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readersu > 전경린 작가와 『풀밭 위의 식사』, 행복했던 저녁!!


계절이 거꾸로 가는 건지, 이젠 아예 봄 같은 것은 오지 않기로 했는지 연일 쌀쌀했던 봄날이었다. 하지만 3년 만에 장편을 냈다는(『엄마의 집』나온지가 벌써 3년이나 지났던가?) 전경린 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즐거웠다. 『풀밭 위의 식사』, 올해 들어 그토록 많은 문장들이 내 마음에 남은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으니까 말이다. 지난 번 사인회에서 미리 인사를 나누었지만 사인회는 역시 사인회일 뿐이어서 궁금한 것들을 제대로 물어볼 수도 없었다.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다행히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그러니까 3년 전, 『엄마의 집』이 나왔을 때 전경린 작가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친구의 추천으로 다시, 전경린 작가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 그즈음의 나는, 한국소설을 오랫동안 안 읽었던 탓에 다시 접하는 작가들의 책마다 너무나 새로웠다. 그리고 다시 읽을 때마다 왜 그동안 한국소설을 읽지 않았던가, 후회를 하던 무렵이었다. 전경린 작가 역시 그랬다. 간만에 접한 『엄마의 집』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그녀의 작품이 그동안 어떤 것들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영화가 되었던 <밀애>의 스토리가 낯익은 것이 원작인『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읽은 기억 때문이라는 걸 떠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워낙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라 전경린 작가의 책은 내게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집』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전경린‘이 변했다고들 했다. 나로서는 전경린 작가에 대해 잘 몰랐으니 그런 말은 할 수도 없었지만 따듯하고 좋았던 기억으로 인해 ’전경린‘이 변했다면 잘 된 일이다.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또 밑줄 친 문장들은 왜 그리도 많았는지. 이번 작품 『풀밭 위의 식사』역시 그랬다. 거의 대부분의 문장에서 밑줄을 그어댔다. 교보문고에서 연재를 한 작품이지만 단 한 번도 연재 중에 들어가서 읽은 적은 없다. 책을 읽고 나니 어쩌면 그래서 더 잘됐다는 생각도 했다.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말이다. 암튼, 전경린 작가의 『풀밭 위의 식사』가 내 품에 들어왔던 어느 주말에, 단지 책이 얇다는 이유로 다른 책들보다 먼저 읽게 되면서 ’거침없는‘ 독서에 빠지고 말았는데, 거의 ’홀릭’이었다. 더구나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다가 ‘감동’을 받은 탓에 주말 내내 서강주에게 빠져있었다. 

사실 뭐든지 그렇다. 읽을 생각도 없다가 먼저 읽은 친구들이 ‘이 책 정말 재밌어!’ 하고 추천을 하면 그걸 믿고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 열권의 책 중에서 꼭 한 두 권은 실패를 하고 만다. 그렇게 재미있다는 책이 ‘이게 뭐?’ 하는 수준으로 나의 취향과 맞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나 역시 이 책을 두고 '감동'이라느니 재미있으니 꼭 읽어보라느니 말해봐야 스스로 ‘감동’을 받기 전엔 그걸 느끼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감히, 추천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역시나 이 책을 읽은 후에 든 생각은 추천하고 싶다는 거였다. 

이 책을 읽은 한 친구는 그랬다. 만약 결말이 그렇게 나지 않았다면 완전한 통속소설에 그저 그런 스토리를 지닌 소설이 되었을 터인데 그 결말이 너무 맘에 들었다고. 나는 강주에게 빠져 있고, 기현의 시점을 쫓아가다보니 기현이 어쩐지 가엾다는 생각밖에 안 했더랬다. 근데 오호라! 그랬다. 친구의 말처럼 그런 식의 결말이 아니었으면 이 얼마나 ‘뻔’한 스토리였을까? 싶었던 거다. 이 날 세 번째로 자리 이동을 하고 내 옆에 앉은 전경린 작가에게 물었더니 활짝 웃으며 말 하더라. "결말을 정해놓고 무척 기분이 좋았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잘 읽어보면 앞부분에 결말에 대한 암시가 있다. 그 둘은 처음부터 만날 운명이었다." 기억을 더듬었다. 맞아, 그런 일이 있었다. 기현이 선배를 기다렸는데 나오지 않았던. ‘와, 작가들은 이런 사소한 것도 모두 설정을 하고 글을 쓰는구나!’ 이런 당연한 것에 혼자 놀라워했다. 

