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 : 죄악의 전쟁 1 - 천부의 권리 제우미디어 게임 원작 시리즈
리처드 A. 나크 &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지음, 이원열 옮김 / 제우미디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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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미국에서 출간 된 디아블로 죄악의 전쟁 1: 천부의 권리는 블리자드가 제휴사인 포켓북사와 협업으로 사람들이 블리자드의 3대 프랜차이즈가 각각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3부작으로 알 수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로 시작되었고, 워크래프트를 가지고 현재 시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무대가 되는 아제로스에서 벌어진 첫 번째 갈등임이 분명한 고대 전쟁(War of the Ancients)을 작업하고, 스타크래프트도 암흑 기사단(Dark Templar) 3부작으로 프로토스에 얽힌 신화와 스타크래프트 II의 기반을 닦아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져 일어나는 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죄악의 전쟁은 디아블로 1의 시점에서 약 천 년 전에 일어났으며, 죄악의 전쟁 3부작은 디아블로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조명하도록 계획되어서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건이나 인물들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도록 기획된 것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디아블로3 출시가 내년으로 기대되는 상황에서 디아블로3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새로운 직업인 의술사나 데몬헌터가 주인공인 이야기나 디아블로3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것으로 보이는 블랙스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나오길 기대했는데 그점에서는 아쉬운 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디아블로의 흥미로운 세계관의 기초를 들여다볼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갖고 읽게 되었습니다.

디아블로 연대표를 찾아보면  대충돌(The Great Conflict)로 디아블로 세계관이 시작되고 -480년 죄악의 전쟁이 시작된다고 나옵니다. 1250년 위대한 영웅이 디아블로를 물리치다. 그리고 영웅은 동방으로 떠난다고 나오는데 이것이 디아블로1의 엔딩에 해당하는 내용이니 디아블로 죄악의 전쟁 1: 천부의 권리는 디아블로 세계관의 초기를 다루고 있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디아블로 죄악의 전쟁 1: 천부의 권리를 읽기전에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대충돌(The Great Conflict)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태초부터 드높은 천상의 천사들과 불타는 지옥의 악마들은 의견 차이로 싸우다가 끝없는 전쟁에 지친 이나리우스란 천사 하나가 릴리트라는 악마의 꾀임에 넘어가 천상의 창조력을 훔쳐다가 자신만의 세상을 하나 만듭니다. 그가 만든 이 새로운 세상을 그는 성역이라고 불렀고 성역은 세계석이란 물건 덕분에 드높은 천상과 불타는 지옥 모두로부터 철저히 격리되었으며, 천사와 악마가 공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성역에서 천사와 악마의 자손인 네파렘들이 태어나고 네파렘은 현 인류의 선조로 아무래도 천사와 악마의 직계 자손이기에 현 인류보다 막강했습니다. 하지만 릴리트가 네파렘들을 이용하여 휘하 군대를 만드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힘을 두는 건 머릿맡에 칼을 두고 자는 거랑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 이나리우스가 세계석을 이용하여 성역을 왜곡, 네파렘들은 약화되어 현 인류와 비슷하게 되지만 무리한 세계왜곡 덕분에 성역은 결국 천상계와 지옥계에 모두 노출됩니다. 한편, 천상은 티리얼의 부관 이주얼의 용맹에 힘입어 악마들을 불타는 지옥까지 몰아내고 승리를 눈앞에 두지만 이주얼의 계획에 의해 그 자신이 타락천사가 됩니다. 드높은 천상은 가장 뛰어난 전투요원을 잃었고 불타는 지옥은 지옥대로 오랜 전쟁에 의해 전투력이 남아난 게 없어서 두 진영은 이나리우스가 만든 성역 안의 인간들을 자기네로 끌어들이면 승산이 있을 거란 계산 아래 휴전을 합니다.

