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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정미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정미경의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를 힘겹게 읽어냈다. 힘겹게 읽어낸다는 표현이 좀 거창하기는 하지만 몽환적인 느낌과 여전하게 어렵고 슬픈 80년대를 꺼낸 소설이라 내게는 다소 힘들었었다. 그리고나서 이 소설집을 선택한 것은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라는 다정한 제목과 멋스러운 화원의 입구를 꿈꾸게 하는 표지도 한 몫 거들기는 했지만  장편이 아닌 단편은 어떻게 쓰여 졌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정미경은 은희경이나 공지영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 우선 들었다. 나는 공지영과 은희경을 비롯한 여류작가를 좋아하는데  정미경의 소설집은 비슷한 세대를 살아온 두 작가의 작품과는 차별적인 그 어떤 것이 있다. 공지영의 글은 섬세한 면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무척 절망의 빛이 역력하다. 은희경의 소설은 공지영의 글에 비하면 부드러움이 덜하지만 공격적인 느낌과 다양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정미경의 문체는 무척이나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쓰여져 있으면서도 그녀가 가진 색깔을 뚜렷하게 보여준다고나 할까? 한 권의 책으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는 건 개인적인 나의 생각이라는 것을 염두해두기 바란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예로 보면 공지영은 과거만의 슬픔을 그대로 털어내고 있으며 은희경은 직접 그 내부에 들어가지 않은 채로 표현하고 있다. 정미경은 그 기억과 현재를 동시에  쓰고 있다고 할까? 아니다. 이건 나만의 궤변이다.
이 소설집은 지금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녹록함과 내면의 진실과 보여지는 허상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무화과 나무 아래 - 잘 나가는 다큐멘타리 피디인 나는 머나먼 타국에서 사형수의 신장을 이식받았다. 어차피 죽을 사람의 신장이라고 그렇게 자연스레 단정지으려 하지만 그는 그럴수가 없다. 나를 잃어버린 듯 방황하고 나를 찾으려 몸부림친다.  

무언가 - 사고치는 엄마과 그 사고를 책임지는 딸. 가족만이 아니라면 달아나고 싶은 관계이다. 엄마라는 꼬리를 떼어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며 그 안에서 딸은 살아가는게 지겹기만 하다. 그녀의 직업은 텔레마케터로 목소리로 세상과 사람들을 만난다. 보여지지 않는 것으로 무언가를 팔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득 공감하면서 의구심이 생긴다. 얼굴의 생김새가 변함에 반해 목소리를 변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이다. 정말로 변하지 않는 것은 목소리일까,그렇다면 변하는 것은 무엇일까?  

달걀 삼키는 남자 - 고양이를 자신과 동일시 하는 스티브와 동거하는 나는 그 고양기가 너무 싫다. 거기다 매일 달걀을 삼키는 샘은 더 이해할 수 없다.결국 스티브 몰래 고양이를 안락사 키기기에 이르른다. 스티브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모에게 양육되는 과정에서 달갈을 삼키는 것으로 유일하게 칭찬을 받게 되고 그 이후로 매일 달걀을 삼키게 된다. 누군가에게 나의 존재란 어떤 의미일까? 존재함를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삶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가지고 있는 본능일터인데 나 역시도 누군가의 그 본능을 모른척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이 편치 않다. 

모래폭풍 -  백화점 남성복코너에서 일하는 내게 온 한 남자.시간강사로 내 집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경제적인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부드러운 말로 나를 위로하는 듯 하지만 내가 필요할때 그는 없다. 어쩜 그 진실을 알까봐 나는 두려웠는지 모른다. 지적인 그를 그가 던지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동경이었는지 모른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 집안에서 외톨이가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성형외과 의사인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잘 자라준 아들과 딸.어느날 아들은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집안은 엉망이 되버린다.4인 4색의 시선으로 쓰여지고 있는 단편은 고3의 수험생의 심리와 중산층으로 잘 살고 있는 듯 보여지는 한 가족의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각각의 시선으로 서술되고 있는 이 글에서 그들의 공통된 한 가지 시선을 이끌어내낸 해결방법은 우리가 바로 찾아내야 할 과제이지 싶다. 

