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속의 엄마를 떠나보내다 고블 씬 북 시리즈
남유하 지음 / 고블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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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존재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 곁에 있는 이들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했다. 그들과 영원히 함께 살 거라는 생각뿐 이별은 예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삶은 헤어짐의 연속이며 영원한 건 어디에도 없다는 걸.


365일 겨울만 지속되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카야’와 그의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엄마와의 이별이 찾아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을의 관습대로 얼음 속에 엄마를 보관하고 볼 수 있다. 카야는 매일 얼음관 속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학교에 다녀온다. 거기 엄마가 있으니 괜찮았다. 엄마는 마을 사람이 아니었다. 봄이 있는 곳에서 온 사람이었다. 카야는 엄마가 들려준 봄을 기억한다.


그런 엄마의 얼음 관을 ‘스미스 씨’가 자신의 저택으로 데려갔다. 아빠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으로 승진과 집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카야는 아빠에게 화를 냈지만 겨울을 스미스 일가가 마을에서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알고 있었다. 마을에 공장을 세우고 철도를 만들었다. 카야는 이제 학교를 마치고 스미스 저택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엄마를 볼 수 있으니까.아빠가 출장을 간 사이 친절한 스미스 씨는 카야를 저택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게 가까이서 엄마를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카야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카야를 엄마처럼 꾸미려 했다. 그건 카야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스미스 저택에 엄마가 있지만 카야는 더 이상 그곳에 갈 수 없었다. 스미스 씨가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저택에서 일하는 알마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카야는 죽었을 것이다.


아빠도 출장을 간 게 아니었다. 다친 아빠까지 모든 게 스미스 씨의 계략이었다. 하지만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그를 쫓아낼 수 없었다. 공동체였던 마을에 스미스 일가의 영향력은 그만큼 대단했다. 카야는 더 이상 어른들을 믿을 수 없었다. 겨울만 존재하는 마을을 떠나 봄이 있는 곳으로 떠나기로 한다. 그래서 엄마와 진짜 이별을 해야 했다. 도끼로 직접 엄마의 얼음 관을 깨고 떠나보내야 한다.


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얼음 관을 올려다봤다. 무질서하게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부드러운 리본처럼 얼음 관을 휘감았다. 얼음 관에 금이 가고, 표면에 미세한 육각형 무늬들이 새겨졌다. 반짝이는 얼음 가루가 바람에 흩날리고, 눈의 결정들이 자그마한 소용돌이를 만들며 하늘로 올라갔다. 얼음 관 속의 엄마도 빛이 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한껏 젖히고 빛으로 돌아가는 엄마를 두 눈 가득 담았다. (124쪽)


아름다운 얼음 궁전을 떠올리는 한 편의 동화처럼 시작하는 소설은 그 이상의 것을 말한다. 죽음에 대한 이해와 이별, 스미스 씨가 상징하는 권력자의 횡포, 그 모든 걸 경험하는 카야의 성장기라 볼 수 있다. 성장은 주저하며 한 곳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앞으로 나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카야의 용기와 결단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판타지, 스릴러를 좋아하는 이들뿐 아니라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다. 봄을 기다리는 지금과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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