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일기 -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
김연수 지음 / 레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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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는 아직 읽지 못한 김연수의 책이 있다. 어떤 책은 시작도 못했고 어떤 책은 읽다가 말았고 어떤 책은 리뷰를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다. 그가 먼저 읽고 쓴 글을 보고 그가 추천한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김연수의 글을 좋아하고 믿는다. 좋아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산문이나 소설을 통해 그가 ‘우리’를 놓지 않고 있다는 것과 보편적인 일상을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이란 부제가 말해주듯 『시절일기』는 어떤 시절을 지내고 견디는 것에 대한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글을 읽는 일은 사회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통로처럼 다가온다. 일기의 형식을 빌렸지만 사적 영역보다는 칼럼이라 할 수 있다.


문장을 하나 쓴다. 그다음에는 침묵이다. 그러다가 문장 하나를 더 쓴다. 그러고는 다시 침묵이다. 문장을 쓸 때마다 만나는 이 침묵은 완벽한 무無처럼 느껴진다. 그때 나는 내 안의 가장 깊은 곳, 인식의 끝에서 더듬거리는 중이다. 그렇게 수백 번 혹은 수천 번의 무와 대면한 뒤에야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8쪽)

살아갈수록 세상은 더 좋아지고 편안해질 거라 여겼지만 반대로 현실은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하다. 어떻게 하루하루 버티면 살아가는지 놀라울 뿐이다. 아마도 저마다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고군분투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세상이니 누군가는 쓰는 일과 읽는 일이 무용한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하루하루 꾸준하게 쓰는 작가와 그것을 읽는 나에게는 유용하다. 말하지 않아도 여전히 거대한 슬픔으로 존재하는 사건들이 우리를 지배한다. 나의 일이 아니니 관심을 거둘 수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김연수의 글로 다시 되새기는 그날의 기억과 기록은 몸에 박힌 가시처럼 따갑고 아프다. 글이 주는 깊은 울림, 그 힘을 믿는 것이다.그게 무엇이든 쓴다는 것, 멈추지 않는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글쓰기는 중요하므로. 대단한 글이 아니더라도 미완성의 글로 남더라도 쓴다는 건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며 질문을 던지는 일이니까. 어쩌면 읽고 쓰는 일에 집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한순간 무너지고 부서졌을 것이다.


타자의 고통 앞에서 문학은 충분히 애도할 수 없다. 검은 그림자는 찌꺼기처럼 마음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애도를 속히 완결 지으려는 욕망을 버리고 해석이 불가능해 떨쳐버릴 수 없는 이 모호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문학의 일이다. 그러므로 영구히 다시 쓰고 읽어야 한다. 날마다 노동자와 일꾼과 농부처럼, 우리에게 다시 밤이 찾아올 때까지. (49쪽)


무언가 기댈 수 있는 존재가 거기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인가. 문학이 애도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떤 문장이 어떤 날의 나를 지탱하게 했으니 나는 읽는 일을 지속하는 것이다. 어느 시절, 그 문장은 김연수의 것이기도 했으니 우리는 한 시절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것을 바라봤다고 여겨도 좋다. 낯선 도시 서울에서 어느 계절 남산타워를 보면서 그가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남산타워에 그토록 끌렸던 까닭은, 아마도 그래서였으리라. 거기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 서울에서 누군가는 천국에라도 온 것처럼 기뻐하고 누군가는 지옥에 떨어진 죄인처럼 괴로워할 테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남산타워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거대한 눈동자처럼 서 있었기에. 인생이 여행이라도 되는 양, 짐짓 여행자처럼, 그 모든 기쁨과 고통을 바라보는, 그러나 더없이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눈동자로. (127쪽)


오래 머무르고 싶은 부분이 많았고 읽고 있어도 도통 잘 모르겠는 부분도 많았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깊은 사유의 시작이 오랜 글쓰기와 폭넓은 독서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혼자 판단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청춘의 문장들』이나『소설가의 일』과는 다른 글의 무거움과 깊이는 50대에 접어든 작가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장래희망으로 다시 할머니를 말하는 글에서는 천진난만한 소년의 모습을 상상하며 함께 즐거웠다.


