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그동안 가고 싶어 했던, 혹은 다시 가고 싶었던 사찰엘 가 보는 것은 어떨까, 싶었다. 그동안 가 보았던 사찰 중에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어디였지? 생각하니 한두 곳이 아니다. 차를 가지고 간다면 몰라도 차 없이 그 모든 곳을 가본다는 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 그럼 어떡하지? 가까이 있는 곳을 정해 한두 곳만 다녀올까, 역시 고민하다가 문득, 차라리 템플스테이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고선 집에 있는 책들을 다 뒤졌다.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절이 많다니. 도움이 되었다. 이 책들. 절집 여행을 가거나 템플스테이를 하기 전에 읽어보면 좋은 책들. 

 

땅끝, 해남, 미황사. 지난 번 섬 여행갈 때 이 시집을 가지고 온 친구 덕에 구한 시집이다. 시들이 좋아 한동안 열심히 읽었다. 한데 미황사를 눈여겨보진 않았다. 이번에 절에 관한 책들을 찾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아, 그 시집! 바로 김태정의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서울생활을 접고 해남 땅끝 마을에서 머물고 있는 시인이란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 중심을 거부하고 주변부의 삶을 선택한 자의 고독과 슬픔이 담겨 있는 시집이다. 항상 여행을 다닐 때면 시집 한 권씩은 꼭꼭 챙기는 편인데 이번엔 김태정의 시집을 가지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곳곳에 실린 미황사의 아름다운 풍광들이 시인의 감성과 어울려 마음을 울린다. 참, 좋다.   

 

그리고 또 한 권의 시집. 바로 이성복의 『남해 금산』, 작년에 다녀온 곳이다. 시 제목으로 나올 만큼, 그 제목으로 인해 수없이 많은 사람이 다녀갔을 그곳, 남해의 금산 보리암. 더운 여름이었고 사람들이 많았고,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고생스러웠기에 많이 지쳐있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좋은 기억이 아니었던 보리암. 생각해보니 가능하면 혼자 가는 것이 좋을 것이고 굳이 누군가와 같이 간다면 둘이면 딱 좋겠다. 꼭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은 곳. 여름보다는 겨울에 그 쓸쓸함을 느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남해 금산』은 그곳에 가지 않더라도 여행길에 가지고 가면 좋을 시집. 물론 마음이 아릿아릿 할 테지.  

 

근심 풀고 마음 놓는 호젓한 산사들로 가득한 책이다. 처음 『곱게 늙은 절집』을 읽으면서 앞으로 이 책에 나온 절집을 다 찾아다녀보리라 마음먹었더랬다. 다른 책들과 달리 10여 년 간 곱게 늙어가는 절집을 찾아다니며 그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책은, 읽는 것만으로도 근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놓인 책이었다. 그래서 사찰 여행이나 템플스테이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읽어보면 좋을 책. 그곳이 어떤 곳이며 어떤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가 하는 것은 어딜 가더라도 알고 가면 좋기 때문이다. 책을 다시 읽고 나니 시간이 날 때마다 산사를 찾아 다녀 봐야지, 하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혼자 또 한다.

 

시집처럼 얇은 책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선방 이야기. 좋은 책이라며 읽는 이들마다 나에게 얘길 한 책이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담백하다. 모두 2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 책은 종교를 초월하게 만든다. 『선방일기』는 저자가 오대산 상원사 선방에서 동안거를 난 이야기다. 그 기간 동안 스님들의 일상을 살갑게 풀어냈다. 템플스테이라도 할 생각이라면 울력이 뭔지, 안거는 또 무엇이고 결제니 해제니 하는 단어와 절에서의 생활을 겉핥기로라도 알고 가면 좋을 것이다. 선객은 고독하단다.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니까. 이 책에 나오는 절은 오대산 월정사에서 삼십 리 길에 있는 상원사다. 오래 전 겨울, 동해에서 일출을 보고 상원사로 와서 오대산의 품속에 안겨 있는 절의 아름다움에 취해 한참을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 다시 가고 싶은 사찰 중에 꼭 들어가는 곳.  

 

그리고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마음의 풍요와 치유의 공간을 줄 책 『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절집숲』이다. 우리가 절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함일 것이다. 단순하게 살고 있다고 해도 나도 모르게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기에는 절집만큼 좋은 곳이 없다. 나무와 숲으로 가득한 고즈넉한 산사. 비록 그곳에서 모든 것을 비우고 오지는 못하더라도 마음만은 편안해질 것이다. 절집의 숲들은 대체로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절집의 숲들을 찾아다닌 산림학자인 저자가 들려주는 숲의 가치와 역사. 이 또한 알고 가면 절집 숲의 정취에 푹 빠지게 되지 않을까. 

 

내가 어릴 때 살던 곳엔 제법 이름난 사찰이 있었다. 그곳은 그 도시 사람들에겐 피서지였다. 여름이면 수박과 먹을 것과 돗자리를 들고 절집 둘레에 있는 계곡으로 놀러를 갔다. 그래서 내게 절은 종교를 떠나서 편안한 휴향지와도 같은 곳이다. 세월이 흘러 계곡은 자연보호와 기타 등등으로 더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었지만 그 곳에 갈 때마다 찾게 되는 절은 여전히 마음을 내려 놓게 하는 편안한 곳이다. 유난히 절집을 좋아하는 이유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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