋지 않았고 히라오카는 새 직장을 구해야 했다. 경제적으로도 빚이 있어 어려움에 처한 상태였다. 대학 시절 절친이었던 친구의 부부에게 상대적으로 풍족한 다이스케는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사실 다이스케는 미치요에게 친구의 부인이 아닌 다른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예상했듯 사랑이다. 그 마음은 막 시작된 것이 아닌 대학 시절부터 지속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히라오카와의 결혼을 주선했다.


소설은 본격적으로 다이스케의 어지럽고 복잡한 마음을 보여준다. 소세키는 미치요를 향한 다시스케의 요동치는 마음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어려움에 처한 친구의 아내를 도와주려는 마음부터 미치요를 만나기 위해 히라오카의 집에 방문하고 히라오카와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 토론을 하고 부부의 관계가 어떤지 탐색하는 다이스케의 모습은 때로 안타깝고 때로 딱하다. 동시에 본가에서 결혼을 하라는 압력을 받아 심적으로 힘든 상태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용기도 없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시간을 벌자는 게 다이스케의 생각이자 전략이다. 그러나 미치요를 향한 마음이 확고해지면서 본가에 자신의 의견을 전해야 할 때가 왔다.


미치요에게도 마찬가지다. 집안을 돌보지 않고 아내 미치요를 홀로 내버려 두는 히라오카가 아닌 지신을 택할 수 있냐고 확인해야 했다. 집안을 위해 집안에서 정해주는 이와 결혼할 수 없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말이다. 상대가 유부녀이며, 친구의 부인이라 말할 수 없으니 그 마음이 지옥인 것이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자신이 원하는 것, 내면에 충실하기로 한다. 놀랍게도 그는 히라오카에게 자신과 미치요의 관계를 말한다. 진짜 대단한 다이스케다. 히라오카의 반응도 만만치 않다. 알겠다고 말하며 미치요의 몸 상태가 나아지면 보내겠다고.


누가 봐도 다이스케와 미치요의 관계는 뻔뻔한 불륜이고 순수함을 찾을 수 없다. 소세키는 그 사랑을 고결한 순백의 사랑으로 표현한다. 비가 오는 날 백합으로 방을 장식하고 미치요를 자신의 집으로 부른다. 백합은 미치요와 다이스케에게 중요한 꽃으로 과거 둘 사이의 감정을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빗속에서, 백합 속에서, 다시 살아난 과거 속에서 순수하고 평화로운 생명을 발견했다. 그 생명 어디에도 욕망은 없었다. 이해관계도 없었다. 자신을 압박하는 도덕도 없었다. 구름과 같은 자유와 물과 같은 자연이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행복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260쪽)


비는 여전히 거침없이 세찬 소리를 내며 내렸다. 두 사람은 비로 인해, 빗소리로 세상과 분리되었다. 같은 집에 사고 있는 가도노와 할멈으로부터도 분리되었다. 두 사람은 고립된 책 백합 향기 속에 갇혀 있었다. (263쪽)


세상의 질타, 걱정 근심, 본가와의 단절은 다이스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마음과 본질, 그것이 중요했다. 『그 후』를 담백하고 아름다운 연애소설로 읽었다. 다른 이들은 1900년대 일본 시대의 경제와 근대화, 산업화에 집중해서 읽을 수도 있다. 다이스케와 주변 인물이 나누는 대화로 소세키가 생각하는 일본의 모습을 읽을 수 있으니까. 소세키는 다이스케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 인간의 내면과 행복의 조건이 무엇인가 묻는 것 같기도 하다.


안정된 직장, 풍족한 경제력, 시류를 따라 사는 일은 누가 봐도 행복한 삶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모두에게 똑같지 않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뜻대로 나갈 때 진실한 행복을 느낀다.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 그것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몫을 감당해야 한다. 다이스케가 그러했던 것처럼. 예측할 수 없는 그 후의 삶까지 끌어안고 감당할 자신 말이다.