검은숲에서 - 내가 여전하게 여기서 살고 있는데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면 그 절망감은 얼마나 클까? 어쩌다 보니 전입신고도 하지 못했고 어쩌다 보니 도둑이 들어 계약서를 도둑맞았고 약혼자는 나를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엉망으로 흘러가는 삶은 언제든 만날 수 있다. 물론 똑똑치 못하다고 따가운 시선을 받을 지 모른다. 그렇치만 그런 삶들은 우리 주변에 엄연하게 존재한다. 사는게 힘들어서 그러기도 하고 너보다 내가 소중해서 그러기도 하며 나중에 라고 미루다 보니 또 그러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내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친구와의 수다일수도 있고 점점 늘어나는 적금통장기도 하며 책에서처럼 한 달에 한 번씩 내가 나에게 보내는 에쁜 포장안의 선물일 수도 있다. 책 밖에 있는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무얼 하고 있을까?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검은숲에서 나를 이끌어 낼 그것은 무엇일까?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 기러기아빠인 남자와 간호사인 재이는 정해진 관계를 지속해나간다. 서로에게 깊이 알려하지 않은 채 선을 그어놓고 있다. 그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우연하게 방송에서 그가 아내를 사랑하고 미래를 위해 아이들을 유학시켰다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치만 그것은 보여지는 것이다. 그와 그의 아내는 아이들의 유학을 핑계로 별거중이며 아내를 이혼을 요구한다. 위층과 아래층의 관계로 만난 재이와 그는 사랑을 나누는 사이지만 보여지는 것은 그저 윗층과 아래층 이웃일 뿐이다. 그는 홀로이 죽게 되고 재이는 그의 이웃인 신분으로 그의 죽음을 맞는다.

7편의 소설속의 주인공은 PD,텔레마케터,영어강사,요리강사,대학강사,성형외과 의사등 소위 괜찮다는 직업들을 가지고 있고 소설속의 그들은 모두 활기차게 표현되어 보여지고 있으며 곳곳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 가슴 한쪽에 보여지지 않은 힘든 삶의 모습도 여과되지 않은 채 보여준다. 해피엔드라는 결말을 찾을 수 있는 소설은 없다. 지금 살고 있는 것이 끝이 아니기에 어떠한 결말도 맺지 않은 채 그대로의 모습으로 끝을 내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다른 이의 죽음과 맞바꾼 나의 생명도 감사하지만 죄책감을 버릴 수 없고 핏줄이라는 이유로 나를 묶어놓고 있는 가족도 그러하다. 포기하고 싶은 내 삶도 포기 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안다. 정미경의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열심을 내고 살고 있다. 건조한 마른 장미꽃처럼 보이지만 그 마른 장미꽃이 간직한 향과 처음 만났을때의 그 싱그러움을 기억하고 있기때문에 우리는 살고 있는지 모른다. 

가끔 소리내어 울고 싶은 날들을 만난다. 누구에게 위로 받고 싶은 날들도 만난다. 그럴때마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혼자라는 사실에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정미경은 이런 많은 날들을 견뎌낸 듯 그렇게 앞선 삶을 살아낸 언니처럼 글 속에서 누군가를 달래는 듯 보여진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 보는 그런 눈을 만난다.  

[말로는 할 수 없는 위로가 있다. 자신을 달랠 수 있는 건 자신뿐일때,그럴때 제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오래오래 우는 것이다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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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9-09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알고 어떤 내용인지 몰랐는데...... 님의 리뷰를 읽으니 괜찮을 것 같네요. 꾹!

자목련 2007-09-13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읽어보세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07-09-27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도 축하드립니다.^^

코코죠 2007-09-28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리뷰 당선-! 좋은 소식 들려와 제 맘도 기뻐요. 선인장님이 거기 계시면, 오즈마는 항상 기뻐요^.^

자목련 2007-09-29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감사합니다.
오즈마님 감사합니다.

yanghuelee 2007-09-30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 문학상 작품집을 읽고 이 작가의 책을 읽어봐야겠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좋은 리뷰덕에 좋은 책 한권 더 읽게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

