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그러니까 <미국의 송어낚시>가 무슨 낚시 잡지인 줄 알고 대충 훑어 본 기억이 난다..봤다고 해서 읽었다고 할 수는 없다. 특이한 제목에 잡지사의 부록으로 나왔는데다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글들로 가득했기에 나로서는 읽기에 무리였던 것. 그 후로 <송어낚시>나 <리처드 브라우티건>이란 이름을 들으면 부록으로 나온 그 책이 생각난다.그리고 이 부분에서 나는 잠시 착각을 하고 있었는데 난 부록을 내 준 책이 여성잡지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난 여성잡지에 심취해 있었고 잡지의 부록이었다면 당연히 여성잡지밖에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기억력 좋은 동생의 말로는 <문예중앙>의 부록이었다고 한다.(뒷 부분에 보면 1984년에 리처드 브라우티건과 인터뷰한 내용이 있다. 그러나 그는 이 책의 한국어 판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뭐 어쨌든 부록은 부록이니 얘기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송어낚시>하면 괜히 아는 척은 하고 있었다지. 이번에 이 책을 새로 출간하여 결국 읽고 말았다. 문체는 간결하고 쉬우며 읽어내려가는데 문제가 없다. 그 간결한 문장에 환경문제와 미국의 진보주의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만 여전히 내겐 어렵다. 해설을 읽고 각주를 읽으면서 그 시대를 이해한다지만 말이다.- -;;

작가인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배불리 먹기 위해 일부러 경찰서에 돌을 던지던 사람이었다. 그 바람에 정신병원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미국의 반문화 운동을 주도하며 1960년대 초반까지 세 권의 시집을 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그의 글들은 시적이다. 시구詩句 속에 들어 있는 많은 은유법들이 그의 글들에 들어 있다. 어쩌면 그래서 그의 글엔 해석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이지만... 암튼, 그런 그가 1967년에 <미국의 송어낚시>라는 특이한 형태의 소설을 출간했는데 당시 대학생들에게 이 소설에 담긴 강렬한 반 체제 정신, 기계주의와 물질주의 비판 등에 매료되어 마치 성서처럼 이 책을 들고 다녔다고 하니 대단한 작가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그는 그 후에 몇 권의 책을 더 발표하여 미국 문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월든 호수에서 낚시질하는 소로우, 페허의 호수에서 재생을 기구하며 송어낚시를 드리우는 헤밍웨이의 닉 애덤스,자살하기 전 찰스 강 속의 거대한 송어를 바라보는 포크어의 퀘틴 캄스, 밤마다 제방 건너 녹색의 불빛을 바라보다 죽어간 피츠제럴드의 개츠비 이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미국의 송어낚시>를 추구했던 미국문학의 주인공들이다.> 미국문학에 심취해 있던 하루키도 그를 좋아했다고 하니 미국 문단 뿐 아니라 어쩌면 문학을 좋아하는 세계의 모든 문학도들에게 영향을 끼쳤는 지도 모르겠다. 리처드드 브라우티건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1984년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키는 갑자기 주목받는 사람이 되었을 때 자신도 브라우티건처럼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될까봐 굉장히 조심했다고 한다.

브라우티건은 가고 없지만 그의 책은 이렇게 남았다. 시대를 초월해서. 이 책은 시를 읽듯이 음미하며 글 속에 담긴 메세지를 이해하면서 읽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내겐 어렵다. 다른 소설들처럼 쉽게 읽고 쉽게 생각하는 그런 소설이 아니라 뭔가 깨달아야 하고 뭔가 느껴야 하는 소설이었기에 더더욱 내게 어렵게 다가온 지도. 소설을 읽는 데도 다 때가 있는 듯하다. 내가 비록 오래 전에 그 책을 못 읽어 지금 다시 읽었는데도 이해를 못한다면 아직 그 '때'를 못 만난 것이다. 그래도 아쉬워하지 않는 것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책이라면 십 년 후에 아니 몇 십 년이 지난 후에도 다시 읽을 수 있는 책이기에 그럴 것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책이라 리뷰도 많다. 그래서 난 리뷰 생략. 좋은 책이니 다들 읽어보시라고 강력히 주장. ^^*

앗! 그러고보니 그 오래 전에 부록으로 나온 야마다 에이미의 책도 있었다. <배드타임아이즈>라고..그 책을 부록으로 내 준 잡지 역시 문학지였는지 여성지였는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