여름에 읽으면 더 좋을 소설이다. 고혹적인 백합을 곁에 두고 비라도 내리는 날이라면 더욱 완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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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5-27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 다양한 의미를 읽어낼수 있다는 말씀 동의합니다. 또 읽게되면 저도 다르게 읽을것 같아요~

자목련 2023-05-30 09:09   좋아요 1 | URL
조금 더 일찍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레삭매냐 2023-05-30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읽는다고 수배해
두었는데... 못 읽고 있네요.

6월에는 다시 소선생을
읽어야지 싶습니다.
여름에 읽으면 좋은 소설
이라고 하니 기대가 됩니
다.

자목련 2023-05-30 11:57   좋아요 1 | URL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혹은 휴가에 읽어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냥 믿어주는 일
미야모토 테루 지음, 이지수 옮김 / 프시케의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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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가만히 표지를 바라보았다. 앙리 마팅스의 포옹이었다. 서로를 안아주는 모습, 『그냥 믿어주는 일』이란 제목과 어울리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생명의 그릇>이라는 원제가 더 마음에 들었다. 제목을 바꾼 출판사의 의도가 있겠지만 <생명의 그릇>이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냥 믿어주는 일』는 미야모토 테루가 청년 시절이었던 30년 전 1983년에 펴낸 에세이다. 저자는 <생명의 그릇>이라는 제목을 거창하다 말하지만 생명을 담은 그릇은 바로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생명을 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야말로 대단하고 거장 하지 않은가.


이 책에는 미야모토 테루가 어떤 사람인지, 그러니까 어떤 성향을 지닌 작가인지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분위기, 어떤 기저라고 할까. 쉰 살 가까이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 사업에 실패하고 여자를 좋아하며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곳곳에서 전해진다. 그럼에도 자신을 사랑했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들려주는 글에서는 애틋한 그리움이 전해진다. 아버지란, 부모란 그런 존재니까.


수록된 55편의 에세이는 일상의 기록을 다룬 짧은 메모나 일기 형식부터 발표한 소설이나 구상 중인 소설을 소재로 사회와 삶에 대한 미야모토 테루의 생각이 담겼다. 1부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광고 회사에 다녔던 일을 다루고 2부는 일본 사회와 문화에 대한 칼럼 형태가 많고 3부는 작가 데뷔 후 이야기로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과정과 연인을 들려준다. 그가 바라본 일본 사회, 문학, 자신의 작품을 알아봐 준 평론가와 편집자에 대한 고마움에 대한 감사를 제때 표현하지 못해 한탄하며 소설가는 대단한 직업이 아니라는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경마장에 다니던 아버지, 아버지와 싸우고 집을 나온 어머니와 함께 찾은 유명 사찰에서 느꼈던 우울감, 특정 인물을 마주하면 나쁜 일이 생겨 일부러 피하려 했던 시절, 소설가가 뒤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실패만 맛보던 시절, 기르던 개의 죽음을 통해 절대 개를 기르지 않겠다 다짐하지만 계속 개를 기르고 사랑한 개들의 기억을 간직한 이야기. 두 아들에게 사랑할 대상을 주고 싶고 생로병사라는 엄연한 법칙을 자연스레 인식시키고 싶어 개를 데리고 왔다고 말하는 미야모토 테루. 결핵에 걸려 2년 정도 요양을 했을 때의 심경은 짐작조차 못하겠지만 그 시간이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삶에 대한 의지를 결연하게 했다는 게 전해졌다.