자목련 2007-10-02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anghuelee님.감사합니다. 읽어보시면 분명 좋아하실꺼예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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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장을 읽어내면서 뒷문장을 곁눈질한다. 그러면서 또 그 다음문장을 행해 눈동자를 굴린다.
성석제에 대한 극찬의 글을 많이 읽어왔기에 더욱 더 그의 책이 궁금햇다. 아,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가?
버튼 하나를 누르면 저 혼자서 집안 구석 구석 청소하는 로봇처럼 딱딱한 과일을 금새 부드러운 과일쥬스로 탈바꿈시기는 머신처럼 그는 술술술 작가라는 사람들이 고통속에서 작품을 쓴다는 것과는 다르게 그렇게 써내려갔을꺼 같은 나만의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내 눈엔 탁월한 글쟁이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글에는 단단한 뼈가 있다.그 뼈를 교묘하게 위장해놓은 위장술이 대단하다.그 위장의 이름이 바로 이 책속의 주인공들인 황만근이며 남가이이며 동환이다. 그 뼈에 살을 붙이고 옷을 입히는 것은 독자의 몫이리라.

이야기속의 소재 선택은 또 얼마나 탁월하며 기발한가? 성석제의 단편은 어릴적 할머니가 들려주신 현대판 옛날이야기와 향토적 소재를 담은 구전동화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 어수룩하며 배운게 없어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하고 어머니에게조차 사랑을 받지 못하고 도리어 어머니를 보호하며 살아온 효자,동네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바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 어느날 그가 사라지고 결국은 죽음으로 돌아온다. 황만근 그는 정말 어수룩한 바보인가? 자신에게는 단 한푼의 빚도 없었건만 농가부채 해결을 위한 농민궐기대회에 그의 분신과 같은 경운기를 타고 참가의 길에 나가지만 한 줌의 재로 돌아왔다. 구수하고 정감있는 사투리로 처음과 끝을 함께 하지만 그 안에 진정으로 황만근을 향한 정감있는 말투는 어디에도 없다.

천하제일 남가이 - 황만근과 비슷한 배경과 소재로 쓰여졌지만 황만근에겐 없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남가이에겐 있다. 그의 외모는 그가 내딛는 세상을 달라지게 한다. 가이라는 이름은 개에서 따온거라는 설명이 없었더라면 가이 아름다운 이름이라 나는 생각했을지 모른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무엇에 집착하고 무엇에 환호하는가? 그것의 실체를 우리는 알고 있을까. 수 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하지만 사실 나 역시도 글속의 남가이를 한 번 만나고 싶을 정도인 것은 사실이다.

천애윤락 -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동환과 나와 문학은 초등학교 동창이다. 동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나는 동환의 삶을 슬금슬금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동환에게 나는 거의 하늘과 같은 존재의 친구이고 존경스러운 친구이다. 그 사이의 교각은 문학이 맡고 있다. 동환이라는 인물은 나에게 이런 저런 삶의 고비마다 도움을 요청한다. 매번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그를 만나지만 나의 속내는 적지않게 그를 경멸하고 있다. 동환의 슬픈 결혼식에서 동환은 이렇게 말한다.나,나 말야.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어.75쪽

동환에게서 자유롭지 못했던 나와 문학.동환은 정말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동환의 구구절절하게 길기만 했던 삶의 무게가 전해져 이 문장이 너무 슬픈 빛으로 눈에 들어온다.그것이 과연 동환의 잘못이었고 동환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참으로 무지의 연속이기도 하다.

나머지 소설인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책,욕탕의 여인들,꽃의 피,피의 꽃들에는 반어적인 표현들과 남성적인 시선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알고 싶어하는 세상의 일면들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있다. 단편들의 주인공은 모두 남자이다. 성석제에 소설에는 힘이 있고 남자들의 걸죽한 목소리와 함께 그네들의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듯한 지배적인 심리가 가득하다. 그러면서 잘못된 그것들을 꼬집고 비틀고 있다.

작은 시골 동네의 황만근이나 남가이를 통해서 혹은 계라는 동호인들의 모임속에서 힘을 자랑하려하고 그러면서 위안을 받는 사람들,그 안에서 몰래 정당치 못한 권력을 쌓으려는 것들을 재미있는 어투로 쏟아내고 있다.

미끄럼틀 꼭대기에서 미끄럼을 타면 내려가는 내내 신나는 즐거움만이 있다. 이 소설은 읽는 내내 미끌럼을 타는 것만 같았다. 다시 꼭대기로 올라가려면 여러 개의 계단을 딛고 올라야하지만 그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이미 이 책을 만난 사람은 여전하게 성석제의 유쾌한 글솜씨를 기억할 것이며 처음 만난 사람은 더 많은 책들에서 더 많은 재미와 그만의 어투를 느끼고 싶을 것이다. 아직 못만난 그대라면 그대도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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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06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석제라는 이름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부끄럽게도 아직 한번도 만나보질 못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성석제씨의 유쾌한 글솜씨를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군요.

