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readersu > 전경린 작가와 『풀밭 위의 식사』, 행복했던 저녁!!


계절이 거꾸로 가는 건지, 이젠 아예 봄 같은 것은 오지 않기로 했는지 연일 쌀쌀했던 봄날이었다. 하지만 3년 만에 장편을 냈다는(『엄마의 집』나온지가 벌써 3년이나 지났던가?) 전경린 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즐거웠다. 『풀밭 위의 식사』, 올해 들어 그토록 많은 문장들이 내 마음에 남은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으니까 말이다. 지난 번 사인회에서 미리 인사를 나누었지만 사인회는 역시 사인회일 뿐이어서 궁금한 것들을 제대로 물어볼 수도 없었다.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다행히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그러니까 3년 전, 『엄마의 집』이 나왔을 때 전경린 작가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친구의 추천으로 다시, 전경린 작가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 그즈음의 나는, 한국소설을 오랫동안 안 읽었던 탓에 다시 접하는 작가들의 책마다 너무나 새로웠다. 그리고 다시 읽을 때마다 왜 그동안 한국소설을 읽지 않았던가, 후회를 하던 무렵이었다. 전경린 작가 역시 그랬다. 간만에 접한 『엄마의 집』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그녀의 작품이 그동안 어떤 것들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영화가 되었던 <밀애>의 스토리가 낯익은 것이 원작인『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읽은 기억 때문이라는 걸 떠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워낙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라 전경린 작가의 책은 내게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집』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전경린‘이 변했다고들 했다. 나로서는 전경린 작가에 대해 잘 몰랐으니 그런 말은 할 수도 없었지만 따듯하고 좋았던 기억으로 인해 ’전경린‘이 변했다면 잘 된 일이다.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또 밑줄 친 문장들은 왜 그리도 많았는지. 이번 작품 『풀밭 위의 식사』역시 그랬다. 거의 대부분의 문장에서 밑줄을 그어댔다. 교보문고에서 연재를 한 작품이지만 단 한 번도 연재 중에 들어가서 읽은 적은 없다. 책을 읽고 나니 어쩌면 그래서 더 잘됐다는 생각도 했다.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말이다. 암튼, 전경린 작가의 『풀밭 위의 식사』가 내 품에 들어왔던 어느 주말에, 단지 책이 얇다는 이유로 다른 책들보다 먼저 읽게 되면서 ’거침없는‘ 독서에 빠지고 말았는데, 거의 ’홀릭’이었다. 더구나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다가 ‘감동’을 받은 탓에 주말 내내 서강주에게 빠져있었다. 

사실 뭐든지 그렇다. 읽을 생각도 없다가 먼저 읽은 친구들이 ‘이 책 정말 재밌어!’ 하고 추천을 하면 그걸 믿고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 열권의 책 중에서 꼭 한 두 권은 실패를 하고 만다. 그렇게 재미있다는 책이 ‘이게 뭐?’ 하는 수준으로 나의 취향과 맞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나 역시 이 책을 두고 '감동'이라느니 재미있으니 꼭 읽어보라느니 말해봐야 스스로 ‘감동’을 받기 전엔 그걸 느끼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감히, 추천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역시나 이 책을 읽은 후에 든 생각은 추천하고 싶다는 거였다. 

이 책을 읽은 한 친구는 그랬다. 만약 결말이 그렇게 나지 않았다면 완전한 통속소설에 그저 그런 스토리를 지닌 소설이 되었을 터인데 그 결말이 너무 맘에 들었다고. 나는 강주에게 빠져 있고, 기현의 시점을 쫓아가다보니 기현이 어쩐지 가엾다는 생각밖에 안 했더랬다. 근데 오호라! 그랬다. 친구의 말처럼 그런 식의 결말이 아니었으면 이 얼마나 ‘뻔’한 스토리였을까? 싶었던 거다. 이 날 세 번째로 자리 이동을 하고 내 옆에 앉은 전경린 작가에게 물었더니 활짝 웃으며 말 하더라. "결말을 정해놓고 무척 기분이 좋았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잘 읽어보면 앞부분에 결말에 대한 암시가 있다. 그 둘은 처음부터 만날 운명이었다." 기억을 더듬었다. 맞아, 그런 일이 있었다. 기현이 선배를 기다렸는데 나오지 않았던. ‘와, 작가들은 이런 사소한 것도 모두 설정을 하고 글을 쓰는구나!’ 이런 당연한 것에 혼자 놀라워했다. 