55편의 에세이 가운데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는 책에 관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큰돈을 지불해 사주신 문고판에 대한 것으로 열 권씩 끈으로 묶어 팔고 있었는데 어린 미야모토 테루는 주인이 묶어 놓은 열 권의 다발을 다 풀고 좋아하는 열 권을 고른 후 다시 묶었다고 한다. 그 열 권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열 권의 문고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부터 몇백, 아니 몇천 명의 인간이 품은 괴로움과 기쁨을 알았다. 몇백, 몇천 개의 풍경으로부터 세계라는 것을 알았다. 몇백, 몇천 개의 작은 대화로부터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배웠다.(52~53쪽)


나는 아무 장점도 없는 인간이고, 머리도 나쁘고 완력도 없으며, 제멋대로에 겁쟁이에 질투가 심하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을 말하라고 한다면, 내가 조금은 타인의 고통과 함께 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살짝 낮춰 대답할 것이다. 대답한 순간 나의 마음에는 틀림없이 그 열 권의 손때 묻은 문고본 다발이 스쳐갈 것이다. (53쪽)


타인의 고통과 함께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미야모토 테루의 글엔 다정함이 있다. 그 다정함이 조금은 부끄럽고 수줍은 마음이라는 게 느껴진다. 삶을 사랑하는 뜨거움 같은 게 있다. 그리고 그것을 전하려는 노력이 있다. 단풍나무를 보며 금수(錦繡)라는 말에서 자신의 생명 또한 금수인듯하다는 미야모토 테루의 아름다운 문장이 강렬하고 짙은 울림으로 가슴에 새겨진다.


올해도 또다시 단풍의 계절이 찾아왔다. 그러나 단품은 나에게는 이제 식물의 잎이 단순히 변색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명이, 끊임없이 시시각각 색깔을 바꾸며 뿜어내는 금錦의 불꽃이다. 아름답다고 간단히 말해버릴 수 있는 자연 현상 같은 게 아니다. 그것은 나다. 그것은 생명이다. 오락, 야망, 허무, 사랑, 증오, 선의, 악의, 그리고 한없는 청청함까지 남몰래 지닌, 혼돈한 우리의 생명이다. 어느 시기, 어느 땅, 어느 경우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모두 금수의 나날을 살아가고 있다. (205~206쪽)


30년이 지난 지금 오늘을 사는 우리, 저마다 금수의 나날을 살다는 걸 확인한다. 때로 우리를 흔드는 모든 감정과 우리를 채우는 모든 감각의 숭고함을 생각한다. 살아 있다는 것, 그 모든 시간이 금수의 나날이라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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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백수린 외 지음, 이승희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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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도 사랑과 같아서 친구 사이에도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발생한다. 친구를 닮고 싶은 마음, 나보다 다른 이랑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질투를 한다. 선택을 해야 할 때 내 의견을 지지하고 따라주기를 바란다. 청소년기의 우정은 더욱 그러하다. 가족과 부모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공유하는 친구는 막대한 힘을 지닌 존재다. 우정을 테마로 한 『함께 걷는 소설』에서 백수린, 이유리, 강석희, 김지연, 천선란, 김사과, 김혜진은 각양각색의 우정을 보여준다. 좋아하는 작가, 끌리는 제목의 단편을 먼저 읽어도 좋다. 백수린, 이유리, 김지연, 김사과의 단편을 다시 읽으면서 발견하지 못했던 어떤 마음을 만났다. 친구가 전부였던 시절, 하나부터 열까지 알고 싶었던 마음 말이다.


백수린의 「고요한 사건」은 십 대에게 친구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 잘 보여준다.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를 온 ‘나’는 ‘해지’와 ‘무호’와 보냈던 시절을 회상한다. 어디에 사는지, 공부를 잘하는지 구분하여 친구들이 갈라졌다. 나는 재개발 주택에 살았지만 성적이 좋아서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친구는 같은 동네의 해지와 무호뿐이었다. 무호와 해지의 관계는 그들과 나의 관계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십 대의 우정은 영원할 거라 믿지만 시절 인연처럼 한 시절의 우정으로 끝나기도 한다.