순오기 2007-09-06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 못만난 그대라면 그대도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에 해당함을 신고합니다. ㅎㅎ

자목련 2007-09-13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짱돌이님,순오기님 감사합니다.
 
분홍 리본의 시절
권여선 지음 / 창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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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집어들었을때 내게 있어 분홍 리본이라고 이름붙일만한 시기가 언제일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수줍은 마음 고이담아 보낸 어릴적 편지에 그 시절일 담겼을까? 흔희 우리가 예상하는 핑크빛,분홍빛은 아마도 행복이나 사랑으로 대표되는게 당연하리라.그렇다면 그 분홍의 시간이 지난뒤에는 어떤 빛깔의 세상을 만날것인가? 내가 원하는 작약꽃빛이나 에메랄드 바다빛은 너무도 멀리 있고 회색과 검은색이 보이기도 하고 가끔 불그스레한 빛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꼬집어 말하면 이 책엔 분홍빛은 찾을 수 없다. 그에 가까운 어떠한 빛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화려한 가면속에 감춰진 일그러진 진짜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모두 7편의 단편이 들어있는 책에는 총체적으로 작가 특유의( 이 한권으로 특유라는 말을 쓰기 어렵지만 이 책에서 보면) 시선이 담겨있는데 그 시선을 뭐라 표현할까 생각하니 질문자의 답변에 단답형의 대답을 하면서도 말이 짧기는 하나 상대의 정곡을 찌르는 혀를 가진 작가라고 느꼈다.

가을이 오면 - 우아한 엄마를 둔 주인공 로라는 절대적으로 우아할 수 없는 태생을 지녔다. 엄마와 그녀의 관계는 핏줄로 이어진 적의 관계로 묘사된다. 로라라는 이름으로 상상할 수 있는 눈이 크고 외국소녀같은 모습은 찾을 수 없고 로라는 피부에서 녹아나는 진물이 범벅이 되는 알레르기 질환을 가진채로 세상끝에서 세상에 속해 살지만 엄마와도 소통을 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도 우리는 사실 많은 벽을 쌓고 살고 있다. 물론 극적인 비유였지만 그것 역시도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홍 리본의 시절 - 주인공 나와 내가 한때 사랑한 선배부부의 이야기인 이 소설속에도 상대에 대해 절대로 하대를 하지 않는 선배의 아내과 자유로운 세상속에서 헤엄치듯(그 세상은 바로 아내였지만) 살아가는 선배는 역시나 화려한 가면을 쓰고 살고 있다. 남편의 외도와 아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네들의 속내는 선배의 아내가 진실의 혀로 쏟아내는 부분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나쁜것,천한 년,밤이나 낮이나 그짓 생각밖에 안하는 새대라기.. 75쪽' 차마 내뱉을 수 없었던 많은 말들은 단어만 다르다 뿐이지 누구가 쏟아내고픈 또 다른 입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전달하겨 애쓰는 작가가 아닐까 싶었다.

약콩이 끓는 동안 - 이 단편이 작가 권여선을 세상에 드러냈다. 사고로 횔체어를 타고 집에 있게 된 노교수와 몇 년이나 박사논문을 쓰지 못하는 여제자가 논문지도를 받으러 노교수집을 드나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지만 노교수는 원하지만 원하는대로 움직일 수 없으며 자신이 어떤걸 원하는지 모른는 채 살아가는 여제자의 충돌로 이어진다. 서로의 입장에서 나만를 보는 시선도 곁들이고 있는데 두 사람외에 매일 약콩을 끓이는 파출부와 노교수의 명예에 맞지않는 제밥꺼리 찾지 못하는 두 아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리고 있는데 이는 허상만을 바라보는 사고를 비꼬는 듯 하다.

