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고 1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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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메말라 까실까실하고 이슬이 깨끗하여 투명한 것이 음력 팔월의 멋진 절기다. 물은 힘차게 운동하고 산은 고요히 머물러 있는 것이 북한산의 멋진 경치다. 개결하고 운치 있으며 순수하고 아름다운 두세 사람이 모두 멋진 선비다. 이런 사람들과 여기에서 노니니 그 노니는 것이 멋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아침에도 멋지고 저녁에도 역시 멋지다. 날이 맑아도 멋지고 날이 흐려도 멋지다. 산도 멋지고 물도 멋지다. 단풍도 멋지고 바위도 멋지다. 멀리 조망하여도 멋지고 가까이 다가가 보아도 멋지다. 부처도 멋지고 스님도 멋지다. 비록 좋은 안주는 없어도 탁주라도 멋지다. 절대가인이 없더라도 초동의 노래만으로도 멋지다.
  요컨대 그윽해서 멋진 것도 있고, 상쾌하여 멋진 것도 있고, 활달아여 멋진 것도 있고, 아슬아슬하여 멋진 것도 있고, 담박하여 멋진 것도 있고, 알록달록하여 멋진 것도 있다. 시끌시끌하여 멋진 것도 있고, 적막하여 멋진 것도 있다. 어디를 가든 멋지지 않은 것이 없고, 어디를 함께하여도 멋지지 않은 것이 없다. 멋진 것이 이렇게도 많아라! (197~199쪽 중) 

아, 정말 멋지다! 하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느 글 하나 멋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눈이 같으면 코가 다르고, 코가 같으면 입이다르고, 입이 같으면 얼굴빛이 다르고, 모두 같으면 키와 체구가 다르고, 키와 체구가 같으면 자세가 다르다. 나한들은 혹은 서고 혹은 앉고, 혹은 숙이고 혹은 옆의 것에 붙고, 혹은 왼쪽을 돌아보고 혹은 오른쪽을 돌아보고, 혹은 남과 이야기하고, 혹은 글을 보고 혹은 글을 쓰고, 혹은 귀를 기울이고, 혹은 칼을 지고, 혹은 어깨를 기대고, 혹은 머리를 떨어뜨리어 근심하는 듯하고, 혹은 생각하는 듯하고, 혹은 기쁜 듯 코를 쳐들고 있다. 혹은 선비 같고, 혹은 관리 같고, 혹은 아녀자 같고, 혹은 무사 같고, 혹은 병자 같고, 혹은 어린애 같고, 혹은 늙은이 같다. 천 명이 모인 모임이요, 일만 명이 모인 시장 같다. (107~108쪽) 

  지금 내가 술을 마시고 있는데, 술병을 들어 찰찰 따르면 마음이 술병에 있고, 잔을 잡고서 넘칠까 조심하면 마음이 잔에 있고, 안주를 잡고서 목구멍에 넣으면 마음이 안주에 있고, 객에게 잔을 권하면서 나이를 고려하면 마음이 객에게 있다. 손을 들어 술병을 잡을 때부터 입술에 남은 술을 훔치는 데 이르기까지, 잠깐 사이라도 근심이 없게 된다. 몸을 근심하는 근심도, 처지를 근심하는 근심도, 닥친 상황을 근심하는 근심도 없다. 바로 이것이 술을 마심으로써 근심을 잊는 방도요, 내가 술을 많이 마시는 까닭이다. (109쪽) 

   조선후기 문인 이옥과 김려의 글은 지금 읽기에도 손색이 없는 글이다. 문체반정을 통해 힘든 삶을 살았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은 짓누룰 수 없었다. 양반의 자제임에도 군역의 의무를 지게 되고, 유배 생활을 하였어도 그들은 자신들의 글쓰기를 버리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글쓰기는 무엇이었을까?  

   ......박학으로 이름을 날리는 자를 만나 질문을 해 보면 독 속에 들어앉아 별을 세는 꼴이고, 글 잘 짓는다고 소문난 자의 글을 읽어 보면 남의 글을 흉내 내고 훔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시문과 과거 문장을 잘 쓴다고 해서 읽어 보면 허수아비가 시장에서 춤추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도시에서 명성을 날리고, 활개를 치고 다닙니다. 살아서는 과거 시험과 관직에서 명성을 얻고, 죽어서는 글이 목판에 새겨지는 영예를 누립니다. 몸은 죽어도 문장은 죽지 않는 것입니다. 낮은 것도 그들이 쓰자 높아지고, 자잘한 것도 그들이 쓰자 크게 됩니다. 모두들 제 글의 신을 버리지 않습니다. 유독 나만이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경전이 술이라도 되는 양 탐닉하고, 서책이 여자라도 되는 양 푹 빠져 보기도 합니다. 눈과 귀가 놓친 것이 있을까 싶어 손으로 베껴 써 보아도 그 누구의 칭찬도 듣지 못합니다. 칭찬은커녕 마을의 아이들마저 나를 놀려 댈 뿐입니다...... (188쪽중) 

  '몸은 죽어도 문장은 죽지 않는 것입니다'하고 그가 썼다. '그것때문에 경전이 술이라도 되는 양, 서책이 여자라도 되는 양' 빠져 살았던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그들이 글을 썼다면 과연 이런 멋진 글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들 스스로가 만족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글을 썼기에, 그들에 대한 감동으로 책을 읽는내내 울컥했다. 

  사료가 바탕이 되었기에 이 소설의 구성과 완성도는 탄탄하다. 그러하기에 읽는 재미와 더불어 정조의 문체반정은 심술맞은 임금의 질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책을 읽는 것을 행복해하고, 글을 쓰는 것을 즐거워하는 내게는 개성있는 나만의 글을 써야한다는 교훈까지 안겨주는 책이었다. 나 스스로 만족하고 즐거워하며 행복해한다면 어떤 글쓰기를 하여도 상관없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훨씬 글쓰기에 대한 압박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내 느낌과 생각대로 나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결심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선물해주신 ㅇ님 고맙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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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11-06-30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옥 김려를 멋진 이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소설로 이끌어낸 설흔이란 작가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꿈꾸는섬 2011-07-04 16:01   좋아요 0 | URL
소나무집님 이 소설 정말 너무 매력적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