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온통 메리크리스마스를 날렸다. 변변한 답장하나 보내지 못한 채 보냈다.

여든 넷을 사신 할머니 생신에 너무 바빴고 26일엔 선배의 결혼식까지 있었다.

갈까말까 고민끝에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어색한 자리가 될게 분명해서 그곳에 가는게 조금은 두려웠던게 사실이다.

과거의 남자를 만난다는 건 상당히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일인 것을.

그렇다고 나의 모든 인간관계를 끊을 수 없음에 신랑과 함께 갔다.

오랜만에 간 수원. 다시는 갈 일이 많지 않을거라 여기던 곳. 하지만 결국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교수님, 선배님, 후배님. 그들 사이에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했을 나를 생각하니 너무도 끔찍했다.

다행히 결혼식장에서 그와 마주치지 않았다. 오지 않았나보다 생각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의 모습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닌지......

결혼식이 끝나고 학교에 들어갔다. 너무 오랜만이였지만 여전히 그대로인 학교가 너무도 반가웠다. 하지만 반가움은 마음뿐 하나 하나가 버거웠다. 함께 걸어다니던 교정과 함께 오르내리던 계단과 함께 있었던 그 수많은 공간들, 그것들이 모두다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함께 즐겨가던 식당으로 자연스레 발길을 옮기고 주인 아줌마와 한참을 수다를 떨었다. 졸업한 이후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독한년"이라고 내뱉는 말이 가슴에 와서 콕 박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였다. 헤어진 이후 처음보는 그의 모습은 그대로였던가 아니 살이 조금 쪄있었던 것 같다. 아줌마, 나, 그리고 그 우린 너무도 당황스러워했다. 담담하게 마주할 수는 없었는지...우리를 바라보던 신랑은 그 모습이 하도 우스웠다며 집에 가는 내내 차안에서 웃었다. 신랑 앞에선 담담하게 말했지만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와 나의 기억이 하나로 묶여 있는 그곳, 학교에서 다시 만나길 바랐던 건 아니였는지...그 사람 어떻게 사는지 너무도 궁금했다. 신랑에게 미안하지만 그냥 궁금했다. 잘 살고 있기를 너무도 바랐다. 그런데 너무도 다행히 여자친구와 함께 왔다. 내 마음의 부채 하나를 덜어낸 것 같았다. 나와 헤어진이후 살이 많이 빠져서 사람들 마음을 안타깝게 했던 그가 이제 마음의 여유를 다시 찾았을거라고 생각하며 조금은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났길 바라고 나보다 여유로운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예쁘게 살아가길 바랐던 그의 사랑이 지켜지길 바란다.

담담하게 마주앉아서 지난 얘기를 나눌 수는 없을지...그게 그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겠지만...이건 분명 나의 욕심이겠지만...마음이 자꾸 그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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