『엄마의 집』이 나왔을 때, 롯데시네마에서 하는 작가 강연회를 간 적이 있었다. 그즈음 여기저기 강연회를 많이 다니던 때라 전경린 작가의 소심한(!) 강연회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동안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일은 대학이나 초청 강연이 아니면 거의 만날 기회가 없었다. 작가란 그저 책만 내고 나면 그만이었다. 그랬던 탓에 이런 낯선 형식이 전경린 작가에게 부담을 주었던 게 아니었을까, 혼자 상상을 하고 이해를 했더랬다. 하지만 이날 3년 만에 다시 본 전경린 작가는 달라져 있었다. 조곤조곤 내뱉는 말이나 미소가 떠나지 않는 편안한 얼굴은 그때하고 사뭇 달랐다. 강연회와 소규모의 만남이라는 점이 달라지게 한 걸까? 아님 그때와 생각을 달리 하게 된 걸까? 사실, 사인회에서부터 조곤조곤 말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그때 잘못 본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뭔가 다르긴 달랐다. 나중에 어느 온라인 서점에서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는데, 내 생각이 어느 정도는 맞았던 것 같다. 처음에 이 낯선 방식의 만남이 너무나 부담스러웠단다. 그래서 이런 만남을 많이 거절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매체도 많아지고 이런 형식의 이벤트들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수긍을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작가로서, 작가라는 자리가 조금 부담스러운 자리이긴 하겠지만 이래저래 독자로서는 행복한 일인 셈이다. 

만남의 장소인 홍대 <라리에또>는 예전에 신경숙 작가와 만남에도 가 본적이 있던 곳이다. 올리브 오일 스파게티가 기막히게 맛있고, 피클과 직접 만든다는 타코타 치즈샐러드가 기억에 남아 친구들하고도 자주 가던 곳이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가니 미리 도착한 독자들이 테이블 곳곳에 앉아 있었다. 같이 간 친구와 함께 우리도 자리에 앉았다.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전경린 작가는 약간의 수줍은 미소를 머금으며 인사를 했고,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작은 만남의 자리에선 자기소개가 필수. 인사를 나누는 독자들은 다들 전경린 작가를 좋아하고 전경린 작가의 작품에 감동을 받은 분들이었다.   

 

작은 규모였지만 집중을 해서 듣지 않으면 작가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아 수고스럽게도 전경린 작가가 세 번이나 자리 이동을 해주었다. 전경린 작가가 가까운 자리로 오는 동안 옆에 있는 독자들은 맛있는 파스타와 피자를 먹으며 책에 대해, 전경린 작가의 작품에 대해 이야길 나누었다. 그리고 마침내 전경린 작가가 내 옆자리로 왔고, 짧게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여전히 미소 가득한 모습으로 조곤조곤 말하는 목소리는 아름다웠다나. 카메라가 있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사진을 확인하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시간 내내 전경린 작가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사진 속 전경린 작가의 얼굴엔 미소가 한 가득이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잘 안하는 성격이지만 작가가 내 옆자리로 왔기 때문에 뭐라도 물어야 했다. 마침 이 자리에 오고 싶었으나 오지 못한 친구가 꼭 물어봐달라던 질문이 있었다. 바로 서강주에 관한 질문이었다. 나뿐만이 아니었을 거다. 『풀밭 위의 식사』를 읽으면서 많은 여성들이 서강주라는 인물에게 빠졌을 거다. 과연, 서강주라는 인물이 현실에서도 존재할까 싶으면서도 빠지게 되는 것은 그가 내뱉는 말투들 때문인데 마치 내가 누경이라도 된 듯 서강주가 내뱉는 말투에 그냥 넘어가버리고 마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서강주라는 인물이 존재할까? 그의 롤모델이 된 사람이 있을까? 그 물음에 전경린 작가는 웃으면서 답했다. “롤 모델은 없다. 여러 명의 성격을 취합하여 만든 인물일 뿐이다. 책을 읽은 출판사 마케팅 팀장이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남자는 없다고 하더라.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 아쉬웠다. 역시 멋진 남자들은 소설이나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것?!   

