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먹고 자고를 반복하다보니 하루가 금방 지나간 느낌이다.
비가 내리는 연휴를 핑계삼아 종일 집에 있으면서 한 일이 별로없다.
지난 며칠을 고단하게 보냈던 탓이기도 하고 명절연휴의 후유증으로 심하게 구내염을 앓기도 했던 탓이었을 수도 있다.

요새는 알고 지내는 이들에게 바쁘다는 말이 인사가 되었다. 다들 뭐가 그리 바빠? 하고 물어올때마다 세세하게 무슨 일을 하며 지내는지 알려주지 않으려고 해도 시간조율할 일이 생기면 구차한 변명이 아니라 실제로 바쁘다고 설명하는데 그게 또 상대에겐 구차하게 들리기도 하는 것 같다.

이년여전부터 오전엔 주3회 수영을 하고 일년여전부턴 학교폭력예방프로그램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주3회 수영을 하면서 체력이 많이 좋아진 걸 느끼고 이제는 운동을 안하면 오히려 불편함을 느낀다. 그 와중에 오후에는 1시간반 정도 공부 봐주는 초등학생이 있고, 일주일에 한번정도는 봉사를 한다. 교육관련 봉사를 하다보니 정기적으로 교육을 받고 모임이 있다. 거기에 수업을 나가려면 사전모임에 사후모임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청소년대상 교육봉사를 하며 나의 부족한 점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주변의 권유와 오랜 고민 끝에 청소년교육 공부를 시작했다.
들어가긴 쉬우나 졸업하긴 힘들다는 방송대 3학년에 편입을 하고 솔직히 지금은 기쁨보다는 후회가 조금씩 되고 있다. 다시 공부할 능력도 안되면서 공부를 시작하다니 섣부른 행동이었단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6과목을 수강신청하고 그중 3과목은 중간 레포트를 제출하고 3과목은 출석수업후 출석시험을 봐야한단다.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편히 시작할 수 있는 공부는 없는데 내가 지금 왜 이걸 시작했을까, 며칠은 책을 읽고 며칠은 정리를 하고, 하지만 어려운 과목은 도저히 뭔소린지 알지 못하겠다. 여러번 읽으며 생각하고 생각해도 제대로 하고 있는건지, 헛웃음도 나왔다. 동영상 강의를 보며 딴 생각을 하기 일쑤이다.

지난주의 수, 목, 금은 아이들 학교 행사로 바쁘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친한 사람들 만나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수요일엔 아이들 방과후 바이올린 공연을 했고, 목요일엔 큰아이네 학년에서 반대표 맡아서 오전엔 봉사하고 오후엔 공연보며 간간이 봉사했다. 금요일엔 작은애 공연하는 날이라 또 학교에 갔었다. 그 바람에 함께 스터디하는 모임 약속은 까맣게 잊고 약속 장소에 가지 않았다. 다음주부터 스터디대신 봉사 사전모임을 하기로 하고는 그것도 헷갈렸던 것이다.
남편은 제발 일정을 좀 줄이라고 충고하는데 지금 상황에선 줄일 수 있는 일이 없다. 주3회 초등수업을 빼고 싶은데 살짝 말 꺼냈다가 좀 더 오래해달라는 부탁을 오히려 받아서 그것 거절하기도 쉽지 않지만 정말 힘들면 이번 학기 혹은 겨울방학까지만 봐주고 접을 생각이다. 봉사는 그나마 학기중에만 있으니 방학엔 교육에만 참여하면 되니 여유가 생길 것도 같다.

어제는 아이들과 1시부터 3시까지하는 토요수영에 다녀와서 그 전날 시골에서 온 열무와 쪽파로 김치를 담갔다. 또 그 며칠전에는 고추와 마늘 앙파로 장아찌도 담갔다. 기껏 좋은 마음으로 한 일들인데 오늘 아침엔 남편에게 생색을 내며 짜증을 부렸다. 그랬더니 하루종일 자도록 두고 설거지며 청소를 도맡아해주었다. 짜증내기전에 알아서 해주면 좋으련만.

침대 머리맡에 몇권의 책이 쌓여 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다 읽지 못하고 쌓아둔 책들과 전공서적 몇권.
요즘 읽고 싶어 담아둔 책들 찾아볼 여력이 없다. 북플에서 최규석님 만화책 올라온 것 보고 책장을 찾아 대한민국 원주민을 오래만에 다시 꺼내 읽는다. 여전하다. 대한민국은 그리 많이 변화하지 않았다.

월요일이 개천절이라 마음 편하게 남편과 잠깐 동네 한바퀴 돌고 편의점에서 천원짜리 원두커피를 마셨다. 늦은 시간의 편의점은 정말 최고이다. 얼마전 체해서 아프다고 뒹구는 남편에게 편의점에서 약을 사다주기도 했다. 편의점 커피 마시며 애들 얘기 사는 얘기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심야영화보러가는 지인을 만났다. 여전히 신혼처럼 사이좋은 부부의 모습이 보기 좋다.

요즘처럼 정신없이 사는 날들이 불평스럽기만 한 건 아니다. 오히려 바쁘게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래도 시간적 여유에 쫓기고 체력의 한계가 느껴질때는 용기가 사라지기도 한다.
학교폭력을 이미 알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동급생 친구에게 칼부림을 한 중학생 아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자살하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고통받는 학교가 아니기를, 학생들 간에 폭력이 난무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할 일이라는 생각에 봉사활동의 끈을 놓치 못한다. 아이들이 제대로 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어른이고 싶다.

전번 학기에 만났던 우울했던 중3여학생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 아이의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가볍게 말했던 내 실수가 한참 지나도 만회가 되지 않는다. 동료들은 모두들 괜찮다고 위로했지만 내가 오히려 그 아이를 아프게 한 것 같아 마음이 여전히 무겁고 아프다. 좀 더 신중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교훈은 얻었을지 모르지만 그 아이의 상처를 더 아프게 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단 생각도 들었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아이는 없다. 다만 자신의 환경이 자신들을 자꾸 소중하지 않게 만든다. 그게 너무 안타깝고 그것을 바꿔주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다.

쌓아둔 책들을 어서 읽고 책장으로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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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3 01: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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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3 06: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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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4 08: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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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4 15: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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