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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좋은 형제 ㅣ 옛날옛적에 5
이현주 지음, 김천정 그림 / 국민서관 / 2006년 6월
평점 :
형제가 서로에게 몰래 볏단을 날라다 준 "의좋은 형제"는 널리 알려진 옛 이야기이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기도 하다. 이 그림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의좋은 형제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선과 색이 선명한 판화 그림과 함께 감칠 나는 표현들로 이야기를 듣는 맛을 더 돋우어주고 있다.
함께 열심히 농사를 지은 형제는 추수를 하자 각자 형과 아우네 살림을 걱정하며 자신의 낟가리에서 볏단을 덜어내어, 깊은 밤 형은 아우네로, 아우는 형네로 볏단을 날라다 놓고 온다. 그러나 아침이 되고 보니 그대로인 낟가리. 분명 지난밤에 볏단 한 짐을 덜어 갖다 놓고 왔는데 어쩐 일로 낟가리가 그대로이다. 다음날, 그 다음날도 서로에게 볏단을 날라다 주는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간사할 때가 많아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이런저런 궁리나 앞뒤를 재어보다 보면 처음의 마음 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형제는 더 많이~, 또 더 많이 갖다 주려고 마음을 먹으니 어찌 그 마음이 가상치 않겠는가.
심야에 마주친 형님과 아우,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아는 그 순간에는 구구절절한 설명도, 긴 말도 필요치 않다. 달님도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형제가 싸우지 않고 서로를 위해 주며 우애 있게 지내기를 원하는 것은 둘 이상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바라는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과 달리 아이들은 장난감을 빼앗거나 말다툼을 하는 등 하루에도 몇 번씩 다툼이 벌어지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같이 노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조금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데 돌이켜 보면 나 또한 그런 시절을 보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사는 것이 점점 각박해져서 이제는 자기 식구 챙기고 사는 것이 우선이 되는 추세라 피를 나눈 형제간에도 한 쪽이 어려움을 겪을 때 모르는 척 하는 경우가 많다.-하긴 그렇게 사는 사람이 더 잘 살더라마는...- 그런 경우를 보면 차라리 남보다 못하게 여겨지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리해도 우리 아이들은 서로를 살피고 도와가며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이렇게 우애 있게 지낸 형제의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으냐고 하며 책을 보았는데, 마음 같아서는 "너희들도 이 형제들처럼 우애 있게 지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
드러내 놓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 이야기가 주는 감동과 여운이 아이들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살아가면서 마음과 더불어 물질도 나누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이웃과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고 살피는 마음도 가지길 바란다.
- 도서 정보가 적힌 그림책 속지에 이 책이 충남 예산군 대흥면에 살았던 이성만ㆍ이순 형제의 우애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작은 글씨로 적혀 있다. 개인적으로 한 쪽을 할애하여 출판사 책소개글(아래 참조)에 나와 있는 내용과 비석 사진을 함께 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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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 올라와 있는 소개글의 일부
http://kmbooks.com/book_info/book_info_view.asp?pIndex=316&all=orage
옛이야기로 되살아난 역사 속 형제 이야기
1950년대 이후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의좋은 형제’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진 구전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고려시대 말부터 조선시대 초까지 충남 예산군 대흥면에 살았던 이성만․ 이순 형제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이성만 형제는 부모를 극진히 공경하고 형제간 우애가 깊어 마을에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이들 형제의 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자 세종대왕은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했고, 연산군 때에는 173자가 기록된 비를 세워 주었습니다. 이는 《조선왕조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1978년에는 전설로만 여겨졌던 이성만 형제의 실존과 행실의 실제를 증거하는 효제비(孝悌碑)가 충남 예산에서 발견되어, 이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있음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이 비는 예산 지역 현존 최고의 금석문 자료로 가치가 인정되어, 1983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되어 비각으로 보호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