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준이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을 먹고 씻고 유치원에 간다. 유치원에서는 정규수업을 하고 매일 한시간씩 특기로 미술 4회, 수영 1회를 한다. 그리고 끝나면 집 옆에 블럭키에 가서 레고를 한시간한다.(일주일에 세번)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다. 낮잠을 자기도 하고 현수랑 끝없이 놀기도 하고 가끔은 블럭키에 같이 다니는 친구와 한참을 놀기도 한다. 그리고 엄마, 아빠랑 책 읽기, 자전거 타기, 인라인 타기 등을 한다.

오늘 블럭키에 새로온 엄마가 자기 아들 얘기를 하는데 (그 시간에 온 아이들은 모두 다섯살이였다) 한글을 가르친적도 없는데 아이가 술술술 한글을 한단다. 벽에 '가갸거겨...'이런 벽지를 붙여두었는데 혼자서 그걸 줄줄줄 읽더란다. 우와 정말 놀랐다. 천재거나 영재가 아닌가. 가르치지도 않은 한글을 어떻게 줄줄줄 할 수가 있지? 게다가 수학도 그렇게 잘한단다. 자기는 가르친적이 없다나......다른 엄마들이 이렇게 저렇게 물으니 결국 씽크빅을 한단다. 그건 안 가르치는건가? 되묻고 싶었다. 씽크빅 얘기가 나오니 선생님이 그러더란다. 이런애는 처음본다고......그래서 내가 그랬다. 그럼 영재학교로 보내라고, 그랬더니 자기 아들은 영재는 아니고 평범하다나......집에서도 퍼즐이랑 블럭을 갖고 하루종일을 한단다. 심지어 새벽 3~4시에 잘 때도 있단다. 블럭을 만드느라......게다가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한번도 해본적이 없단다. 아이가 더러워서 놀기 싫단단다. 그리고 덩치가 커서 작은 아이들이랑 노는 걸 싫어한단다. 자기보다 덩치가 작으면 모두 동생인줄 안단다. 계속 얘길 듣고 있자니 참 열 받았다. 자기가 그렇게 키우는게 다른 엄마들에게 자랑인줄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꼴도 꼴불견이었지만 다섯살짜리 아이가 한글을 줄줄줄 읽고 수학을 줄줄줄 하고 한자리에서 꼼짝도 안하고 블럭을 맞추는게 자랑이라니......아이에겐 아이 수준의 감수성이 있는 것이고 그 아이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놀 권리가 있는데, 아이에게 놀 시간도 주지 않고 미술학원에 영어학원에 홈스쿨에 여기저기 끌고 다니는게 내겐 정상으로 보이질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인가 말이다. 여럿이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늘 학습 위주의 공부만 하면서 살아가는 아이들, 그게 잘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들, 모두들 무섭고, 그 아이들이 불쌍하다. 

물론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썩 좋은 훌륭한 엄마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현준이가 공부를 잘 하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친구들과 함께 서로 어울려 조화롭게 놀이도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걸 배웠으면 좋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기본적인 것들은 유치원에서 배운다는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세상은 왜 아이들이 공부만 잘 하길 바라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 어느 곳에서나 자신이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아이들에게서 왜 자꾸 박탈하는지 모르겠다. 조기교육의 열풍은 사실 사그라들 것 같진 않다. 엄마들의 조바심과 경쟁심,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는 마음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아이들은 점점 더 어린 나이부터 학습 위주의 공부에 시달리게 될 것 같다. 

아이가 무언가가 되는건 모두 엄마 하기 나름이라는 그분,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는 건지, 되물어보고 싶다. 사실 여기서 엄마 하기 나름이란 이것저것 많이 시켜야 된다는 거다. 아이를 위한 교육투자가 최고라고 믿는 엄마들 정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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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6-03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아요! 남들 다 시키니까 따라할 게 아니라 의연해질 필요가 있어요. 중요한 것은 아이의 행복이니까요. 김규항 씨 표현에 의하면 우리 안의 명박스러움이죠ㅠ.ㅠ

꿈꾸는섬 2009-06-04 10:28   좋아요 0 | URL
우리 안의 명박스러움ㅠ.ㅠ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순오기 2009-06-04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엄마들이 교육수준이 높아서 무엇이든 교육하려는 것이 결국 아이들을 망치는 것 같아요. 놀면서 저절로 배워가야 할 것들도 다 어딘가 보내거나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거든요.ㅜㅜ 그렇게 15년 20년 투자해서 뭘 얻으려는 건지...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그저 놀게 하면 안될까요~~~~

꿈꾸는섬 2009-06-04 10:29   좋아요 0 | URL
놀면서 저절로 배울 수 없는 환경인거죠. 너무 어릴때부터 공부에 매진하는게 너무 안타까워요. 앞으로 공부할 날도 많은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