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에 넝쿨 하나

  고요하게 손을 뻗어

  담장을 만진다

 

  새 잎 하나 온다

 

  담장은 제 몸에

  새 생명 하나가 고요하게

  손을 뻗는 것 모른다

 

  이 지구에서 많은 종이

 

  새로 생겨날 때도

  혹은 사라져갈 때도

  그 어머니인 지구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

 

  그런 존재인 어머니

 

  고요하게 손을 뻗는 새끼들을 그냥 모른 체하세요

 

 

  달이 걸어오는 밤

 

  저 달이 걸어오는 밤이 있다

  달은 아스피린 같다

  꿀꺽 삼키면 속이 다 환해질 것 같다

 

  내 속이 전구알이 달린

  크리스마스 무렵의 전나무같이 환해지고

  그 전나무 밑에는

  암소 한 마리

 

  나는 암소를 이끌고 해변으로 간다

  그 해변에 전구를 단 전나무처럼 앉아

  다시 달을 바라보면

 

  오 오, 달은 내 속에 든 통증을 다 삼키고

  저 혼자 붉어져 있는데, 통증도 없이 살 수는 없잖아,

  다시 그 달을 꿀꺽 삼키면

  암소는 달과 함께 내 속으로 들어간다

 

  온 세상을 다 먹일 젖을 생산할 것처럼

  통증이 오고 통증은 빛 같다 그 빛은 아스피린 가루 같다

  이렇게 기쁜 적이 없었다

 

 

  저 물 밀려오면

 

  저 물 밀려오면 무얼 할까,

  그 물 위 수 놓을까, 어쩔까

  그 물 위 한 뭉텅이 짐승의 살 다질까, 말까,

  그 물 위 뒤 모래밭에서 깨어난 새 마늘 짷을까, 말까,

  그 물 위 햇고추 말릴까 말까, 무얼 잃을까

 

  햇빛 다지듯,

  달빛 으깨듯,

  그날 읽었던 책장에 든 낡은 짐승들이 사라진 기억

  다질까, 으깰까, 웃다가

  이 생에 한 사람으로 태어나

 

  먼 밤 잠 못 드는 저 물 밀려오는 소리, 듣는

  그 물 위 당신이 뱉어낸 별들 안아 들일까, 말까,

  그 물속 사라지는 저 빛 어쩔까, 나 말까

 

  그러다가, 사라질까, 무엇이 될까,

  잊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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