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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캐러멜! ㅣ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3
곤살로 모우레 지음, 배상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8월
평점 :
끝없는 모래와 한낮의 불볕 더위, 급격한 온도 차이와 밤의 냉기가 존재하는 불모의 땅 사막. 이처럼 사막은 극지방과 더불어 생명이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그 곳에도 허름하나마 집을 짓고 동물을 키우며 고단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뜨겁고 삭막한 알제리 사막에는 침략을 받고 조국땅을 떠난 사하라위족이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를 가진 코리. 여덟 살의 소년은 풀밭도, 나무 한 그루도 없는 사하라 사막에 있는 스마라(사하라 난민촌)에 살고 있다.
느릿느릿한 움직임과 차분함, 등에 혹을 단 신기한 생김새를 지닌 낙타에게 매료된 소년. 벌어졌다 오므라들었다 하는 입술 모양이 이름이고, 말인 코리는 먹이를 씹느라 입술을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낙타도 말을 한다고 믿는다. 낙타도 입을 오물오물~, 코리도 입을 벙긋벙긋~. 어린 코리는 비록 낙타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걸곤 한다.
숙모네 낙타가 점점 뚱뚱해졌다가 다시 홀쭉해진 날 마법처럼 생겨난 캐러멜 색의 조그만 아기 낙타... 아기 낙타가 코리 쪽을 보며 입술을 움직인다. 벌린 입술, 닫힌 입술, 벌린 입술.... 코리는 달콤한 캐러멜 같은 색깔과 자꾸 만지고 싶은 마음이 일게 하는 보드라운 털을 지닌 아기 낙타에게 '캐러멜'이란 이름을 지어준다.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코리는 다른 낙타들도 좋아했지만 캐러멜이 더욱 특별했던 건 그래서일 것이다. 처음으로 사귄 소중한 친구. 코리가 건네 파릇한 보리풀 한 줌을 먹으며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이는 캐러멜. 소년과 낙타, 둘은 서로 사랑했고, 오후가 되면 늘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찌는 듯이 더운 날에도, 무시무시한 모래폭풍이 부는 날에도...
코리는 캐러멜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말을 쓰기 위해 선생님을 졸라 읽고 쓰기를 배운다. 일식이 일어나던 날, 코리는 수업 도중에 캐러멜에게로 달려 간다. 서로를 바라보고, 입술을 움직이고, 입술을 읽고.... '해와 다리 사랑해서 하느레서 만나지요' 같은 시어들은 정말 코리의 말처럼 낙타가 말한 것일까? 아니면 자연과 생명을 향해 열린 귀를 가진 소년의 순수한 마음과 풍부한 감수성이 그려낸 것일까?
이 책은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속에는 조국땅을 떠나 살아가고 있지만 자유와 민족 자결의 굳은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하라위족의 힘겹지만 강인한 삶이 묻어있다. 장애를 가진 아이와 동물간의 우정을 다룬 책을 가끔 접하는 편인데 <안녕, 캐러멜!>이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 아닌가 싶다. 코리가 캐러멜의 입에서 읽은 "이건 내가 우리 엄마 뱃속에서 꿈꾼 땅이 아니야..."라는 시 속에는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하라위족의 고통과 슬픔이 녹아 있는 듯 하다.
이 둘의 이별은 난민촌을 짓누르는 배고픔 때문에 찾아온다. 희생 제물로 바쳐질 시간... 사랑하는 조카의 캐러멜을 향한 커다란 사랑을 알면서도 삼촌으로서는 사치를 부릴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들이 믿는, 숫낙타를 제물로 바치라는 계시를 내렸던 신은 소년의 애처로움과 슬픔에는 대답이 없었다. 여자와 아이들 앞에서 절대로 울지 않는 사하라위족 남자의 가슴과 눈에 슬픔이 방울져 흘러내리게 하는 그 신을 나는 과감히 원망하고 질책하였다. 신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은 그러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러할 수 있으니...
코리는 둘만의 하이마를 꿈꾸며 캐러멜을 이끌고 사막 남쪽으로 향한다. 사랑하는 캐러멜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민족의 사막이 아닌 사막의 사막일 뿐인, 끝없이 텅 빈, 뜨거운 사막 속으로... 소년은 들을 수 없기에 풀이 자라는 곳에 절대 닿지 못할 것을 본능으로 아는 낙타의 깊고 처량한 울부짖음을 듣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소년과 낙타는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되돌아간다. 죽음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하마다를 향해서..
칼날 같은 죽음의 순간에 코리는 그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광경을 외면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캐러멜의 말을 받아 적은 아이의 의연함은 그래서 더 슬프고 가슴 아프다. 훗날 사하라위족의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시인 바티가 그를 찾아와 그의 시를 칭찬하자 때 코리는 자신은 그저 옮겨 적을 뿐이라고 말한다. 귀가 들리지 않던 소년이 오래 전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 배웠던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들.. 그것은 바로 '캐러멜의 말'이었다.
<안녕, 캐러멜!>은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와는 다른 느낌을 전해주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비록 난민의 삶이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폭력 없이 살아가는 사하라위족을 알게 되었고, 마음으로 읽는 법을 배운다.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과 맑고 순수한 영혼이 들려주는 말처럼 아름다운 시가 또 있을까. 감동은 짧은 시 한 편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사막에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 같은 잔잔한 이 동화 한 편 역시 진한 감동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