『엄마의 집』이 나왔을 때, 롯데시네마에서 하는 작가 강연회를 간 적이 있었다. 그즈음 여기저기 강연회를 많이 다니던 때라 전경린 작가의 소심한(!) 강연회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동안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일은 대학이나 초청 강연이 아니면 거의 만날 기회가 없었다. 작가란 그저 책만 내고 나면 그만이었다. 그랬던 탓에 이런 낯선 형식이 전경린 작가에게 부담을 주었던 게 아니었을까, 혼자 상상을 하고 이해를 했더랬다. 하지만 이날 3년 만에 다시 본 전경린 작가는 달라져 있었다. 조곤조곤 내뱉는 말이나 미소가 떠나지 않는 편안한 얼굴은 그때하고 사뭇 달랐다. 강연회와 소규모의 만남이라는 점이 달라지게 한 걸까? 아님 그때와 생각을 달리 하게 된 걸까? 사실, 사인회에서부터 조곤조곤 말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그때 잘못 본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뭔가 다르긴 달랐다. 나중에 어느 온라인 서점에서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는데, 내 생각이 어느 정도는 맞았던 것 같다. 처음에 이 낯선 방식의 만남이 너무나 부담스러웠단다. 그래서 이런 만남을 많이 거절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매체도 많아지고 이런 형식의 이벤트들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수긍을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작가로서, 작가라는 자리가 조금 부담스러운 자리이긴 하겠지만 이래저래 독자로서는 행복한 일인 셈이다. 

만남의 장소인 홍대 <라리에또>는 예전에 신경숙 작가와 만남에도 가 본적이 있던 곳이다. 올리브 오일 스파게티가 기막히게 맛있고, 피클과 직접 만든다는 타코타 치즈샐러드가 기억에 남아 친구들하고도 자주 가던 곳이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가니 미리 도착한 독자들이 테이블 곳곳에 앉아 있었다. 같이 간 친구와 함께 우리도 자리에 앉았다.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전경린 작가는 약간의 수줍은 미소를 머금으며 인사를 했고,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작은 만남의 자리에선 자기소개가 필수. 인사를 나누는 독자들은 다들 전경린 작가를 좋아하고 전경린 작가의 작품에 감동을 받은 분들이었다.   

 

작은 규모였지만 집중을 해서 듣지 않으면 작가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아 수고스럽게도 전경린 작가가 세 번이나 자리 이동을 해주었다. 전경린 작가가 가까운 자리로 오는 동안 옆에 있는 독자들은 맛있는 파스타와 피자를 먹으며 책에 대해, 전경린 작가의 작품에 대해 이야길 나누었다. 그리고 마침내 전경린 작가가 내 옆자리로 왔고, 짧게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여전히 미소 가득한 모습으로 조곤조곤 말하는 목소리는 아름다웠다나. 카메라가 있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사진을 확인하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시간 내내 전경린 작가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사진 속 전경린 작가의 얼굴엔 미소가 한 가득이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잘 안하는 성격이지만 작가가 내 옆자리로 왔기 때문에 뭐라도 물어야 했다. 마침 이 자리에 오고 싶었으나 오지 못한 친구가 꼭 물어봐달라던 질문이 있었다. 바로 서강주에 관한 질문이었다. 나뿐만이 아니었을 거다. 『풀밭 위의 식사』를 읽으면서 많은 여성들이 서강주라는 인물에게 빠졌을 거다. 과연, 서강주라는 인물이 현실에서도 존재할까 싶으면서도 빠지게 되는 것은 그가 내뱉는 말투들 때문인데 마치 내가 누경이라도 된 듯 서강주가 내뱉는 말투에 그냥 넘어가버리고 마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서강주라는 인물이 존재할까? 그의 롤모델이 된 사람이 있을까? 그 물음에 전경린 작가는 웃으면서 답했다. “롤 모델은 없다. 여러 명의 성격을 취합하여 만든 인물일 뿐이다. 책을 읽은 출판사 마케팅 팀장이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남자는 없다고 하더라.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 아쉬웠다. 역시 멋진 남자들은 소설이나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것?!   

