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대화 - 김종광 연작소설 문지 푸른 문학
김종광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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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일까, 희곡일까. 그것도 아니면 청소년들의 대화를 몰래 녹음해 풀어놓은 녹취록일까. 소설가 김종광(38)의 ‘청소년 소설’ <착한 대화>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곤란한 작품이다.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않은 이따위 집단행동이 통할 거라고 보는 건가?/ 국회를 봐! 우리나라가 민주적 절차가 있는 나라야?”(10쪽)

“잔인한 애들이 너무 많아./ 하지만 우리가 잔인해보았자, 용역 깡패를 보내고 경찰을 종처럼 부리는 삽자루 어른들만큼 잔인하겠어?”(81쪽)

책은 간단한 지문 한 줄 없이 열여덟살 고등학교 2학년들이 핑퐁처럼 주고받는 속도감 있는 대화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착한 대화>가 첨부된 논문 ‘청소년소설의 창작방법론 연구’로 2009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기도 한 작가는 “주입식 계몽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독서를 통해 스스로 깨달아서 사고의 수준을 상승시키는 자기각성을 돕는 창작방법론”으로서 이 독특한 소설을 집필했다.

학교 자율화와 학내 민주주의를 둘러싼 대화를 통해 타율과 자율에 대해서 고민하고, 지난해 5월 ‘촛불시위’를 돌아보며 촛불의 의미와 한계, 농민계층과 도시 중산층, 사교육과 공교육의 차이를 논한다. 인문계와 전문계의 차별적 현실, 자립형 사립고 등을 둘러싼 ‘학벌 문제’, 학교를 다니지 않는 탈학교 학생들, 청소년의 성문제와 처녀성, 청소년 낙태, 흡연 등 고등학생들에게 밀접한 문제부터 정치, 경제, 미디어, 애국주의 등 사회적 문제에까지 총 14편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주제에 대한 청소년들의 ‘난상토론’을 보여주며 대한민국 고등학생이 처한 현실과 다양한 고민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

자칫 지루하고 계몽적일 수 있는 소설이지만 작가는 10대들의 생생한 언어와 익살과 해학으로 재미있게 이어나간다. 김씨 특유의 ‘날카로운 풍자’는 여기서도 빛을 발하는데, 고등학생의 거침없는 수다는 학교와 교육제도, 우리 사회와 권력층을 향해 날선 독설을 뿜어낸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등장인물들은 관점의 균형을 잃지 않는다. 가치판단 없이 대화를 그대로 받아적은 듯한 소설을 통해 독자들은 다양한 관점을 비교하면서 자신만의 관점을 정립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이미 <야살쟁이록>과 <처음 연애> 등 두 권의 청소년 소설을 펴낸 김씨는 “ ‘열공’해서 ‘요즘 청소년’의 1 대 1 대화 맞장형식으로 이 책도 썼지만, 그럼에도 ‘요즘 청소년’에 대해서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다”며 “나는 우리 어른의, 기성 세대의 위선에 대해 썼다. 우리 기성세대는 두려워해야 마땅하다. 미래의 주역인 ‘요즘 청소년’은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청소년 소설’을 만들어 낸 작가는 책 속에 기존의 청소년 소설에 대한 비판도 숨겨놨다.

“요새 1318 소설이니 청소년 소설이니 하던데, 난 다 재수 없는 헛소리라고 생각해. 어른들이 꿈꾸는 청소년상을 자기들 입맛대로 적어놓은 것에 불과해. 그러니 학부모들이나 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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