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미술관 - 그림이 즐거워지는 이주헌의 미술 키워드 30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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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을 읽었을때도 느꼈지만 정말 쉽고 재미있게 글을 잘도 쓴다. 그림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번 책은 그동안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을 좀 더 풍성하게 역어낸 것이라는데 정말 미술에 대한 이해를 한층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림이 즐거워지는 이주헌의 미술 키워드 30'이라는 제목 그대로다. 

저자는 그림을 많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림을 알든 모르든 많이 보면 볼수록 그림에 대한 이해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그림을 본다면 그림을 보는 재미가 훨씬 더 좋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읽는내내 나를 즐겁게 해주었는데 앞으로 그림을 보러가서 더 즐겁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하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내게는 좀 생소한 데페이즈망 (특정한 대상을 상식의 맥락에서 떼어내 이질적인 상황에 배치함으로써 기이하고 낯선 장면을 연출하는 것, 마그리트), 트롱프뢰유 (눈속임, 그림을 실제 사물로 혼동하게 만드는 매우 사실적인 표현 기법과 그 그림을 일컫는 말), 게슈탈트 전환 (이미지나 형태가 그 자체로는 전혀 변하지 않고 있음에도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바뀌는 것), 왜상, 키아로스쿠로 (하이라이트와 음영을 포괄하는 사실적인 명암 처리법, 빛의 화가 렘브란트) ,스탕달 신드롬 (사람에 따라 걸작 미술품을 보고 갑자기 흥분 상태에 빠지거나 호흡 곤란, 우울증, 현기증, 전신마비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는 경우, 19세기 프랑스 문호 스탕달의 이름을 딴 병리 현상), 바니타스 (허무, 허영, 덧없음), 쿤스트카머 (진귀한 사물들을 모아 놓은 곳), 베두타 (전망 좋은 풍경을 그린 그림), 반달리즘 (문화적 가치가 있거나 사회적으로 존중 받고 보호 받는 것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행위), 엘기니즘 (약탈행위, 식민지 혹은 약소국으로부터 유물을 약탈해 와 제국의 문화재로 삼는 행위) 등 용어와 그에 따른 그림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알레고리 이야기는 그림이 갖고 있는 풍성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림하나를 보면서 그 속에 감춰진 수많은 알레고리를 발견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흥미로워던 건 아무래도 누드가 아니었을까 싶다. 남성의 누드는 정말 완벽에 가까운 근육질의 정말 볼수록 아름답다는 경탄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고대 그리스의 남성 중심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 여성이 미술에서 누드로 표현되지 않은 것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며 미숙한 존재이며 주체로 설 능력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벌거벗은 여성의 몸은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자연의 무질서'를 환기시키므로 야만의 기운을 불러올 촉매로 기능할 우려가 있어 금기했다는 것이다. 간혹 있는 여성의 누드는 창부나 무희, 비극적인 운명의 희생자란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여성의 누드가 온전한 주체성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클림트의 에로티시즘에 대한 부분은 여성의 누드와 이어서 재미있게 보았는데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그의 예술이 대중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클림트의 발효된 에로티시즘 안에는 나름의 페미니즘적 성격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로티시즘은 곧잘 성 상품화의 수단으로 지탄 받는다. 하지만 클림트의 전시에 유독 여성 관객이 많이 몰리는 데서 알 수 있듯 클림트의 에로티시즘은 그런 부정적인 미학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의 그림은 퇴폐적이고 퇴영적인 요부들로 가득한 것 같으나, 그들은 한낱 유혹자라기보다는 생성과 창조의 여신이 대모에 가깝다.(126쪽)"고 말한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20세기 미술의 대표 아이콘인 피카소의 <게르니카>, 전쟁의 비극과 공포를 강렬하게 전해주는 그림을 통해 그림이 아름다운 것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한번 느꼈다. 그림 하나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쟁의 비극과 공포를 전하는 것, 이 또한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엘기니즘 부분에서는 우리나라도 약탈당한 많은 문화재가 있지만 이것을 돌려받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에 마음이 착잡하였다. 원명원의 토끼 머리와 주 머리 청동상은 정말 너무 세밀하고 예쁘다. 제2차 아편전쟁 때 약탈 당했다는데 엘긴 백작의 아들 제임스 브루스라는 것이 정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문화재 환수의 가장 좋은 방법은 경매라는 것이 정말 안타까울뿐이다. 

미술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많고 생소한 용어들이 많지만 그래도 가끔 찾아가는 미술관의 그림이며 조각들을 보면 마음이 즐겁고 흐뭇하다. 이 책을 읽든 읽지 않았든 미술관을 찾아가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미술관 나들이를 하기전에 읽어둔다면 분명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서 누구에게라도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종플루가 하도 기승을 부려 걱정이긴 하지만 이 가을이 다 가기전에 미술관 한번 들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미술관 나들이나 한번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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