나는 읽는다. 때로 쓰기도 한다. 읽고 쓰는 존재라 말하고 싶다. 작가, 예술가는 아니지만 그가 말하는 예술의 존재에 대한 이런 글에서 예술은 우리의 인생으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유한하며 소멸하는 것, 그래서 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사라짐을 경험하는 일이 의미하는 것들을 가늠해 본다.


예술은 사라짐의 과정으로서만 존재한다. 작가는 자신의 심리상태, 재능, 예술가로서의 위상 등등이 모두 소진되는 과정에서 작품이 탄생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러고 나면 작품 자체도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사라짐을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165쪽) ​


김연수의 『시절일기』는 우리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는 걸 각인시킨다. 매일 경험하는 세계가 당신과 다르지 않다는 걸 말이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의 인생과 겹쳐지는 순간은 이어질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분노하고 어느 순간에는 감격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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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2-10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글은 어떤 내용이든 참 곱고 차분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ㅎㅎ자목련님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2-02-11 09:56   좋아요 1 | URL
입꼬리가 올라가는 아침입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2-02-10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2-02-11 09:56   좋아요 2 | URL
감사드리며 저도 축하드립니다.
맑은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2-10 2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자목련 2022-02-11 09:56   좋아요 2 | URL
^^*
금요일과 이어진 주말 신나게 보내세요^^
 
내 작은 방 박노해 사진에세이 4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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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 말이다. 복잡해진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더더욱.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과 같은 개념이면 더욱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삶을 누리는 이는 적다. 그렇다고 그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나를 다스리는 일, 심연 깊은 곳으로의 침잠은 절실하다.


인간은 몸으로 사는 존재이자 욕망의 관계로 사는 사회적 존재이며 동시에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이다. 갈수록 소란하고 위험하고 급진하는 세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지켜낼 독립적인 장소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진정한 나를 마주하는 내면의 장소, 내 영혼의 깊은 숨을 쉬는 오롯한 장소가 필요하다. 내 작은 방은 하나의 은신처이자 전망대이다. 이 은신처에서 나는 영혼의 파수꾼이 되고 상처 난 인간의 위엄을 가다듬어 세우고, 그 순간 이 은신처는 희망의 전망대로 전화轉化한다. (11쪽)




박노해 시인의 에세이 『내 작은 방』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또 하나의 작은 방이 된다. 이 작은 책이 우리의 영혼을 달래고 쉴 수 있는 작은 방이라는 거다. 37장의 흑백사진으로 만난 삶, 그 안의 작은 공간에 담긴 사연과 시인의 사유가 우리를 작은 방으로 인도한다. 내가 소유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들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지 묻는다. 고요하고 아득한 작은 방을 채운 쓸데없는 상념들을 하나씩 지우게 만든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작은 동굴이 필요하다.

지치고 상처 난 내 영혼이 깃들 수 있는 어둑한 방.

사나운 세계 속에 깊은 숨을 쉴 수 있는 고요한 방. (52쪽)






어느새 나는 흑백 사진의 그 방에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터전을 잃어버리고 길 위에서 살아가지만 언젠가 돌아갈 집을 향한 희망을 놓지 않는 부모, 그곳이 어디든 가족과 함께 있다면 작든 크든 불편하든 상관없이 지상 최고의 집이라는 게 내게로 전해진다. 지친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힘겹고 고단한 시간을 어떻게 건너고 어떻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지 놀라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사진이 말하지 않는 어떤 슬픔과 고통에 동참한다.


집이란 언제든 말없이 나를 받아주는 이가 있는 곳.

다친 새처럼 상처받은 존재들이 그 품 안에서

치유하고 소생하고 다시 일어서 나가는 곳이니. (42쪽)


살아가는 일은 때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이라는 걸 알기에. 그럼에도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그 자리를 가꾸고 단장하며 살아가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아프고 힘든 이들에게 나의 작은 집, 나의 작은 방을 내어줄 수 있는 삶의 고귀함을 배운다.





그 모든 시간이 내 소중한 인생이고

이 인생길의 주인은 나 이기에. (86쪽)


과연 나는 내 한자리를 내어줄 수 있을까. 내게는 슬픔을 위로하고 포옹할 수 있는 나만의 방이 있을까. 어쩌면 거기 그 자리에 있던 그 방을 모른 척 외면하며 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더 넓고 더 따뜻한 집에 살면서도 어느 시절 반지하의 방, 겨울에도 아무리 보일러 온도를 높여도 한기가 가시지 않던 날들보다 감사할 줄 모르는 미성숙한 나를 본다.


