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되는 책들
최원호 지음 / 북노마드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아는 방법은 그 책을 먼저 읽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세상에 책은 많고 그것을 전부 읽을 수 없으니 때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 책에 대한 책을 읽고 나면 특정 작가나 책을 향한 편견이 사라지기도 하고 다른 생각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문학에 편중된 책읽기를 하는 내게 최원호의 『혼자가 되는 책들』은 예술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든다. 온라인 서점 MD여서 특별히 책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키웠을 것이다. 책이 출판되고 출판사의 소개글로 처음 만나는 책을 MD가 어떻게 읽고 소개하느냐에 따라 책은 이전의 책과 다른 책이 된다. 일반 독자보다 한발 앞서 책과 소통하는 그가 선택한 책이라는 점에서 남다르게 다가온다.

 

 남다르다는 게 쉽고 친절하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예술서는 어렵고 그것을 자신만의 분명한 색으로 들려주는 최원호의 글은 매력적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검색에 이어 메모를 하기에 이른다. 어쩌면 최원호 혼자만 알고 싶었을 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혼자가 되는 책들』에서 언급한 책은 누군가에게는 생애 첫 책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내게 음악의 기쁨이 그러하듯이. 지인이 언급한 책이라 제목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내용을 어떤 형식으로 다뤘는지 몰랐다. 그러나 책을 덮고 가장 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 음악 이론과 음악가에 대한 지루하고 재미없는 내용이 아닐까 짐작했던 내게 얼마나 신선하고 즐겁게 음악에 대한 이해를 설명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일반 청취자’를 대상으로 만든 라디오 프로그램 대본은 보다 풍부한 인용과 유머를 사용해서 가능한 한 접근성을 높인다. (61쪽, 『음악의 기쁨』에 대한 글 중에서)

 

 라디오 프로그램 대본으로 편안하게 독자에게 접근하는 예술서라면 누구라도 곁에 둘 수 있는 친구처럼 친근한 책이 될 것이다. 몰랐던 책에 대해 알고 싶다는 건 거대한 변화라 할 수 있다. 결국엔 변화를 가져오는 글을 쓰게 만든 대단한 존재가 바로 책이라는 것이다. 예술서에 대한 최원호의 애정이 불러온 결과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읽고 싶게 만드는 힘을 지닌 최원호가 부럽다. 지금 그는 무슨 책을 읽고 무슨 음악을 듣고 있을까. 일상 속에 예술이 스며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예술서라면 그것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건 『혼자가 되는 책들』가 아닐까 싶다. 드라마 밀회로 유명한 예술가로 알고 있었지만 이런 문장으로 요약되는 삶의 주인공 리흐테르가 나는 더 궁금하고 조금 더 알고 싶어지니까.

 

 가공할 만한 기억력으로 인해 지나온 삶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모두 바라보면서 삶의 뒤편으로 물러서야만 하는 사람. 그때 삶이란 별들처럼 영영 그 자리에서 빛나는 기억들일까 아니면 어둠을 향해 뒷걸음질 치는 발걸음일까. (174쪽, 『리흐테르』에 대한 글 중에서)

 

 어떤 책을 먼저 읽어야 할지 몰라서 ​혹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서 아예 예술은 멀고도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에게 최원호가 권하는 책들은 아주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다. 그가 먼저 읽은 음악, 먼저 만난 그림, 먼저 만난 사진을 통해 그와 함께 예술에 다가갈 것이다. 더불어 음악, 미술, 영화, 사진 중 어느 분야에 더 끌리는지 알게 된다. 읽고 싶은 제목을 먼저 읽어도 괜찮다. 어느 부분에서 시작하든 문은 열리니까. 이처럼 한 권의 책은 예술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선물한다. 예술뿐 아니라 삶에 대한 시선도 달라진다. 몰랐던 것을 아는 기쁨,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 타인의 삶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독자는 그저 사진 속 사람의 형태를, 그들의 얼굴과 몸을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사진 안에 찍힌 사람들은 감상자의 감정적 소비를 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피사체들은 감상자의 마음에 빚을 지지 않고 동등한 인간으로서 사진 위에 존재한다. 이 사진들을 소용되지 않고 그저 존재한다. (192쪽, 『침묵의 뿌리』에 대한 글 중에서)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책 속의 예술서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책들은 혼자가 될 것이다. 나 역시 혼자가 된다. 책과 함께하는 시간도 즐겁지만 혼자 책을 곱씹는 시간도 충만하다. 예술에 대한 감각이 성장하는 기분이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음식을 먹는 일은 위대하고 숭고한 일이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는 타지에 나간 자식에게 항상 밥 먹었냐고 묻는다. 물론 밥 한끼 굶는다고 큰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끼니를 놓칠 정도로 바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함께 밥 먹을 누군가가 곁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그 마음을 온전히 아는 나이가 되었을 때 엄마는 곁에 계시지 않았다. 그러니 밥을 짓거나 계절마다 제철 음식으로 상을 차릴 때마다 슬그머니 그리움이 올라온다.