반죽의 형상이나 문상에는 반복적인 설명이 함께하고 있는데 반죽의 형상에는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지역을 지나는 버스를 반복적으로 나타내면서 정확하지 않은 소통의 부산물로 폭식증과 거식증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문상에는 주변 모두에게 거절당하는 한 여자와 주인공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데 원하지 않는 관계맺음을 이어가면서도 끊지 못하는 아니 어는 한 곳에 적을 두고자하는 심리를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솔숲 사이로 위험한 산책은 마치 꿈꾸는 이의 꿈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 했다. 글의 흐름을 따라 읽고는 있었지만 글이 어디에 있느지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쉽게 읽힐꺼라 생각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이렇게 난해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물론 처음 접하는 권여선이라는 작가의책이라 그럴수도 있겠지만 얼마 전에 읽은 편혜영의 사육장 쪽으로와 같은 맥락으로 여겨졌다. 편혜영이라는 작가가 송곳으로 우리의 드러네내고 싶지 않는 인간의 내면과 사회의 일부분을 걷드렸다면 권여선이라는 작가는 날이 잘 선 모양 예쁜 칼로 도려낸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나쁘지 않았다. 분홍 리본의 시절, 그 시절이 지나면 어떤 리본의 시절이 올까 묻는다면 과연 작가의 답은 어떤걸까 몹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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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03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합니다. 전 읽긴 했는데 딱히 와닿진 않아서 리뷰는 그만 둬버렸지요 ;;

자목련 2007-09-04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여선이라는 작가의 글을 처음 읽었습니다. 처셔고양이님,감사합니다.
 
나비 넥타이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6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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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일까? 요즘 온통 학력위조로 인터넷과 방송이 뜨거운 감자를 손에 쥔 채 어떻게 할지를 모르고 허둥대고 있다. 기본을 갖춘다는 것은 무엇까? 누군가를 가르치고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된다는 건 스스로에게 떳떳하다는게 첫 번째 조건이겠지 싶은 생각이 든다. 깊게 패인 주름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윤기님처럼 말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작품의 번역자로 이윤기와 소설가 이윤기가 동명이인이라고 알고 있었다. 유명대학의 언어학이나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채 독학으로 영어와 일어를 공부하고 영어와 일어로 문학을 만나고 글을 쓰기 시작한 때는 군대에서 그리고 월남이라는 전쟁터였다. 묵직한 무게의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었는데 그래서 우습게도 나는 장편소설인 줄 알았다. 읽어나가면서도 월남을 배경을 나오는 소설을 장편으로 꿰맞추려 하기도 했다. 모두 15편의 소설이 들어 있는 이 책은 두 권으로 나뉘어졌던 작가의 소설을 하나로 묶어놓은 것이다. 내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섬세한 표현과 부드러운 시선은 볼 수가 없다.유난스레 은유적인 표현이 많다면 제대로 맞춘걸까?엇갈림과 반전의 묘미가 있어 더욱 더 신나는 책이었다.

1부는 손님과 패자 부활 제외한 크레스튼 비치,하얀 헬리콥터,미친개1,미친개2,가설극장은 모두 월남전쟁을 소재로 하고 잇다. 이 소설들 때문에 장편소설이 아닌가 착각을 했다.전쟁터에서의 긴박밤과 동시에 위트가 숨어있는 소설들이었다.월남을 경험했기에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긴장감과 그 안에서 느꼈을 전우애와 즐거움을 살릴 수 있었으리라.

패자 부활은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이복형제라 여겨 동생과 아버지를 미워하고 상처주며 자신을 항상 패자라고 여겼던 형의 시선으로 쓴 이야기인데 공사장을 배경으로 하며 형은 건축기사로 동생과 아버지는 인부로 만나게 되어 수직적인 관계를 만든다. 곳곳에 복선이 깔려있는데 얼마나 치밀한지 이거다 하고 독자에게 발견되는 시점은 소설의 끝부분이다. 나만의 입장만이 옳다고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입장을 헤아려보지 못하고 서로의 발등을 찍고 마는데 수 많은 타인과 수 많은 관계를 맺고 사는 우리는 얼마나 쉽게 독단하며 판단할까? 관게맺은 상대가 가진 상처나 입장을 배려한다는 것은 한 번만이라도 그 입장이 되보려고 노력하는 것인데 표현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도 상대의 진의를 모른 채 단정짓는 것은 상대에 대해 크나큰 오류를 범하는 것임을 잊고 사는 우리에게 패자부활이라는 단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2부는 나비 넥타이,떠난 자리,구멍,뱃놀이,갈매기,낯익은 봄,직선과 곡선,사람의 성분으로 구성되었다.먼저 만나게 되는 1부의 소설보다는 더 가깝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1분에서 전쟁의 흔적을 많이 만났고 내가 전쟁에 대해 조금은 어려운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2부의 8개의 소설에는 인간의 내면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 그러나 소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장 자세하게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전혀 모르는게 사람과 사람간의 일이고 사람의 속내라는 생각을 확인시켜준다고나 할까?