‘어찌할 수 없음’ 투성이인 우리 인생에서 내가 ‘어찌할 수 있고’ ‘어찌해야만 하는’ 것은 내 마음 하나이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목적지는 내 마음의 빛이고, 내 마음의 방으로부터다. (15쪽)


여기 내가 쉴 곳이 있는데, 하루를 마치고 누울 곳이 있는데, 무엇을 더 갖고자 욕심내고 불평하는가. 진정한 내 마음의 방 하나를 꾸리지 못한 지독하게도 가난한 삶을 살아왔다. 이제라도 고요와 환한 빛으로 채울 수 있는 내 마음의 방을 만들어 그 안에서 나를 돌보며 살아가고 싶다.





지상에 집 한 채 갖지 못한 나는

아직도 유랑자로 떠나는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나만의 작은 방이 하나 있어

눈물로 들어가 빛으로 나오는 심연의 방이 있어

나의 시작 나의 귀결은 ‘내 마음의 방’이니.

나에게 세상 모든 것이 다 주어져도

내 마음의 방에 빛이 없고

거기 진정한 내가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너를 만나고

무슨 힘으로 나아가겠는가.

이 밤, 사랑의 불로 내 마음의 방을 밝히네. ( 내 마음의 방, 119쪽)


메마른 우리 영혼을 따뜻하고 보드랍게 채워줄 에세이가 당신에게도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팍팍한 삶으로 치진 당신에게 작은 여유를 선물하는 책이다. 한 권의 책이 하나의 쉴 곳으로도 충분하니 마음의 방을 이곳에 마련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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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1-10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좋다. 라카페 갤러리 가서 보고 싶어요 ^^

자목련 2022-01-11 09:09   좋아요 1 | URL
직접 보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mini74 2022-01-10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글은 참 단아하고 좋습니다. *^^*

자목련 2022-01-11 09:10   좋아요 1 | URL
음, 단아하지 않지만 단아란 말은 좋아합니다. ㅎ

Falstaff 2022-01-10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까도 댓글 썼다가 지웠는데요....
지금 시대 대표적 운동권 소설가이기도 한 이인휘의 <건너간다>를 보면 요즘 박노해가 그쪽 사람들한테 따를 당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물론 저도 왜 그런지 모릅니다. 혹시 이젠 이런 책을 낸다고 그러는 거 아닌가... 싶어서, 댓글을 달았다가 왼쪽 오른쪽 따지는 게 싫어서 말입니다.

자목련 2022-01-11 09:14   좋아요 1 | URL
같은 길로 간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들이 살아온 시간을 가늠할수 없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책으로 만난 박노해의 글과 사진이 좋을뿐.
 
얼음 속의 엄마를 떠나보내다 고블 씬 북 시리즈
남유하 지음 / 고블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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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존재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 곁에 있는 이들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했다. 그들과 영원히 함께 살 거라는 생각뿐 이별은 예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삶은 헤어짐의 연속이며 영원한 건 어디에도 없다는 걸.


365일 겨울만 지속되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카야’와 그의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엄마와의 이별이 찾아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을의 관습대로 얼음 속에 엄마를 보관하고 볼 수 있다. 카야는 매일 얼음관 속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학교에 다녀온다. 거기 엄마가 있으니 괜찮았다. 엄마는 마을 사람이 아니었다. 봄이 있는 곳에서 온 사람이었다. 카야는 엄마가 들려준 봄을 기억한다.


그런 엄마의 얼음 관을 ‘스미스 씨’가 자신의 저택으로 데려갔다. 아빠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으로 승진과 집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카야는 아빠에게 화를 냈지만 겨울을 스미스 일가가 마을에서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알고 있었다. 마을에 공장을 세우고 철도를 만들었다. 카야는 이제 학교를 마치고 스미스 저택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엄마를 볼 수 있으니까.아빠가 출장을 간 사이 친절한 스미스 씨는 카야를 저택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게 가까이서 엄마를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카야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카야를 엄마처럼 꾸미려 했다. 그건 카야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스미스 저택에 엄마가 있지만 카야는 더 이상 그곳에 갈 수 없었다. 스미스 씨가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저택에서 일하는 알마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카야는 죽었을 것이다.


