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알랭 드 보통 지음, 지주형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사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읽지 않았다. 제목만 알뿐.

그래서 이 책이 그리 쉬운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프루스트와 친하게 지내볼까?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만약 천재의 새로운 걸작을 읽게 된다면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경멸했던 우리 자신의 성찰들, 우리가 억압했던 기쁨과 슬픔, 우리가 깔보았지만 그 책이 문득 우리에게 그 가치를 가르쳐 주는 감정으로 이루어진 하나의세계를 발견하고 기뻐하게 될 것이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에서 얼마나 식상하지 않은 독창적인 문체를 사용했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모든 작가는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해야 합니다. 마치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자신만의 '음색'을 창조해야 하듯이......(중간 생략) 독창성의 면에는 정확성-'어슴푸레한 달', '미소짓는 착한 마음', '모든 연도 중에서도 가장 불쾌했던 해'-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어를 보호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미지들은 대체로 낡았을 뿐 아니라 쓸데없이 사치스럽다. 프루스트는 우리에게 세계를 똑바로 평가하라고 촉구하면서 수수한 광경이 지니고 있는 가치에 대해 계속 환기시킨다. 샤르댕은 소금 그릇과 단지의 아름다움에 우리의 눈을 뜨게 하고, 마들렌은 평범한 부르주아 유년기의 기억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화자를 기쁘게 하며, 엘스티르는 무명옷이나 항구보다 더 웅장한 것은 그리지 않는다. 프루스트의 견해에 따르면 그러한 수수함은 아름다움에 특유한 것이다.

'수수한 광경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정말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닐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늘 눈에 보기에 훌륭한 아름다움, 화려함을 쫓고 있는데 그것을 뛰어넘어 수수함 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니 얼마나 멋진가 말이다.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깨닫기 위해서는 대가가 느꼈던 것을 자신 속에 다시 그려 보려고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느끼는지 알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책을 읽어야 한다. 설사 우리를 돕는 것이 다른 작가의 생각일지라도, 우리가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생각이다.

  독서는 정신적 삶의 문턱 위에 있다. 그것은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인도할 수 있지만, 정신적 삶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가장 훌륭한 책들조차도 결국에는 내팽개쳐야만 하게 마련이다.

집어던지는 한이 있더라도 한번 프루스트에 도전해볼까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겨났다. 프루스트와 한번 친하게 지내볼까? 프루스트를 한번 좋아해볼까? 알랭 드 보통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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