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휴가를 다녀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을 읽고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종종 많은데 이번에 제대로 실천에 옮겼다. 내가 가지고 간 책은 시집이다. 김태정의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시집 속에 나오는 시들은 그냥도 너무 좋았지만 미황사와 관련된 시들은 고즈넉한 그곳에 가서 읽었더니 더욱 감동이입이 되어 좋았다. 앞으로는 여행을 떠날 때 꼭 그곳과 관련한 책을 찾아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나?! 그래서 책 대 책을 구상하며 떠오른 주제, 책을 읽고 떠나다, 훗! 좀 웃기지만 어쨌든 책을 읽었는데 그곳을 궁금하게 만들었던 책들을 골라봤다. 

 

따끈따끈한 이 책『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는 유배객의 자취를 찾아 섬을 탐방,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묶은 책이다. 14개 유배의 섬에서 살았던 유배객들의 삶을 좇았다고 하는데, 처음 이 책을 실물로 보기 전에는 솔직히 그냥 그런 역사 이야기인가보다 했다. 한데 직접 책을 보니, 오홋! 역사도 역사이거니와, 그곳을 직접 다니며 찍은 멋진 사진과 짧게는 20여일부터 길게는 27년이라는 긴 시간을 섬에 머문, 유배객들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 괜찮았다. 유배객들 중엔 유배지에서 편안하게 대접받은 객이 있는가 하면, 먹을 것을 구걸하며 구차하게 삶을 이어가야 했던 객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절해고도에 유배당한 처지는 같았으나, 그곳에서의 삶의 모습은 달랐던 것. 
유배는 기본적으로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무기형이란다. 권력의 변화가 없는 한 대부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자청해서라도 유배를 떠나기도 싶겠지만(도시에서의 혹독한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은 자들!) 그 시대 유배의 섬은 절망의 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 유배객들은 절망의 섬에서 살아내야만 했으므로 고독과 단절 속에서 자신을 단련시키고, 분노를 학문으로 승화시킨 경우가 많았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 위대한 박물학 저서인『현산어보』와 소나무 벌목을 비판하는 『송정사의』를 남겼고, 노수신은 19년의 세월 동안 진도에 살면서 그 분노를 학문으로 삭여 훗날 화려하게 조정으로 복귀해 남은 생을 대학자로 행세하였단다.
이러한 각기 다른 섬, 다른 사연, 다른 기간이었지만 이 책의 공통점은 바로 궁벽한 땅, 섬을 알린 것. 위도를 알린 이규보, 거제도의 고절치라는 지명을 남긴 이행, 나로도를 아름다운 글로 빛낸 조관빈, 백령도를 기록한 이대기 등등 그들 유배객들이 없었다면 그 섬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풍요로운 이야기를 전해줄 수 없었을 것.
그나저나 휴가 다녀온 첫날인데, 이런 책을 만나고 말았으니 그 섬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또 생기고 말겠다. 

 

섬 이야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14개의 섬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곳에서 생계형 낚시꾼을 자처하며 살아가는 한창훈 작가이다. 그가 십여 년 동안 펴낸 책엔 섬과 바다 이야기가 늘 들어가 있다. 그렇더래도 막상 떠나고 싶은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작년에 읽고 나면 그곳으로 떠나고 싶게 만들었던 책이 있었으니 바로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는 에세이이다. 이 책은 유배를 떠났던 정약전의 『자산어보』(『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에서는 『현산어보』로 나온다.)를 기본으로 거문도에서 나는 생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작가 특유의 위트로 재미있게 다룬 책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장 거문도라는 곳에 가고 싶어했을 것이다(그러나 대부분 횟집으로 달려가고 말았겠지만;).     