휴전을 하자 마자 천사들과 악마들은 성역의 인간들을 자기네로 끌어들이는기 위해 노력하는데 여기서 죄악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드높은 천상은 천상의 군대을 앞세워 인간들을 포섭했지만 불타는 지옥은 인간들을 힘으로 포섭하는 것 보다 공포에 질리게 하여 서서히 인간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그들이 추구하는 혼돈에 더 걸맞다고 생각하고 인간들을 적당히 공격하고 습격하여 이러한 공포의 씨앗을 심었고 이들의 계획은 보기 좋게 적중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이내 드높은 천상에 발각되고 드높은 천상은 인간성을 잃기를 거부하는 일부 인간과 합세하여 자신들을 공격하는 악마와 싸우게 됩니다.
한편 성역을 만든 이나리우스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예언자라는 이름으로 인간 세계에서 활동합니다. 그는 이전에 네파렘을 자신의 휘하 군대로 만드려고 했던 릴리트의 꿍꿍이를 알아채고 세계석을 이용하여 네파렘들의 힘을 빼앗고 릴리트를 지옥으로 추방했었지만 릴리트는 증오의 군주 메피스토의 딸 답게 자신을 추방한 이나리우스에게 강한 증오를 품게 되었고 그녀는 그를 때려눕힐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던 도중 그녀의 눈에 걸맞은 인간 하나가 들어오는데 바로 디아블로 죄악의 전쟁 1: 천부의 권리의 주인공인 울디시안이고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디오메데스의 아들 울디시안은 세람이라는 마을의 평범한 농부입니다. 조용하고 목가적인 자신의 삶에 만족하던 울디시안은 마을에 찾아온 순회 전도사 두 명이 끔찍하게 살해당한 후 사건의 범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어쩔 수 없이 친구들과 고향을 떠나 자신의 오명을 씻기 위한 위험천만한 여정에 오릅니다. 그는 자신이 갖게 된 이상한 능력에 놀라며 자신의 인간성이 통째로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자기 안에서 차오르는 힘과 맞서 싸우며 추적자들과도 싸워나가는것이 디아블로 죄악의 전쟁 1: 천부의 권리의 큰 줄거리 입니다.
스포일러 일수도 있지만 반전이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 아니라서 말하자면, 평범한 농부가 엄청난 힘을 갖게 되고 그 힘을 노리는 적들과 싸워나가는데 그것이 다 악마의 계획에 놀아난 것이었다는 줄거리는 성경의 삼손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삼손도 엄청난 힘을 갖고 있지만 자만하는 성격에 결국 적국의 여자에게 속아서 죽음을 당하지요. 삼손과 울디시안이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지만 작품 곳곳에, 신의 이름으로 잇속만 챙기는 대성당과 사원을 비난하는 울디시안의 관점이 종교적 색채를 띄어서 삼손을 떠올리게 하는점이 있습니다. 종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 점을 흥미롭게 읽을수 있겠습니다.

디아블로 팬이라 장황하게 썻는데, 디아블로 팬이라서 이 책을 읽게 되시는 분들은 재미있을 겁니다. 디아블로나 게임에서 주요 인물인 케인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디아블로라는 게임의 세계관의 초기엔 어떤일들이 있었는지 들여다볼수 있고 디아블로3에서 등장할것으로 기대되는 이나리우스를 소설에서 먼저 만나볼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디아블로3가 화제가 되서, 디아블로가 뭔지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시는 분들도 평범한 주인공이 힘을 얻고 갖은 고난을 통해 더욱 강해져 적을 무찌른다는 식의 판타지 소설로서 재미도 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3부작의 1권답게 악마의 음모가 이제 시작되었다는 식으로 끝나기 때문에 내년 초부터 순차적으로 출간될 후속작인 '2: 용의 비늘'과 '3: 가려진 예언자'가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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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이동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2 미치 랩 시리즈 1
빈스 플린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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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임기종료》를 2년전에 읽고 다음 작품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읽게 되었습니다. 다 읽고 난 감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미국 드라마 <24>의 새로운 시즌을 본듯한 기분입니다. <24>가 제작되는데 바탕이 된 작품이라는 소개를 보고 읽어서 그런지 계속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읽었는데 이야기 소재나 전개방식이 상당히 흡사해서 재미있었습니다.