그렇다면 30대 미혼 노처녀로 나온 누경의 마음은 어떻게 그렇게도 잘 그려냈을까. 전경린 작가는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일까, 누경이야말로 롤모델이 있는 건가? “현재를 살아가는 30대 미혼녀에게 있어 결혼과 삶은 고민의 대상이다. 어느 정도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 명 남짓의 미혼녀들을 몇 달 간 만나면서 그들의 생각과 고민들을 들었고 대화도 나누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작가들은 소설을 쓰기 전에 작품 속 주인공들에 대해 연구를 한다. 또 같은 여자로서 미혼이든 기혼이든 생각하는 것이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 그리고 누경의 상처에 대해서는 성폭력 피해 여성을 다룬 라디오 다큐멘터리에서 대본 작업을 하며 성폭력 피해 여성을 ‘생존자’라는 말로 표현한다는 얘길 듣고 ‘생존’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그 고통을 겪은 여성이 가진 상처를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고 했단다.  

다시 서먹해질 틈을 타서 너무나 ‘뻔’한 질문을 했다. 사실은 이 질문이 너무나 ‘뻔’하다는 걸 알면서도 하게 되는 것은 작가들이란, 도대체 어떤 책들을 읽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나 읽은 책을 물었더니 니콜 크라우스의 책을 읽었다고 하셨다. 『사랑의 역사』와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를 사두고도 읽지 않았으면서 괜히 아는 척을 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남편이니 어쩌니,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부부라서 둘 다 독특한 글쓰기가 비슷한 것은 아닐까요? 운운하며 말이다.(아, 작가님 앞에서 주름을 잡았지.-.-;;) 또 다른 책은 바로 『하룻밤만의 자유』라는 책이란다. 사이버 공간에서 소설을 연재하는 작가의 이야기와 사랑을 다룬 소설인데 매우 흥미로웠다하시기에 바로 입력을 했다.(아이폰의 어플을 사용, 구글에서 책을 검색하여 위시리스트에 담았다. 오!!)   혹시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지, 그 작품 역시 연애소설이 아닌가도 물었다. “작가가 비슷한 작품을 연이어 쓰는 것은 좀 힘든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연애소설일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변해주었는데 검색을 해보니 올해도 인터넷 웹진에서 글을 쓸 예정이며 하반기에 책이 한 권 더 나올 수 있을 거라는 답변을 해주셨다. 신화나 판타지 같은 내용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단다. 신화나 판타지라! 의외였지만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사실, 『엄마의 집』으로 전경린 작가를 다시 만난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풀밭 위의 식사』로 인해 난 완전한 전경린 작가의 문체에 완전 빠져버렸는데 그렇기에 어떤 작품이 나오든 무조건 읽어볼 준비가 되었다고나 할까, 해서 새로 나올 작품이 무척 기대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당부하듯이 말을 했다. “이 책을 읽을 때 스토리보다는 배경을 생각하고 읽으면 좋겠다. 다들 스토리에 빠져 책을 읽는 것 같은데 누경과 서강주가 만나기 전까지 억눌렸던 감정들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감정이었기에 둘이 만나게 되었을 때 훨훨 탈 수 있었는지, 그런 과정들을 눈여겨보면 좋겠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토리를 중심으로 읽었다면 이젠 배경과 과정을 주시하면서 말이다. 