그렇다면 30대 미혼 노처녀로 나온 누경의 마음은 어떻게 그렇게도 잘 그려냈을까. 전경린 작가는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일까, 누경이야말로 롤모델이 있는 건가? “현재를 살아가는 30대 미혼녀에게 있어 결혼과 삶은 고민의 대상이다. 어느 정도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 명 남짓의 미혼녀들을 몇 달 간 만나면서 그들의 생각과 고민들을 들었고 대화도 나누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작가들은 소설을 쓰기 전에 작품 속 주인공들에 대해 연구를 한다. 또 같은 여자로서 미혼이든 기혼이든 생각하는 것이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 그리고 누경의 상처에 대해서는 성폭력 피해 여성을 다룬 라디오 다큐멘터리에서 대본 작업을 하며 성폭력 피해 여성을 ‘생존자’라는 말로 표현한다는 얘길 듣고 ‘생존’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그 고통을 겪은 여성이 가진 상처를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고 했단다.  

다시 서먹해질 틈을 타서 너무나 ‘뻔’한 질문을 했다. 사실은 이 질문이 너무나 ‘뻔’하다는 걸 알면서도 하게 되는 것은 작가들이란, 도대체 어떤 책들을 읽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나 읽은 책을 물었더니 니콜 크라우스의 책을 읽었다고 하셨다. 『사랑의 역사』와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를 사두고도 읽지 않았으면서 괜히 아는 척을 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남편이니 어쩌니,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부부라서 둘 다 독특한 글쓰기가 비슷한 것은 아닐까요? 운운하며 말이다.(아, 작가님 앞에서 주름을 잡았지.-.-;;) 또 다른 책은 바로 『하룻밤만의 자유』라는 책이란다. 사이버 공간에서 소설을 연재하는 작가의 이야기와 사랑을 다룬 소설인데 매우 흥미로웠다하시기에 바로 입력을 했다.(아이폰의 어플을 사용, 구글에서 책을 검색하여 위시리스트에 담았다. 오!!)   혹시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지, 그 작품 역시 연애소설이 아닌가도 물었다. “작가가 비슷한 작품을 연이어 쓰는 것은 좀 힘든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연애소설일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변해주었는데 검색을 해보니 올해도 인터넷 웹진에서 글을 쓸 예정이며 하반기에 책이 한 권 더 나올 수 있을 거라는 답변을 해주셨다. 신화나 판타지 같은 내용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단다. 신화나 판타지라! 의외였지만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사실, 『엄마의 집』으로 전경린 작가를 다시 만난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풀밭 위의 식사』로 인해 난 완전한 전경린 작가의 문체에 완전 빠져버렸는데 그렇기에 어떤 작품이 나오든 무조건 읽어볼 준비가 되었다고나 할까, 해서 새로 나올 작품이 무척 기대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당부하듯이 말을 했다. “이 책을 읽을 때 스토리보다는 배경을 생각하고 읽으면 좋겠다. 다들 스토리에 빠져 책을 읽는 것 같은데 누경과 서강주가 만나기 전까지 억눌렸던 감정들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감정이었기에 둘이 만나게 되었을 때 훨훨 탈 수 있었는지, 그런 과정들을 눈여겨보면 좋겠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토리를 중심으로 읽었다면 이젠 배경과 과정을 주시하면서 말이다. 

늘 그렇듯이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렸다.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나오는 길에 <라리에또>를 찾아온 길고양이들을 만났다. 저녁마다 식사를 제공하는 <라리에또> 덕분에 길고양이들이 때만 되면 찾아온단다. 귀여운 고양이들 사진 찍느라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전경린 작가의 말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느라 고생했는데 어쩐지 다른 말들은 전혀 생각나지 않고 전경린 작가의 미소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상대를 편안하고 괜히 즐겁게 해주는 미소였다. 그렇게 나는 전경린 작가의 팬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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