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여신들 1
조나탕 리텔 지음, 강주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여러분이 누구도 여러분의 부인과 자식을 죽이러 오지 않고, 누구도 여러분에게 다른 남자의 부인과 자식을 죽이라고 윽박지르지 않는 나라와 시대에 태어났다면 하느님께 감사하고 평화롭게 지내도록 하십시오. 하지만 여러분이 나보다 운이 좋은 거지 나보다 착한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마십시오.”

프리모 레비,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홀로코스트 문학’의 계보에 조나탕 리텔은 독특하고 논쟁적인 작품을 덧붙였다. 유대인 대학살과 나치즘을 가해자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파격적인 시선 때문이다. 리텔은 나치 친위대 장교 출신의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던 독일군과 독일인의 실상과 심리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유대인 학살은 피해자인 유대인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유럽인 모두에게 강한 정신적 외상을 남겼다. 리텔은 이제껏 쉽게 얘기할 수 없었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이야기되어져야 하는, 가해자로서의 독일인들이 직면했을 힘든 물음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소설은 나치 친위대 장교가 된 막시밀리안 아우에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스물다섯에서 서른 살 사이에 대학살에 참여했던 일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는 문학과 철학을 좋아하고, 한때는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낭만적인 인물로 전쟁이나 살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설은 아우에 개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한편, 그가 전쟁에서 겪은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를 그리며 두 축으로 진행된다. 아우에는 불행한 개인사를 지닌 인물로,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재혼한 어머니를 미워한다. 그의 분노와 외로움은 쌍둥이 누이에 대한 근친상간적 사랑이라는 비극을 낳고 이는 동성애로 이어진다. 나치 장교로 전쟁에 참가한 그는 유대인 대학살의 현장에서 살육의 정당성을 찾지 못해 괴로워한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어조로 당시 겪었을 긴장감과 피로, 흥분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9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분량이지만 행갈이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 이는 독자로 하여금 빠져나오기 힘든 갑갑한 덩어리 속에 갇힌 인상을 주기 위한 의도다.

소설은 인간 내면에 인간적인 부분과 비인간적인 부분,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사람이 행복을 꿈꾸고 선량한 ‘평범한 개인’임과 동시에 국가의 명령에 의해 기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국가에 속한 개인’이라는 양면성을 지님을 보여준다. 개인의 인간다움, 윤리의식은 집단의 목적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되고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진실을 보여준다.

<착한 여신들>은 2006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의 권위 있는 문학상 공쿠르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받았고 현재까지 유럽에서 100만부 넘게 팔렸다. 소설의 노골적 성애장면과 나치 친위대 장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을 두고 독일과 미국에서는 ‘나치를 미화했다’ ‘폭력의 포르노그래퍼’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미국 출신 젊은 작가 리텔은 이 책을 쓰기 위해 5년 동안 러시아와 독일의 감옥, 고아원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하고 정리되지 않은 자료와 도서들을 읽었다. 소설은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대학살의 역사적 진실을 가해자의 입장에서 치밀하게 재조명한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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