늘 그렇듯이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렸다.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나오는 길에 <라리에또>를 찾아온 길고양이들을 만났다. 저녁마다 식사를 제공하는 <라리에또> 덕분에 길고양이들이 때만 되면 찾아온단다. 귀여운 고양이들 사진 찍느라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전경린 작가의 말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느라 고생했는데 어쩐지 다른 말들은 전혀 생각나지 않고 전경린 작가의 미소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상대를 편안하고 괜히 즐겁게 해주는 미소였다. 그렇게 나는 전경린 작가의 팬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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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주째 들고 있는 책, 『어떤 여자』, 대충의 스토리는 이미 감이 오는데 이 책을 2주 동안 읽고 있는 까닭은 알만하다고 그냥 덮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워서다. 간만에 책 읽을 맛이 나는 책이라고나 할까. 뻔한 스토리에, 뻔한 결론이겠지만 작가의 깊이 있는 서술과, 주인공인 요코의 심리적 갈등을 그린 문체 등등이 책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든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여자들에 대해 일찌기 관심이 많았기에 더욱 끌리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새끼 손가락을 구부려 귀밑머리를 쓸어올리고 싶어진다.ㅎㅎ   

 

『어떤 여자』를 읽고 있는 와중에 챙겨 읽은 만화책 『자학의 시』, 친구는 이 만화책을 내게 던지며 (필요없댄다. 그래서 내가 읽고 다른 친구에게 주기로 했다) 도대체 뻑! 하면 밥상을 엎어버리는 남자 이야기가 왜 재미있다고들 하는지 모르겠다 고 했다. 읽어보니 과연, 친구의 말에 백번 공감이 갔다. 이런 류의 이야긴 1950년대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한데 일본 사람들이 많이 읽은 이유는? 2권으로 가서 유키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다보니 조금, 아주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한다. 하지만 열광할 정도는 아닌데... 다 읽어봐야 그 맘을 알 수 있을까? 알고 보니 일본에서 이 만화책으로 영화까지 만들었다. 각색이야 했겠지만 일본 사람들의 취향은 좀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나.  

 

그리고 또 읽고 있는 책은 김보일 샘의『스무 살 철학』이다. 책을 읽은 친구는 꼭 스무 살들만 보란 법은 없다며 읽어볼 만한 좋은 책이라고 추천을 해주었다. 친구의 그 말이 아니었어도 언제나 스무 살이고 싶은 나로서는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 하지만 '어떤 여자'가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어 틈이 없었다. 이제나 저제나 읽을까, 그 틈을 노리다가 겨우 작가의 말을 읽었다. 궁금궁금. 김보일 샘이 전해주는 많은 책들과 다양한 영화 이야기가 내 호기심을 자극한다. 조금만 기다려라, 얼른 읽어주마.  

 

그 와중에 읽어보겠다고 챙긴 책은 『어떤 여자』의 영향인지 책꽂이에 꽂혀 있던 이 책『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다』이다. 어제 책꽂이를 훑어보다가 갑자기 읽어보고 싶어졌다. 몇 년 전에 <다이앤 애버스>의 자서전도 읽었지만 어린이용인 이 책에선 어떤 식으로 <다이앤 애버스>에 대해 풀어 놓았는지도 궁금하고 이 책에서 말하는 여성들의 작은 이야기들도 궁금했다. 어린이 용이니까, 대충 읽어보고 궁금하면 그들의 다른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도 읽게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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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도 나름 취향이 있어서 어느 순간엔 그 작가의 그림책이라면 무조건 사서 조카에게 읽히던 때가 있었다.
글·그림을 같이 만드는 작가도 있지만 글만 좋은 그림책 작가, 그림만 좋은 그림책 작가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 작가들 중, 내가 유난히 편애하는 그림책 작가를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올려봤다. 워낙 많은 그림책이 존재하듯 세상엔 엄청난 수의 그림책 작가들이 존재한다. 그들 중에 누군가를 추천하고 고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 해서 내가 읽어본 그림책 중에서 내 취향에 들어온 그런 그림책 작가들을 골랐다.