 

김태정의 시집을 들고 미황사를 다녀온 나는 이번엔 매창이라는 기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곱게 늙은 절집』을 읽으면서 만났던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부안에 있는 개암사가 궁금해졌다. 매창은 허난설헌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시집으로 묶을 수 있을 만큼의 시를 남겼다고 한다. 허난설헌이 규수 시인이라면 매창은 황진이와 같이 기녀 시인으로 뽑히는데 황진이의 경우 시가 많지 않아 시집으로 묶을 수 없지만 매창은 묶을 만큼의 분량이 된단다. 그래서 알게 된 『매창 시집
여기저기 이 시집은 절판이거나 품절이어서 구할 수 없는가, 했는데 마침 올 5월에 개정증보판을 낸 시집을 구할 수 있었다. 이 시집을 받아들고 보니 부안에 있는 개암사가 다녀오고 싶어졌다. 김태정의 시집과 다르게 개암사에 관한 시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개암사와 관련된 것은 매창이 세상을 떠나고 58년 뒤에 부안현 아전들이 58수의 시를 편집해 개암사라는 절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목판본 글자가 뭉개질 정도고 찍어도 공급이 딸려 매창의 시를 사랑하던 부안 선비들이 필사까지 해서 읽었다고 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가까운 주말엔 『매창 시집』을 들고(어쨌든 섬들보다는 훨씬 가기가 편하니까) 개암사를 갈 생각이다.  

 

그동안 책을 읽고 나면 떠나고 싶었던 곳이 외국 소설 속에 나오는 다른 나라이거나 도시였다. 아마도 문학의 고향을 찾아간다는 의미에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위의 책들처럼 우리나라에도 읽고 나면 가고 싶은 곳이 의외로 많다. 문학적 의미로서 혹은 역사적 의미로서, 아니면 문화적 의미로서 찾아가고 싶은 곳. 그런 곳들을 찾아 다니는 것은 맛집을 가기 위해 그곳(!)에 가는 것보다는 훨씬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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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의 연재를 끝으로 소설 연재는 가급적이면 안 읽을 생각이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고 해도 매일 들어가서 연재를 읽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 또 처음엔 열심히 읽어주다가 중간쯤엔 시들해지고 마는 경우가 많아 괜히 작가에게 미안해지기도 하고. 한데《꽃의 나라》(연재명: 남쪽역으로 가다), 한창훈 작가의 연재를 어쩌다 읽게 되었고, 읽다 보니 빠지게 되고, 빠지다 보니 하루의 마지막이 연재를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시스템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그렇다고 매일 어찌 지극정성으로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었을까, 그건 컴퓨터가 옆에 없어도 스마트폰이라는 너무나 '좋은' 기기 덕분이며, 매일 빠지지 않고 같이 수다를 나누며 연재를 '즐긴' 열혈독자들 때문이었을거다. 그 연재 소설이 드디어 책으로 나왔다. 마치, 내가 쓴 책 마냥 반가운 것은, 그런 까닭.  

꽃의 나라》는 그동안 한창훈 작가가 보여준 소설들과 다르다. 바다가 없다. 섬도 없고, 생선도 나오지 않는다. 항구의 도시가 잠깐 나오긴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그러니까 이번 소설은 그동안의 작품들과 좀 다르다는 것.  

한창훈 작가의 문체를 안다면 재미있을 테고 또 내용의 깊이를 안다면 마음도 아플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소설 속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술'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이미 읽어본 누군가는 그랬다. 새벽 5시에 술 친구를 찾았다나;). 그러고 보니 한창훈 작가의 책은 늘 그렇다. 작년에 나온《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로 횟집에 달려가게 만들더니 이번엔 우리를 술집으로 인도하신다.  

또 우리가 그동안 그때, 그 곳을 어떻게 잊고 지낼 수 있었는지 부끄러워질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는지 죄책감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소년의 마음, 그 깊은 상처가 부디 이 책으로 조금은 치유가 되었음 바라게 된다. 

이 연재를 먼저 읽었기에 뒤에 나온 《사라의 열쇠》을 읽으면서 우리가 모르거나 잊고 있는 과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 그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릴 상처에 대해... 《꽃의 나라》와 함께 《사라의 열쇠》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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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인지 피곤이 누적된 것인지, 우울의 연속. 자꾸만 땅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멍 때리기만 하고 책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날아온 메일 속 시집 한 권, 마음을 확, 사로잡네. 구매 버튼 눌러버리고 시집 오기만 기다린다. 언젠가 친구가 이 시인의 시집이 좋다고 추천해주었던 것 같은데 그냥 지나쳐버렸더랬다. 우연히 시인의 낭독도 들어본 것 같은데 역시 시에 대해선 무지한지라 어느 순간 내 맘에 들어오지 않으면 관심이 없는 듯. 아무튼 메일 속에서 본 시집에 눈길이 갔다. 우울할 때는 시집을 읽어주는 센스. 그게 젤 좋은 방법 같다. 긴 글을 읽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소설 속 내용을 이해하려 해도 안 될 때는 역시 시집이 장땡.  