어울리지 않는 나비 넥타이를 고수하던 노수의 아버지와  어린시절부터 내내 잘 안다고 여겼던 친구 노수가 유학에서 돌아오면서 뜻밖에도 콧수염을 기르고 나타나는데 아버지의 나비 넥타이와 노수의 콧수염을 자신을 탈바꿈하는 하나의 장치였음을 나는 노수의 속내를 통해 듣게 된다. 가장 많은 것을 가장 중요한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사이였지만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친구를 나의 가족을 얼마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답을 찾을 수 없는 나를 발견한다. 우리는 누구나 나비넥타이를 하나씩 갖고 있을 것이다.

숨은 그림찾기의 또 다른 이름의 소설 직선과 곡선,사람의 성분도 인간에 대한 신뢰에 관한 이야기인데 하나만을 찾았다고 해서 전부를 찾았다고 할 수 없는 숨은 그림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있는거 같다. 우리는 다양한 삶을 살고 있다.내가 가진 사고속에 수 많은 내가 존재하기도 하고 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상대도 다양한 사고를 가졌을 테고 또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숨은 그림 하나만을 볼 게 아니고 전체의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숨은 그림을 가지고 있을까? 상대가 나를 찾을 수 있게 힌트는 주고 살고 있는지 우선은  나를 자세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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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2007-08-29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윤기씨는 알려진 것과는 달리 번역보다는 단편에 더 강한 작가입니다. 역시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추천하고 갑니다~ 참, 앞으로는 종종 들러서 구경할게요. 좋은 서재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
 
사육장 쪽으로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보여지는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잘 알지만 보여지지 않고 숨겨둔 그 어떤 것을 제대로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반대로 완연하게 드러나는게 전부이라고 진실되게 말하지만 이 진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도 없다.언제부턴가 또 다른 나를 만들고 이중적인 나로 살아가는지 나조차 알 수 없지만 본연의 나를 보이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 역시나 찰라의 짧은 시간임을 알게 되는게 산다는 것에 주어지는 선물이자 연륜이 아닐까 싶다. 그 연륜을 향해가는게 목표라면 너무 거창하지만 아무튼 그곳를 향해 살고 있는지 모른겠다.

사육장 쪽으로 라는 제목부터 평범치 않은 8편의 소설 모두 껍질을 깨고 본질을 드러내라는 암시를 주는 것 같았다.암울한 기운이랄까? 그 기운을 걷어내면 저 멀리서 떠오르는 새벽의 빛이 있을꺼라는 기대도 갖게한다.문학계의 주목받는 다른 신인작가의 소설과는 그 느낌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다. 물론 기준은 내게 있음을 말해둔다.

소풍 - 오래된 연인인 남과 여는 오랫동안 꿈꿔온 여행을 떠나게 된다. 출발부터 그들을 만나는 건 짙은 안개뿐이다. 남자는 안개가 끼면 날씨가 맑아질꺼라 하지만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 오래된 연인이 지금 피걱꺼리고 있음을 암시한다.근교에서도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음을 알지만 여행이라는 이름은 항상 멀리 떠나야하고 또 좋은 데서 숙식을 해야한다는 의식을 심어준다. 출발부터 시작된 안개는 끝내 걷히지 않는다. 오래된 여인은 계속 부딪힌다. 서로를 배려하기엔 너무 멀리왔는지 모른다. 그들이 목적지를 가리키는 이정표앞에는 남과 여자는 함께 하지 못한다.
소풍이라는 제목으로 예상되는 즐거운 설렘은 어디에도 없다. 안개로 뒤 덮힌 것은 여자와 남자 사이의 괴리감을 나타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서로를 안다는 것은 보여지는 것만을 보고 안다는 얄팍한 것인지도 모르리라.

사육장 쪽으로 - 예쁜 전원주택단지,도시로 출근하기에 멀어도 근처에 개 사육장이 있는게 흠이지만 멀리 있으니 하며 주인공 나는 가족을 데리고 이사를 한다. 무엇에 이끌렸는지 빚을 내어 이 곳으로 이사왔는지 정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도시의 중심지에 도시인으로 살고 싶었지만 변두리에서 살아야만 했던 그것이 이유였을까? 사람들은 번듯한 도시인이고 싶어한다. 번듯한 집에 번듯한 차에 직장에 그 안에서 진실로 행복을 느끼며 사는지는 직접 그 속에 들어가봐야 알 것이다.