 

 좋아하는 사람과 먹었던 음식, 좋아하는 이가 즐겨 먹었던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를 떠올리는 건 당연하다. 함께 먹었던 즐거운 기억을 다시 쌓고 싶은 간절함. 그러니까 음식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추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가 된다. 산문 『황석영의 밥도둑』엔 그런 애틋한 그리움과 삶이 있었다. 전쟁을 피해 피난민으로 보냈던 시절의 맛, 감옥의 고독함을 달래주던 맛, 다시 맛 볼 수 없는 북한의 맛, 타국의 시간을 채워준 맛, 절집을 떠돌며 방랑했던 시간의 맛, 친구와의 이별로 기억되는 맛이 있다. 누구보다도 질곡의 세월을 살아낸 황석영을 든든히 지켜준 맛을 하나하나 맛본다. 아무리 상상해도 나는 그 어떤 맛도 짐직조차 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가족과 친구가 생각나고 언젠가는 꼭 같이 먹어야겠다 다짐하는 마음만 얹을 뿐이다.

 

 황석영이 들려주는 맛은 모두 특별한 인생의 맛이다. 나의 부모 세대가 그랬듯 어렵고 힘든 생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맛이라 그렇기도 하고 지금은 곡진한 그리움의 맛이 되었기 때문이다. 감히 그 삶을 안다고 할 수 없는 나는 감옥에서 카드깡으로 들어온 아이와 부침개를 먹으며 나누던 짧은 대화를 몇 번이고 읽다가 울컥 목이 멘다. 아무 생각 없이 차려주는 대로 먹던 밥상과 무심했던 일상의 소중함을 놓치고 사는 뒤늦게 밀려오는 후회. 어제와 같은 오늘이, 오늘과 같을 내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는 그 아이와 같은 마음이 된다.

 

 “왜 그래, 뜨거워서 그러냐?”

 “아니요.”

 “그럼 뭣 땜에 그래?”

 “어머니 생각 나서요.” (44쪽)

 

 나이가 들면서 점점 음식을 만들고 먹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생각한다.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음식을 먹을 때 그 안에 담긴 노고와 정성을 먹는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러니까 먹는다는 일은 거룩한 일이다. 함께 먹는 즐거움도 말이다. 어디서든 생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는 먹어야만 한다. 무엇을 먹든 얼마나 먹든. 허투루 대충 끼니를 때우는 일을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산다는 건 대단하게 아니라 먹고사는 일에 불과하다는 어른들의 말에 담긴 속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황석영 역시 그런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의 생을 따뜻하게 채워준 사람들과 음식에 대한 찬가이면서도 소박하고 평범한 우리네 밥상 이야기. 책을 통해 들려주는 친절하면서도 독특한 조리법, 식재료에 대한 자세한 설명, 지역별 다양한 향토음식, 시대의 풍경까지. 뭔가 대단한 밥상 이야기가 아니라 이웃과 친구와 함께 음식을 먹는 즐거움과 그들에 대한 애정과 감사가 내게로 전해지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음식은 사람끼리의 관계이며, 시간에 얹힌 기억들의 촉매이다.’ (267쪽, 초판 서문 중에서)

 

 식욕을 돋우는 제철 음식이 있듯 그리움을 불러오는 음식이 있다. 큰언니가 떠나고 처음 맞는 봄이다.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된장을 푼 냄비에 쑥과 냉이를 가득 넣어 끓인 된장국을 먹을 때마다 맛있다며 먹었던 큰언니가 함께 한다. 좀 더 많이 같이 밥을 먹고 맛있는 음식을 해줄 걸 아쉬움이 남는다. 평범한 일상의 맛을 그리워하는 삶이 지속된다.