눈앞에 없는 사람》을 사면서 친구가 추천해준 《슬픔이 없는 십오 초》도 같이 샀다. 그러고 보니 둘다 '없는' 이 들어가는 제목. '슬픔' 도 없고 눈 앞에 '사람'도 없는... 움, 좀 쓸쓸한 것 같은데... 젠장, 이 시집 읽고 더 우울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우울을 없애기 위해 사서 읽고 더 우울해지면 곤란한데 말이다. 시집 소개를 보다가 누군가 밑줄 그은 눈에 들어온 시, 

(…) 그날 큰 눈이 그치고/쌓인 눈은 조금씩 얼음의 두께를 더했네/다음 번 내릴 눈에 대해/호수는 걱정을 덜었으나/그때 우리의 심약한 마음은/미래를 자주 떠올리며 쩡쩡 금이 갔네/그때 참 짦은 연애였는네/우리는 너무 많은 산책을 했네/그날 큰 눈이 내리다 그쳤네/그날 큰 개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네/우리의 마지막 산책이었네/그때는 알지 못했네 (_그날, 그때, 산책)

그리고 언젠가 계간지에서 봤던 그 시, 

(…) 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어쩌다 보니,로 시작해서 어쩌다 보니,로 이어지는/보잘것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을까?/태어날 때 나는 이미 망각에 한 번 굴복한 채 태어났다는/사실을, 가끔 인중이 간지러운 것은/천사가 차가운 손가락을 입술로부터 거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삶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태어난 이상 그 강철 같은 법칙들과/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나는 어쩌다 보니 살게 된 것이 아니다/나는 어쩌다 보니 쓰게 된 것이 아니다/나는 어쩌다 보니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이 사실을 나는 홀로 깨달을 수 없다/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  (_인중을 긁적거리며)

이 정도로도 시집은 좋다고 혼자 생각함. 

음악 없이 종일 지내 보니 마음이 불안해진다. 할 수 없이 주변 분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한쪽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귓속으로 노래가 들어오니 마음이 평안해진다. 점심 때 입맛이 없다며 밥을 남겼다. 아무래도 내 몸무게가 몇 킬로인지 재봐야겠다. 거의 대학 때 몸무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 꺄~오!(그러나 슬픈 사실, 나이 땜에 오는 뱃살... 밥만 먹으면 다시-.-;)  

뒤표지 시인의 산문도 눈에 들어옴 

오늘 밤, 세찬 빗줄기를 뚫고 건너온, 물방울 속에 뭉쳐 있는 당신의 전언을 펼쳐 읽습니다. 안타깝게도 법과 규칙의 말들은 죄의 무릎과 무릎 사이에 놓인 순수함을 보지 못하는군요. 세계의 단단한 철판 위에 이성의 흔적을 새기는 사람들. 물의 말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은 죄악의 틈새에서 잠들고 자라나는 어린 영혼을 보고는, 아이, 불결해, 눈살을 찌푸리기만 하네요. 하지만 물방울로 이루어진 당신의 말은 그 영혼을 투명하게 비춰주는군요. 물방울로 오로지 물방울로 싸우는 당신. 물방울의 정의를 행사하는 당신. 판결과 집행이 아니라 고투와 행복을 증언하는 당신. 당신은 말하죠. 인간은 세상의 모든 단어를 발명했어요. 사랑을 제외하고요. 사랑은 인간이 신에게서 빌려온 유일한 단어예요. 그러니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것이죠. 나는 말하죠. 오늘 밤, 당신은 나와 너무 닮아 낯설군요. 당신은 말하죠. 아니, 당신은 너무 낯설어 나를 닮았어요.

그런가요, 그래요, 그럼, 잘 자요, 당신, 내 사랑.
 

