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똑같이 소중한 사람

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실화를 바탕으로 썼다는 이 소설, 정말,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싶었다.  

  <도가니>, 최수철의 <얼음의 도가니>가 생각나고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다. 낯설고 기괴한 일이 벌어질 듯한 안개 자욱한 고장 무진, '먹고 마시고 생각없이 놀기에는 아주 그만인 도시', '모든 장애인들 중에서 가장 피해의식이 심한 농인'들이 살고 있는 곳, '아무도 믿지 못하고 같은 언어를 쓰는 것을 민족이라고 하면 그들은 수화를 쓰는 이방인, 얼굴 생김새는 같지만 다른 민족, 언어가 다르고 풍습이 다른' 그들이 사는 곳 자애원. 이곳에 강인호라는 남자가 학교 발전기금을 내고 기간제 교사로 취업을 했다. 무진으로 내려오면서 자신의 과거, 장명희와 마주하게 되고 그건 청춘의 불투명함 속에 갇혀 있다. 

  연두, 유리, 민수......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 그들의 고통은 듣지 못한다는 것만이 아니다. 듣지 못하니 말을 할 수 없고 듣고 말하는게 안되니 자연히 지적장애까지 갖게 되는 끔찍함, 자신들 옆에서 어떤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진다고해도 결코 알아차릴 수 없는 그런 아이들, 그런 아이들은 또 왜그렇게 가난한 부모, 자신들과 똑같은 장애를 안고 있는 부모를 갖게 되고 그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을 책임질 수 없으므로 무료교육이 가능한 사설 기관으로 아이들을 보낸다. 그렇게 보내진 아이들 중 유리나 민수같은 아이들은 방학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고, 자신들을 낳은 부모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세상의 다른 어른들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내 경악했던 건 어떻게 사람의 얼굴로, 어떻게 교육자의 신분으로 그런 일들을 자행할 수 있었는가하는 것이다. 게다가 교회의 장로라니, 그들의 하나님은 얼마나 이기적인 하나님인가 말이다. 법정에서 벌어진 리얼한 연기, 자애한 교장의 얼굴을 하고 이 사회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고,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또 그에 동조하는 막 옷을 벗은 황변호사, 전관예우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판사, 증인대에 올라선 사람의 과거를 추하게 만드는 그들의 교묘한 심리전, 가난한 이들에게 들려준 큰돈은 합의서에 도장을 찍게 하고 그렇게 이강석, 이강복 형제는 집행유예로 풀려나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6개월 징역을 선고 받은 박보현 선생은 다시 학교에 복직을 한다. 

  안개를 뚫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 바로 앞, 그 앞도 제대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짙은 안개 속에 우리가 헤매이고 있는 것은 암암리에 자신들의 끈을 놓지 않는 이 사회의 유지들, 권력자들, 자애학원의 비리를 눈감아주고 같은 교회의 장로이며 함께 골프를 치는 그들, 최수희장학관, 유리를 진료했던 산부인과 의사, 같은 학교를 다녔고, 같은 모임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 의해서 실로 이 더럽고 추악한 진실은 은폐되고 왜곡되었다. 

  그래도 우리가 희망으로 삼을 수 있는 그것은, 그 아이들이 알았다는 것이다. "우리도 똑같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횡포에 맞선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서로 도우며 아이들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 이들이 있기에 고마운 것이다.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똑같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 아이들도 마음 편하게 지낼 그런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이제 더이상 안개속을 헤매여선 안될 것이다. 내안에서도 무언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진실을 결코 개들에게 던져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