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개구리는 뛰었다 고학년을 위한 생각도서관 21
히로세 히사코 지음, 박영미 그림, 고향옥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그리고, 개구리는 뛰었다>는 병약한 동생으로 인해 부모의 관심에서 소외된 큰 아이의 심리를 잘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아픈 아이 위주로 생활해 가는 가족의 일상과 아픈 동생에게 모든 것을 배려하고 양보하기를 원하는 부모의 모습을 담담이 그려낼 뿐, 그로 인해 많은 부분을 희생해고 양보해야 하는 큰 아이의 슬픔이나 외로움을 짚어내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착한 슈헤이, 의젓한 슈헤이, 영리한 슈헤이... 그러나 슈헤이의 마음은 수영장 카드의 빈 칸만큼이나 공허하다. 체온 26.5도. 친구의 카드를 흘깃 보고 적는 바람에 쓴 그 숫자 때문에 슈헤이는 개구리가 된다. 피가 차가운 개구리. 동생을 위해 병원에 가져갔던 개구리. 

 엄마가 못마땅해 할 것을 알면서도 동생이 다리 운동을 하고 있는 욕조에 들어가 엄마 다리에게 붙어 앉았던 쇼헤이는 혼자 물 속에 남겨 짐으로 인해 또 한 번 자신이 외톨이임을 절감한다. 엄마와 동생이 나감으로 인해 쑥 내려앉는 물의 부피만큼이나 공허해지는 슈헤이의 마음. 부모님은 동생이 힘든 일을 많이 겪어 왔으니까 잘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동안 힘든 일들을 잘 참아 온 슈헤이는? 마침내 슈헤이에게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꺼끌꺼끌한 바람이...

등교를 거부하고 안으로 침잔하는 슈헤이의 반항에 가슴이 아렸다. 등을 문질러 주는 엄마의 손길이 좋아서 억지로 기침하는 슈헤이에게서 내 아이의 모습을 느낀다. 작은 아이가 아픈 것이 안쓰러워 다독거려주고 있는 나에게 자기도 아프다고 말하는 우리집 큰 아이의 말 속에는 엄마의 애정 어린 손길이 자기에게도 필요함을,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은 간절함이 들어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형제를 차별 대우를 하지 않고 키워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작은 아이는 어리다는 이유로 더 안아 주게 되곤 하는데, 큰아이도 서운한 것이 가슴에 쌓였나 보다.  그렇지 않아도 좀 컸다는 이유만으로 더 야단을 듣는 것이 맏이인데...  혹 내 아이의 마음속에도 개구리가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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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6-01-20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맏이의 부담은 그 짐을 맏기는 사람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특히 맏이면서 아들일때... 다들 큰 아들이라고 대접받는다는 부러움 섞인 불평을 하지만 의무감을 헤아려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2006-01-20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06-01-20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맏이에게 그래도 동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려주세요.
혼자서 맞서야 할것도 동생이 있으면 의지가 될텐데요. 동생과 함께 하고픈 많은 일들도 동생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나만의 방이 생기고 혼자 입는 옷과 혼자 먹어도 충분한 과자가 생겨도 학용품가지고 싸울일 없어도 오히려 과자 한쪽 반갈라 먹고 바나나를 반으로 나누고 학용품때문에 뺏고 싸우는게 더 행복한 것을 알려주면 조금은 덜 외로워 하지 않을까요?

마립간 2006-01-20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이 있는 것이 행복이지만 부담을 덜어주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게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형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남동생이 그도 아니면 누나가. 물론 여동생도 여동생조차 없는 것보다는 여러면에서 좋았지만 (특히 동기간의 우애라는 느낌을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으므로) 맏이로서의 부담감은 여전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독방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구요. 제 동료의 아이들을 보면 5세 정도된 아이가 3세된 동생을 감당도 못하면서 돌보는 것을 보았는데 한편으로 대견하기도 하고 맏이로서 같은 스스로, 또는 주위에서는 주는 책임감이 안타깝기도 했죠.

아영엄마 2006-01-20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자신은 맏이가 아니지만-중간- 큰 아이를 볼 때면 가끔 맏이란 참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라면서 부모의 기대를 가장 많이 받는 동시에 꾸중도 그만큼 많이 받게 되지요.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부모는 또 그만큼, 아니 더 배가된 기대를 하니까 아마 평생 그것이 커다란 짐이자 억압으로 작용하지 싶습니다.
저도 자식을 키우고 있지만 솔직히 둘째 아이는 때 되면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넉넉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데 아무래도 첫째에게는 이 나이니까 이만큼, 한 살 더 먹었으니 저만큼... 하면서 계속 기대치를 높여가게 되더군요. 다만 스스로 자각하고 그 기대치를 낮추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