 

1. 존 버닝햄

존 버닝햄을 모르면 그림책을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소개할 책이 무척 많지만 조카랑 나랑 재미있게 읽은 존 버닝햄의 그림책을 골랐다. 그 많은 것 중에 일 순위는 바로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이다.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반복되는 저 말!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는 아이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흥미를 느끼게 만든다. 그림은 말할 것도 없다.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나『검피 아저씨의 드라이브』역시 재미있게 읽은 그림책들이다. 

 


2. 앤서니 브라운 

존 버닝햄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로 자라면서 이 작가를 모른다는 것은 역시 말도 안 되는 일. 앤서니 브라운 그야말로 글과 그림이 독특한 작가다. 그림책을 좋아하지 않아도 한번쯤은 그의 글을 읽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 생각 없이 엄마 이야기인 줄 알고 읽고선 놀라워 했던돼지책』의 충격이라니!!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은 아마 그 뒤로 엄마 말 잘 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앤서니 브라운의 모든 그림책을 올리고 싶지만 대충 이 정도! 



 


3. 로렌 차일드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의 작가 로렌 차일드, 조카랑 같이 살아본 적이 있어서 아이들 자라면서 이것저것 가리는 게 많다는 것 잘 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뒤엔 어떡해서든 싫어하는 음식을 먹여볼려고 온갖 재미있는 단어는 다 만들어서 조카가 속아(!) 넘어갈 만한 이름을 붙여준 적이 있었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엉터리처럼 이름을 붙였음에도 아이인지라 깜빡하고 속아서 한두 번은 먹기도 했던 것 같다. 로렌 차일드의 그림책은 그림도 재미있고 내용도 유쾌해서 좋아한다. 귀여운 캐릭터인 롤라, 나도 그런 딸내미가 있으면 좋겠다. 


 


4. 피터 레이놀즈 

피터 레이놀즈의 그림책을 처음 보자마자 홀딱 반하고 말았다. 이런 수채화 풍의 그림이 나는 좋다. 연필 선과 맑고 투명한 색들의 조화.『』『느끼는 대로』도 좋았고, 엘리슨 맥기와 같이 작업한 『언젠가 너도』는 책을 보면서 울컥! 했던 적도 있었다. 조카랑 같이 산 적은 있었지만 내 아이를 키워보진 못했는데, 왜 그랬는지;;; 마지막에 엄마의 모습때문에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암튼, 딸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진 책이었다는. 그 뒤에 아들 이야기를 다룬 『너를 보면』도 나왔다. 



 

 

5. 데이비드 스몰과 사라 스튜어트 

이 부부의 합작품 『리디아의 정원』을 읽을 때, 정말 마음이 푸근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꾸는 리디아의 마음씨가 좋았고, 옥상에 만든 정원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들 부부의 또다른 작품 『도서관』은 또 어땠는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도서관에 정말 한번이라도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꼭 나를 보는 듯한 흐흐 



 

그 외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는 피터 시스이며 그가 그린 마들렌카 이야기는 그림도 글도 매우 독특하여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았다. 『마들렌카-세상을 담은 이야기』『마들렌의 개』, 또 『앵무새 열 마리』의 그림을 그리고, 로알드 달의 글에 많은 그림을 그린 퀸틴 블레이크와 『달님 안녕』 『숲속의 나뭇잎집』의 하야시 아키코숀탠의 그림은(『도착』이나 『토끼들』) 글이 없어도 공감 백배가 되며, 이세 히데코의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는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요즘 본의 아니게 그림책을 비롯하여 어린이 책을 눈여겨 볼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역시 봇물처럼 밀려드는 어린이 책들 중에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놓치고 있는 좋은 책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면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올리다 보니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들 중에서도 좋은 작가들이 많은데도 올리지 못했다. 다음에 한번 정리를 해봐야겠다. 그림책을 볼 때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 어떤 문학작품들보다도 더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것이 그림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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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19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비드 스몰과 사라 스튜어트 부부, 완소!!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는 아무에게도 빌려주지 않는 유일한 책이에요.^^

readersu 2010-03-22 15:27   좋아요 0 | URL
그림책! 좋은 책들 너무 많아요. 제가 모르는 멋진 그림책 작가들도 너무 많더라구요.ㅎㅎ
 

