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알고 있는 신화라고 해봐야 널리 알려져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플루타크 영웅전 정도일까, 최초라는 것에 끌려 이 책을 신청하긴 했는데 받는 순간 <고릴라 이스마엘>에 이어 두번째로 후회를 안겨준 책이었다. 내가 어쩌자고 이 두꺼운 책을 보겠노라고 자청을 했던가... ㅜㅜ;;  역사와 신화에 관한 지식이 많은 분이 이 책을 받으셨더라면 좋은 리뷰를 쓰셨을텐데 그 기회를 박탈한 것 같아 죄송스럽기까지 했다. -좋은 책을 보내주셨는지라 나름대로 열심히 읽고 쓰긴 하는데 리뷰의 질이 떨어지더라도 양해바랍니다.(__)-

  이 책에서는 '최초'라는 단어는 자주 만나게 된다. 모든 것의 최초가 되는 수메르, 최초의 성숙한 문명, 최초의 국가, 최초의 신화, 최초의 역사 등등... 그리고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 영우 오디세우스를 2000년 뒤의 까마득한 후배로 전락시킨 인물- 과연 인물이라고 칭해야 할 지 말아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이자 최고의 영웅, 길가메쉬!  나는 2/3는 신이고 1/3인 인간이자 수메르의 왕이었던 이 사내에게 주목하며 이 책을 읽었다.  우선 바벨탑의 신화나 노아의 홍수같은 사건들이 수메르로 씌어진 <엔메르카르와 아랏타의 주>에 언급되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실존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길가메쉬를 묘사한 글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실제한 인물인지 혼란스럽다. 영웅은 실제보다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키가 5m에 가까운 인물이라니! 그런데 주석에 달린 글을 보면 그 이후에도 거인이 목격된 적이 있다고 한다. 길가메쉬로 인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과연 아이들 동화책에서나 등장하는 거인은 존재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나저나 영웅이라고 칭송되는 길가메쉬가 신들이 준 완벽한 신체와 남성미를 지닌 사내이긴 하나 모든 면에서 완벽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초대한 곳으로 갑니다. 예식을 치르는 집으로요. 그곳으로 그가 끼어듭니다! 혼례의 일상적인 관례는 무시됩니다! 도시는 그가 쌓아놓은 망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가 강요하는 이상한 풍습으로, 도시 사람들은 저항할 힘을 잃었습니다. 우루크의 왕을 위해 바뀌지 말아야 할 규율이 바뀌었고, 악용되었고, 관행이 변해버렸습니다. 사람들의 새신부는 누구나 그의 차지입니다....."(p.105)

 나도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주인공이 영주와 맞서 싸우게 된 원인인 '초야권'을 행사한 시초가 길가메쉬에게 있었다니, 그리고 그것이 처음부터 신들이 길가메쉬 혼자에게만 정해준 권리였다니... '성욕을 채우기 위해 쉴 새 없이 밤낮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청년'이었던 길가메쉬, 그리고 주위의 충고를 무시하고 무모한 도전에 나선 그에게 엔키두 같은 친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훔바바를 없애기 위한 원정에 나설 때에 우루쿠의 장로들과 함께 엔키두 또한 길가메쉬를 말리려 했었다. 그런 친구에게 길가메쉬가 던진 말을 보라. "이보게, 친구. 자네도 저들과 똑같은 말을 할 건가? '나는 죽음이 두렵다'라고, 응?" 죽음을 가벼이 여겼던 길가메쉬가 엔키두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죽음의 공포를 알고 영생을 누리기 위할 방도를 찾아 나서고 애쓴다.

 신들이야 영원한 삶을 보장받은 존재들이고, 그들이 창조한 인간에게는 '영생'이라는 것은 주어지지 않은 인센티브였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보는 영원한 삶... 그것은 행복할 때,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을 때 더 생각이 나고, 죽음을 목격하거나 앞두었을 때 더욱 간절해진다.  부와 권력, 풍족한 삶을 누렸으며 불로초-이 책에 그런 식물이 언급된다!-를 구하기 위해 그토록 애쓴 진시황제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현대의 과학이 인간의 수명을 늘이기 위해 지금도 연구에 매진하고 있으니 어쩌면 보통 인간도 126년간 우루크를 통치한 길가메쉬의 수명만큼은 누릴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태생이 주는 특권을 누리던 방탕한 젊은이, 괴물 후와와를 해치울 때조차 겁에 질려 엔키두에게 의지하고 꾐에 빠트리기 위해 여동생을 팔아먹기까지 한 사내에게선 영웅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과연 엔릴이 길가메쉬가 아닌 엔키두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의 타당성에 손을 들어주어야 하는 것일까? 친구가 나쁜 길을 가겠노라고 큰소리를 쳐서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섰으되 그가 나쁜 짓을 저지르도록 도와다는 이유로 그만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온당한 것일까? 아무튼 이 책을 통해 접하는 길가메쉬는 영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영웅도 사람이란 점을 감안해 주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여러 판본(수메르어, 악카드 어 등)을 대조하고 음역하느라 애쓴 필자에게 경의를 표하며, 3부 02 <여자>를 읽어 보면 필자가 여성예찬론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개인적으로 이 점에 동조하는 바이다. 동물들과 생활하던 원시인이었던 엔키두를 개화시킨 이가 누구이던가. 꼭 신화속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주위를 둘러 보면 여자(엄마이든 아내이든)의 말을 들어서 나쁜 일은 없으니, 남자들이여, 여자의 판단력을 믿을지어다~. ^^*  
 
'여자를 정복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모한 짓이다. 차라리 그들에게 정복당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도 안전한 길이다. 열등한 존재가 우등한 존재를 넘어서는 일은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여자의 정확한 통찰력은 언제나 남자의 생을 이끈다.'(p.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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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2005-02-14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도 숙제 끝내신 거 축하드립니다-
전혀 질이 떨어지는 리뷰가 아닌 걸요. 오히려 쉽게 읽히는 장점이 돋보이는 리뷰였습니다.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점이나 그냥 지나친 세세한 이야기들을 보니 또 새삼 다양한 시각을 만나는 즐거움에 대해 깨닫게 되네요 :)

아영엄마 2005-02-14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멍든사과님~ 답칭찬(?)은 안해주셔도 되는데..^^;; 그래도 일부러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__)

반딧불,, 2005-02-14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축하드려요.
전 언제 마치려는지..
두 개의 리뷰 땜에 머리가 복잡하옵니다ㅠㅠ

그리고, 음..그 부분을 열심히 읽게 되는 것은 그나마 쫌 편하게 읽힌 곳이라서 인지 아니면 우리가 알고 있던 것들이 실은 아니라는 것 때문인지..에구 ..
그 많은 사진들에도 불구하고 참 힘들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