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의 목소리를 들었다. 잠깐 여유가 생겨 수목원을 걷고 있다고 했다. 그 시각이 점심시간 이후였으니 나는 이 더위에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나무 그늘이 있어 덥지는 않다고, 아마도 멈추면 더울 거라고 친구는 말했다. 친구는 걸으면서 여름의 더위에 대해 부모님의 건강에 대해 말했다. 친구는 부모님 두 분은 비교적 건강한 노후를 보내신다. 주말부부인 친구가 주중에는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이 참 대견하다. 오늘도 일을 시작하기 전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친구가 부모님을 보살피는 쪽이라고 할까. 종종 부모님 곁에서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고 대단하다.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기쁨이 부럽고 간혹 의견 차이로 갈등이 생기는 걸 보면 부모 자식이 참 어려운 사이구나 싶다.
더운 여름을 잘 지내라고, 남은 하루도 고생하라고 말하며 통화를 끝냈다. 더위가 아직 많이 남았는데 하루하루 지치는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긴 여름은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정답일 것이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참 어렵다. 무난하게 지나가는 하루도 있지만 어떤 하루는 어딘가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때로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 때로는 엄청난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다.
지역에 코로나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었다. 괜한 공포가 몰려온다. 이제 안전 구역은 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구나 싶은 마음까지 든다. 세상에 안전 구역이라니. 쓰고 보니 더 무섭다. 현실을 피해 책이라는 안전 구역으로 도피해야 하는 지경이다. 여름이니까 시원한 색감을 찾는다, 어쩌다 보니 책도 그렇다. 아니, 그냥 우연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 둔 세 권의 책이 모두 그러하다. 여름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민트와 그린 사이, 그 어디쯤을 향하는 것 같다. 기다렸고 궁금했던 장혜령의 첫 시집 『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쇼팽』, 한 권으로 만나는 헤밍웨이의 작품들 『디 에센셜 헤밍웨이』.
장혜령의 소설과 산문에 이어 시는 어떤 느낌일까. 조금 무거울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슬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표지의 색만 보면 산뜻할 것 같지만 몇 편 읽어보니 그건 아닌 듯하다. 장문의 시가 많고 어렵다. 언제나 그렇듯 시는 왜 이리 어려운가. 헤밍웨이의 대표작과 짧은 단편과 에세이를 읽는 일은 즐겁다. 우선은 대표작보다는 처음 만나는 단편을 먼저 읽는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읽을 때마다 사람 여행이란 이런 게 아닐까 느낀다. 쇼팽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 그가 사랑한 사람들을 상상하게 된다.
여름의 바람은 민트와 그린의 색을 지녔을 것 같다. 여름이라서 드는 생각이다. 여름이라서 드는 상상이다. 여름이라서. 더위에 지쳐서 책 읽는 속도는 느리고 더디다. 여름의 특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