 

화이트데이가 돌아왔다. 작년에 화이트데이와 관련하여 글을 하나 올린 것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나버렸다니. 세월이 정말 빠르고나! 지난 달에 발렌타인데이 관련해서 포스팅한 글이 반응이 좋았다. 화이트데이에 권할 만한 책을 소개해달라고 단 댓글을 봤다. 화이트데이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왠지 그 댓글에 답을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ㅋㅋ핑계도 가지가지) 해서, 나름 한 달 동안 고민고민했다. 화이트데이, 남자들이 사랑하는 그녀에게 사탕 만큼이나 달콤한 책을 선물한다면 어떤 책들이 있을까?  드라마 같은 사랑, 그 후로 그녀는 그이랑 행복하게 어쩌고저쩌고 달콤달콤, 그런 책?




소녀 같은 그녀에게 권해요


분홍주의보』, 표지 한번 유치찬란하다. 사실 정말 그랬다. 왜 꼭 이 핑크여만 했느냐? 묻고 싶었으나 다르게 생각하니 소녀같은 그녀들은 이런 핑크를 좋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울 조카도 와우! 핑크! 핑크! 했으니 말이다. 제목으로 봐서는 발렌타인데이에나 어울릴 법한 책인데 주인공이 여자라는 점에서 발렌타인보다는 화이트데이가 훨씬 더 잘 어울릴 것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한데 책을 펼치니 어라? 글이 거의 없네? 대신 삽화가 그려져 있다. 오호! 이건 정말 사랑에 빠진 소녀들을 위한 책이구나, 무릎을 쳤다.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나?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그대만을 향해 눈을 반짝일 뿐이다. 구구절절 사연 많은 사랑이야기 따위도 그 아무리 해피엔딩이라 해도 관심없다. 심금을 울리는 유치한 노래 가사가 어느 날 귀에 쏙! 들어오듯 큼직하게 써 놓은 문장 하나가 내 맘과 일치하면 그걸로 이 책은 내 취향이며 내가 좋아할 만한 그런 책인 셈이다. 가령, 이런 문장들 

"사랑은 아마도 한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서 아주 오랫동안 여행을 하는 일일 거야. 그 여행은 밤마다 초록색 베개를 안고 숲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두렵지만 깨고 나면 두 눈이 따뜻해지는 꿈 같은 거겠지……"  

여행다니는 것 좋아하는 시인 김경주가 번역했단다. 시인의 번역이니 소녀 같은 그녀의 마음,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적인 그녀를 사로잡고 싶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적'이다. 내가 굳이 '지적인 그녀'라고 한 이유는 이 책을 제목만 보고 샀다가는 큰 코 다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이트데이에 여자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으로 이만한 제목을 가진, 겉과 속이 완전(!) 문학적으로 똘똘 뭉친 책은 보질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 『세계의 끝 여자친구』가 그 책이다. 제목처럼 뭔가 달콤할 것이라 상상했다면, 그래서 읽어보지도 않고 달달한 척, 아는 척 하며 그녀에게 건넸다가는 한소리 들을지도 모른다. 대신에 건네주며 이런 말은 할 수 있겠다. 이 작가를 모르면 넌 '지적'일 수 없어!ㅋㅋ 책을 내용을 짐작케해주는 작가의 말은 이렇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노력해야 한단다. 그게 값어치가 있는 삶이란다. 그렇다면 이 책을 받은 그녀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당신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것? 어디 모험을 걸어보자! 예상컨데 그녀들은 모두 당신의 선택에 만족할 것이며 당신을 다시 바라볼 것이다. 정말? 진짜! 