해지에게 나는 그저 삶을 구성하는 한 부분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당시 나를 때때로 슬프게 했다. (「고요한 사건」, 26쪽)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말이다. 김사과의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에서 ‘이수영’은 대학에서 ‘한비’를 만난다. 평범한 이수영과 달리 한비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수영은 한비가 이끄는 세계에 매혹된다. 수영은 한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한비에게 수영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수영은 둘 사이의 관계가 우정이 아님을 알게 된다.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와 다르게 나와 닮은 부분에 끌려서 친구가 되기도 한다. 강석희의 「우따」에서 프랑스 파리의 명문 학교에서 만난 ‘나’와 ‘우따’는 인종차별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한국에서 온 나와 아프리카 출신인 우따. 대놓고 백인 학생들이 무시하거나 하지 않았지만 교묘한 차별을 느낄 수 있었다. 우따와의 만남, 우따가 일으킨 사건은 나를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현실과 타협하고 불의를 외면하려 할 때 우따의 편지를 읽으며 더 나은 삶을 위해 나간다.


더 나은 무엇이 되자. 그때 만나자. (「우따」, 98쪽)


친구는 이렇게 중요하다. 그래서 좋은 친구를 만나는 일은 어렵고 좋은 친구를 두었다면 성공한 거라 말하는 것이다. 좋은 친구를 만나는 일만큼 좋은 친구가 되는 일은 어렵고 중요하다.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고 잘못된 것을 고쳐주고 언제 어디든 함께 갈 수 있는 존재 말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않는 나를 이해하는 존재도 친구뿐이다. 이유리의 「치즈 달과 비스코티」 속 돌과 대화하는 ‘나’와 애니메이션 <월리스와 그로밋>을 좋아하는 ‘쿠커’는 그런 친구다. 남들이 뭐라든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는 일, 그게 진짜 우정이라고.

김혜진의 「축복을 비는 마음」은 그런 공감과 연대로 이어진다. 어른의 우정에 대한 것이라고 할까. 10대, 20대를 지나 맺는 관계는 일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설 속 ‘인선’과 ‘경옥’도 그러했다. 청소 일을 하는 ‘인선’은 신입 ‘경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을 잘 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인선은 그냥 지나치는 것들에 대해 경옥은 따지듯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이상한 건 경옥의 말을 인선이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경옥이 건넨 말 때문이라는 것을 인선은 나중에 알았다. 지금껏 들어본 적 없고, 듣게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그 말을 자신이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가 한 번쯤 그런 말을 해 주길 몹시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누구도 그런 다정한 말을 건넨 적이 없음을 깨닫게 된 거였다. (「축복을 비는 마음」, 234쪽)


일에 소질이 있다고 칭찬하는 말이나 추가 수당에 대해 언급하는 일, 인선이 한 번도 듣거나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나를 인정하고 응원하고 격려하며 부당한 일에 대해 함께 나서는 이가 친구가 아니면 누구겠는가. 우정이 아름다운 연대로 확장된다는 걸 말하는 소설이었다. 친구가 곁에 있어 든든하다는 건 말할 것도 없이.


또래가 아니어도 성별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달라도 공통 관심사 하나로 우리는 친구가 된다. 어떤 이익을 바라지 않고 서로에게 기대어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존재. 『함께 걷는 소설』을 읽으며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다. 언제나 나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친구들이다. 나도 그들에게 좋은 친구이었으면 한다. 우리들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살아가자는 마음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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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5-22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은 제게 너무나 배울점 많고 다정하신 알라딘 친구! 자목련님을 더 소중히 여기겠어요 이미 소중하지만....😍

자목련 2023-05-23 10:40   좋아요 0 | URL
은오 님, 더 다정한 자목련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독서괭 2023-05-22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를 소재로 한 소설들이군요! 백수린 작가 장편 출간되었던데 자목련님이 곧 읽고 리뷰 써주시지 않을지☺️

자목련 2023-05-23 10:41   좋아요 1 | URL
이미 출판된 책 가운데 친구를 소재로 한 단편을 골라 엮은 테마단편집이에요.
음,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우선 책을 주문하고요^^
 
연기 인간
알도 팔라체스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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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대를 살다 보면 위인의 등장을 기대한다. 새로운 기운을 불러올 존재, 이전과는 다른 세계를 열어줄 거라 믿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우상이 탄생하는 배경이라고 할까. 그러나 대중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한순간 매몰차게 돌아서기도 한다. 처음 만나는 이탈리아 작가 알도 팔라체스키의 『연기 인간』를 통해 대중의 심리와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확인한다.


