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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 김이설 소설집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3월
평점 :
이 책의 리뷰는 왠지 '아무도 말하지 않던 것'을 말해야할 것만 같다. 하지만 난 여자고, 엄마고, 아내이고, 딸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했던 말을 똑같이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일까? 너무 아파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붕괴된 가족들, 그 안에서 상처를 받는 건 늘 여자의 몫인 것 같다.
<열세살>, 남편을 잃고 딸아이를 데리고 노숙을 하는 엄마, 하루종일 차가운 지하철 계단 바닥에 엎드려 사람들에게 구걸을 한다. 딸아이는 엄마를 기다리다 남자들의 배설구가 되어가고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가며 살아간다.
<엄마들>, 아버지가 지은 빚때문에 가족이 뿔뿔히 흩어져 산다.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1년동안 숨어 살며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대리모를 한다. 다른 사람의 난자와 정자가 자신의 몸에 자라는 10개월, 정말 살 수 있었을까? 아이를 갖고 싶지만 갖을 수 없는 계약자까지 두 여자의 인생이 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순애보>, 정말 이 책을 집어 던지고 싶을 정도로 리얼했다. 바람난 엄마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딸을 버리고, 딸이 만난 중년의 남자가 아이가 거둔다. 그는 아빠가 되고 그녀는 아빠의 딸을 낳는다. 그녀를 사랑하는 말더듬이 남자, 사랑을 거절 당하자 아이의 혀를 자른다. 엄마가 갈거라던 항구를 매일 밤 다른 남자들의 차를 얻어타고 다녀오는 그녀, 버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그것이 자신을 낳은 엄마였으니 말이다. 꿩을 잡는 그녀의 칼이 내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작고 여린 것들의 상처는 정말 감당하기 힘든 아픔이다.
<환상통>, 결혼 몇년 아이가 없자 부인과에서 검진을 받다가 우연히 자궁암을 발견한다. 엄마의 극진한 간호에 자궁암 수술을 하고 완치 판정을 받았는데 엄마가 자궁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나의 항암치료의 고통을 엄마도 고스란히 겪고 있는 것이다. 이중의 고통, 이것 또한 작가는 나를 아프게 했다. 자궁이 없다는 것은 여자가 아니라는 것일까? 남편과 이혼을 하고, 이혼에 괴로워하던 남편은 재혼을 하고 암정기검진을 받으러 간날 남편과 함께한 배가 불룩한 여자를 본다. 엄마의 자궁이 적출되던 날 보았던 작은 덩어리, 그녀의 배가 아렸다는 환상통이 이해가 간다.
<오늘처럼 고용히>, 남편의 경제적 무능함이 한 가정의 안위를 해칠 수 있다는 걸 절실히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젖도 떼기 전에 이런저런 부업을 해야했던 그녀, 친하게 지내던 엄마가 소개한 노래방 도우미 일, 노래만 부르던 것이 손을 잡히고 몸을 더듬게 하고, 결국 여관으로 가게 된다. 남편의 미행을 알면서 일부러 멈추지 않은 그녀의 마음은 또 어떤 마음이었을까? 결국 아이가 있던 집은 불에 타고 남편도 사라지고, 그의 형과 살게 되는데, 역시 여자라 아팠다. 모진 고통과 아픔과 상처로 이루어진 가정이라고 할 수 없는 공간, 그곳에 오게된 어린 아이 혜경이, 생리혈로 젖은 속옷을 감추기 위해 검은 비닐 봉지에 담아 가방 깊숙한 곳에 숨기는 아이를 범하는 남자. 죽지 않게만 해달라고 부탁하던 혜경의 엄마, 자신은 재혼한 남자를 죽이고 자신도 결국 목숨을 끊었으면서 어쩌자고 딸아이 혼자 살아갈 수 있을거라고 남겨 둔 것일까? 남자들의 배설구가 되어있는 여자라는 존재에 가슴이 아프고 치가 떨렸다. 결국 남자를 죽이고 냉장고에 넣어둔 그녀의 선택은 또 어찌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아니겠는가. 혜경의 낙태와 남자의 죽음, 결국 우리는 알면서도 죽일 수밖에 없는게 아니었겠는가.
<손>, 정상적이지 못한 사람의 분출하고자 했던 욕망의 표출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든 일상을 지배하는 손에 대한 집착, 그것을 뭐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막>, 삼류 극단의 배우, 그녀의 오디션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 주는 일, 매일 밤 외로운 남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기에 살 수 있었다는 그녀. 여자라 슬프다.
<하루>, 마치 내 주변의 이야기를 보는 듯 했다. 6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나의 일상도 아마 그녀의 일상과 같아지지 않을까?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즐겨찾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는 듯 하기도 했다. 작가가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왠지 친근감을 갖게 했다. 아마도 블로그에 글을 쓰는 그녀가 나같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찾는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좀 너무하단 생각을 했던 건 사람을 그리워하던 지훈엄마의 외로움이 자살로까지 이어졌다는 것, 그걸 바라보는 그녀의 차가운 시선이 정말 소름돋을 정도였다. 사람 사이가 그렇고 그런것이지라는 생각과 늘 주변 아줌마들 조심하라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온갖 정성으로 대했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찬바람을 날리며 가버렸던 경험이 있던 난 지훈엄마의 마음을 알듯 모를듯 이해를 하려고 해본다.
작가가 써내려간 그녀들의 인생이 너무 서글프고 속상해서 마치 면도날로 손목을 그은 듯 죽음으로 향해가지만 죽지 못하고 다시 살아질 것만 같았다. 삶의 나날이 행복하고 즐겁고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나도 그 나락을 타고 떨어져 내릴 수도 있는게 인생이니 말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바르게 살아가고 아이들을 보호해야한다고 결심한다. 덕지덕지 때가 앉은 아이의 목덜미를 바라보는 어미의 심정은 어떨까? 노숙을 하거나 다른이의 아이를 품거나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과 몸을 섞으며 살아야한다는 것, 또 그녀들의 인생이 상처투성이로 얼룩졌을지라도 숨을 들이 마시고 밥을 먹고 살아가야하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안타까울뿐이다.
예전에 수능준비하며 다니던 재수학원에서 만났던 그녀들이 생각나게 했던 책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그녀들, 쪽방같은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매일 영어단어와 수학공식과 씨름하며 살았던 그녀들, 서울 물가에 비해 늘 턱없이 부족했던 용돈때문에 젊은 그녀들도 가끔 도우미를 한다고 했었다. 나보다 두서너살 어리던 그녀들에게 인생의 선택을 너무 쉬운 쪽으로만 결정하지 말길 당부했지만 그녀들의 아름다운 젊음을 포장할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이기도 했다. 오늘 이 책을 마저 읽으며 그녀들을 생각했다. 지금은 다들 잘 살고 있는지, 이제는 모르는 남자들 속에 섞여 탬버린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그런 인생을 살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며 늘 남편이 얘기했던 남자들의 짐승본능을 읽는다. 욕을 지껄이고 여자를 짓밟고 때리는 그들이 아직 우리 사회 어딘가에 있다는게 두렵고 무섭다. 제발 모든 가정이 온전히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함께 한다.
부디 모든 가정이 온전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