아빠도 출장을 간 게 아니었다. 다친 아빠까지 모든 게 스미스 씨의 계략이었다. 하지만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그를 쫓아낼 수 없었다. 공동체였던 마을에 스미스 일가의 영향력은 그만큼 대단했다. 카야는 더 이상 어른들을 믿을 수 없었다. 겨울만 존재하는 마을을 떠나 봄이 있는 곳으로 떠나기로 한다. 그래서 엄마와 진짜 이별을 해야 했다. 도끼로 직접 엄마의 얼음 관을 깨고 떠나보내야 한다.


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얼음 관을 올려다봤다. 무질서하게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부드러운 리본처럼 얼음 관을 휘감았다. 얼음 관에 금이 가고, 표면에 미세한 육각형 무늬들이 새겨졌다. 반짝이는 얼음 가루가 바람에 흩날리고, 눈의 결정들이 자그마한 소용돌이를 만들며 하늘로 올라갔다. 얼음 관 속의 엄마도 빛이 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한껏 젖히고 빛으로 돌아가는 엄마를 두 눈 가득 담았다. (124쪽)


아름다운 얼음 궁전을 떠올리는 한 편의 동화처럼 시작하는 소설은 그 이상의 것을 말한다. 죽음에 대한 이해와 이별, 스미스 씨가 상징하는 권력자의 횡포, 그 모든 걸 경험하는 카야의 성장기라 볼 수 있다. 성장은 주저하며 한 곳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앞으로 나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카야의 용기와 결단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판타지, 스릴러를 좋아하는 이들뿐 아니라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다. 봄을 기다리는 지금과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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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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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비밀번호를 누를 때마다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한다. 비밀번호가 엄마의 생일과 기일이기 때문이다. 잊고 싶지 않아서 더 잘 기억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어떤 일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애쓴다. 자꾸 말하고 자꾸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모두가 알아야 할 일들은 숨겨져있다. 비밀 아닌 비밀로 존재한다. 역사의 한 장면이 그러한 것처럼. 역사의 진실이 그러하다. 뒤늦게 우리에게 실체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 (창비, 2014)의 연장선에 있는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는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긴 소설이다.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구체적인 폭력을 사용하거나 그것을 전면적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에서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장치로 혼이 등장했고 이번에는 삶을 휘감는 고통을 눈의 이미지로 보여준다. 눈은 흩날리며 사라지고 녹아 없어진다. 하지만 쌓인 눈은 삶을 고립시키고 세상과 단절시킨다. 제주 4·3 사건에 대한 진실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된 것처럼. 부끄럽지만 나 역시 몇 년 전에야 당시의 참혹함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소설은 차마 말할 수 없이 몽환적이고 아름답다. 그것은 인고의 세월을 버티면서도 오롯이 진실을 향해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인선의 어머니, 죽음과 우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서도 친구 인선을 부탁을 받고 제주에 온 경하, 손가락 절단 사고 후신경을 살리기 위해 3분에 한 번씩 바늘을 찔러야 하는 고통보다도 새를 살리고자 하는 인선의 간절함이 흩날리고 쌓이는 눈의 절경과 함께 우리에게 스며들기 때문이다. 감히 알 수 없고 짐작할 수도 없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그들의 지키고자 했던 것들은 결국 진실 그 하나였다는 걸 알기에.


인선이 경하에게 맡긴 새는 실재적으로 이미 죽은 상태다. 그러나 인선에게는 새는 지켜야 할 존재였고 그것을 빌미로 경하에게 다시 삶을 부여하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날카로운 바람과 눈을 헤치고 인선의 외딴 집에 도착한 경하가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하면서도 암막천에 싸인 새장 속 새를 살피고 인선과 대화를 나누고 작은 소녀 같았던 인선의 어머니의 지난 시간을 듣는 과정은 결국 독자인 우리가 잃어버려서는 안 될 이야기였다. 그 안에 내재된 강렬한 사랑이야말로 역사를 지탱해온 지독한 것이라는걸.