제목인 『연기 인간』에서 무엇을 상상하는가? 나는 연기처럼 사라지는 존재만 생각했다. 그러니까 상징적 의미로 말이다. 하지만 소설엔 진짜 연기 인간이 등장한다. 33년 동안 굴뚝에 있다가 세 명의 노파가 불을 피우면서 생겨난 존재다. 세 명의 할머니 페나(고통), 레테(그물), 라마(창)의 이름을 따서 ‘페레라’라 불린다. 세상의 모든 관심은 그에게 향한다. 온몸이 연기로 이루어진 인간, 도무지 상상이 안 된다. 사람들은 단순하고 솔직한 그와 대화를 원하고 왕의 초대를 받기에 이르고 법전 집필이라는 임무까지 맡긴다.


“나는…… 나는…… 아주 가벼워요. 나는 아주 가벼운 사람입니다.” (11쪽)


왕과 만나기 전 그를 찾아온 이들은 그들 칭송하기에 바쁘다. 시인, 화가, 박사, 사진가, 대주교와 대화를 나누는 연기 인간은 자신은 연기로 되어 있는 가벼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 소설은 대화체로 이뤄진 독특한 형식을 지닌다.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다. 무대에 오른 연기 인간과 그를 보려고 모여든 관객들, 그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그를 숭배하는 격이다. 굴뚝에서 그를 꺼낸 세 노파만이 아는 게 아닐까.


유명 인사와의 만남에 이어 귀부인들의 다과회에서 그는 사랑, 시기, 열정, 질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은 귀부인 각자가 어떤 삶에 대한 고해성사 같은 것이다. 대중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를 정의하고 기뻐한다. 연기 인간과 나누는 대화는 철학적이고 분위기는 신비롭다. 이런 대화를 보자, 어떤 생각이 드는가?


“사람들은 인생의 가장 나쁜 순간에 죽습니까, 아니면 죽음이 인생의 가장 나쁜 순간입니까?” (145쪽)


소설 속에는 이처럼 존재, 죽음, 사랑, 자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등장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단 하나의 사랑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며, 삶이라는 형태가 하나의 방식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알려준다고 할까. 연기 인간을 따르는 군중의 모습은 마치 예수를 떠올리기에 충분한다. 그가 굴뚝에서 보낸 시간이 33년이라는 걸 기억하자. 그러나 예수의 제자가 그를 부정했던 것처럼 사람들도 페럴라를 부인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궁정의 하인장인 ‘알로로’가 페럴라처럼 되려고 불을 질러 죽은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페럴라 때문이라고 믿는 딸의 울부짖음에 시민들은 동요한다. 페럴라를 숭배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그를 비난하고 매도하기에 바쁘다. 하나같이 목소리를 높여 죄를 벌하라 말한다. 그들은 페럴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 환호하던 이들이다. 재판에서 그들은 페럴라가 협잡꾼, 경멸스러운, 추악하고, 무능한, 무덤에서 꺼낸 시체라고 증언한다. 페럴라의 변호는 단호하다.


“나는 가볍습니다.” (253쪽)


흥미로운 소재와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1911년에 출간된 이 실험적인 소설은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를 완벽하게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대중심리와 잘못된 집단지성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모르는 사이 새로운 연기 인간에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닐는지 경각심을 일깨운다. 시대적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해 등장하는 가짜 신과 그를 맹목적으로 따른 대중의 모습은 닮은 정도가 아니라 똑같지 않은가.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가. 우리가 놓치는 건 그 모든 게 연기처럼 가벼운 존재로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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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5-13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연기라니.. 반전인데요 ㅋㅋㅋ 당연히 상징일 줄 알았습니다.