 

 맛을 음미한다기보다 허기를 채우는 목적으로 쉽고 빠르게 김밥 한 줄, 컵라면 한 개, 샌드위치 하나가 밥도둑이 되는 요즘이다. 그것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맛인가. 아무리 떠올려도 따뜻한 인생의 맛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진수성찬이 아니더라도 좋은 사람과 음식을 먹으며 수저를 들고 고개를 들며 눈을 맞추는 일은 세상 그 무엇보다 성스럽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건 상대에게 나를 보여주는 일이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며 소중한 추억을 공유하는 일이다. 올봄에는 의미 없이 지나가는 말로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아니라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는 시구절처럼 내 곁에 있는 좋은 이들과 밥을 먹고 싶다. 갓 지은 밥과 쉰 김장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이고 매콤한 냉이 무침과 개나리처럼 노란 계란말이의 소박하고 단출한 상이라도 충분히 행복한 맛으로 배부를 테니. 진정한 밥도둑은 사람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 오늘의 젊은 작가 8
김엄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상황에서든 목소리를 낸다는 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것.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동료와 식사 자리나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그렇다. 김엄지의 소설 『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속 E도 그랬다. 속말을 꺼내지 않는다.

 

 ‘E는 올해 봄부터 나이가 들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봄부터 망설임이 늘었다. 사소한 고민에 빠졌고, 별것 아닌 일에 쉽게 화가 났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시로 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할 만한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것과 별개로 E는 자주 포기하고 싶었다. 울적했고,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아도 땀이 났다. 식은땀의 원인에 대해서, 나이가 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E는 생각했다.’ (57~58쪽)

 

 이 소설은 단순한 일상의 반복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주말, 출근, 산책이 전부다. 매일 같은 길을 지나 출근하고 동료 a, b, c와 점심을 먹고 퇴근 후 술자리를 갖는다. 흐리거나 어둡고 비가 오는 거리의 풍경과 함께 말이다. 그러니까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어디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지독한 연애를 꿈꾸거나 진급을 위해 열심히 일하거나 취미를 갖거나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E는 항상 피곤에 지쳐 자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산다. 그의 삶은 어둡거나 비가 내리는 거리처럼 지저분하고 불투명하다. 그는 오늘을 사는 직장인의 표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답답하고 짠하고 안타깝다.

 

 직장 동료와 나누는 대화도 별 의미가 없다. 진지하게 고민을 나누지도 않는다. 그러다 a가 사라진다. a의 자리에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d가 합류했을 뿐 일상은 변화하지 않는다. a가 아니라 b, c, E가 사라져도 그랬을 것이다. 장마는 길어지고 거리의 비둘기는 발목이 잘리고 흔들리던 앞니가 부러지고 빨래는 밀리고 방에는 곰팡이가 늘어난다. 오직 E 혼자만 a가 궁금할 뿐이다. a와 함께 본 연극과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를 생각한다. 무엇이 a를 사라지게 했는지, 아니 결심하게 했는지 궁금하다. 

 

 반복되는 삶에서 휴식은 의미가 없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무기력한 삶과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삶의 원인은 개인에게 있는 것일까? 여전히 a를 생각하며 어제와 같은 출근길에서 목소리를 E.출근길에 E는 출근하지 않기로 했다. 결심하고 나자 곧 뿌듯해졌다.’ (141쪽) E의 결심을 응원하며 그의 속말이 반가운 건 나뿐일까?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김엄지의 소설은 비 오는 날이면 외출을 하는 한 남자를 미행하는 취업 준비생의 이야기인 한재호의『부코스키가 간다』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불안의 날들을 보내는 청춘을 담담하게 그려낸 문진영의 『담배 한 개비의 시간』를 떠올린다. 제한된 공간에서 반복된 문장으로 인물의 감정을 묘사한다. 반복된 문장으로 독자에게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독특하면서 중독성 강한 소설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16-03-25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이 작가의 인터뷰를 듣고 관심이 갔었어요. 독특한데 그 독특함이 싫지 않더라고요. 십년 뒤에 어떤 모습일 것 같냐는 질문에 살아있을 지 모르겠다,는 응답에 놀라기도 하면서 사실 그게 엄연한 진실인데 나도 외면하고 살았구나 싶기도 하고...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김애란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색깔이 또 다르겠죠?

자목련 2016-03-28 12:02   좋아요 0 | URL
황정은이 떠올랐어요.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 다른 색깔인데 닿는 곳이 같다는 느낌..
문지 블로그에서 이달의 소설로 단편을 만났을 때는 잘 읽히지 않았어요. 장편과 소설집이 동시에 출간되었을 때 이 작가, 뭐지? 싶었어요. 장편의 느낌이 나쁘지 않아서 단편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를 읽어보려고 해요.
 
