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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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이제라도 읽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넌 지독한 무식쟁이야!"하고 깨닫는게 기뻤다는 작가의 글처럼 나에게도 "넌 지독한 무식쟁이야!"하고 말하는 것 같아 자극 받아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지독한 무식쟁이라고 느끼는 요즘이라 더 그러한 것 같다.

 

"안티고네는 늘 '행복할 권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권리'를 택합니다. 눈먼 아비와 천하를 떠돌며 그녀는 어떤 세상을 본 것일까요? 테베로 돌아온 후 '살아남을 권리'를 택한 동생 이스메네와 달리, 안티고네는 죽음을 불사해서라도 지켜야만 하는 그 무엇을 고민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안티고네와 같을까, 이스매네와 같을까?

나는 부끄럽게도 살아남아야 할 것 같다. 죽음을 불사할 용기가 없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저는 1차 세계대전에서 아들을 잃은 고통을 조각상으로 표현한 케테 콜비츠의 작품에서, 시공간을 뛰어남는 고통의 강렬한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그녀가 견딘 고통을 고스란히 담아낸 조각들을 통해 한 사람의 영혼과 온전히 만난 느낌을 받습니다. 때로 고통은 존재를 파괴하는 듯하지만 존재의 진정한 내면을 되찾게 해주는 힘이 되지요."

 

아들을 잃은 고통을 표현한 케테 콜비츠의 조각상은 가슴을 저릿저릿하게 한다. 그 고통을 감히 경험하지 못한 내가 말할 수 없지만 그 느낌이 어떠할지는 알 것 같다. 세월호 유가족의 심정도 그러하겠다고 그저 느낄뿐이다.

 

"왜 진실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할까요? 세상은 왜 나쁜 사람들이 늘 이기는 것처럼 보일까요? 저는 아이스킬로스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속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예전에는 너무나 비장해서 불편한 이야기 혹은 주인공이 견디고 있는 참혹한 고통이 안쓰러워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로 다가옸습니다. 하지만 왜 진실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이토록 고통받는가 하는 물음을 갖고 다시 읽으니 비로소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것 같았지요.  이 이야기는 가장 윤리적인 존재가 가장 참혹하게 교통받는 이 세상의 은유로 다가옵니다. 진실을 먼저 깨달은 사람이 필연적으로 감내해야 할 고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진실에 맞서는 일은 결코 흔한 용기로는 할 수 없다. 자신의 고통을 감내할 용기가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그런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부끄럽기만 하다.

 

"<타인의 고통>에서 손택은 매스미디어가 전시하는 천편일률적인 고통의 이미지에 길들어 버린 현대인의 무딘 감수성을 공격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마음으로 느끼는 공감의 기술을 잃어버린 현대인은 영화를 볼 때는 눈물을 아끼지 않으면서 정작 살아 있는 옆 사람의 고통에는 무감각해져 갑니다."

 

타인의 고통에 무딘 현대인들, 그중 하나가 나는 아니기를 바란다.

 

"추억의 시효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지만, 그 아픔의 치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의 상처들은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영혼의 매개체가 되어 줍니다. 상처로 얼룩진 기억이 없다면 인간은 과거를 성찰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없습니다."

 

상처로 얼룩진 기억,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는 없지만 분명 과거의 치유가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은 맞는 것 같다.

 

"나무는 위로도 자라지만 아래로도 자랍니다. 아니, 아래로 자라야만 위로도 자랄 수 있습니다. 외적인 성장만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아래로 자라는 법, 내면으로 자라는 법, 무의식 깊숙이 영혼의 닽을 내리는 법을 망각해 버렸습니다. 위로, 더 빨리, 더 많이 자라기만 하느라 우리 내면의 뿌리가 얼마나 자라야 하는지, 미처 돌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아이들이 나무처럼 단단하게 자라주기를 늘 바랐다. 위로, 더 빨리, 더 많이 자라는 게 아니라 거대한 몸집을 지탱할 수 있는 튼튼한 뿌리를 가진 나무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학교 다닐 땐 '왜 자꾸 난 딴 생각에 빠지는 걸까?'하고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곤 했지만, 내가 원하는 공부가 무엇인지 알게 되니 그 딴생각이야말로 나의 진짜 고민이자 인무낙의 화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진짜 공부란 무엇인가를 20년 동안 찾아 헤맸지요. 기나긴 방황이었지만 나를 끝내 성장시키는 값진 헤맴이었습니다. '학문'이라 한다면 너무 거창합니다. 하지만 '공부'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지요. 저에게는 공부가 가장 소중한 마음챙김의 기술이었습니다. 자격증이나 점수를 따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문학과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미치게 좋았습니다." 

 

결국 공부란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를 키우는 공부, 남을 도울 수 있는 공부가 필요하겠다. 나눠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게 꼭 물질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배운다. 그렇게 배운 것들을 세상에 나눌 수 있는 작가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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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6 13: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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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6 13: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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