자목련 2023-05-15 09:40   좋아요 1 | URL
저도 읽기 전에는 상징이구나 싶었어요. 근데 연기 인간, 여전히 상상은 잘...

책읽는나무 2023-05-13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연기가 그 연기가 아녔어요?ㅋㅋㅋ

자목련 2023-05-15 09:41   좋아요 1 | URL
연기에 대한 저마다의 상상과 해석!

서니데이 2023-05-16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100년 전에 쓴 책이지만, 아주 오래전 이야기 같은 느낌이예요.
세 노파가 불을 질러서 생겨났지만, 그 이전부터 있었던 존재라는 설정처럼요.
잘읽었습니다. 자목련님,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3-05-17 09:30   좋아요 1 | URL
왕, 귀족 같은 인물이 등장해서 그런 것 같아요. 예수를 따올리게 한 설정도 그렇고요.
서니데이 님, 즐거운 수요일 보내세요^^
 
모든 열정이 다하고 쏜살 문고
비타 색빌웨스트 지음, 임슬애 옮김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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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들이 부질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마주할 때, 자연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때, 생과 사의 순간을 경험할 때가 그렇다. 그러나 곧 잊고 만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며 주어진 일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울며 살아간다. 사는 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러다 또 드는 생각, 사는 게 별거 아닌데 왜 나는 이렇게 사는가?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휩쓸리듯 사는 게 맞나 싶은 거다. 버지니아 울프와 20세기 영국 문단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는 비타 색빌웨스트(근데 나는 왜 처음 듣는 작가인가)의 『모든 열정이 다하고』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남은 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소설을 읽는 누군가 말할지도 모른다. 소설 속 레이디 슬레인은 노년이지 않냐고, 아흔을 바라보는 사람이 그래선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자식들의 편에 설지도 모른다. 무슨 말이냐고? 그러니까 이 소설은 남편이 죽고 아들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혼자 다른 지역에서 혼자 지내는 할머니 이야기다. 영국 총리까지 지낸 남편의 장례식이 끝나고 레이디 슬레인은 여섯 명의 자식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싱글은 케이와 이디스를 제외한 나머지 넷은 어머니의 부양과 유산을 셈하며 서로 충돌하다.


레이디 슬레인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30년 전에 본 집과 중개인 이름까지 기억한다며 그 집으로 향한다. 원하던 집을 계약하고 하녀 제누와 단둘이 살기로 한다. 자식들의 방문도 최대한 금지했다. 거대한 저택과 자식들의 돌봄도 거부하는 할머니라니. 이상한 할머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1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주변을 의식하고 살아가니까. 총리의 아내였던 레이디 슬레인이라면 그 가족들에겐 얼마나 많은 시선이 따라오겠는가.


이제 레이디 슬레인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헌신적인 아내로 여섯 자녀의 어머니와 할머니, 증손자까지 둔 그녀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남편인 헨리 홀랜드는 좋은 사람이었다. 부모님도 그와 결혼을 원했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마음을 말할 수 없었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인도, 중국 등 여러 곳을 다니며 만찬과 파티를 열고 사람들을 만났다. 남편이 사랑의 증표로 끼워주는 반지를 주렁주렁 달고서. 하지만 이제 아니었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식과 같이 사는 일도 총리의 부인으로 사는 일도 원하지 않았다. 나만의 공간에서 말이 통하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살고 싶었다.