아름다워서 슬픈 생
금수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연, 인연, 필연의 만남이 있다. 우연으로 시작된 만남은 인연으로 자라기도 하고 누군가는 우연을 필연이라 믿기고 한다. 피천득은 수필 인연에서 아사코와의 만남 중 세 번째 만남은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헤어진 이들의 만남은 우연, 인연, 필연 중 어디에 해당되는 것일까. 그것도 연인이 아닌 이혼으로 남이 된 이들의 만남이라면. 살다 보면 한 번쯤 마주칠 수 있다고 해도 전 남편에게 편지를 보내는 근황을 묻고 지난날의 헝클어진 삶을 풀고자 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이다. 이혼 후 재혼을 한 아키는 장애아들을 낳고 키우며 살고 있다. 우연히 전 남편 아리마를 만난다.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남자가 불륜 상대와 동반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에 헤어졌고 단 한 번도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이끌림에 편지를 쓰고 만다. 아키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아키는 여전히 아리마를 사랑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증오와 복수심에 따지고 싶었던 것일까?

 

 늦었지만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고 남겨진 사랑을 확인하고 재결합을 하는 건 아닐까, 섣부른 판단을 했던 내게 두 사람의 편지는 뻐근한 통증을 안겨준다. 돌이킬 수 없어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인생의 한 부분을 돌아볼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준 것이다. 그랬다. 편지를 보낸 용기, 지난 삶과 현재의 삶을 고스란히 들려줄 수 있는 용기.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혹은 나를 감추기 위해 포장된 삶이 아닌 진짜 삶.

 

 ‘숲이 있는 곳을 지나서 산길을 오른쪽으로 돌아가 완전히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도 저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서 두 사람이 사라져 간 구부러진 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고 있는 그 길의 금빛 햇빛이 예전에 제 인생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쓸쓸하고 황량한 빛의 칼날이 되어 저의 지저분하게 때가 낀 마음을 찔렀습니다.’ (아리마의 편지 133~134쪽)

 

 ‘모든 인간이 죽음을 맞이할 때 각자가 한 행위를 보고 각자의 삶에 의한 고뇌나 안온을 이어받고, 그것만은 소실되지 않는 목숨이 되어 우주라는 끝없는 공간, 시작도 끝도 없는 시공 속으로 녹아드는 것이 아닐까?’ (아리마의 편지 231쪽)

 

 어쩌면 편지라서 아키와 아리마는 서로에게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과거에 대한 회한이나 소회가 아니라 한 번도 내뱉지 않았던 심연의 목소리를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서로의 인생에서 떼어낼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지만 떼어낸 흔적이 선명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고 할까. 그것을 누군가는 고백이라 할 것이고, 누군가는 사랑이라 할 것이고, 누군가는 용서라고 할 것이다.

 

 ‘‘지금’ 당신의 생활 방식이 미래의 당신을 다시 크게 바꾸게 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과거 같은 건 이제 어쩔 도리가 없는, 지나간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엄연히 과거는 살아 있어 오늘의 자신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 사이에 ‘지금’이 끼여 있다는 것을 저도, 당신도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아키의 편지, 245쪽)

 

 『환상의 빛』에서 죽음을 통해 아름답고 쓸쓸한 생을 보여줬던 미야모토 테루는 여전히 지독한 허무와 아픈 상처를 담아낸다. 나는 왜 지금을 살고 있는지 무엇이 나를 이토록 아프게 하는지 근원을 알 수 없는 인생의 고독과 슬픔을 말이다. 그것들에 대한 의문을 잊은 채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의 생인지도 모르지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6-03-11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ㅡ저는 제가 그러고플 때가 있어요...잘 살았음 싶고..
인생의 어느부분을 함께했던 사람이니 그냥 부정하며 살기보단 ㅡ친구일수 있다면 좋겠으니까요.
아마 죽어도 싫을지 ㅡ저쪽은 ㅡ몰라도요.
ㅎㅎㅎㅎㅎ 이 여유는 대체 어디서 오는건지 ㅡ저의 경우...하핫!^^
자목련 님 말처럼 근원을 알수없는 슬픔과 고독, 허무들을 이미 맛봐버린 게 될까요?!^^

자목련 2016-03-13 17:47   좋아요 1 | URL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관계가 아닐까 싶어요.
슬픔과 고독, 허무를 맛을 보셨으니 이제 통섭의 맛을 보시면 어떨까요?

