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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류시화 지음 / 열림원 / 199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내 몸은 축축히 젖어 있다. 방금 하늘 호수에 다녀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류시화님의 글 속에 푹 빠져 인도라는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이 책을 언제 다 읽을까 하는 우려는 저만치 사라지고, 넘실대는 그의 글에 실려 흘러가다 보니 인도 여행을 언제 마쳤는지도 모르게 아쉬움을 간직하면서 책장을 덮고 있었다.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더운 기후에다가 사람들이 지저분하고 불결한 생활-다른 나라 사람들의 기준으로- 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곳이기에 왠만한 각오를 하지 않고는 다녀올 엄두가 나지 않을 나라인 것 같다. 이미 인도를 몇 차례나 다녀온 류시화님 조차 진절머리를 친다는데야, 나 같은 이는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후회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작가가 만난 사람들의 말에 담긴 재치와 순발력에 때로는 놀라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노인이 류시화님으로부터 '배낭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안에 먹을 것이 들어 있으면 앞에 앉은 사람과 나눠 먹어야 한다는 것!' 절로 웃음이 나오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거지와 성자가 구별되지 않는 듯 하였으며, 어찌 보면 수행을 하는 성자라는 사람들 역시 돈에 연연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적선을 하는 거지들도 돈을 받는 것이 오히려 적선하는 사람에게 덕을 쌓도록 도와준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고 하니 인도에 가서는 돈주머니가 제대로 남아나지 않을 듯 하다.
그 멀고도 먼 인도라는 나라를 내 생전에 가볼 일이 있을까마는 행여 가본다면 '아, 여기에는 꼭 가봐야겠구나, 어떤 호텔에서 여장을 풀어야겠구나' 하며 글 속에 표기된 지명과 상호를 하나하나 새기며 글을 읽었다. 그러면서도 화장실 하나 제대로 없는 곳이 다반사이고, 사람과 가축들이 함께 타는 버스나 기차는 운전하는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올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 한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진저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화를 내고 분노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 세상의 그 어떤 물건도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문득 '공수래 공수거'라는 문구가 생각나면서 점점 더 커져가는 나의 욕심과 집착을 조금이나마 다스리는 시간을 가졌다.
류시화님이 만난 많은 성자들이 주신 가르침이 내게도 깨달음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가 추천한 '노프라블럼' 정신을 받아들인다면 나의 고단한 삶도 밝은 빛과 여유를 가지게 되리라... 그리고 몇 천번의 윤회를 거듭해야 태어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낭비하지 말고,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을 통해 얻은 또 하나의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