 


<24>를 보신분들은 비교하는 재미가 있겠고 못보신 분들은 이 작품을 통해 <24>가 대략 어떤 드라마인지 감을 잡으실수 있겠습니다. 2000년에 출간된 작품이고 <24>를 보신분들은 전개가 너무 익숙해서 좀 식상하다는 평이 있는데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식만 비슷할뿐 벌어지는 사건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24>를 보신분들도 앞으로 무슨일이 벌어지겠구나 감을 잡으시겠지만 구체적으로 사건이 벌어지는 과정을 읽어나가면 이야기에 빠져들게 될겁니다. 저도 <24>를 처음부터 최근 방영되고 있는 시즌8까지 모두 본 사람이라 자신있게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테러범들이 백악관을 습격하여 수십 명의 경호원과 직원들을 살해하고 건물을 완전히 장악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시작됩니다. 대통령은 아슬아슬하게 지하 벙커로 긴급 대피하지만 100여 명에 가까운 인질이 테러범들의 손에 억류되고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한 사내가 투입되는데, 그는 바로 CIA의 대테러센터 비밀요원 미치 랩입니다. 대학 시절 테러로 여자친구를 잃은 후, 복수를 위해 대테러 요원이 된 미치 랩은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도 이뤄낼 수 없는 엄청난 성과를 올려온 미국 최고의 살아 있는 살상무기라는 평을 듣습니다. 테러범들의 소굴로 변한 백악관으로 몰래 침투한 미치 랩은 워싱턴 고위층 인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벙커 속의 대통령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대통령을 구하려는 자신의 시도가 실패로 끝나기를 바라는 내부인이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24>를 보신들은 익숙한 전개입니다. 테러가 일어나고 주인공이 출동하고 진압과정에서 내부의 적이 드러나고 안팎의 적과 상대하느라 고생하면서 결국 테러를 진압한다는 이야기. 후반부의 반전이 있는데 1998년에 개봉한 어떤 영화를 떠올리게 해서 참신하다고는 할수 없지만 빠지면 섭섭한 것이죠.

 


<24>는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는 점 때문에 긴장감을 유발해 이야기의 흥미를 돋구었지만 《권력의 이동》은 실시간 진행이 아니고 3일간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24> 못지않은 재미를 느낄수 있게하는 이유는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박진감 넘치는 설정과 장면들로 시작하여 결말에 이르기까지 빠른 장면 전환과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압축적이고 스피디한 이야기 구성을 보여주고 무엇보다 너무나 현실적인 소재와 전개가 이 이야기가 과연 허구가 맞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느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미국의 정치구조에 대한 지식부터 미국 군 제도 및 FBI와 CIA의 체계와 실재했던 비밀작전들에 대한 심도 깊은 언급, 그리고 무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들은 빈스 플린이 단지 긴장감 넘치는 플롯만으로 승부하는 작가가 아니라 전문성까지 갖춘 스릴러 작가임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미치 랩 시리즈’는 현재 10편까지 출간되어 있다고 하는데 미치 랩이《권력의 이동》에서 10년간 기다려온 복수에 성공해서 다음편은 어떻게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제발 다음권은 2011년이 가기전에 출간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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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신들 1
조나탕 리텔 지음, 강주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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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누구도 여러분의 부인과 자식을 죽이러 오지 않고, 누구도 여러분에게 다른 남자의 부인과 자식을 죽이라고 윽박지르지 않는 나라와 시대에 태어났다면 하느님께 감사하고 평화롭게 지내도록 하십시오. 하지만 여러분이 나보다 운이 좋은 거지 나보다 착한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마십시오.”