회색이라는 말이 아닌 다른 말로 표현하고 싶은 오후, 맑게 보내세요!!

[그장소] 2016-03-13 19:19   좋아요 0 | URL
언젠가 먼 산빛을 보고 친구는 제게 저 게 무슨색으로 보이느냐 하길래 저는 먼 회색빛 ㅡ먹을 엷게 푼듯해 ㅡ그리 대답했었는데 친구는 보라빛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회색빛도 달리 보고자 하는 마음이 예뻐서 순간 친구를 마주봤었는데 ..
그런 저녁 만들고 계신지요? ^^

통섭은 혼자서 우긴다고 되는게 아닌가봐요.
소통가능할거라 믿은 제가 바보였다는 ㅡ일주일을 ..보내고 말예요.ㅎㅎㅎ
관계는 어린아이와도 만들려면 애써야 하거늘..
그렇죠? ^^;;

자목련 2016-03-15 18:06   좋아요 1 | URL
보라빛을 보는 친구분의 마음이 저도 예쁘네요.
맞아요, 소통은 혼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순환하는 것처럼 소통도 그러하겠지 싶어요. 관계, 정말 어려워요.
 
한낮인데 어두운 방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위기에 취하다는 말이 있다. 의도하지 않았던 말과 행동을 쏟아내는 대부분은 계획이 아닌 충동에 의한 것이 많다. 돌이켜보면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 순간 자신의 감정에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한낮인데 어두운 방』속 미야코도 묘한 분위기에 동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번이 아닌 지속적인 어떤 감정이라면 그건 다른 것이다.

 

 아주 규칙적인 삶을 사는 여자 미야코는 평온하다.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 남편 히로시가 서운하지만 불만을 토할 정도는 아니다. 아이가 없는 결혼생활도 만족스럽고 살림을 하는 생활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떨림은 없다. 그것을 걱정이라 여기지 않고 살아간다. 미야코를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으로 자주 인사를 나누는 미국인으로 대학 강의를 하는 존스 씨다. 그 사실을 모르는 건 미야코 혼자다.

 

 존슨 씨와 가까워진 건 함께 동네를 산책하면서다. 미야코는 이상하게 존스 씨가 편하고 말이 통하는 게 신기했다. 히로시와는 다른 느낌이랄까. 딱히 잘못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히로시에게도 존스 씨와의 산책을 모두 말했으니까. 문제는 존스 씨 집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을 남편의 반응이었다. 마치 바람을 피운 것처럼 매도한다. 놀랍게도 남편과 다툰 후 미야코는 존슨 씨를 찾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진다.

 

 ‘확실히 나는 존슨 씨와 있으면 평소 못 느끼던 것을 많이 느꼈어. 바람을, 햇살을, 새소리를.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말았어. 자유를, 키득키득 웃고 싶어질 만한 비밀스러운 떨림을,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한 마음 든든함을 느끼고 말았어.’ (186쪽)

 

 권태로운 일상에 한 줄기 바람이 분 것이다. 예전에 몰랐던 바람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죄라 부른다. 어떤 떨림과 흥분을 느끼는 게 과연 죄일까. 앨리스 먼로의 단편소설 「일본에 가 닿기를」 (적극적으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려는 주인공이 등장한다)에서도 죄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런데 나는 궁금하다. 죄라는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말이다. 그저 돌이킬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을 뿐이다.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이는 오직 한 사람, 자신밖에 없다. 그러니 미야코를 지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의 감정이고 선택이니 말이다.

 

 우스갯소리로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하는 말이 맞을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구도 그 사람이 될 수 없으니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들어주고 내 의견을 듣고자 한다면 솔직한 의견을 들려주면 된다. 소설이라는 세계에서 마주한 상황이라 나 역시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소설로 돌아오면 그저 그런 연애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야코의 이런 고백(‘나, 세상 밖으로 나와버렸어.’)으로 우리는 연애 소설이 아닌 성장소설로 봐야 한다. 안전한 성에서 인형처럼 살았던 미야코가 그 성을 버리고 세상 밖으로 나온 건 다름 아닌 하나의 성장이다. 뻔한 결말이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벗어나서 내가 그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삶.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이번에도 잔잔하다. 평화롭게 지속되는 일상의 묘사와 한 겹 옷을 입은 듯 절제된 감정의 표현. 오히려 잔잔해서 그 안에서 몰아치는 광풍은 점점 더 커진다. 미야코의 심연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미야코는 한낮인데 어두운 방 분위기에 취한 게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단지 그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