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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노이의 불평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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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친 것들은 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지나친 사랑, 지나친 관심도 그러하다. 문제는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기준이라는 점이다. 사랑을 절제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자식에 대한 그것은 불가능한 요구다. 부모에게 자식은 소유물은 아니지만 언제나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지나친 사랑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이해할 수 없다. 필립 로스의 『포트노이의 불평』은 이처럼 지나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인공 앨릭스에게 어머니의 애정은 집착처럼 여겨졌다.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염려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감시와 다르지 않았다. 사춘기 소년에게 성은 무한대의 상상 속으로 빠져들기 충분한 주제였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고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은 화장실로 제한되었다. 화장실에서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 아들의 건강을 위해 화장실을 지키는 어머니, 아들의 자유로운 설사가 부러운 변비로 고통받는 아버지라니. 정말 필립 로스답다.

 

 “다들 나 좀 가만 내버려두면 안 돼요?” 34쪽

 

 앨릭스의 주장은 옳았다. 그냥 내버려둬야 했다. 아들은 사춘기였으니까, 머릿속 음란과 쾌락이 꽃을 피워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아들이 어떤 마음인지 알지 못한 채 화장실에 오래 있다는 건 건강과 직결된 문제였다. 어디 그뿐인가. 앨릭스는 유대인의 삶이 족쇄처럼 느껴졌다. 부모와 종교로 대립하는 일도 어느 집에서나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다. 앨릭스에게는 평범 그 이상의 문제였던 것이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자신의 성에 대한 이야기(그러니까 아주 대놓고 직설적인 묘사를 통해)를 들려준다. 부모를 비롯한 친척, 연인과의 마찰도 함께 말이다. 서른 중반이 된 엘리트 변호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의 삶은 불평으로 가득하다. 앨릭스 스스로 유대인의 전통과 규율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그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가 자신의 고통을 정신과 의사 슈필포겔에게 쏟아놓는 게 안쓰러운 정도다.

 

 “아, 내가 왜 계속 이렇게 늘어놓는 거죠? 왜 내가 사춘기 때의 졸린 듯한 높은 목소리로 계속 이렇게 늘어놓는 겁니까? 맙소사, 부모가 살아 있는 유대인 남자는 열다섯 살 난 애예요. 부모가 죽기 전에는 계속 열다섯 살 난 애라고요!” 162쪽

 

 왜 앨릭스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일까. 무엇이 그를 붙잡고 있는 것일까. 반복하듯 등장하는 통제 불가능한 성에 대한 욕구와 여성편력으로 여겨지는 행동, 그 뒷면에 가려진 앨릭스의 냉소적인 내면이 궁금할 뿐이다. 출판 당시인 1969년을 생각하면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을 게 맞다. 그러나 4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적나라하게 표현한 분노 표출은 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읽기 불편한 정도는 인정한다. 필립 로스의 유머와 풍자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어느 누구도 앨릭스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슈필포겔 선생님, 이게 내 인생입니다. 내 하나뿐인 인생이라고요. 나는 유대인의 우스갯소리 한가운데서 인생을 살고 있단 말입니다! 나는 유대인의 우스갯소리에 나오는 아들이에요. 문제는 이게 전혀 웃을 일이 아니라는 거죠! 정말이지, 누가 우리를 이렇게 불구로 만든 거죠? 누가 우리를 이렇게 병적으로 히스테리에 시달리는 약한 사람들로 만들었느냐고요? 왜, 왜 그 사람들은 지금도 소리를 지르는 겁니까.’ (58쪽)

 

