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용은 잠들다>는 <이유>, <화차>, <모방범> 등을 통해 사회의 악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로 명성을 얻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1992년 작품. 이 책은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 같은 특이한 소재를 다루고 있으나 초능력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남들에게 없는 능력을 지닌 사람의 이면에 숨겨진 고통과 갈등을 소재로 하고 있다. 저자가 '인간이 갖고 있는 블랙박스'일지도 모른다고 묘사한 초능력은 과연 신이 내린 선물일까, 저주받은 재앙일까? 그것도 아니면 어른들의 환상일 뿐일까? 

  잡지사 기자인 고사카 쇼고(화자)는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 차를 몰고 가다 '이나무라 신지'라고 이름을 밝힌 한 고등학생을 태우게 된다. 신지는 누군가에 의해 뚜껑이 열린 맨홀 근처에서 실종된 아이의 문제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낸다. 화자는 사람의 기억을 읽을 수 있는, 즉 스캔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신지로 인해 의문에 빠진다.

 그런데 나중에 사촌이라며 화자를 찾아 온 나오야는 신지가 알아낸 것들이 초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교묘한 속임수임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주장한다. 초능력은 없다고 주장하는 나오야와 오히려 나오야 또한 자신처럼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신지의 진실 공방! 과연 누구의 말이 사실일까? 화자뿐만 아니라 독자들마저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몰라 혼란이 가중된다. 초능력의 존재 여부에 의문을 가진 화자는 초능력을 믿지 않는 동료의 조언으로 나오야와 신지가 진짜 사이킥(Psychic)인지를 조사해 나간다.  

  이 작품은 두 갈래의 사건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초반에는 화자와 신지가 초등학생 실종 사건을 야기한 사람들을 찾아내는 과정이 펼쳐진다. 다음으로 화자인 기자에게 계속해서 날아오는 백지만 들어있는 편지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에게서 걸려 온 의문의 전화. 누가 무엇때문에 그런 편지를 보내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화를 입지 않을까 염려하여 동분서주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또 한 사람의 사회적 약자를 만날 수 있는데, 어릴 때의 사고로 말을 하지 못하는 나나에는 신지나 나오야와 대비되는 인물이다. 있어야 할 능력이 사라진 이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남들에게 없는 능력을 여분으로 가진 탓에 고생하는 이는 그 능력이 주는 중압감 때문에 어느 쪽도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중심인물인 고사카는 어느 쪽도 아닌 평범한 정상인의 범주이지만 저자는 이 '정상'의 범주도 살짝 꼬집고 있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니고 태어난 초능력 탓에 사람들 속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타인의 생각들 속에서 자아를 잃어가는 자의 혼란스러움, 알고 싶지 않은 것, 알아서는 안 되는 것들을 알아버린 자의 고통을 접하게 된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가진 것이 과연 우월감을 느낄 만큼 대단한 축복일까? 

  누군가의 기억을 읽어버리게 되는 쪽도, 자신의 기억을 읽혀버린 쪽도 좋을 리가 없다. 좋은 말을 건네고 호의를 베푸는 상대가 친절이라는 가면 뒤에 악의나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뻔히 보인다면 그 심정이 어떻겠는가! 더구나 이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그 거짓된 친절에 감사를 표해야 하는 가식적인 삶으로 점철된다면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 작품에서 고통을 감내하며 그늘에 살아가는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조용하게 서로를 감싸안아 주는 모습으로 따스한 훈기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사이킥 능력이 있는 사람의 도움으로 사건을 해결한 적이 있는 전직 경찰 무라다는 나오야나 신지를 자기 자신 안의 용을 깨워버린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나오야는 자신의 몸 안에서 깨어난 용의 어마어마한 힘에 짓눌려 삶 자체가 고통스러워 그 힘을 숨기고자 한다. 그에 비해 신지는 용의 힘으로 발휘되는 자신의 능력을 사회를 위해 쓰고자 하는 쪽이다. 둘은 같은 능력을 지녔으나 이처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대하고 다른 삶을 살고자 하기에 서로에게 의지하면서도 함께 할 수가 없다. 과연 내 몸 안에 거대한 용이 잠들어 있다면 그 용을 깨우고 싶을까? 용이 깨어난다면 과연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하게 될까? 책장을 덮고 잠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 사이코메트리 [psychometry]-시계나 사진 등 특정인의 소유물에 손을 대어, 소유자에 관한 정보를 읽어내는 심령적()인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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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9-03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리 읽으셨네요^^

반딧불,, 2006-09-04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써야하는데..읽으면 안되는데...ㅠㅠ;

똘이맘, 또또맘 2006-09-0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특이한 책이네요. 내 마음속에 꿈틀대는 용이있다면 잠재우고 싶네요...조용히 살고 싶어서리...

아영엄마 2006-09-0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월초에는 좀 널널한 마음으로 책을 보는 편이라서요.. 헤헤~
반딧불님/안 읽으셨죠? 언능 리뷰 올리삼~
똘이맘, 또또맘님/학창시절에는 초능력에 관심 있어서 내가 초능력자였으면 하는 상상도 해보곤 했는데 나이들면서 남들과 다른 능력을 지닌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책 내용에 공감이 가네요.

반딧불,, 2006-09-04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버렸어요.흑..ㅠㅠ;

아영엄마 2006-09-04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디님~ 책은 다 읽으신거죠? 그럼 제 리뷰 읽어도 괜찮을텐데.. 왜 그러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