엄마가 쪼그려앉길래 나도 옆에 따라 앉았어.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빰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311쪽)


1부에서 새로 상징되는 죽음을 통해 슬픔과 애도의 거쳐 눈과 바람으로 가득한 2부 밤에서는 꿈으로 이어지는 내밀한 대화의 끝에서 3부 추위와 어둠을 밝히는 촛불로 맺는 제주 여정은 경하가 인선과 계획했던 프로젝트가 멈추지 말아야 함을 알게 한다. 경하와 인선의 죽음 영혼을 달래는 위령제는 제주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를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폭력으로 인해 부당한 죽음을 맞은 이들을 위한 것이다. 한강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건 바로 그런 죽음을 애도하는 일이며 기억하는 것이다. 나와 밀접한 관계가 아니면 그저 역사의 한 장면으로 치부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무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의 삶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만든다.


단단하게 쌓였던 눈은 반드시 녹는다. 다시 내려도 녹게 된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눈에 환호하고 눈을 기다린다. 눈의 아름다움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겨우 제주 4·3 사건을 안다. 알기에 기억해야 한다. 한강의 소설을 읽는 일도 경하와 인선의 프로젝트에 작게나마 참여하는 일이라 믿는다. 기억한다는 건 잊지 않는다는 일이다. 그리하여 소설의 제목처럼 작별하지 않는다.


말을 꺼내지도, 얼굴을 마주 보지도 않은 채 우리는 앉아 있었다. 주전자 밑면에서 물 끓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인선이 침묵을 깨고 물었다.

작별 인사만 하지 않는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 (중략)

완성되지 않는 거야, 작별이? (중략)

미루는 거야, 작별을? 기한 없이? (192~193쪽)


어떤 작별은 의식이 필요하고 그 의식을 준비할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영원히 작별할 수 없기에 우리는 그것을 품고 살아가야만 한다. 때로는 고통으로 잠들지 못한 각성의 상태가 될지라도. 그것이 남겨진 자들이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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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1-02 16: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강요배 작가님 그림이 떠오르는 글입니다. 전 제주 4.3을 현기영소설로 접했어요. 이 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

자목련 2022-01-03 09:35   좋아요 2 | URL
미니 님 말씀하신 작가분의 그림을 찾아보니 그런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니 님은 이 소설을 더욱 남다르게 읽으실 것 같기도 해요^^
즐겁고 따뜻한 한 주 시작하세요~

새파랑 2022-01-02 19: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제주 4.3에 대해 찾아보았어요. 책을 읽는 내내 작가님의 고통이 느껴져서 쉽지는 않았지만 읽고나서 많은걸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자목련 2022-01-03 09:36   좋아요 4 | URL
맞아요, 소설을 쓰는 동안 한강 작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요.
그래서 더욱 의미가 크고요. 쉬운 소설은 아니었지만 그 여운이 오래 가시지 않아요.
새파랑 님, 환한 하루 이어가세요^^

kyj080812 2022-01-07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일은 잘 모르는 것이다.
 
눈으로 만든 사람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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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친해질 수 있는 기회는 다양하다. 정작 그 안에서 마음을 열 수 있는 이를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공통분모가 있다면 상대를 향한 마음은 쉽게 열리기도 한다. 그게 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아이를 키우고 같은 기관에 보내는 이들의 결속력은 정말 단단하기로 유명하니까. 어른이 되어서 그것도 부모가 되어서 한 사람을 마음에 품는 일은 미묘하고도 복잡하다. 최은미의 단편집 『눈으로 만든 사람』속 단편 「보내는 이」를 읽노라면 그런 감정들이 파도처럼 다가온다.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게 정상인데 나가지를 못할 때 상처가 된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들, 서로의 집 창문을 마주 보며 하루의 일과를 마감하면서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여겼지만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아무런 말 없이 이사를 가버린 후에야 그 마음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게 되는 소설 속 화자처럼. 하지만 그 역시 상대에게 확인받지 않았기에 섣불리 장담해서는 안 된다.