 고백하자면, 소설의 초반에 등장하는 꼬마 앨릭스를 만나는 동안은 정말 재미있었다. 하지만 나는 ‘앨릭스’보다 『울분』의 ‘마커스’에게 애정을 표한다. 그렇다고 필립 로스에 대한 무한 애정이 식은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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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흩날리는 밤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김미림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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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인한 4월이다. 눈이 닿는 곳마다 꽃비가 내린다. 그러나 눈부신 풍경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없는 날들이다. 이런 책을 통해 잠시 잔인한 봄을 외면한다. 벚꽃 흩날리는 밤이란 매혹적인 제목의 책은 맥주바 ‘가나리야’ 를 운영하는 마스터 구도를 중심으로 단골손님들의 사연을 들려주는 연작 소설집이다. ‘가나리야’ 는 퇴근 후 맥주 한 잔과 맛있는 안주를 곁들여 수다로 지친 하루의 피곤을 푸는 공간인 것이다. 그러니까 다섯 편의 소설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우리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발이 닿는 범위 내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안도감을 안겨 준다. 혹은 맥주와 술안주, 그 밖에 여러 가지 요소가 정신을 맑아지게 하는 장소. 그곳이 바로  ‘가나리야’ 다.’ (15주년, 13쪽>

 

 표제작 <벚꽃 흩날리는 밤>은 형사인 간자키가 죽은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편지를 읽고  ‘가나리야’ 을 찾은 이야기다. 아내가 그곳에 간자키를 위한 마지막 선물을 부탁해 두었다는 것이다. 간자키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그곳의 분위기를 살피며 구도가 권하는 음식을 먹는다. 분홍빛 녹차밥을 먹으며 아내가 해주었던 녹색의 녹차밥을 생각한다. 그러다 연두색 꽃이 피는 벚나무의 이름이 교이코라는 것을 떠올린다. 5년 전에 간자키가 담당한 사건 피의자와 관계된 인물이었던 유리에를 감시했던 사연을 구도에게 이야기한다. 교이코가 필 무렵 한 공원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그녀에게 연정을 품은 것이다.

 

 교이코는 왕벚나무가 다 지고 나서 꽃을 피우는 품종이었고, 꽃잎이 연두색이라는 점도 특별하다. 무엇보다 다른 벚나무의 꽃이 모두 떨어지고 나면 공원 안이 아주 훤해진다. 쇼부 호수의 건너편에서도 나무 아래 서성이는 유리에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일 터였다.’ (벚꽃 흩날리는 밤, 81쪽)

 

 간자키는 그 뒤에도 봄마다 교이코 꽃이 필 때 그 공원에서 연두색 원피스를 입은 유리에를 지켜봤다고 고백한다. 어느 해 그녀가 종적을 감출 때가지 말이다. 아내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가나리야’ 까지 와서 녹차밥을 먹게 만들었을까. 작가 ‘기타모리 고’는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묘사로 죽은 아내와 사라진 유리에게 대한 궁금증을 불러온다. 그러니까 이 소설집은 이성적 판단을 요구하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 미스터리다.

 

 섬뜩하거니 기괴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다. 택시 기사를 하는 히우라가 고향 단골 요릿집의 15주년 행사 초대장을 받는<15주년>도 마찬가지다. 파티에서 히우라는 요릿집 딸인 유미에게 15년 전 고향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의 범인을 찾아달라는 황당한 부탁을 받는다. 그건 죽음을 앞둔 어머니가 딸 유미를 지켜줄 사람으로 히우라를 시험한 것이다. 그 외의 단편도 마찬가지다.  ‘가나리야’ 에 들러 구도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걱정을 털어놓을 뿐이다.

 

 특별한 점은 맥주바  ‘가나리야’ 의 마스터 구도의 역할이다. 정성을 담은 음식으로 지친 영혼을 달래주면서 묵묵히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건을 분석하고 해결한다. 마치 그곳에 오면 모든 걸 구도에게 말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면 맞을까. 이 단편집이 감성을 자극하는 건 음식 때문이기도 하다. 단편마다 등장하는 음식은 마치 묘약처럼 느껴진다.