아아 시인들은 정말 말도 잘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오래오래 전에 시를 배울 것을 그랬나보다. 아니 지금도 늦지 않았겠지. 울 외숙모는 칠순이 다 된 나이에 시인으로 등단하시고 시집도 내셨는데... 못할 게 뭐람. 아, 근데 내 최대의 단점, 감수성만 너무 풍부하여 쓰다 보면 찌질해지고 만다는 사실. 에잇,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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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그동안 가고 싶어 했던, 혹은 다시 가고 싶었던 사찰엘 가 보는 것은 어떨까, 싶었다. 그동안 가 보았던 사찰 중에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어디였지? 생각하니 한두 곳이 아니다. 차를 가지고 간다면 몰라도 차 없이 그 모든 곳을 가본다는 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 그럼 어떡하지? 가까이 있는 곳을 정해 한두 곳만 다녀올까, 역시 고민하다가 문득, 차라리 템플스테이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고선 집에 있는 책들을 다 뒤졌다.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절이 많다니. 도움이 되었다. 이 책들. 절집 여행을 가거나 템플스테이를 하기 전에 읽어보면 좋은 책들. 

 

땅끝, 해남, 미황사. 지난 번 섬 여행갈 때 이 시집을 가지고 온 친구 덕에 구한 시집이다. 시들이 좋아 한동안 열심히 읽었다. 한데 미황사를 눈여겨보진 않았다. 이번에 절에 관한 책들을 찾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아, 그 시집! 바로 김태정의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서울생활을 접고 해남 땅끝 마을에서 머물고 있는 시인이란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 중심을 거부하고 주변부의 삶을 선택한 자의 고독과 슬픔이 담겨 있는 시집이다. 항상 여행을 다닐 때면 시집 한 권씩은 꼭꼭 챙기는 편인데 이번엔 김태정의 시집을 가지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곳곳에 실린 미황사의 아름다운 풍광들이 시인의 감성과 어울려 마음을 울린다. 참, 좋다.   

 

그리고 또 한 권의 시집. 바로 이성복의 『남해 금산』, 작년에 다녀온 곳이다. 시 제목으로 나올 만큼, 그 제목으로 인해 수없이 많은 사람이 다녀갔을 그곳, 남해의 금산 보리암. 더운 여름이었고 사람들이 많았고,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고생스러웠기에 많이 지쳐있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좋은 기억이 아니었던 보리암. 생각해보니 가능하면 혼자 가는 것이 좋을 것이고 굳이 누군가와 같이 간다면 둘이면 딱 좋겠다. 꼭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은 곳. 여름보다는 겨울에 그 쓸쓸함을 느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남해 금산』은 그곳에 가지 않더라도 여행길에 가지고 가면 좋을 시집. 물론 마음이 아릿아릿 할 테지.  

 

근심 풀고 마음 놓는 호젓한 산사들로 가득한 책이다. 처음 『곱게 늙은 절집』을 읽으면서 앞으로 이 책에 나온 절집을 다 찾아다녀보리라 마음먹었더랬다. 다른 책들과 달리 10여 년 간 곱게 늙어가는 절집을 찾아다니며 그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책은, 읽는 것만으로도 근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놓인 책이었다. 그래서 사찰 여행이나 템플스테이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읽어보면 좋을 책. 그곳이 어떤 곳이며 어떤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가 하는 것은 어딜 가더라도 알고 가면 좋기 때문이다. 책을 다시 읽고 나니 시간이 날 때마다 산사를 찾아 다녀 봐야지, 하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혼자 또 한다.

 

시집처럼 얇은 책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선방 이야기. 좋은 책이라며 읽는 이들마다 나에게 얘길 한 책이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담백하다. 모두 2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 책은 종교를 초월하게 만든다. 『선방일기』는 저자가 오대산 상원사 선방에서 동안거를 난 이야기다. 그 기간 동안 스님들의 일상을 살갑게 풀어냈다. 템플스테이라도 할 생각이라면 울력이 뭔지, 안거는 또 무엇이고 결제니 해제니 하는 단어와 절에서의 생활을 겉핥기로라도 알고 가면 좋을 것이다. 선객은 고독하단다.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니까. 이 책에 나오는 절은 오대산 월정사에서 삼십 리 길에 있는 상원사다. 오래 전 겨울, 동해에서 일출을 보고 상원사로 와서 오대산의 품속에 안겨 있는 절의 아름다움에 취해 한참을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 다시 가고 싶은 사찰 중에 꼭 들어가는 곳.  

