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 오늘의 젊은 작가 8
김엄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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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상황에서든 목소리를 낸다는 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것.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동료와 식사 자리나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그렇다. 김엄지의 소설 『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속 E도 그랬다. 속말을 꺼내지 않는다.

 

 ‘E는 올해 봄부터 나이가 들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봄부터 망설임이 늘었다. 사소한 고민에 빠졌고, 별것 아닌 일에 쉽게 화가 났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시로 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할 만한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것과 별개로 E는 자주 포기하고 싶었다. 울적했고,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아도 땀이 났다. 식은땀의 원인에 대해서, 나이가 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E는 생각했다.’ (57~58쪽)

 

 이 소설은 단순한 일상의 반복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주말, 출근, 산책이 전부다. 매일 같은 길을 지나 출근하고 동료 a, b, c와 점심을 먹고 퇴근 후 술자리를 갖는다. 흐리거나 어둡고 비가 오는 거리의 풍경과 함께 말이다. 그러니까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어디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지독한 연애를 꿈꾸거나 진급을 위해 열심히 일하거나 취미를 갖거나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E는 항상 피곤에 지쳐 자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산다. 그의 삶은 어둡거나 비가 내리는 거리처럼 지저분하고 불투명하다. 그는 오늘을 사는 직장인의 표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답답하고 짠하고 안타깝다.

 

 직장 동료와 나누는 대화도 별 의미가 없다. 진지하게 고민을 나누지도 않는다. 그러다 a가 사라진다. a의 자리에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d가 합류했을 뿐 일상은 변화하지 않는다. a가 아니라 b, c, E가 사라져도 그랬을 것이다. 장마는 길어지고 거리의 비둘기는 발목이 잘리고 흔들리던 앞니가 부러지고 빨래는 밀리고 방에는 곰팡이가 늘어난다. 오직 E 혼자만 a가 궁금할 뿐이다. a와 함께 본 연극과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를 생각한다. 무엇이 a를 사라지게 했는지, 아니 결심하게 했는지 궁금하다. 

 

 반복되는 삶에서 휴식은 의미가 없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무기력한 삶과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삶의 원인은 개인에게 있는 것일까? 여전히 a를 생각하며 어제와 같은 출근길에서 목소리를 E.출근길에 E는 출근하지 않기로 했다. 결심하고 나자 곧 뿌듯해졌다.’ (141쪽) E의 결심을 응원하며 그의 속말이 반가운 건 나뿐일까?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김엄지의 소설은 비 오는 날이면 외출을 하는 한 남자를 미행하는 취업 준비생의 이야기인 한재호의『부코스키가 간다』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불안의 날들을 보내는 청춘을 담담하게 그려낸 문진영의 『담배 한 개비의 시간』를 떠올린다. 제한된 공간에서 반복된 문장으로 인물의 감정을 묘사한다. 반복된 문장으로 독자에게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독특하면서 중독성 강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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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03-25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이 작가의 인터뷰를 듣고 관심이 갔었어요. 독특한데 그 독특함이 싫지 않더라고요. 십년 뒤에 어떤 모습일 것 같냐는 질문에 살아있을 지 모르겠다,는 응답에 놀라기도 하면서 사실 그게 엄연한 진실인데 나도 외면하고 살았구나 싶기도 하고...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김애란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색깔이 또 다르겠죠?

자목련 2016-03-28 12:02   좋아요 0 | URL
황정은이 떠올랐어요.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 다른 색깔인데 닿는 곳이 같다는 느낌..
문지 블로그에서 이달의 소설로 단편을 만났을 때는 잘 읽히지 않았어요. 장편과 소설집이 동시에 출간되었을 때 이 작가, 뭐지? 싶었어요. 장편의 느낌이 나쁘지 않아서 단편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를 읽어보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