빚을 갚으라는 붉은 색의 독촉장은 누구에게나 형태는 다르지만 날아온다.
전원주택단지지만 그들의 모습은 성냥갑같은 아파트의 삶과 다르지 않다. 웃는 낯으로 인사를 할 뿐 속내를 드러내며 손을 내미는 이웃은 어디에도 없다.독촉장은 가족을 불안에 휩쓸리게 하고 판단을 흐리게 한다. 어디서 쏟아졌는지 모르는 험악한 개들이 아이를 물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육장쪽에 있다는 병원을 찾아 헤메다가 결국은 그들에 떠나온 도시속으로 달려간다.그들이 원하던 삶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전원주택이라는 허상에 사육되고 있었던건 아닌가.

동물원의 탄생 - 도심속 동물원에서 늑대가 탈출하고 돔형태의 높은 새장속에 있던 새떼들도 사라지고 만다. 늑대와 새들은 도시를 혼란에 바뜨린다. 늑대를 보았다는 제보가 들어오고 늑대에 의해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도 많고 알지 못했던 구석진 더러운 곳에서 새들은 시체를 발견하기도 한다.세상은 늑대를 연상시키는 옷들이 유행이 되고 늑대를 잡는 명목으로 총을 소유하는 것도 자유로워진다. 사내는 드러나지 않는 사회 구성원이다. 어디에서도 부각을 나타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지하에 살고 사내의 고향도 저 깊은 시골이다. 사내는 늑대를 잡고 싶어졌다. 총을 구입하고 늑대를 찾아 나선다.총구에서 순식간에 뿜어져나간 총알은 이전까지의 사내의 삶에 찍는 요란한 종지부 같았다.82쪽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누구나 한자루의 총을 소유하고 싶을 것이다. 점점 모든게 늑대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늑대가 아닌 부랑자를 쏟고 마는 사내. 그러나 두려움은 어디에도 없다. 사내는 점점 늑대가 되어간다. 모두가 잡고 싶어하는 늑대는 무엇이었을까.내 안의 또 다른 나였을까?

밤의 공사는 읽어내기 참으로 힘든 소설이었는데 메마른 시선으로 시작되지만 과감함을 벗어나는 섬뜩함이 있다. 거대체구의 아내와 쥐를 키우는 아이. 방관자처럼 살고 있는 남편이 허물어져가는 담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에게 나타날 수 있는 극단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집에는 유독 동물들이 많이 나온다.사육되어지는 개,탈출인지 모르는 늑대와 새떼 ,사람을 이겨내려는 쥐,달리기 하는 코끼리,튀겨지는 닭.
동물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사회의 실상이고 실재였을까. 나는 누구로 살고 있을까.사육되어지는 개일까 달리기하는 코끼리일까. 어쩜 그 모두인지도 모르겠다.
찬찬히 다시 읽어보면 이 소설들은 근래 몇 년간의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의 어디에선가 벙커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기억한다. 동물원에서는 수시로 동물들이 뛰쳐나와 주변의 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한다.

금요일의 안부 인사 분실물은 물과 기름처럼 살고 있는 이웃과 직장동료의 이야기를 냉소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첫번째 기념일 퍼레이드 점점 존재를 잃어가는(변화라고 사람들은 말할지도 모를) 사회구성원들의 허기진 모습을 이야기한다.

사육장 쪽으로라는 소설에서 겉으로 보여지는 세상과 만난다. 화려한 고층 빌딩숲에서 빛나는 불빛,깊은 속을 보여주지 않는 또같은 아파트,소리질러 화를 내고 싶지만 짐짓 웃고 있는 모습들, 깨트리고 싶은 세상을 깨트리지 못하는 우리를 만난다.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틀을 깨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이 세상에 이렇게 살게 될꺼라는 두려움이 드는 것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내가 존재하기 때문일까? 그래도 언제가는 미세한 틈을 발견하고 틀을 깨는 시도도 계속되고  나 역시도 틀을 깰 것이고 어슴푸레 드러나는 새벽도 보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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