 

불의를 못 참는 열혈 그녀에게 권해요

생활좌파라는 말을 아는가?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불리는 생활좌파란 절대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불의를 못 참고 생활 속에서 좌파적인 기질을 보이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 유형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의 저자 목수정이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에게 더 인기가 많은 그녀의 거침없는 글발을 읽노라면 야, 정말 잘났구나! 하는 같은 여자로서의 시샘이 들면서 한없이 일탈을 꿈꾸는 그녀의 사고와 행동에 공감, 대 공감을 하게 된다. 더구나 "학창시절 '스커트자락 깨나 날리던 인물'로서 뒤늦게 자칭 연분홍 사회주의자가 되어, 좌파정당에 들어가 온 몸으로 겪은 사건들과 소감들"을 읽을 땐 그야말로 자유로운, 아나키스트적인 목수정의 면모를 볼 수 있었는데 그런 그녀의 행동이 얼마나 유쾌하고 즐거웠던지. 이 책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선물한다면 당신의 센스에 그녀는 화들짝 놀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외칠 것이다. "인생은 아름답다! La vie est belle"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결혼은 뭘까?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할 줄 알았는데 막상 같이 살아보니 그건 말짱 거짓말 같다. 점점 아줌마스러워가는 아내를 보자면 예전의 다소곳하던 그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아내도 남편에게 불만이 많겠지만 남편 역시 그렇다. 발렌타인에 좋아하지도 않는 초콜릿 받았는데 화이트데이라고 사탕 하나 안 사주면 분명 삐지고 말 것이다. 어떡하나? 그렇다면 바로 이 책이다. 『러브툰 - 프레드와 페넬로페의 사랑이야기

이 책에 나오는 부부, 프레드와 페넬로페의 사랑을 눈여겨 보면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해주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선 부끄러워 할 것도 없다. 또 상대를 위해서는 눈 감아야 할 일 앞에서는 눈도 감을 줄 아는 센스를 보여야 하기도 한다. 종일 일하고 와서는 하루의 일과를 늘어 놓는 페넬로페를 위해 감기는 눈을 최대한 잡고 재미있게! 그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고 페넬로페는 머리 빠지는 프레드의 대머리를 보고 이건 정력의 상징이라는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사랑이고 부부이다. 그래서 사랑은~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결혼은~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이 어쩐지 더 잘 어울린다.

그러니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는 사랑에, 결혼에 살짝 권태로움을 느끼는 커플이 같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해답은 없지만  둘이 보다 배꼽을 잡을 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면 서로를 쳐다보고 웃게 될 것이고 권태에 빠졌던 사랑이 고개를 돌리지도 모른다. 진짜!^^;   


 

달달한 사탕보다는 훨씬 경제적이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책! 당신의 선택이 분명 그녀를 사로잡을 것이다. ^^ 그럼,  화이트데이에도 여전히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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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3-08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함다!^^

readersu 2010-03-08 19:02   좋아요 0 | URL
감솨함다!^^

네꿈을펼쳐라 2010-03-09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보고 갑니당^^; readersu님도 행복하세요!

readersu 2010-03-10 10:4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님도 행복하세요^^

나는 새 2010-03-10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화이트데이에 사탕대신 책을 선물하는 남자~라니... 근사해욤~~

readersu 2010-03-10 10:48   좋아요 0 | URL
센스 있겠죠!ㅎㅎ
근데 두 녀자가 화이트데이에 좀 쓸쓸하겠습니다.ㅋㅋ

라주미힌 2010-03-10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readersu 2010-03-10 14:08   좋아요 0 | URL
훔, 웃음의 의미가 뭐당가요?-.-
알듯 하면서도..훔;;;
말 안 해줘도 뭐..ㅋㅋㅋ