집은 자기만의 생을 지니고 있다. 마치 어디선가 불어온 화합의 숨결이 네모난 벽돌 상자 안으로 흘러들어, 감옥 같은 벽을 무너뜨리고 온 세상에 그 내부를 내보일 때까지 머무는 듯했다. 집이란 아주 사적인 것이었다. (66쪽)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는 자식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숨겨진 탐욕은 진절머리가 났다. 그들을 떠나 런던이 아닌 나만의 집에서 레이디 슬레인이 아닌 ‘데버라’로 살기로 한다. 집주인 ‘벅트라우트’ 씨와 수리를 맡아준 ‘고셔론’ 씨의 방문 만으로 충분했다. 그들과 나누는 작은 대화, 농담은 편안했다. 언제나 자신과 모든 걸 같이하고 걱정하는 든든한 ‘제누’도 함께. 가만히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는 시간이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인생은 호수야. 레이디 슬레인은 복숭아 향기가 풍기는 따뜻한 남쪽 벽 아래 앉아서 생각했다. 그 잔잔한 표면 위로 풍기는 따뜻한 벽 아래 앉아서 생각했다. 그 잔잔한 표면 위로 수많은 형체를 반사해 내는 호수, 태양이 금빛으로, 달이 은빛으로 물들이는 호수, 가끔 구름이 어둠을 드리우고 파동이 물결을 이루지만 결국에는 잔잔함을 되찾는 호수. 넘치지 않는 수면. 호수, 즉 인생은 손에 쥘 수 있을 정도로 작지 않으며 단단하게 압축하기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타인의 인생이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질문하면서 삶을 압축해 버린다. (126쪽)


새로운 인물 ‘피츠’의 등장도 나쁘지 않았다. 아들 케이의 나이 많은 친구였던 그는 혼자 사는 수집가 노인으로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레이디 슬레인은 처음엔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젊은 시절 인도에서 만찬에서 본 사람이라는걸, 그때 둘 사이에 떨림이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떠올렸다. 피츠는 레이디 슬레인이 아닌 ‘데버라’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람이었다. 내면의 목소리, 그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 말이다. 둘 사이에 어떤 사건이 있던 건 아니다. 은밀한 만남이나 연락조차 없었다. 헨리의 아내로 아이들의 어머니로 레이디 슬레인으로 살았던 시절은 끝났으니 노신사의 방문과 담소는 즐거웠다. 그 사실을 모르는 케이만이 피츠와의 약속이 줄어드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그리고 케이가 목도 피츠의 죽음. 놀라운 건 수많은 소장품을 박물관이 아닌 레이디 슬레인에게 남겼다는 것이다.


남편 헨리가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시선과 자식들은 레이디 슬레인을 주목한다. 그 많은 유산을 어떻게 할지 말이다. 하녀 제누도 내심 기대한다. 그 돈이면 마님을 더 잘 모실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디 슬레인은 예술품을 국가에 기증했고 돈은 병원에 기부했다. 아,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멋진 결정. 피츠 역시 그랬을 거라 레이디 슬레인은 믿었다. 자식과 손주의 방문은 막았지만 증손녀의 소식은 기껍게 받아들였다. 파혼을 하고 자신을 찾아와 음악가가 될 거라는 증손녀와의 대화는 영혼이 통하는 것 같다고 할까. 증손녀도 같은 걸 느꼈다. 증손녀가 떠나고 맞이한 죽음.


100년 전 소설 속 모습이 현재 우리와 다르지 않아 새삼 놀란다. 그러니 『모든 열정이 다하고』는 단순히 노년의 이야기로 말할 수 없다. 인생이란 무엇이며 살아오면서 자신만의 방을 가졌는가 묻는다. 타인과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산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설령 너무 늦게 인식하더라도 그 순간을 느끼며 사는 게 인생이라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 독립적이야 할 관계를 생각한다. 성장한 자식의 독립을 인정하듯 부모의 그것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소설 속 레이디 슬레인의 말처럼 인생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여정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인생은 “참 피곤하고, 단편적이고, 고루하고, 허무하지.” (200쪽)라는 걸 깨달으며 그 여정이 끝난다면 다행이다. 피곤하고, 고루하고, 재미없고 허무하지만 각자 인생의 주어진 몫만큼 열정을 다해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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