프리모 레비,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홀로코스트 문학’의 계보에 조나탕 리텔은 독특하고 논쟁적인 작품을 덧붙였다. 유대인 대학살과 나치즘을 가해자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파격적인 시선 때문이다. 리텔은 나치 친위대 장교 출신의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던 독일군과 독일인의 실상과 심리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유대인 학살은 피해자인 유대인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유럽인 모두에게 강한 정신적 외상을 남겼다. 리텔은 이제껏 쉽게 얘기할 수 없었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이야기되어져야 하는, 가해자로서의 독일인들이 직면했을 힘든 물음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소설은 나치 친위대 장교가 된 막시밀리안 아우에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스물다섯에서 서른 살 사이에 대학살에 참여했던 일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는 문학과 철학을 좋아하고, 한때는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낭만적인 인물로 전쟁이나 살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설은 아우에 개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한편, 그가 전쟁에서 겪은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를 그리며 두 축으로 진행된다. 아우에는 불행한 개인사를 지닌 인물로,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재혼한 어머니를 미워한다. 그의 분노와 외로움은 쌍둥이 누이에 대한 근친상간적 사랑이라는 비극을 낳고 이는 동성애로 이어진다. 나치 장교로 전쟁에 참가한 그는 유대인 대학살의 현장에서 살육의 정당성을 찾지 못해 괴로워한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어조로 당시 겪었을 긴장감과 피로, 흥분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9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분량이지만 행갈이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 이는 독자로 하여금 빠져나오기 힘든 갑갑한 덩어리 속에 갇힌 인상을 주기 위한 의도다.

소설은 인간 내면에 인간적인 부분과 비인간적인 부분,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사람이 행복을 꿈꾸고 선량한 ‘평범한 개인’임과 동시에 국가의 명령에 의해 기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국가에 속한 개인’이라는 양면성을 지님을 보여준다. 개인의 인간다움, 윤리의식은 집단의 목적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되고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진실을 보여준다.

<착한 여신들>은 2006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의 권위 있는 문학상 공쿠르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받았고 현재까지 유럽에서 100만부 넘게 팔렸다. 소설의 노골적 성애장면과 나치 친위대 장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을 두고 독일과 미국에서는 ‘나치를 미화했다’ ‘폭력의 포르노그래퍼’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미국 출신 젊은 작가 리텔은 이 책을 쓰기 위해 5년 동안 러시아와 독일의 감옥, 고아원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하고 정리되지 않은 자료와 도서들을 읽었다. 소설은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대학살의 역사적 진실을 가해자의 입장에서 치밀하게 재조명한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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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대화 - 김종광 연작소설 문지 푸른 문학
김종광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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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일까, 희곡일까. 그것도 아니면 청소년들의 대화를 몰래 녹음해 풀어놓은 녹취록일까. 소설가 김종광(38)의 ‘청소년 소설’ <착한 대화>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곤란한 작품이다.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않은 이따위 집단행동이 통할 거라고 보는 건가?/ 국회를 봐! 우리나라가 민주적 절차가 있는 나라야?”(10쪽)

“잔인한 애들이 너무 많아./ 하지만 우리가 잔인해보았자, 용역 깡패를 보내고 경찰을 종처럼 부리는 삽자루 어른들만큼 잔인하겠어?”(81쪽)

책은 간단한 지문 한 줄 없이 열여덟살 고등학교 2학년들이 핑퐁처럼 주고받는 속도감 있는 대화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착한 대화>가 첨부된 논문 ‘청소년소설의 창작방법론 연구’로 2009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기도 한 작가는 “주입식 계몽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독서를 통해 스스로 깨달아서 사고의 수준을 상승시키는 자기각성을 돕는 창작방법론”으로서 이 독특한 소설을 집필했다.

학교 자율화와 학내 민주주의를 둘러싼 대화를 통해 타율과 자율에 대해서 고민하고, 지난해 5월 ‘촛불시위’를 돌아보며 촛불의 의미와 한계, 농민계층과 도시 중산층, 사교육과 공교육의 차이를 논한다. 인문계와 전문계의 차별적 현실, 자립형 사립고 등을 둘러싼 ‘학벌 문제’, 학교를 다니지 않는 탈학교 학생들, 청소년의 성문제와 처녀성, 청소년 낙태, 흡연 등 고등학생들에게 밀접한 문제부터 정치, 경제, 미디어, 애국주의 등 사회적 문제에까지 총 14편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주제에 대한 청소년들의 ‘난상토론’을 보여주며 대한민국 고등학생이 처한 현실과 다양한 고민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