 

 입안에 넣자마자 춘권의 외피가 생두부 껍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용물은 송이버섯만이 아니었다. 가늘게 썬 갯장어와 잘게 썬 파드득나물이 섞여 있다. 그리고 일반 당면 대신 칡당면을 사용했다. 옆에 곁들여진 기포 모양의 음식에는 가쓰오부시와 다시마의 진한 맛이 배어 있었다. 입에 넣자마자 음식은 사르르 녹아들면서 환상적인 맛을 남기고 사라졌다. (나그네의 진실, 164쪽)

 

 피곤한 일상과 걱정을 뒤로하고 편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치유의 공간, ‘가나리야’를 상상한다. 꽃이 진 자리 남겨진 슬픔의 봄을 찬연한 소설이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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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빛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5
이누이 루카 지음, 추지나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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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끊임없이 발생한다. 다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니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들의 존재를 의아해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나에게도 내가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신비로운 끌림이라 설명하고 싶은 이누이 루카의 단편집 『여름 빛』을 읽으면서 내내 그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내게 속한 어떤 특별한 감각 같은 것 말이다.

 

 책에 수록된 여섯 편의 이야기는 무섭기보다는 아련했다. 누군가와 이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사다 지로의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이 떠올랐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처연하다. 1부와 2부로 나누어 · · 귀와 이 · · 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니까 신체 부위와 감각에 대한 사연인 것이다. 

 

 표제작인 「여름 빛」은 표지를 통해 예상할 수 있는 눈에 대한 내용이다. 소설은 현재가 아닌 1945년 2차 세계대전 말 큰어머니 댁인 세토우치 어촌으로 피난 온 소년 데쓰히코와 다카시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다카시는 학교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다. 얼굴 왼쪽 전반에 시커먼 반점이 있는데 다카시의 엄마가 임신 중 배가 고파 상괭이를 먹어서 생긴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마을에선 상괭이는 신령과 같은 존재라서 다카시에게 저주가 내린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였을까, 놀랍게도 다카시에겐 죽음을 보는 능력이 있었다. 누군가 곧 죽을 사람을 보면 다카시의 왼쪽 눈동자의 푸른빛이 반짝이는 것이다. 그러나 데쓰히코에겐 상관 없었다. 다른 이들에게 다카시는 저주받은 괴물처럼 보였지만 데쓰히코에게는 언제나 함께 하고 싶은 친구였다.

 

 ‘다카시의 작고 둥근 밤 속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하나, 둘 헤엄친다. 더 집중해서 응시하자 암흑 속에서 광점이 순식간에 증식했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분되지 않는 신기한 푸른빛이 줄지어 움직인다.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여름 빛」, 54~55쪽)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 공습경보가 끊이지 않는 날들, 가족과 떨어진 소년의 외로움은 오직 다카시를 통해서만 위로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반딧불 처럼 반짝이는 눈을 통해 죽음을 예감하는 능력이라니, 어린 소년에게는 참으로 가혹하다. 이누이 루카는 이처럼 소외당한 사람들의 슬픔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들은 모두 다카시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요양을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교수가 소개한 집에서 지내는 「쏙독새의 아침」의 주인공 이시쿠로는 마스크를 쓴 기묘한 소녀를 본다. 마스크를 벗은 소녀의 입술은 새의 부리와 수염이 있었다. 이시쿠로에게만 보이는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백 개의 꽃」에서 기미는 자신보다 예쁜 동생 마치를 두고 저주의 주술을 외운다. 모두가 동생에게만 관심을 보여 속상한 것이다. 형제나 자매가 있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졌던 마음이라 기미가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2부에서는 기르던 금붕어가 돌연변이 괴물 금붕어가 되어 사람을 공격한다는 섬뜩하면서도 기발한 이야기 「이」, 마술사 아빠에게 학대를 받는 소년 다쿠의 하늘을 나는 능력 「Out of This World」, 감정을 냄새로 맡을 수 있는 아야코의 사연 「바람, 레몬, 겨울의 끝」에서도 이누이 루카는 공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특히 누군가의 감정이 풍기는 냄새를 맡는 후각을 지닌 「바람, 레몬, 겨울의 끝」은 정말 매혹적인 이야기다. 주인공 아야코는 폭군인 아버지와 함께 동남아에서 인신매매로 팔려온 소녀들을 감시하는 일을 맡는다.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 소녀들에게는 슬픔과 죽음의 냄새가 풍긴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소녀 츠마는 희망을 나타내는 녹차 향기가 감돌았다. 온갖 핍박과 절망 속에서도 츠마는 바다를 보러 간다는 아빠의 말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었다. 츠마를 통해 아야코 역시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살을 에는 바람. 이어서 아직 푸르른 빛을 머금은 상큼한 레몬. 그리고 겨울의 끝을 알리는 풀과 흙의 기척. 그런 다른 향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서로 쫓으며 줄짓다가 뒤섞였다. 꼭 음악 같았다. 초등학생 시절 음악실에서 들은 파헬벨의 캐논을 떠올렸다. 한 가지 선율이 또 다른 하나로 이어지고, 겹치고, 깊이를 더해 더욱 퍼진다 ― 츠마가 내뿜는 건 환상적으로 피어오르는 향의 캐논이었다.’ (「바람, 레몬, 겨울의 끝」, 317~318쪽)