 

그리고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마음의 풍요와 치유의 공간을 줄 책 『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절집숲』이다. 우리가 절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함일 것이다. 단순하게 살고 있다고 해도 나도 모르게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기에는 절집만큼 좋은 곳이 없다. 나무와 숲으로 가득한 고즈넉한 산사. 비록 그곳에서 모든 것을 비우고 오지는 못하더라도 마음만은 편안해질 것이다. 절집의 숲들은 대체로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절집의 숲들을 찾아다닌 산림학자인 저자가 들려주는 숲의 가치와 역사. 이 또한 알고 가면 절집 숲의 정취에 푹 빠지게 되지 않을까. 

 

내가 어릴 때 살던 곳엔 제법 이름난 사찰이 있었다. 그곳은 그 도시 사람들에겐 피서지였다. 여름이면 수박과 먹을 것과 돗자리를 들고 절집 둘레에 있는 계곡으로 놀러를 갔다. 그래서 내게 절은 종교를 떠나서 편안한 휴향지와도 같은 곳이다. 세월이 흘러 계곡은 자연보호와 기타 등등으로 더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었지만 그 곳에 갈 때마다 찾게 되는 절은 여전히 마음을 내려 놓게 하는 편안한 곳이다. 유난히 절집을 좋아하는 이유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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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라면 나도 꽤나 좋아라 하는 편. 즐기지는 않지만 관심이 가는 만화는 찾아보려고 한다. 장르를 굳이 따지는 편은 아니지만 SF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따뜻한 만화, 재미있는 만화 좋아한다. 한데 예외가 있다면 그건 바로 공포만화-.-;;   

언젠가 우연히 이토 준지의 《어둠의 목소리》를 사서 읽던 친구가 만화를 보고 나니 밤이 무섭다느니 해대기에 얼마나 무섭기에 그러나 싶어 빌려본 적이 있었다. 은근 기대를 하면서. 으~~근데 무섭기보다는 징그러웠다는 말이 더 맞겠다. 물론 오싹하리만큼 무서운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정도는 읽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강심장^^; 암튼 이 작가는 공포, 호러 만화가로 아주 유명한 작가란다. 공포만화를 이야기할 때 한번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작가이기도. 한데 난 겨우 한 편으로 끝냈다. 공포도 너무 많이 느끼면 공포스럽지가 않다는;; 

공포 이야기가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나에게 공포를 알려준 사람은 스티븐 킹이다. 어릴 때부터 공포영화를 좋아라 해서 친구들과 영화 보러 가면 다들 두 손으로 얼굴 가리며 꺄악~꺅! 소리 지를 때, 나 혼자 헐! 이런 게 왜 무섭지? 하며 끝까지 눈 감지 않고 보기도 했는데(그래서 남자랑 둘이 절대로 안 간다. 눈 똑바로 뜨고 영화보는 나를 그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좋아하는 여자는 무서운 게 나오면 소리 지르며 그들의 품에 안겨주는 여자, 내가 그걸 못했다. 글쎄!) 나이가 드니까, 그런 게 그다지 재미가 없어졌다. 비현실적인 공포는 사실 공포도 아니라는 생각. 그럴 무렵에 나타난 작가가 바로 스티븐 킹. 그는 한여름 나의 에어콘이었대나 뭐래나... 지금은 스티븐 킹도 시들해질만큼 다양한 공포물들이 나오고 있지만 예전엔 그랬다(아, 만화 얘기 하려다 삼천포로 빠지고 있네;).

스티븐 킹의 공포를 좋아하는 이유는 혼령이나 귀신이 등장한다거나(그런 것은 딱 질색), 혹은 누군가를 잔인하게 죽여서 보여주는 그런 공포가 아니라 전혀 무서울 것 같지 않은 일상에서의 공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그런 공포. 그게 진짜 공포라는 걸 알게 해준 사람이 스티븐 킹인 셈이다. 한데 스티븐 킹도 늙어가면서 SF호러나 좀비가 나오는 소설로 넘어가긴 하더라. 그런 장치(!)가 없어도 충분히 무서운 이야길 들려주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스티븐 킹이 싫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사실 《워킹 데드》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난 좀비들이 싫거든, 아우 징그러워..). 징그러운 좀비들이 죽여도 죽여도 살아나는 게 무섭기보다 징글맞았기 때문에. 한데 몇 년 전에 읽었던 스티븐 킹의 소설이 생각났다.  