자칫 지루하고 계몽적일 수 있는 소설이지만 작가는 10대들의 생생한 언어와 익살과 해학으로 재미있게 이어나간다. 김씨 특유의 ‘날카로운 풍자’는 여기서도 빛을 발하는데, 고등학생의 거침없는 수다는 학교와 교육제도, 우리 사회와 권력층을 향해 날선 독설을 뿜어낸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등장인물들은 관점의 균형을 잃지 않는다. 가치판단 없이 대화를 그대로 받아적은 듯한 소설을 통해 독자들은 다양한 관점을 비교하면서 자신만의 관점을 정립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이미 <야살쟁이록>과 <처음 연애> 등 두 권의 청소년 소설을 펴낸 김씨는 “ ‘열공’해서 ‘요즘 청소년’의 1 대 1 대화 맞장형식으로 이 책도 썼지만, 그럼에도 ‘요즘 청소년’에 대해서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다”며 “나는 우리 어른의, 기성 세대의 위선에 대해 썼다. 우리 기성세대는 두려워해야 마땅하다. 미래의 주역인 ‘요즘 청소년’은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청소년 소설’을 만들어 낸 작가는 책 속에 기존의 청소년 소설에 대한 비판도 숨겨놨다.

“요새 1318 소설이니 청소년 소설이니 하던데, 난 다 재수 없는 헛소리라고 생각해. 어른들이 꿈꾸는 청소년상을 자기들 입맛대로 적어놓은 것에 불과해. 그러니 학부모들이나 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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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나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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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상을 만장일치로 수상한 작품이라고 해서 출간전부터 기대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출간 9개월후에 읽게 되었다. ‘현실’을 다룬 사회파 소설이면서 정통 미스터리적으로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 기쁘다는 아야쓰지 유키토의 추천사처럼 설교나 고발이 되기 쉬운 무거운 소재를 반전을 가미한 오락소설로 완성해낸 솜씨가 최근 출간된 <고백>과 비슷하다. 우연히 소년법을 다룬 작품을 연달아 읽게 되었는데 두 작품 다 훌륭해서 재미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커피숍을 경영하며 다섯 살 어린 딸과 둘만의 삶을 사는 히야마 다카시로 3인조 강도에게 아내를 잃은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당시의 범인들은 열세 살 중학생들로,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소년원행 처벌에 그쳐 많은 논란이 된 사건이었다. 이후 깊은 분노를 품고 살아가던 히야마에게 경찰이 찾아와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4년 전 그 사건의 범인이 차례로 살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건 당일 알리바이가 없는 히야마는 자신의 누명을 벗고 4년 전과 현재 일어난 살인 사건들의 의문점을 풀기 위해 조사를 해나가는데 누명 씌우기, 시간차 알리바이, 증거물 조작 등 다양하게 준비된 트릭이 빠른 스릴러적 템포 속에 차례로 펼쳐지며 뜻밖의 국면에 등장하는 숨겨진 범인과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반전까지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담임을 맡고 있는 반의 학생에게 딸이 살해 당한 싱글맘 선생님이 학생에게 복수를 하면서 시작하는 <고백>을 읽은 후라 전반부의 진행이 조금 심심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천사의 나이프>는 후반부의 반전이 강렬한 작품이라 끝까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고백>이 복수와 소년범의 갱생에 초점을 맞춘다면 <천사의 나이프>는 유족의 슬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족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 건 가해자 본인의 참회뿐이고, 아무리 스스로 갱생했다고 자부하더라도 가해자 가슴 속에 남은 그늘을 거둬 줄 수 있는 건 피해자의 용서뿐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고백>보다 <천사의 나이프>가 조금 더 긴 여운을 남긴다.

 

민주당 이춘석 의원이 법무부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5년 8만6014명이던 소년범은 2006년 9만2643명, 2007년 11만6135명, 2008년 13만3072명으로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도 국내에서 들려오는데 점점 흉악해지는 청소년범죄의 원인을 진단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사회 각층의 노력이 필요한 이때 이 작품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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