 무척 기묘하고 독특한 소설이다. 강렬했던 첫인상은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끝을 맺는다. 문득 지금도 어딘가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기적이라 불릴 수 있는 일들,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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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위를 걷는 느낌 창비청소년문학 59
김윤영 지음 / 창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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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즐겁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상상 속에서는 나쁜 일도 일어날 수 있기에 무섭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즐거운 상상만 펼칠 수 있다면 아무 걱정이 없겠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은 모르는 미래가 내 눈에만 보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 그 미래를 바꾸려 노력할 것이다. 공상과학 영화를 떠올리는 김윤영의 『달 위를 걷는 느낌』은 그런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맞을지도 모른다.

 

 『달 위를 걷는 느낌』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주인공 루나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소녀다. 잠이 안 올 때 주기율표를 외우며 자신의 유전자가 자신을 조롱한다고 여기는 똑똑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아이다. 2039년 9월 9일  핵융합 과학자인 루나의 아빠 이필립은 지구를 떠나 달을 향해 가면서 딸에게 줄 영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영상 메시지를 시작으로 소설엔 루나의 일상과 아빠가 루나에게 남긴 메시지가 교차로 이어진다.

 

 달에 다녀온 아빠는 사고로 3년째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입원 중이다. 루나는 특수학교에 같이 다니는 노마, 유니와  함께 아빠가 입원한 병원과 천문대에서 별을 보는 게 전부다. 병원에서 만난 베드로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베드로 아저씨는 다른 어른들과 다르게 루나를 불쌍하게 대하지 않는다. 매일 아빠를 찾아오는 루나를 아끼고 사랑한다. 루나는 한 달 전 등기로 온 편지를 친구들과 아저씨에게만 보여준다. 암호처럼 보이는 내용을 아저씨와 함께 풀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루나는 그게 아빠가 자신에게 보낸 영상 메시지라는 걸 알게 된다.

 

 아빠가 보낸 영상 메시지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빠는 달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경험한다. 미래의 모습을 본 아빠는 과학자가 아닌 환경운동가의 길을 선택한다. 또한 아빠는 미래의 어느 날 자신에게 일어날 사고와 루나의 슬픔까지 알고 있었다. 아빠가 보낸 영상 메시지는 미래에 대한 경고였고 걱정하는 루나를 위한 안부였다. 끔찍한 일이 닥치겠지만 꼭 기다리는 아빠의 메시지. 루나의 장애를 특별한 아름다움이라 말하는 아빠의 따뜻한 목소리. 그건 작가가 아빠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는 소통과 희망이었다.

