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세트 - 전4권 (양장)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는 드래곤, 엘프, 드워프, 오크, 마법사, 소드 마스터... 등과 같은 천편일률적인 캐릭터나 설정에 식상해 있는 독자들을 마음을 알게 된 것일까? 이 책에는 서양에서(주로 톨킨에 의해) 창조된 종족들이 아닌, '나가, 도깨비, 레콘, 두억시니 같은 새로운 종족들이 등장한다. 또한 드래곤이나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용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의 용(아스탈리화)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나가라는 종족은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니름’이라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며 뱀처럼 허물벗기를 한다. 이 종족의 가장 큰 특징은 모계사회라는 것과 심장을 꺼내는 의식을 통해 불사의 몸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여자는 가주가 되어 가문을 이끌고 사회 전반을 지배하며, 남자들은 성년식-심장적출식을 거치면서-을 치른 후에는 예외 없이 집을 떠나 단지 자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존재가 되어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닌다. 때문에 그들 중의 일부인 여신의 신랑이라 지칭되는 '수호자'들이 '신'을 통해 힘을 얻어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나가의 신인 '발자국 없는 여신'을 죽이려 하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외부로 알려지게 되면서 부터이다. 이를 알게 된 대사원(인간)에서 그 시도를 막으려고 인간, 도깨비, 레콘 종족의 세 인물을 남쪽과 북쪽의 한계선으로 파견하게 된다. 음모를 막으려는 나가의 수호자 한 명을 사원으로 데려 오기 위해서이지만 일은 어느 누구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데....

가장 눈길을 끄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케이건은 불가사의한 존재이다. 나가를 죽여 잡아 먹는 기행을 일삼는 나가 살육자인 그는 아라짓의 전사이자 키탈저 사냥꾼의 마지막 후예로 그가 살아 온 역정은 글 중간 중간에 조금씩 드러날 뿐이다. 마침내 여신의 힘을 사용할 수있게 된 나가 종족의 북쪽땅을 향한 토벌이 시작되는데 신의 힘을 휘두를 수 있게 된 수호자들에 의해 진행된 전쟁은 일방적인 도륙일 뿐이었다. 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도깨비, 레콘, 인간은 힘을 합쳐 대항하고, 한편에서는 또 다른 세 신을 찾아 여신을 해방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위와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라는 전제는 이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중요한 법칙으로 설정되어 있다. 도망자를 구출할 때도 세 종족이 구출대를 결성하고, 갇힌 여신의 힘을 대적하기 위해서도 세 신이 힘을 모아야 한다. 하지만 독자들을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두 번의 교묘한 속임수에 넘어가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한 말장난 위주의 판타지책들과는 달리 가끔씩 표출되는 유우머는 이 책의 무거운 주제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게 해주면서 글을 읽는 재미를 줄 것이다.

「드래곤 라자」라는 책을 통해 알려진 이영도가 「눈물을 마시는 새」로 우리 앞에 새로운 역량을 드러낸다고 했을 때부터 기대를 했던 책이다. 그래서 권 수는 4권이지만 분량은 보통 책의 10권 정도는 되는 책을 열심히 읽어나갔다. 두꺼운 양장본을 제작한 출판 의도 또한 다른 판타지 책과 차별하기 위한 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흥미진진하고 독특하며, 재미와 여러가지 주제(권력, 전쟁, 복수 등)를 아울러 매우 창조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글을 어렵게 쓰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부분들은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가끔 등장하는 아라짓 방언같은 것은 그 말을 해석하기 위해 열심히 생각해 보게 만들었는데, 두꺼운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의 어려움(^^;)을 생각해서라도 조금은 배려를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파이어나, 검강 같은 것이 난무하는 판타지에 질려버린 판타지 매니아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이 책을 기점으로 여러 판타지 작가들도 새로운 관점과 창의력을 발휘에 좋은 작품을 창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 2004-05-1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달려가야겠네요..사실 드래곤라자는 별로였지만...
새로운 인물형과 세계 창조라니 넘넘 궁금합니다.

읽고 저도 후기 올립지요^^*

주작 2004-05-19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는 이영도의 팬입니다. 이영도의 작품은 다 가지고 있지요. 그 중에서도 '눈물을 마시는 새'는 다른 책과 달리(다 그렇지만) 동양 판타지란 점에서 관심을 끌었구요. 잘 보면 우리가 전래동화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친근했는지도 모르구요. 판타지의 주 수요층인 학생들은 별 재미없다지만 홍수처럼 쏟아지는 판타지 속에서 이런 책들은 꾸준히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판타지는 쓸데없는 끄적거림이다... 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요...