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후
남편을 만나기 전 오랫동안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한 사람이 있었다. 나의 대학 4년을 고스란히 그 사람과의 기억들로 덮혀 있다고 해도 과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따라 나의 음악 취향도 바뀌였고 그 사람을 따라 책을 읽는 폭도 넓어졌고 그 사람을 따라 많은 사람들과 폭넓은 대인관계를 가졌었다. 그때는 그 사람이 나의 전부였다고 믿었다. 그를 빼놓고는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랬던 내가 먼저 그 사람을 버리고 떠났다. 내가 그랬듯 그도 나밖에 몰랐을텐데 한순간에 그 사람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그를 떠났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그랬던 건 아니였다.(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이렇게 얘기하면 구차한 변명밖에 되지 않지만)
아픔은 상처를 받은 사람만이 아니라 상처를 준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걸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다. 내가 그를 떠날때 얼마나 많이 힘들어하고 아파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나는 그저 독하고 나쁜 여자가 되었을 뿐이다. 그냥 그랬다. 그를 감당하기가 내게는 너무도 벅찼다.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는 것. 그것에 대한 나의 어리석은 질투.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아니다. 그에게 나는 첫번째였기에 뒤로 밀려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순간적이다. 만남과 헤어짐은. 나는 벌써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2세를 계획하고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도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한다. 나는 아마도 그를 쉽게 잊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그의 삶의 주변에서 어슬렁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있으니까. 그의 애인이 나보다 좋은 사람이길 바라면서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그런 부분들을 너그럽고 둥글둥글하게 이해해주기를 너무나도 바란다. 내가 그를 떠나서 더 좋은 사람을 만났기를 그리고 그의 삶이 변했기를 바란다.
언젠가 그에게 진 빚을 갚을 날이 있었으면 한다. 그에게 받은 많은 것들은 아직도 내게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그와 함께 읽었던 책, 함께 들었던 음악, 함께 했던 여행지. 그를 떠났지만 여전히 내 가슴 속에 남겨두고 싶다. 언제까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