셀1,2》, 스티븐 킹의 소설은 '죽은' 좀비들이 아니라 휴대폰의 전파로 인해 미치광이가 된 사람들이 나오는 '살아 있는' 좀비들이었다. 그 상황들과 묘사들이 어찌나 리얼하던지 영상으로 마구 떠올랐는데, 《워킹 데드》를 보다 보니 《셀》의 장면들이 마구 연상이 되었던 것. '그래, 좀비들이 나온다고 해서 다 나쁘진 않을 거야. 읽을 기회가 생겼으니 한번 읽어보자고!' 역시 읽길 잘했다. 다른 좀비 이야기하곤 조금씩 다른 것 같았다. 글 작가인 로버트 커크먼은 《워킹 데드》는 공포만화가 아니라고 했다. 하긴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니 진짜, 좀비들이 창궐하는 세상이 생길 수도. 그렇담 그건 공포가 아니라 일상이 될 수도 있는 일-.-;;  

또 머릿속에 떠오른 책이 있었는데(아마도 첫 장면들 때문인 것 같다)더 로드》였다. 폐허가 된 도시, 음산한 분위기... 산 좀비도 아니고, 죽은 좀비도 아닌 대재앙 이후 살아남은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의 나오는 모습 때문이었다. 죽은 자들이 떼거지로 몰려나와 겁을 주는 것은 아니었으나 묵시록적인 분위기에 미쳐버린 사람들에게서 좀비 그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떠올랐을 것이다. 그동안 좀비들이 나오는 영화도 몇 편 보고 소설도 읽었지만 여전히 끔찍한 것은 죽은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좀비의 유래랄까, 포털(네이버)의 지식인을 검색해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좀비란, 살아있는 시체를 말한다. 서인도 제도 원주민의 미신과 부두교의 제사장들이 마약을 투여해 되살려낸 시체에서 유래한 단어라 한다. 영화에서는 1932년 벨라루고시의 <화이트좀비>가 좀비를 다룬 첫 작품이며 조지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을 기점으로 해서 <좀비오><바탈리언>과 같은 수많은 아류작들이 탄생했다." 그렇다면 누군가 시체에 마약을 투여해 되살아나서 시작된 것인가? 뜬금없이 어느날 좀비가 나타나고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럼, 본론인 《워킹 데드》로 돌아가서^^;;(어제 집에 오니 무성의한 택배 아저씨가 문앞에 택배를 던져놓고 갔다. 연락도 없이. 뭐 이런, 욕이 나왔지만 택배가 무사한 관계로 참아주었다. 아, 쓰다 보니 또 쓸데 없이;;), 과연, 무서울까 싶어 걱정을 하며 책을 넘겼는데 로버트 커크먼의 말처럼 공포스럽지 않았다. 글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그 끔찍한 장면들을 보는 데도 그런가보다 했다. 아직, 2권까지 밖에 안 읽어서 그런걸까. 근데 꽤나 흥미로웠다. 좀비 나오는 걸 싫어한다고 앞에서 말한 것이 민망할 정도로. 과연, 어떤 결과가 날지 궁금해지기도 했는데. 완역이 된 것이 아니란다. 또 로버트 커크먼이 말하길, 결코 끝나질 않을 좀비 만화가 될 것이라고 하니 기대를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괜히 인기 좋았다는 미드는 보고 싶어지기도. 이 책이 나온다고 하자마자 열광하는 친구들을 보았으므로.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워킹 데드》는 내가 가입한 책카페에서 책수다로 여름 휴가갈 때 가져갈 책으로 추천 받은 책이기도 하다. 5권이나 되는 만화를 가져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지만 오늘 출근하는 길에 버스에 두 권을 들고 타서 읽다 보니 휴가갈 때 가져가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집중력 짱. 긴 여행길이라면 지루하지 않을 듯. 

아 쓰고 보니 뭔 얘길 하려고 이렇게 길게 적었는지 모르겠지만 《워킹 데드》재미있다고 적을려고 했던 것은 사실. 삼천포로 빠지는 것은 나의 특기. 아무튼 주말에 좀비들과 열심히 놀아줘야겠다는. 아니, 미드를 구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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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7177 2011-07-3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둠의 목소리>는 오싹해요. 읽고나서도 기분이 영...그래도 또 읽고 싶어지지만...ㅠㅜ

readersu 2011-08-01 11:49   좋아요 0 | URL
오싹보다 징글 ㅎㅎ
<워킹데드>강추!^^ 읽어보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