 

 소설에서 마주하는 미래는 과학의 발전으로 매우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니었다. 방사능 누출 사고로 생태계는 무너졌다. 소설에서 먼 과거의 일로 나오는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과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가 원인이 된 것이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기형의 아이들, 숲에서는 새의 노래가 사라졌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우주인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된 세상,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지구를 떠나야 하는 삶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참신한 소재로 함께 하는 삶과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해 말하는 김윤영의 소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이 꿈꾸는 아름답고 황홀한 미래는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루나야. 우리 인간에겐 경이로움을 향한 시적인 욕망이 있단다. 과학의 원동력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과학 안에도 아름다운 시가 존재할 수 있고,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게 바로 과학자의 임무란다. 인간의 존엄성은 꺾이지 않아. 우리가 우주를 탐구하는 건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서라고 했지? 그러니까 우린 승리할 거야.” (프롤로그 중에서,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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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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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낯선 곳에 대한 동경이 있기 마련이다. 현재와는 다른 삶을 꿈꾼다. 직장에서 퇴직한 후 제2의 인생을 계획하는 이들에게는 특히 그러하다. 복잡한 도시가 아니라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에서 나만을 위한 삶을 살고자 한다. 흙을 밟을 수 있는 마당이 있고 무언가를 키울 수 있는 시골 말이다. 하지만 귀농, 귀촌이 모두 성공하는 삶이 되는 건 아니다. 이상과 현실이 다르듯 단순한 여행이 아닌 시골에서의 삶은 많은 어려움을 불러온다. 시골에서 살고 있는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골의 실체를 공개한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란 제목처럼 시골의 삶을 적나라하게 들려준다.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생활 환경으로는 가혹하다는 의미입니다. 바다도 산도 숲도 강도 그것이 아름다울수록 일단 비위를 건드렸을 때에는 본색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혹독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그림 같은 풍경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29~30쪽

 

 겐지의 말은 진정 옳다.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 같은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텔레비전을 통해 마주하는 깊은 숲 속이나 외딴 오지의 삶은 가혹할 정도로 불편 투성이다. 무턱대고 구체적인 계획 없이 시골로 이주했다가는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삶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 겐지는 시골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에 대해 구체적 사례를 들며 조언한다. 지역사회가 바라보는 이방인에 대한 시선, 모든 것을 공유하고 나누려는 시골 사람들의 마음, 안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위험에 노출된 현실, 도시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고독과 소음에 대해 말한다.

 

히 시골은 도시와 다르게 의료 장비가 완벽하지 않아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빠른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 시골의 소음 공해와는 다른 시골에서도 소음이 있어 오히려 그것이 더욱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점, 동네 경조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해야 하며, 시골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건 사고들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공감이 간다. 그러니까 사람 사는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시골에서는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시골에서는 내 일은 내 힘으로 한다는 강한 마음가짐과 체력이 필요합니다. 이주하고 나서 도시의 편리함과 비교하며 불평을 해 본들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스스로 해내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굳이 불편한 곳에서 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185쪽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겐지는 시골로 오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말리는 듯하다. 시골은 평화롭지도 않고 조용하지도 않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의 말은 이 모든 걸 견딜 수 있다면 언제든지 시골로 오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어느 곳에서 살든 고충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면 시골에서의 삶을 각오해도 좋을 것이다. 단점이 있다면 분명 장점도 있으니까. 결국엔 겐지는 이 책을 통해 시골이 아닌 삶에 대한 자세에 대해 진심을 담아 조언한다.

 

 두 번째 인생을 시골에서 계획한 이들에게는 실직적인 도움을 주는 책이다. 더불어 현재에 대해 불만을 갖고 변화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그 삶이 막연한 상상에 속한 게 아니냐고 질책하는 목소리로 들린다. 지금 어떤 지역에서 어떤 직업을 갖고 살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냐는 것이다. 때문에 얼마나 치열하게, 절실하게, 삶을 살아내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빛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만 빛납니다. 진정한 감동은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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