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야  '느낌표'에서 소개되기 전에 이미, '박완서'님의 작품이라 읽어본 책이다. 그 때도 책 제목을 보면서 굉장한 호기심을 가졌었는데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을 고르라면 당연히 제목에 들어 있는 '싱아'를 고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싱아'를 아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60대인 우리 친정어머니께 여쭈어 보았지만 역시 모른다는 대답만 들었다. 책 속에 나오는'싱아'가 어떤 풀이고, 어떤 꽃을 피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어릴 때 싱아를 먹는 솔솔한 재미를 묘사하는 부분을 보고 있노라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근처에 집이 들어서고 길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여러 종류의 풀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던 제방 근처의 풀밭은 우리 동네 아이들의 주무대였다. 지금도 그립게 여겨지는 나의 유년시절의 기억들.. 계집아이들은 집근처에서 수북히 모아놓은 돌로 공기놀이를 하거나 고무줄 놀이를 하였고, 사내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 귀퉁이를 노려 내려치는 딱지치기, 땅에 구멍을 파서 하나라도 더 빼앗으려고 열심히 구슬을 치는 것이 일상사였다. 그 재미가 시들해지면 끼리끼리 그늘에 앉아, 도란 도란 이야기를 펼치다가 누군가가 '뚝에 놀러가자~'라며 아이들을 유혹하면 너나할것 없이 제방 쪽으로 내달렸다.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동네를 벗어나 제방에 도착하여 쑥을 뜯거나 방아깨비, 메뚜기 등을 잡다 보면 어느새 뱃속이 허전해져서 먹을거리를 찾아나섰다. 온통 초록밭인 풀 숲에서 질긴 껍질을 한 거풀 벗거내면 나오는, 풀꽃 내음이 풍겨오는 연한 '풀속'을 찾아내어 친구들과 맛있게 먹던 기억. 요즘처럼 과자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그 연한 풀속은 훌륭한 간식거리 역할을 하였다. 풀 한 줄기에서 나오는 양이 적었던 탓에 아무리 뽑아 먹어도 배를 채우는 것은 무리였지만 심심한 입을 달래주는 재미로 '껌'처럼 질겅질겅 씹어먹던 기억은 박완서님이 '싱아'를 먹던 기억과 다르지 않다.

 지금은 그 풀을 찾아보려고 해도 그 풀이 그 풀인듯 비슷하게만 보여서 '이거야!'라고 자신있게 집어 낼 수가 없다. 그 때는 어찌 그리도 잘 찾아냈을까 의문스러울 정도이다. 하긴 찾아냈다 하더라도 지금 먹어본다면 '에게, 무슨 맛이 이래? 그 때는 이게 왜 맛있다고 생각했는지 몰라..'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도시에서 잔디밭외에는 풀을 보기 어려운 우리네 아이들은 이런 재미를 느끼지도 못하고, 다 자란 후에도 새록새록 그리운 이런 유년시절의 기억을 가지진 못하리라.

책을 읽은 후에 또 한가지 기억에 뚜렷이 남는 것은 어머니의 억척스러운 자식사랑과 교육열이다. 지금도 한국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라면 세계가 알아주지 않는가. 요즘은 그것이 지나쳐서 아이를 해치기도 한다지만 자식이 더 나은 환경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길 바라는 마음을 접기란 쉽지가 않다. 작가의 어머니는 그 마음이 아들에게만 머물지 않고 딸까지 서울에 불러 올리는 것으로 실천하였다. 여자가 상급학교에 다닌다는 것이 특별하게 생각되어지던 일제시대에 판자촌에서 삭바느질로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교육열이 있었기에 박완서라는 작가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친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지냈던 박적골에서의 유년기와 억척스러웠던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던 청소년기와 이데올로기의 혼란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겪어야 했던 수많은 역경들이 오늘의 그녀가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은 그녀의 여러 작품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남편은 책을 읽고 나서도 '싱아'가 언제 나왔는지도 모른다. 나오긴 나왔었냐고 묻는 남편에게는 작가나 나처럼 지천으로 핀 풀숲에서 무엇인가를 뜯어 먹던 쌉사름한 기억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대는 다르지만 작가와 비슷한 기억을 공유한 덕분에 이 책은 남편보다는 내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여전히 '싱아'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분명 내가 먹었던 '풀속'과 같은 느낌이리라 여기면서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유년기를 새롭게 발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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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6-01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박완서의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어머니는 강하셨죠... 그 딸은 그런 어머니를 때론 힘들어했지만...^^

반딧불,, 2004-06-01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박완서님 팬이랍니다...잔잔하면서...
가슴을 두두리는 애잔함....맞아요...
엄마가 참 깨이고...강한 분이셨죠..

전..이 책 읽으면서...참 좋았어요...많이 사라진 풍물들을 잘 재현해 두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