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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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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이야기 중에 장승이와 바리공주의 약속이 생각났다. 길값, 나무값, 물값으로 석삼년 아홉 해를 아들 낳아주고 살림 살아주어야 하는 세워.
나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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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작가의 소설을 좋아했던 게 언제였을까?
단편 <삼포가는 길>을 읽고 나서였던 것 같다.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듯한 문장 속에 사람들의 내밀한 심리와 섬세한 묘사,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일상의 인물이었다. <삼포가는 길>의 백화는 여전히 내게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여자로 기억한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심청>에서였고, 지금 또 <바리데기>에서 그녀를 만났다.
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의 구성이 좋았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바리공주를 모티프로 소설을 써내려가는 것도 좋았지만 공간적 구성 또한 좋다. 한 동포인데도 먼 나라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 북조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데 현장감이 느껴진다. 탈북이 비일비재한 현실이 되어버린 북한의 모습이 그려진다. 두만강을 건너 백두산 자락 어딘가에 숨어 살다 죽어간 영혼들도 있을 것이고, 그들을 인신매매한 일당들도 있을 것이며 바리와 샹이처럼 영국으로 팔려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영국에서 만난 무슬림 사람들의 이야기, 미국의 911테러, 이라크 전쟁, 세상의 모든 소용돌이를 보여주는 이 책의 방대한 서사시에 놀랐다.
백화가 술집을 도망쳐 고향으로 가는 영달의 일행을 만나는 것, 심청이 중국 대륙을 횡단해 일본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려냈던 것과는 또 다른 삶의 여정이 이 책 속에 담겨 있었다. <바리데기>의 여정은 이제 고향, 한국의 공간이 아니다. 이승과 저승의 공간을 횡단하는 소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세계관이 좀 더 방대해졌다고 해야겠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 돌아오지 않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세상의 시간은 원인과 결과의 여정으로 흐른다. 더이상 한 나라의 사건이 그나라의 사건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세상 사람 모두가 걱정하고 사고하고 고쳐나가야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불고 몇년전까지만해도 하나의 나라로 이루어져있던 북한에 대해 얼마큼 관심을 가졌던가? 사실 북한에 대한 관심은 정말 없었던 것 같다. 가까운 일본, 중국, 또 멀리 떨어져 있는 많은 다른 나라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관심을 갖고 살았었는데 말이다.
북조선에서 태어나 부모형제를 잃고 탈북을 한 바리, 그녀의 고단한 여정은 어느 나라 어느 여성에 국한한 이야기가 아니었단 생각을 하며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로 살아가고 있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 어딘가의 모든 여성들은 시간을 견디며 삶을 살아가고 있단 생각을 한다. 그렇게 짓밟히고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듯 우리의 삶도 흘러 가고 그렇게 우리가 살아간다는 작가의 글이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결국 모두 다 마찬가지일 것이란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