좋아할 만하다 싶으면 쉽게 마음을 주었다. 마음을 먹고, 마음을 주고, 그런 후에는 전력을 다했으며, 다한 만큼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상처를 받고, 더 나아가면 남몰래 앙심을 품었다. (「보내는 이」, 17쪽)


“살구꽃이 피면 톡 하겠대.”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그렁그렁 해진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기약만 있다면 더 오래도 기다릴 수 있다고, 겨울이 다가온 창밖을 보면서 생각하고 생각한다. (「보내는 이」, 45쪽)


살면서 소중한 이와 보낸 시간과 공간은 때때로 큰 자양분이 된다. 함께 보낸 계절이 다시 돌아올 때 그 계절에 다른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그러니 ‘기약만 있다면 더 오래도 기다릴 수 있다’는 화자의 마음은 어떤 희망의 시초가 된다.


최은미 작가는 이처럼 보통의 일상을 세세하고 내밀하게 보여준다. 결혼과 육아로 이미 한 번씩 사회적 단절과 고립을 경험한 이들의 심리를 잘 아는 것이다. 그건 「여기 우리 마주」에서도 여실하게 드러난다. 코로나19라는 처음 접하는 팬데믹의 상황에서 우리가 느끼고 아파한 경험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엄마, 주부가 아닌 선생님으로 자리하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화자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서러웠을까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런 누군가의 존재를 이미 알기에, 그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그들이 하루를 어떻게 쪼개어 살고 있는지 얼마나 동동거리는지 잘 알기에. ‘여기 우리 마주’란 제목 그대로 일하는 엄마가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 대할 수 없는지, 현재의 위치에서만 그들을 상대할 수는 없을까. 어쩌면 나 역시 소설을 읽기 전까지 그들에게 어떤 잣대를 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수미는 알고 있었을까. 누구누구의 맘도 아닌, 무슨 무슨 샘도 아닌, 딱 떨어지는 ‘선생님’이 되어야 할 때, ‘지도사’라는 정식 호칭으로 서 있어야 할 때, 내가 나의 무엇을 보이지 않게 하는지. ‘선생님’으로 생존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깨끗하고 멀쩡하게, 주부로서의 노동만을 선별해서 지워버리는지. 하지만 ‘선생님’인 그 순간에도 내가 알아서 감춰버린 그 노동에 얼마나 실시간으로 잠식당하고 있는지. 어떻게 얼굴이 지워진 채로 다른 여자에게 다른 여자가 되어가는지. 나로 서 있기 위한 최소한의 힘을 기르기 위해 어떻게 또다시, 계속 다시, 매일 다시, 내 노동을 지우고, 지운 것에 먹히고, 먹혀가는 채로 지우면서, 편하게 사는 여자들 중 하나가 되는지. 왜 나는 나의 어떤 부분을 지워야만 내 실력을 신뢰받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는지.(「여기 우리 마주」, 74쪽)


어떤 의미로는 ‘여기 우리 마주’란 말은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게 아닐까 싶다. 과거의 아픈 기억과 상처를 지닌 채 여기 지금 마주한 「눈으로 만든 사람」, 「나와 대담자」, 「내게 내가 나일 그때」속 인물들은 여전히 아프다. 폭력과 상처를 가한 이들과 여기 지금 마주했지만 그들은 과거를 잊은 채 모르 척 살아간다.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주변인을 통해 여전히 고통은 살아움직인다. 그럼에도 새롭게 여기 우리 마주한 이들은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와 대담자」에서 치료실 한 장면처럼 마냥 기다리며 「내게 내가 나일 그때」 속 유정처럼 스스로를 통과해서 나 오고 싶은 간절함이 그러하다. 과거에 갇혀 살 수 없기에 앞으로 고통스럽지만 직시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런 의지는 손길은 「11월행」 속 엄마 둘에 딸 둘의 사진처럼 다정하고 따뜻하다. 그 안에 담긴 사정을 잠시 잊은 채 여기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안도감이라고 할까.


동시대를 살아가는 기혼 여성의 모습을 통해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만드는 소설집이다. 지금 나의 일상은 어떤가, 나의 슬픔과 나의 상처는 어떻게 진행 중인가. 심연의 말을 듣기 위해 고요함으로 빠져드는 그런 순간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소설 속 인물들은 이미 다 아는 것 같았다. 내가 아는 이들을 만나 것처럼, 나를 아는 이를 만난 것처럼. 그래서 울컥했고 그래서 아프지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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