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가 돌아왔다. 작년에 화이트데이와 관련하여 글을 하나 올린 것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나버렸다니. 세월이 정말 빠르고나! 지난 달에 발렌타인데이 관련해서 포스팅한 글이 반응이 좋았다. 화이트데이에 권할 만한 책을 소개해달라고 단 댓글을 봤다. 화이트데이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왠지 그 댓글에 답을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ㅋㅋ핑계도 가지가지) 해서, 나름 한 달 동안 고민고민했다. 화이트데이, 남자들이 사랑하는 그녀에게 사탕 만큼이나 달콤한 책을 선물한다면 어떤 책들이 있을까? 드라마 같은 사랑, 그 후로 그녀는 그이랑 행복하게 어쩌고저쩌고 달콤달콤, 그런 책?
소녀 같은 그녀에게 권해요
『분홍주의보』, 표지 한번 유치찬란하다. 사실 정말 그랬다. 왜 꼭 이 핑크여만 했느냐? 묻고 싶었으나 다르게 생각하니 소녀같은 그녀들은 이런 핑크를 좋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울 조카도 와우! 핑크! 핑크! 했으니 말이다. 제목으로 봐서는 발렌타인데이에나 어울릴 법한 책인데 주인공이 여자라는 점에서 발렌타인보다는 화이트데이가 훨씬 더 잘 어울릴 것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한데 책을 펼치니 어라? 글이 거의 없네? 대신 삽화가 그려져 있다. 오호! 이건 정말 사랑에 빠진 소녀들을 위한 책이구나, 무릎을 쳤다.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나?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그대만을 향해 눈을 반짝일 뿐이다. 구구절절 사연 많은 사랑이야기 따위도 그 아무리 해피엔딩이라 해도 관심없다. 심금을 울리는 유치한 노래 가사가 어느 날 귀에 쏙! 들어오듯 큼직하게 써 놓은 문장 하나가 내 맘과 일치하면 그걸로 이 책은 내 취향이며 내가 좋아할 만한 그런 책인 셈이다. 가령, 이런 문장들
"사랑은 아마도 한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서 아주 오랫동안 여행을 하는 일일 거야. 그 여행은 밤마다 초록색 베개를 안고 숲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두렵지만 깨고 나면 두 눈이 따뜻해지는 꿈 같은 거겠지……"
여행다니는 것 좋아하는 시인 김경주가 번역했단다. 시인의 번역이니 소녀 같은 그녀의 마음,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적인 그녀를 사로잡고 싶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적'이다. 내가 굳이 '지적인 그녀'라고 한 이유는 이 책을 제목만 보고 샀다가는 큰 코 다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이트데이에 여자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으로 이만한 제목을 가진, 겉과 속이 완전(!) 문학적으로 똘똘 뭉친 책은 보질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 『세계의 끝 여자친구』가 그 책이다. 제목처럼 뭔가 달콤할 것이라 상상했다면, 그래서 읽어보지도 않고 달달한 척, 아는 척 하며 그녀에게 건넸다가는 한소리 들을지도 모른다. 대신에 건네주며 이런 말은 할 수 있겠다. 이 작가를 모르면 넌 '지적'일 수 없어!ㅋㅋ 책을 내용을 짐작케해주는 작가의 말은 이렇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노력해야 한단다. 그게 값어치가 있는 삶이란다. 그렇다면 이 책을 받은 그녀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당신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것? 어디 모험을 걸어보자! 예상컨데 그녀들은 모두 당신의 선택에 만족할 것이며 당신을 다시 바라볼 것이다. 정말? 진짜!
불의를 못 참는 열혈 그녀에게 권해요
생활좌파라는 말을 아는가?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불리는 생활좌파란 절대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불의를 못 참고 생활 속에서 좌파적인 기질을 보이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 유형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의 저자 목수정이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에게 더 인기가 많은 그녀의 거침없는 글발을 읽노라면 야, 정말 잘났구나! 하는 같은 여자로서의 시샘이 들면서 한없이 일탈을 꿈꾸는 그녀의 사고와 행동에 공감, 대 공감을 하게 된다. 더구나 "학창시절 '스커트자락 깨나 날리던 인물'로서 뒤늦게 자칭 연분홍 사회주의자가 되어, 좌파정당에 들어가 온 몸으로 겪은 사건들과 소감들"을 읽을 땐 그야말로 자유로운, 아나키스트적인 목수정의 면모를 볼 수 있었는데 그런 그녀의 행동이 얼마나 유쾌하고 즐거웠던지. 이 책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선물한다면 당신의 센스에 그녀는 화들짝 놀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외칠 것이다. "인생은 아름답다! La vie est belle"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결혼은 뭘까?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할 줄 알았는데 막상 같이 살아보니 그건 말짱 거짓말 같다. 점점 아줌마스러워가는 아내를 보자면 예전의 다소곳하던 그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아내도 남편에게 불만이 많겠지만 남편 역시 그렇다. 발렌타인에 좋아하지도 않는 초콜릿 받았는데 화이트데이라고 사탕 하나 안 사주면 분명 삐지고 말 것이다. 어떡하나? 그렇다면 바로 이 책이다. 『러브툰 - 프레드와 페넬로페의 사랑이야기』
이 책에 나오는 부부, 프레드와 페넬로페의 사랑을 눈여겨 보면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해주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선 부끄러워 할 것도 없다. 또 상대를 위해서는 눈 감아야 할 일 앞에서는 눈도 감을 줄 아는 센스를 보여야 하기도 한다. 종일 일하고 와서는 하루의 일과를 늘어 놓는 페넬로페를 위해 감기는 눈을 최대한 잡고 재미있게! 그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고 페넬로페는 머리 빠지는 프레드의 대머리를 보고 이건 정력의 상징이라는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사랑이고 부부이다. 그래서 사랑은~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결혼은~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이 어쩐지 더 잘 어울린다.
그러니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는 사랑에, 결혼에 살짝 권태로움을 느끼는 커플이 같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해답은 없지만 둘이 보다 배꼽을 잡을 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면 서로를 쳐다보고 웃게 될 것이고 권태에 빠졌던 사랑이 고개를 돌리지도 모른다. 진짜!^^;
달달한 사탕보다는 훨씬 경제적이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책! 당신의 선택이 분명 그녀를 사로잡을 것이다. ^^ 그럼, 화이트데이에도 여전히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