2010-03-10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감솨해염^^

readersu 2010-03-10 14:0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감사합니다.^^
 
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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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그러고보니 김영하의 소설집 제목이기도 한데 『고령화 가족』을 읽으면서 내내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 가 떠오르긴 했다. 줄거리가 생각나진 않지만 아마도 가족이라는 것과 조금은 콩가루(?) 집안의 이야기라는 면에서 두 소설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튼, 오빠가 돌아왔다! 『고래』로 소설 좋아하는 모든 독자들을 사로잡아 버리고 이제나 저제나 『고래』와 같은 소설이 나올까나 기다리던 독자 앞으로!!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지극히 평범한 구성이다. 엄마와 두 아들 그리고 딸과 외손녀.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대로 평범하진 않다. 이들 가족의 평균 나이가 49세라는 점에서. 그렇다면, 다들 나이가 많다는 이야기? 그렇다. 이들은 지극히 평범해보이지만 사실은 다들 분가를 했다가 엄마 집으로 다시 되돌아온 탕아(!)들이다. 전과 5범에 변태성욕자, 백이십 킬로그램의 거구이며 시도 때도 없이 방귀를 뀌어대는 큰아들 오한모(52세), 영화로 재산 탕진하고 말아먹은 후 노숙자 신세가 될 뻔하다가 얼굴 철판깔고 엄마 집으로 들어 온 이 집안의 유일한 인텔리(!) 둘째 아들 오인모(48세), 두 번의 결혼을 자신의 바람으로 실패하고 딸과 함께 엄마 집으로 들어온 딸 오미연. 나이 사십이 다 넘은 중년의 자식들이 엄마에게 얹혀(!) 살기 위해 모여든 것이다.  

이들의 행태를 보자면 가관이다. 정말 이런 가족이 존재하는 걸까,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하긴 소설이니 이해를 했다. 그럼에도 이런, 빌어먹을 가족이 다 있나! 라는 소리가 다 나온다. 오함마의 팬티 사건:으악!, 오인모의 조카 용돈 삥(!)뜯는 방법:미쳐!, 오미연의 '아는 언니' 타령:켁!, 조카인 장민경의 사춘기 발악:! 까지 누구 하나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 가족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애증의 존재들이다. 단 한 사람, 엄마만 빼고 말이다. 

엄마, 엄마의 힘은 그 아무리 콩가루 집안이라고 해도 대단하다. 칠순이 넘은 노파지만 돌아온 자식들을 마다하지 않는다. 싫은 소리조차 하지 않으며 거둬 먹인다. 마치 그 일이 엄마의 일생일대의 큰일이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그런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위대하다고! 다 늙은 자식들에게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이기 위한 엄마의 사랑, 그 늙은 것들이 뭐가 좋다고 엄마는 거둬 먹이는 것에 행복을 느낄까? 정말 가슴 뭉클. 

하지만!!! 

이 정신 없는 가족들의 삶을 파헤쳐보니(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오고 말았지만) 지금의 상황보다 더 웃긴다. 이.럴.수.가!!! 

돌아온 오빠, 천명관 작가는 우리가 사랑의 보금자리라고 일컫는 가족을 상대로 천명관 작가 만의 개성 넘치는 문체를 선보이며 독자를 웃게 만든다. 전작인『고래』에서 보여주었던 독자를 사로잡는 문체는 『고령화 가족』에서도 어김없이 발휘하여 책을 잡는 순간, 덮을 때까지 틈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찌 보면 콩가루 집안에 찌질한 가족들이지만 미운 정 고운 정 다 준 그들 가족들도 알고 보면 '진짜 가족'이라는 점. 그들에게도 언젠가는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를 수 있다는 사실. 천명관 작가는 그걸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세상사 우울하다면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천명관 작가의 새 가족들을 만나보시는 것은 어떨지. 세상엔 이런 삶들도 있으니 힘이 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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