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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로 찾아온 지아의 비밀친구 ㅣ 저학년을 위한 꼬마도서관 33
요아힘 프리드리히 지음, 바바라 숄츠 그림, 조원규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바쁘게 생활하게 되었다.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때로는 학교에서 바로 학원으로 직행하여 남들보다 앞서는 학과 공부를 하고, 음악이나 미술, 또는 영어 학원에 다녀오느라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오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 거기다 한자, 글짓기, 독서&논술 등등, 우리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만 같은 것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하루 종일 놀아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우리네 아이들이 이제는 놀 시간조차 없이 집과 학교, 학원을 맴돌고 있으니, 가끔 길에서 가방을 들고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들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앞선다. 그리고 이 책에도 나오는 것처럼 부모도 그에 맞춰 아이를 목적지까지 차를 태워 주고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데려오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느라 종일 발이 묶여 있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지아는 강습을 받으러 다니느라 늘 바쁜 아이로. 너무 바빠서 친하게 지낼만한 친구를 사귈 틈도 없다. 학원 시간이 다되어서야 부모님의 차를 타고 도착해서 배울 것을 배우고 나면 또 숨 가쁘게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밖에서 기다리고 계신 부모님의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니 강습이 끝나고 여유롭게 친구를 사귀고 대화할 시간도 없다. 그러니 언제 친한 친구를 사귀어 보겠는가...그런 지아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그것도 볼일을 보고 있는 화장실로~- 아이가 자신을 지아의 지아라고 소개한다. 부모님의 의지에 끌려 다니기만 하던 지아는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또 다른 자아의 등장으로 인해 혼란과 갈등과 고민을 겪으면서 자신의 의사와 소망을 용기내어 말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해 간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지아의 부모님이 보여주는 행동이나 말이 낯설지 않은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나도 느긋하게 쉬라고 있는 일요일에조차 아이에게 서두르라고 재촉을 하고, 지아의 부모처럼 어릴 때는 이런 호사를 누리지 못했다--차를 태워준다거나, 비싼 강습을 배울 여력이 없었다는 등-는 식의 말을 한 적이 있을 터이다. 아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신경을 써주고 배려하기보다는 아이의 장래를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아이를 몰아붙이지는 않았던가... 어른이 되면 어려서 배우게 된 것을 고맙게 여길 것이라는 지아의 엄마의 말에 가슴이 뜨끔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전에 치기도 힘들고 반복만 해서 재미없는 피아노는 그만두고 재미있는 태권도만 배우고 싶다고 말한 작은 아이의 말에 고학년이 되면 배우고 싶어도 배울 시간이 없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해 버린 나 또한 자식의 미래를 위한 배려라고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는 사람인게다. (솔직히 부모로서 포기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고...)
작품에서 지아의 지아는 '쿠르트'라는 이름의 커다란 곰인형을 들고 다니는데 처음에 지아는 이를 '겨우 그거'로 치부한다. 문득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그들의 손에서, 마음에서 소중히 여기던 장난감과 인형을 빼앗아 버리는 것은 바로 어른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이에 아직도 그런 것을 가지고 노느냐며 치워버리거나 아이에게 면박을 주어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을 마음에서 떠나보내게 강요하지 않던가... 용기를 내어 자신의 원하는 바를 말한 지아가 부모님께 곰인형을 갖고 싶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그만 가지고 놀 때도 되었다 싶어 장난감 몇 가지를 정리해 버리려던 나의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