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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들판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평점 :
오랜만에 공지영의 소설을 읽었다. 근 5년만에 발표했다고 한다. 그동안 글쓰기가 버거웠다고 한다. 여자는 전업작가로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아내와 엄마의 생활을 함께 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베를린에서 보낸 1년동안의 생활이 이 소설 안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는 것 같다. 물론 소설이니 허구이다. 하지만 그저 주변의 잡스러운 이야기가 아니였다. 베를린에서 살아가는 이방인-한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연작소설집이다.
<빈 들의 속삭임> <네게 강 같은 평화> <귓가에 남은 음성> <섬> <열쇠> <별들의 들판>에서 베를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네게 강 같은 평화>에서 영명이 열어본 수명의 일기-가혹했던 이념에 대한 고문, 그로 인해 고국을 떠나 비참하게 살아야만 했던-가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귓가에 남은 음성>에서 힌츠페터 기자의 비디오를 통해 1980년대의 시대상황을 보여주었고 거기에서 현실과 타협하려 하는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하는 것이 인상깊었다. 그리고 <열쇠>에서는 독일의 방문은 밖에서만이 아니라 안에서도 열쇠로 잠글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을 소재로 자신들의 욕망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을 보여주었기에 재미있었다. 가장 인상깊고 재미있게 읽은 것을 아무래도 <별들의 들판>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별을 통해서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 나선 수연, 그래서 가게 된 베를린, 그곳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난했던 시절 인력수출을 통해 경제 성장을 꾀하던 국가 정책에 따라 간호사로 광부로 독일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빈 들의 속삭임> <섬>이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빈 들의 속삭임>에서는 남편과 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딸을 버리게 된 엄마가 자살 후유증으로 실어증을 앓고 있는 딸에게 처음 아이를 갖게 되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고 말하는 것에 공감했다. <섬>은 주변 사람의 죽음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얘기한다. 힘겹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것. 그래도 살아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공지영 소설이 통속적이고 감성적이라 비판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재미없는 작품은 없었던 듯 싶다. 이번 소설책도 마찬가지로 재미가 있다. 게다가 내가 살았던 그 시절 그때의 어른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몰랐다. 뉴스에서 나오는 대학생들의 데모장면을 보며 혀를 끌끌차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학생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가 크면서부터 알게 되었다. 전쟁을 겪었던 아버지 세대에게는 빨갱이라면 반대해야하는 존재가 틀림없었고 우리 사회가 언론이 그들을 그렇게 매도했던 것이 사실이기에 사실 가슴이 아프다. 게다가 386세대라고 하는 그때의 그 사람들이 지금은 현실과 타협해서 살아가고 있다.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돌아올 고국이 정말 남아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